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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난의 칼날 뒤에 숨은 본질, 김문훈 목사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의 두 얼굴
    양봉식 국장 1. 목회자의 실화(失話), 그리고 그 너머의 이야기 최근 부산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가 부교역자들에게 쏟아낸 과거의 거친 언행이 공개되며 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성직자의 입에서 나온 욕설과 폭언은 성도들에게 배신감과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부 유튜버와 매체들의 태도를 보면, 과연 그 목적이 '교회의 정화'에 있는지 아니면 '자극적인 비난'에 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김문훈 목사의 설화에 대해 확대재생산되는 형태로 SNS에 퍼지고 있다. 특히 ‘마하나임뉴스’ 등이 제작한 콘텐츠는 공익적 제보라는 이름 아래, 성경적 가치와 법적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어 주목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목회자의 잘못을 비판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비판은 상대를 살리기 위한 '수술 칼'이 되어야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도끼'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마하나님뉴스'의 김문훈 목사와 관련된 영상 썸네일 캡처 2. 마하나임뉴스 영상 분석: 고발인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인가? 마하나임뉴스가 공개한 ‘포도원교회 김도끼’ 영상과 관련 보도들은 사실 확인보다는 시청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언론의 기본 사명은 객관적 사실 보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매체는 감정적 선동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마하나님은 정의의 사도처럼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마하나임의 관련 영상의 댓글은 대부분 영상의 내용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댓글의 한계는 보여주는 것에 대한 앞뒤의 사건과 정황,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유튜버가 댓글을 통해 인지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지자의 댓글이 자신의 글이나 주장을 정당화시킬 위험이 있다. 첫째, 원색적인 비하 발언의 향연이다. 영상 속에서는 김 목사를 향해 “마귀”, “개똥차반”, “주둥아리”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표현들이 쏟아진다. 이는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명백한 인신공격이다. 비판의 대상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비판하는 자가 저질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천박한 언어 사용은 보도의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사과를 부정하는 자의적 예단이다. 김 목사는 2026년 2월 24일, 교단 신문을 통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목회자의 언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며 총회 직위에서 물러나고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회복을 돕겠다고 구체적인 결단을 밝혔다. 하지만 마하나임뉴스는 이러한 사과의 몸짓을 시작도 하기 전에 “새빨간 거짓말”이나 “꼼수”로 단정하며 비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진정한 회개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김 목사의 말에 대해, 행동을 지켜보기도 전에 '거짓'으로 낙인찍는 것은 언론의 횡포에 가깝다. 셋째, 일방적인 정보 전달과 반론권 부재다. 언론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반론권 보장이나 객관적인 사실 확인 절차도 부족해 보인다. 김 목사 측의 현재 노력이나 입장은 철저히 배제된 채, 익명 제보자의 발언만이 절대적인 진실로 포장되고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확증 편향을 심어주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3. 법과 상식을 벗어난 비판의 위험성 아무리 비판의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방식이 위법하거나 상식 밖이라면 그 정당성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마하나임뉴스의 보도 행태는 여러 법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법적 책임의 소지: 법조계에서는 영상 제작자가 사용한 경멸적 표현들이 모욕죄나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대법원 판례(2002. 1. 22. 선고 2000다37524)에 따르면, 보도 내용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었는지, 그리고 제보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 근거(상당성)가 있는지가 명예훼손 성립의 핵심 기준이 된다. 월권적인 태도와 법리적 무지: 영상 제작자는 본인이 피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소송을 주도하겠다고 공언하거나, 교단 헌법을 무시한 채 즉각 사퇴만을 정답으로 제시한다. 모욕죄는 친고죄이며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임에도 불구하고 제3자가 고발을 남발하겠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교회의 행정적·종교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기업의 갑질 사례와 단순 비교하며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교단 질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월권적 요구다. 기독교보에 게재된 김문훈 목사의 사과문 4.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비판: ‘죽이는 비난’이 아닌 ‘살리는 권면’ 우리는 누구나 남의 잘못을 아주 쉽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비판은 세상의 방식과는 결을 완전히 달리해야 한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마하나임뉴스의 보도 태도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신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① 심판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성경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9)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대신해 누군가를 영원히 매장하려는 태도는 인간의 교만이자 영적 월권이다. 마하나임뉴스는 김 목사의 치리와 관련해 하나님과 교단을 대신해 심판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교단의 소속노회는 심사숙고해서 그를 안수해 목사로 세웠다. 그러므로 단정적으로 김문훈 목사에 대한 치리적 주장은 균형을 잃은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성경이 경계하는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의 본의를 훼손하는 행위다. ② 복음의 중심인 ‘용서’와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용서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다. 회개 전에 용서가 먼저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골 2:13–14). 성경에서 용서는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존재 방식이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용서의 한계를 묻는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윗을 두고 '살인자', 혹은 '간음자'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믿음을 더 높인다. 그가 왕위에 있을 때 저질렀던 죄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누구든 실수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를 향해 비난과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해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거스리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면죄부가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키려는 자에게 끝없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사랑의 원리다. 김 목사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낸 이상, 기독교적 언론이라면 정죄보다는 그 사과가 진정한 열매로 맺어지는지 기도로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다. ③ 비판의 목적은 정죄가 아닌 ‘회복’이어야 한다. 잘못을 드러내는 목적은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게 하고 공동체를 거룩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성경적 용서는 죄의 관계적 단절을 의미하며,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한다. 이런 점에서 마하나임뉴스의 보도는 오직 '단죄'와 '지적'에만 몰두하고 있어, 그 어디에도 복음적 회복이나 사랑의 권면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아쉽다. 용서는 한계가 없으며, 하나님은 죄를 바다 깊은 데 던지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미가 7:19). 5. 맺음말: 언론의 품격이 교회의 품격을 만든다 김문훈 목사의 언어적 실수는 한국 교회에 큰 오점을 남겼고, 목회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실수를 다루는 언론의 방식 또한 그와 닮아 있다면, 우리는 과연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기독교 언론이라면 분노를 부추기는 독설보다는, 아픈 곳을 정확히 찌르되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예언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무조건적인 덮어주기도 위험하지만, 증오에 기반한 무조건적인 발가벗기기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는 비난의 소음 속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공의가 조화를 이루는 현장에서 증명된다. 한국 교회의 건강한 비판 문화가 성경적 원리 위에서 세워지는 것이 바람직한 언론의 방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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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7
  •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 욕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문 발표
    포도원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김문훈 목사의 사과문(캡처) 최근 한국 교계는 한 지도자의 과거 발언을 둘러싼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의 과거 교역자 회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교계 안팎에서는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일부 기독 언론은 이를 공익적 보도의 범주를 넘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특정 직분 사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월 22일, 김문훈 목사가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은 이 모든 논란의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되새기게 한다. 비난의 화살 속에서 선택한 ‘낮아짐’과 ‘회개’ 통상적으로 지도자가 구설에 오르면 변명과 방어로 일관하거나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가 흔히 나타난다. 하지만 김 목사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공개된 사과문에서 그는 어떠한 변명도 구차하게 늘어놓지 않았다. 파문 속에서 김문훈 목사는 별도의 반박이나 해명 대신 교회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는 과거 교역자 회의 중 부적절한 표현이 공개되어 상처를 준 데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는 저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자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에 깊이 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일을 통해 더욱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다짐은 변명보다 회개를 선택한 태도로 읽힌다. 이 사과문은 단순한 위기 대응 문서가 아니라, 공동체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목회자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과문의 이 대목은 그가 이 사안을 얼마나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목회자로서 성도 한 분 한 분을 아끼는 마음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부교역자들에게 상처를 준 자신의 언어 표현이 잘못되었음을 가감 없이 인정했다. 이는 단순한 사과를 넘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기독 언론의 정도와 ‘허물을 덮는 사랑’의 실천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지점은 일부 언론의 태도였다. 기독 언론의 사명은 교회의 정결함을 유지하는 파수꾼 역할에 있지만, 그것이 비난을 위한 비난이나 정죄를 위한 폭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고 가르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이자 교회의 리더가 실수했을 때, 그 실수를 집요하게 파헤쳐 사퇴를 종용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가장 가까운 동역자이자 지도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비판의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의 논리가 아닌 회복의 눈물이다. 사과문의 울림: "기도로 지켜봐 주시기를" 김문훈 목사는 사과문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노력했음을 밝히는 동시에, 여전히 아픔을 느끼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고백은 한국 교회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이미 자신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사과한 형제에게 계속해서 정죄의 돌을 던지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문제다. 성경은 판단하는 자에게 그 판단으로 자신도 심판받을 것임을 경계하고 있다. 이제는 비난의 목소리를 멈추고, 그가 진정으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기도로 지켜봐 주는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죄를 넘어 화해와 일치로 김문훈 목사의 사과문은 한국 교회에 '회개의 정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공동체의 기도를 요청하는 낮은 자세는 많은 성도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이번 시련이 포도원교회와 김 목사 개인에게는 영적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 또한 그를 비난의 대상이 아닌, 함께 짐을 지고 가는 지체로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허물을 들춰내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허물을 덮어주는 하늘의 방식으로 대응할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용기 있는 고백을 남긴 김문훈 목사와 그의 사역, 그리고 상처받은 모든 이들의 마음 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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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3
  • 공익인가 음해인가… 욕설 녹취 배포까지 한 ‘쌍욕 목사’ 기사, 언론 경계 넘었나
    한 종교 매체가 보도한 「쌍욕하는 목사와 상처 받고 좌절하는 교역자」 기사가 교계 안팎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 기사에는 특정 목사의 욕설 녹취와 SNS 글, 제3자의 증언이 담겼고, 독자가 녹음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단순한 문제제기가 아닌 개인적인 명예훼손은 물론 형사적 문제까지 번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보도의 구성과 방식, 균형성, 공익성 측면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 기준을 충족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사실 전달을 넘어 인물 공격과 여론 조성에 가까운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공익적 의제는 분명… 그러나 면책이 되지는 않는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이 사안의 주제 자체는 공익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기사도 부총회장 당선과 차기 총회장 가능성을 전면에 놓고 지도자 적격성, 갑질, 언어폭력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공적 지위와 영향력이 큰 종교 지도자의 인격과 리더십은 공익적 관심사에 포함될 수 있다. 공동체를 책임질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면 검증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공익적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보도가 곧바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공익은 면책의 근거가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다. 기사 작성 방식이 부정확하거나 일방적이라면 오히려 법적 위험은 더 커진다. 공익의 이름을 내세운 채 개인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라면 그 순간 보도는 공익을 잃는다. 반론 없는 기사… 김문훈 목사의 입장은 사라졌다 이 기사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지점은 균형의 부재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사 안에는 김문훈 목사 본인의 해명이나 반박, 경위 설명, 사과 여부 등이 직접 인용되거나 확인된 흔적이 거의 없다. 문제 제기는 강하게 전개된다. 욕설 녹취, SNS 글, 제3자의 진술이 이어지고, 기사 톤은 “이제라도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요구형 결론으로 곧장 나아간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은 비어 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을 요청했는지, 어떤 답을 받았는지조차 기사 구조 안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구조는 이렇게 형성된다. 문제 제기는 강하고, 근거는 제3자 자료에 의존하며, 당사자 반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균형성, 즉 반론권 보장의 원칙에서 매우 취약한 보도 방식이다. 고발문에 가까운 문체… 이미 결론이 정해진 기사 기사의 문체와 구성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이 글은 사실 보도라기보다 고발문이나 성명서, 논평에 가까운 형식으로 읽힌다. “인격과 풍문은 소문으로 널리 퍼져 있다”는 식의 표현은 풍문을 사실 근거처럼 제시하는 방식이다. “막장” 같은 낙인성 단어는 평가를 일반화한다. “어떻게 총회를 지도하는 지도자로 세울 수 있겠는가”라는 문장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독자를 설득하려는 문장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자에게 ‘이미 결론이 정해진 글’이라는 인상을 준다. 실제 사실관계와 별개로 매도와 편파 논란을 불러오기 쉬운 편집이다. 녹취파일 다운로드 제공… 보도에서 확산으로 넘어간 지점 이번 기사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욕설 녹취파일을 독자가 직접 내려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 점이다. 이는 사실 전달의 영역을 넘어 개인 발언을 대중에게 직접 확산시키는 행위다. 언론은 필요에 따라 자료를 인용할 수 있다. 그러나 녹취 전체를 배포하거나 다운로드를 유도하는 방식은 보도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감정 확산과 낙인의 재생산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독자는 사건의 본질보다 욕설 자체에 집중하게 되고, 인물에 대한 혐오 감정이 강화된다. 언론이 사실 전달자가 아니라 감정 유통자로 변하는 순간이다. 더구나 이런 행위는 형사적 책임의 면책을 벗어날 소지보다 책임을 더 강하게 물을 수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법률적으로도 취약… 공익과 인격 침해의 경계 이 기사에는 법적 위험 요소도 적지 않다. 특정 인물의 인격 결함과 지도자 부적격을 단정적으로 서술하고,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녹취와 평가를 결합했다는 점은 명예훼손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녹취파일 다운로드 제공은 공개 범위의 적정성, 동의 여부, 편집 가능성 등 추가적인 법적 쟁점을 낳는다. 사적 발언이 맥락 없이 유통될 경우 인격권 침해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다. 다른 기사- 비난의 칼날 위에 숨은 본질, 김문훈 목사의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의 두 얼굴 홈페이지 갈무리 신앙 공동체의 기준에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언론 윤리를 넘어 신앙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경은 사랑이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말한다. 이는 잘못을 숨기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경고다. 기사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사역자와 사과한 내용이 등장하고 있다.이미 사과와 해결이 있었던 사안이라면 그것을 현재형 공격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공동체 회복과 거리가 멀다. 회개를 촉구하는 보도와 인물을 낙인찍는 보도는 다르다. 전자는 공동체를 살리고, 후자는 공동체를 찢는다. 공익의 이름으로 행해진 판단이라면 종교 지도자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검증은 절차와 균형 위에서만 설득력을 가진다. 반론이 없고, 맥락이 비어 있으며, 결론이 먼저 제시되고, 녹취까지 확산시키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보도가 아니다. 이미 판단을 강요하는 행위다. 공익을 말하려면 절차가 먼저다. 비판을 하려면 균형이 먼저다. 고발을 하려면 책임이 먼저다. 언론이 공익의 이름으로 개인을 무너뜨리는 순간, 그 피해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로 번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폭로가 아니라 성찰이다. 언론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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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3
  • "작은 교회의 비밀은 '명확한 비전'과 '가족 같은 분위기'"
    목회데이터연구소가 1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개최한 '제4차 목회데이터 포럼'에서 출석교인 50명 미만 '강소교회'에 대한 대규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소형교회 담임목사 300명과 교회 출석자 4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으며, 소형교회가 '작지만 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한 핵심 요인과 현실적 어려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예장통합교단 교세 현황에 따르면 전체 교회 중 출석교인 50명 이하 교회가 58%로 절반을 넘어, 소형교회가 이미 한국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형교회가 단순히 '작은 교회'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경쟁력 있는 '강소교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기획됐다. 명확한 비전과 설교가 만족도 높인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조사 결과, 교인들이 현재 교회에 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분명한 비전과 방향성'(38.9%)과 '목사님의 설교'(36.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교인 간 관계가 끈끈하고 또래와 친밀한 교제가 있어서'(35.2%), '담임목사의 리더십'(22.8%) 순이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특히 소형교회의 최대 강점으로는 '성도 간 가족적 분위기(강한 유대감)'가 67.8%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 약 3명 중 2명이 소형교회만의 친밀한 공동체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대형교회에서 느끼기 어려운 긴밀한 관계성과 돌봄이 소형교회의 핵심 경쟁력임을 보여준다. 김진양 목회데이터연구소 부대표는 "소형교회가 강소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요인은 '목회 비전'과 '공동체 구현'으로 나타났다"며 "소형교회의 정체성과 강점을 살리는 목회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 취약성 심화, 외부 지원도 감소 추세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반면 소형교회의 재정적 취약성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소형교회의 작년 총 결산 규모는 평균 5,442만원, 중위값은 5,000만원 미만으로 집계됐다. 절반 이상(51%)이 연 예산 5천만 원 미만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특히 15명 미만 교회의 평균 결산액은 2,420만원에 불과했다. 반면 30~50명 미만 교회는 8,131만원으로 약 4배 차이를 보여, 교회 규모에 따른 재정 격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더 큰 문제는 외부 재정 지원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 지원이 감소하고 있다'고 응답한 목회자는 36.5%로, 소형교회 3곳 중 1곳은 외부 지원이 줄어들고 있었다. '증가하고 있다'는 응답은 9.5%에 불과했다. 헌금·봉사 부담이 교회 이탈 요인 성도들의 교회 이탈 의향도 주목할 만한 수치를 보였다. 소형교회 성도 4명 중 1명(27.5%)은 교회 이탈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탈을 고려하는 주요 이유로는 '설교에 대한 불만족'(24.6%)이 가장 높았고, 이어 '헌금에 대한 부담감'(22.0%), '봉사에 대한 부담감'(18.8%), '성도 간 관계에서의 소외감'(18.7%) 등이 꼽혔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이는 소형교회일수록 헌신과 재정 부담이 특정 개인에게 집중될 경우 이탈 위험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헌금과 봉사가 자발적이지 않고 의무로 인식될 때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목회자의 자책감과 경제적 빈곤 심각 소형교회 목회자들이 겪는 어려움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목회자의 개인적 어려움으로 '나의 역량 부족'이 48.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교회에 불만족을 느끼는 이유로는 '교회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40.5%를 차지했다. 이는 소형교회 목회자가 느끼는 패배감과 무기력감이 목회 지속에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심각했다. 소형교회 목회자 중 29.0%는 사례비를 비정기적으로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사례비를 받는 목회자의 연 평균 사례비는 2,093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15명 미만 교회 목회자의 평균 사례비는 1,230만원으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이로 인해 소형교회 목회자의 23.7%, 사모의 49.2%가 목회 외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 외 겸직이 선택이 아닌 생계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강소교회는 한국교회의 현실적 대안" 이날 포럼에서는 통계 발표와 함께 어울림교회(임원빈 목사)와 사귐의교회(강정규 목사)의 실제 개척 및 성장 사례가 소개됐다.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합 분석을 통해 "작은 규모 자체가 약점이 아니라, 소형교회에서만 가능한 긴밀한 관계성과 공동체적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강소교회의 핵심"이라며 "강소교회는 한국교회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지용근 대표는 "이번 조사를 통해 소형교회가 직면한 현실과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며 "명확한 비전, 좋은 설교, 가족 같은 관계를 중심으로 한 목회 전략이 강소교회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 발표는 추후 목회데이터연구소 유튜브 채널(youtube.com/@mhdataTV)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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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0
  • 벼랑 끝에 선 아이들, ‘중독’의 늪에서 구하라… 국회서 울려 퍼진 골든타임 경고음
    청예본의 세미나 진행 모습 2026년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위험하다. 과거 술이나 담배에 머물렀던 청소년 비행은 이제 마약류 확산, 온라인 불법 도박, 성범죄와 결합한 디지털 중독 등 범죄와 직결된 고위험군으로 급격히 다변화되고 있다. 특히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은 중독의 문턱을 낮추고 연령대를 초등학생까지 끌어내리는 등 우리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지난 2월 9일,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국회와 학계, 시민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청소년 중독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청소년 중독 예방 촉진 연구 포럼’이 열렸다. 국민의힘 조정훈·김민전·서지영 의원실과 사단법인 청소년중독예방운동본부(이사장 홍호수, 이하 청예본)가 주최한 이번 포럼은 단순한 실태 보고를 넘어 AI 뇌과학적 접근과 미래적 재활 대안을 논의하며 국가적 과제로서의 중독 예방 시스템 구축을 촉구했다. 인사말을 하는 홍호수 목사 인사말에서 청예본 홍호수 이사장은 “청예본은 중독으로 고통받고 가정들을 중독의 폐해로부터 구해내는 국민운동을 하고 있다.”며 “우리가 예방과 재활을 위해 달려가는 속도보다 중독의 속도가 빠르다. 중독 예방의 핵심은 반드시 청소년기에 시작해야 한다.”면서 “한 번 중독의 길에 들어서면 회복 과정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강조하고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평생 전문가의 도움에 의존하거나, 중독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또한 홍 이사장은 “그동안 청예본이 500여 명의 강사를 발굴 교육했지만 우리 목적은 매년 1천 명 이상의 강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중독자도 더 많기 때문이다"며 "재활시설 부족도 큰 상황이지만 아직 우리 청예본의 능력으론 재정 및 여력이 미치지 못해서 회복을 위해서 더 나아가야 하는 길에서 안타까움만 더하고 있지만 국회와 종교계가 더 큰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청소년 중독세미나의 기념 사진 “중독은 사회가 방치한 결과”… 정치권, ‘버텨라’ 대신 ‘지켜주겠다’ 약속 국회 일정으로 참여치 못한 조정훈 의원, 김민전 의원. 서지영 의원이 개회사를 장동혁(국민의힘/당대표), 송언석(국민의힘/원내대표), 정점식(국민의힘/정책위원장), 김용태(국민의힘/의원) 등이 보낸 축사문으로 오늘 포럼에 힘을 보태어 오늘 ‘중독없는 건강한사회, 청소년 중독 예방 촉진 연구포럼’에 중요함을 밝혔다. 한편 이날 배포한 자료집에서 개회사를 한 포럼 주최 조정훈 의원은 “지금의 청소년 중독 문제는 개인의 선택 이전에 사회가 어떤 환경을 허용하고 무엇을 방치했는지를 되묻는 질문”이라며,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치료가 아닌 예방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민전 의원 역시 자료집 축사에서 “청소년 중독은 공교육이 감당해야 할 핵심 정책”이라며, “학교와 지역사회, 전문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회복 중심의 지원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자료집에서 “10대 마약 사범이 2005년 30명에서 2023년 1,477명으로 폭증했다”며, AI·뇌과학 기반 분석 체계 도입과 국가 컨트롤타워 재정비를 지체할 수 없는 국가적 의무로 규정했다. 10대 마약·도박·디지털 성범죄… ‘스마트폰’이 중독의 고속도로 본격적인 발제에서는 현장의 생생한 실태와 과학적 진단이 이어졌다. 최경찬 박사(법무부 주무관)는 국내 마약 사용 실태를, 김영한 대표(Next세대Ministry)는 현대 청소년 문제의 동향을 짚었다. 스마트폰 중독이 불러오는 청소년 문제를 지적하는 김영한 목사 김영한 대표는 특히 스마트폰이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부산 가정법원 판사의 말을 인용해 “청소년 사건 150여 건 중 거의 모든 사건이 스마트폰과 관련되어 있다”며, 초등학생들이 음란물을 강제 시청하게 하거나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의 저연령화 실태를 고발했다. 또한 유해 미디어 노출은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의 상당수가 경험하고 있을 정도로 일상화되었으며, 이는 곧 중독으로 가는 관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뇌과학으로 본 중독 메커니즘… “예방 교육의 패러다임 바꿔야” 이창배 박사(오이코스대 교수)는 중독을 AI 뇌과학적 현상으로 분석하며 과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청소년기의 뇌는 아직 발달 중이기에 중독 물질이나 자극에 노출될 경우 성인보다 훨씬 치명적이며 회복 또한 수배 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창배 박사는 중독과 뇌의 메카니즘을 강의했다. 이미숙 박사(중독전문치유새움교육원장)는 미래적 대안 연구를 통해 현재의 실효성 없는 방안들을 비판하며, 지금 당장 ‘씨를 심는’ 심정으로 대안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적 강화뿐만 아니라 지자체별 예방 교육 활성화, 학교 내 상담 프로그램 운영, 민간단체의 멘토링 등이 입체적으로 작동해야 함을 시사했다. 민간 현장의 외침… “5년간 강사 400명 양성, 이제 국가가 나서야” 포럼을 공동 주최한 청예본의 홍호수 이사장은 지난 5년간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홍 이사장은 “중독은 반드시 청소년기에 선제적으로 예방해야 한다”며, 지난 5년간 400명의 전문 강사를 배출한 데 이어, 사랑의열매 지원을 통해 향후 3년간 1,000명의 강사를 추가로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스스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중독 예방 전문 캠프’를 본격화하고, 영적 회복과 사회 복귀를 돕는 ‘청소년 중독재활 영성센터’ 설립 계획을 밝히며 민간 차원의 사각지대 해소 노력을 설명했다. 종합 토론: “낙인 아닌 치유로, 고립 아닌 연대로” 이어진 토론에서는 김도형 박사(기독교 국제중독전문원장), 윤석주 교수(한국열린사이버대), 신애자 교수(하이맘심리상담센터)가 참여해 열띤 논의를 벌였다. 전문가들은 중독 청소년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사회 밖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치유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용희 대표(바른교육교수연합)는 “한 아이를 중독으로부터 지켜내는 데 온 국가와 학계, 시민사회의 지혜가 결집되어야 한다”며 ‘중독의 대중화 시대’에 걸맞은 국민적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결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 ‘중독 제로’에서 시작된다 이번 포럼은 청소년 중독 문제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국가적 위기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화려한 빛 이면에 중독이라는 짙은 그림자 속에 방치되어 있다. 정치권의 입법 의지와 민간의 헌신적인 활동, 그리고 AI 뇌과학 등 최신 기술을 결합한 통합적 대응 체계만이 우리 아이들을 벼랑 끝에서 구할 수 있다. "버텨라"고 말하기보다 "지켜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중독이 아닌 '성취'를 향해 꿈꿀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기성세대의 가장 시급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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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0
  • “넓고 얕은 인맥은 옛말”... 대한민국, ‘관계 가성비’와 ‘소수 정예’에 빠지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인간관계 지형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과거의 인맥 관리가 ‘다다익선(多多益善)’의 논리에 따라 인맥의 넓이를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면, 2026년을 앞둔 현재의 트렌드는 ‘관계의 효율화’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무분별한 인간관계 확장보다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소수의 핵심 관계에 쏟아붓는 이른바 ‘관계 가성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지인 수’ 줄었는데 ‘행복지수’는 올랐다... 역설적 지표의 의미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2025 인간관계인식조사’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우리 국민이 인지하는 ‘평소 친밀한 지인 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22년 평균 6.4명이었던 지인 수는 2023년과 2024년을 거쳐 2025년 현재 4.1명으로 집계되며 조사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관계의 양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 만족도’는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이다. 2025년 관계 만족도는 6.4점(10점 만점 기준)으로 2022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현대인들이 불필요한 인맥을 걷어내고 내실 있는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정서적 포만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령별로는 70세 이상의 만족도가 7.0점으로 가장 높았고, 18~29세 청년층이 6.7점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가장 젊은 세대와 가장 고령 세대가 전년 대비 만족도 상승폭(각 0.5점)이 가장 컸다는 점은, 두 세대가 각자의 방식대로 관계의 질을 높이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 “다수보다 소수, 다양성보다 동질성”... 유유상종형 관계 선호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89%는 ‘다수와 얕은 관계’보다 ‘소수와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37%)과 2030 청년세대(20대 46%, 30대 40%)에서 이러한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관계의 대상에 있어서도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을 선호하는 비율이 72%에 달했다. 이러한 ‘유유상종형’ 선호 현상은 남성(63%)보다 여성(80%)에서, 그리고 60대 이상 고령층(80~82%)에서 압도적이었다. 이는 사회적 경험이 쌓일수록 성격이나 가치관의 ‘다름’에서 오는 갈등과 에너지 소모를 피하고, 공감대 형성이 쉬운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교회 소그룹이나 커뮤니티 활동 전략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성원 간의 다양성을 강요하기보다는 관심사나 연령대가 비슷한 이들을 그룹화하여 초기 정착의 문턱을 낮추고 공감대를 극대화하는 편성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계에도 도입된 ‘가성비’ 논리... 75%가 “부담되는 인맥 정리했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이 임계점에 달하면서, 이제는 관계 맺기에도 ‘효율성’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응답자의 58%는 한정된 시간과 감정을 고려해 인간관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관계 가성비’ 중심의 태도를 보였다. 65%는 의미 없는 상대에게 들이는 ‘감정노동’에 고통을 느낀다고 답했다. 실제로 국민 4명 중 3명(75%)은 부담스러운 인간관계를 직접 정리한 경험이 있었다. 정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정서적 피로감(46%)’이었다. 만남 후에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거나 에너지가 방전되는 관계라면 과감히 단절을 택하는 ‘관계 다이어트’가 보편화된 것이다. 덕분에 2023년 58%에 달했던 인간관계 피로감 경험률은 2025년 48%로 떨어지며 조사 이래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했다. ■ 세대별 온도 차... ‘축소’에 힘주는 30대 vs ‘확장’ 열망하는 70대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는 세대별로 확연히 달랐다. 30대는 관계 확장에 가장 소극적(34%)인 반면, 관계 축소 및 정리에는 가장 적극적(51%)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직장 내 경쟁, 육아, 경제적 자립 등으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30대가 새로운 관계를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반면 70세 이상 고령층은 관계 유지(92%)와 확장(54%) 모두에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의지를 보였다. 이는 노년기 고립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연결에 대한 강한 욕구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디지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만남에 대한 열망은 전 세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국민 86%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친구 맺기를 선호했으며, 특히 2030 세대에서 오프라인을 ‘매우 선호’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나 대면 접촉을 통한 실질적 정서 교감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었다. ■ 스트레스 1위는 ‘불통’... 지인 많으면 ‘감정 기복’, 적으면 ‘소외감’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숙제다. 국민 63%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으며, 주된 발원지는 ‘일터(직장 동료 66%, 상사 65%)’였다. 특히 3040 세대는 직장 내 갈등, 20대는 친구 관계, 40대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유발의 핵심 요인은 ‘대화와 소통의 부재(54%)’였다. 이어 ‘반복되는 갈등(47%)’, ‘상대방의 감정 기복(37%)’ 순이었다. 특이한 점은 지인 수에 따라 스트레스의 종류가 달랐다는 점이다. 지인이 10명 이상인 응답자는 ‘상대방의 감정 기복’으로 힘들어한 반면, 지인이 전혀 없는 응답자는 ‘소외감과 거리감’을 주된 고통으로 꼽았다. 결국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은 ‘적정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대인의 심리 방역에 핵심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전문가들은 “현대인의 인간관계가 ‘양적 팽창’에서 ‘질적 심화’로 옮겨가고 있다”며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과 결이 맞는 사람들과 깊게 교류하는 것은 개인의 정신 건강을 위한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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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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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난의 칼날 뒤에 숨은 본질, 김문훈 목사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의 두 얼굴
    양봉식 국장 1. 목회자의 실화(失話), 그리고 그 너머의 이야기 최근 부산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가 부교역자들에게 쏟아낸 과거의 거친 언행이 공개되며 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성직자의 입에서 나온 욕설과 폭언은 성도들에게 배신감과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부 유튜버와 매체들의 태도를 보면, 과연 그 목적이 '교회의 정화'에 있는지 아니면 '자극적인 비난'에 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김문훈 목사의 설화에 대해 확대재생산되는 형태로 SNS에 퍼지고 있다. 특히 ‘마하나임뉴스’ 등이 제작한 콘텐츠는 공익적 제보라는 이름 아래, 성경적 가치와 법적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어 주목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목회자의 잘못을 비판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비판은 상대를 살리기 위한 '수술 칼'이 되어야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도끼'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마하나님뉴스'의 김문훈 목사와 관련된 영상 썸네일 캡처 2. 마하나임뉴스 영상 분석: 고발인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인가? 마하나임뉴스가 공개한 ‘포도원교회 김도끼’ 영상과 관련 보도들은 사실 확인보다는 시청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언론의 기본 사명은 객관적 사실 보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매체는 감정적 선동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마하나님은 정의의 사도처럼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마하나임의 관련 영상의 댓글은 대부분 영상의 내용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댓글의 한계는 보여주는 것에 대한 앞뒤의 사건과 정황,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유튜버가 댓글을 통해 인지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지자의 댓글이 자신의 글이나 주장을 정당화시킬 위험이 있다. 첫째, 원색적인 비하 발언의 향연이다. 영상 속에서는 김 목사를 향해 “마귀”, “개똥차반”, “주둥아리”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표현들이 쏟아진다. 이는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명백한 인신공격이다. 비판의 대상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비판하는 자가 저질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천박한 언어 사용은 보도의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사과를 부정하는 자의적 예단이다. 김 목사는 2026년 2월 24일, 교단 신문을 통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목회자의 언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며 총회 직위에서 물러나고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회복을 돕겠다고 구체적인 결단을 밝혔다. 하지만 마하나임뉴스는 이러한 사과의 몸짓을 시작도 하기 전에 “새빨간 거짓말”이나 “꼼수”로 단정하며 비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진정한 회개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김 목사의 말에 대해, 행동을 지켜보기도 전에 '거짓'으로 낙인찍는 것은 언론의 횡포에 가깝다. 셋째, 일방적인 정보 전달과 반론권 부재다. 언론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반론권 보장이나 객관적인 사실 확인 절차도 부족해 보인다. 김 목사 측의 현재 노력이나 입장은 철저히 배제된 채, 익명 제보자의 발언만이 절대적인 진실로 포장되고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확증 편향을 심어주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3. 법과 상식을 벗어난 비판의 위험성 아무리 비판의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방식이 위법하거나 상식 밖이라면 그 정당성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마하나임뉴스의 보도 행태는 여러 법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법적 책임의 소지: 법조계에서는 영상 제작자가 사용한 경멸적 표현들이 모욕죄나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대법원 판례(2002. 1. 22. 선고 2000다37524)에 따르면, 보도 내용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었는지, 그리고 제보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 근거(상당성)가 있는지가 명예훼손 성립의 핵심 기준이 된다. 월권적인 태도와 법리적 무지: 영상 제작자는 본인이 피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소송을 주도하겠다고 공언하거나, 교단 헌법을 무시한 채 즉각 사퇴만을 정답으로 제시한다. 모욕죄는 친고죄이며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임에도 불구하고 제3자가 고발을 남발하겠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교회의 행정적·종교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기업의 갑질 사례와 단순 비교하며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교단 질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월권적 요구다. 기독교보에 게재된 김문훈 목사의 사과문 4.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비판: ‘죽이는 비난’이 아닌 ‘살리는 권면’ 우리는 누구나 남의 잘못을 아주 쉽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비판은 세상의 방식과는 결을 완전히 달리해야 한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마하나임뉴스의 보도 태도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신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① 심판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성경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9)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대신해 누군가를 영원히 매장하려는 태도는 인간의 교만이자 영적 월권이다. 마하나임뉴스는 김 목사의 치리와 관련해 하나님과 교단을 대신해 심판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교단의 소속노회는 심사숙고해서 그를 안수해 목사로 세웠다. 그러므로 단정적으로 김문훈 목사에 대한 치리적 주장은 균형을 잃은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성경이 경계하는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의 본의를 훼손하는 행위다. ② 복음의 중심인 ‘용서’와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용서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다. 회개 전에 용서가 먼저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골 2:13–14). 성경에서 용서는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존재 방식이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용서의 한계를 묻는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윗을 두고 '살인자', 혹은 '간음자'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믿음을 더 높인다. 그가 왕위에 있을 때 저질렀던 죄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누구든 실수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를 향해 비난과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해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거스리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면죄부가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키려는 자에게 끝없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사랑의 원리다. 김 목사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낸 이상, 기독교적 언론이라면 정죄보다는 그 사과가 진정한 열매로 맺어지는지 기도로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다. ③ 비판의 목적은 정죄가 아닌 ‘회복’이어야 한다. 잘못을 드러내는 목적은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게 하고 공동체를 거룩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성경적 용서는 죄의 관계적 단절을 의미하며,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한다. 이런 점에서 마하나임뉴스의 보도는 오직 '단죄'와 '지적'에만 몰두하고 있어, 그 어디에도 복음적 회복이나 사랑의 권면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아쉽다. 용서는 한계가 없으며, 하나님은 죄를 바다 깊은 데 던지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미가 7:19). 5. 맺음말: 언론의 품격이 교회의 품격을 만든다 김문훈 목사의 언어적 실수는 한국 교회에 큰 오점을 남겼고, 목회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실수를 다루는 언론의 방식 또한 그와 닮아 있다면, 우리는 과연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기독교 언론이라면 분노를 부추기는 독설보다는, 아픈 곳을 정확히 찌르되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예언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무조건적인 덮어주기도 위험하지만, 증오에 기반한 무조건적인 발가벗기기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는 비난의 소음 속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공의가 조화를 이루는 현장에서 증명된다. 한국 교회의 건강한 비판 문화가 성경적 원리 위에서 세워지는 것이 바람직한 언론의 방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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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7
  •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 욕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문 발표
    포도원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김문훈 목사의 사과문(캡처) 최근 한국 교계는 한 지도자의 과거 발언을 둘러싼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의 과거 교역자 회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교계 안팎에서는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일부 기독 언론은 이를 공익적 보도의 범주를 넘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특정 직분 사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월 22일, 김문훈 목사가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은 이 모든 논란의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되새기게 한다. 비난의 화살 속에서 선택한 ‘낮아짐’과 ‘회개’ 통상적으로 지도자가 구설에 오르면 변명과 방어로 일관하거나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가 흔히 나타난다. 하지만 김 목사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공개된 사과문에서 그는 어떠한 변명도 구차하게 늘어놓지 않았다. 파문 속에서 김문훈 목사는 별도의 반박이나 해명 대신 교회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는 과거 교역자 회의 중 부적절한 표현이 공개되어 상처를 준 데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는 저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자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에 깊이 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일을 통해 더욱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다짐은 변명보다 회개를 선택한 태도로 읽힌다. 이 사과문은 단순한 위기 대응 문서가 아니라, 공동체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목회자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과문의 이 대목은 그가 이 사안을 얼마나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목회자로서 성도 한 분 한 분을 아끼는 마음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부교역자들에게 상처를 준 자신의 언어 표현이 잘못되었음을 가감 없이 인정했다. 이는 단순한 사과를 넘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기독 언론의 정도와 ‘허물을 덮는 사랑’의 실천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지점은 일부 언론의 태도였다. 기독 언론의 사명은 교회의 정결함을 유지하는 파수꾼 역할에 있지만, 그것이 비난을 위한 비난이나 정죄를 위한 폭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고 가르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이자 교회의 리더가 실수했을 때, 그 실수를 집요하게 파헤쳐 사퇴를 종용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가장 가까운 동역자이자 지도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비판의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의 논리가 아닌 회복의 눈물이다. 사과문의 울림: "기도로 지켜봐 주시기를" 김문훈 목사는 사과문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노력했음을 밝히는 동시에, 여전히 아픔을 느끼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고백은 한국 교회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이미 자신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사과한 형제에게 계속해서 정죄의 돌을 던지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문제다. 성경은 판단하는 자에게 그 판단으로 자신도 심판받을 것임을 경계하고 있다. 이제는 비난의 목소리를 멈추고, 그가 진정으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기도로 지켜봐 주는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죄를 넘어 화해와 일치로 김문훈 목사의 사과문은 한국 교회에 '회개의 정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공동체의 기도를 요청하는 낮은 자세는 많은 성도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이번 시련이 포도원교회와 김 목사 개인에게는 영적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 또한 그를 비난의 대상이 아닌, 함께 짐을 지고 가는 지체로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허물을 들춰내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허물을 덮어주는 하늘의 방식으로 대응할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용기 있는 고백을 남긴 김문훈 목사와 그의 사역, 그리고 상처받은 모든 이들의 마음 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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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3
  • 공익인가 음해인가… 욕설 녹취 배포까지 한 ‘쌍욕 목사’ 기사, 언론 경계 넘었나
    한 종교 매체가 보도한 「쌍욕하는 목사와 상처 받고 좌절하는 교역자」 기사가 교계 안팎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 기사에는 특정 목사의 욕설 녹취와 SNS 글, 제3자의 증언이 담겼고, 독자가 녹음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단순한 문제제기가 아닌 개인적인 명예훼손은 물론 형사적 문제까지 번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보도의 구성과 방식, 균형성, 공익성 측면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 기준을 충족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사실 전달을 넘어 인물 공격과 여론 조성에 가까운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공익적 의제는 분명… 그러나 면책이 되지는 않는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이 사안의 주제 자체는 공익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기사도 부총회장 당선과 차기 총회장 가능성을 전면에 놓고 지도자 적격성, 갑질, 언어폭력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공적 지위와 영향력이 큰 종교 지도자의 인격과 리더십은 공익적 관심사에 포함될 수 있다. 공동체를 책임질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면 검증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공익적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보도가 곧바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공익은 면책의 근거가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다. 기사 작성 방식이 부정확하거나 일방적이라면 오히려 법적 위험은 더 커진다. 공익의 이름을 내세운 채 개인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라면 그 순간 보도는 공익을 잃는다. 반론 없는 기사… 김문훈 목사의 입장은 사라졌다 이 기사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지점은 균형의 부재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사 안에는 김문훈 목사 본인의 해명이나 반박, 경위 설명, 사과 여부 등이 직접 인용되거나 확인된 흔적이 거의 없다. 문제 제기는 강하게 전개된다. 욕설 녹취, SNS 글, 제3자의 진술이 이어지고, 기사 톤은 “이제라도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요구형 결론으로 곧장 나아간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은 비어 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을 요청했는지, 어떤 답을 받았는지조차 기사 구조 안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구조는 이렇게 형성된다. 문제 제기는 강하고, 근거는 제3자 자료에 의존하며, 당사자 반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균형성, 즉 반론권 보장의 원칙에서 매우 취약한 보도 방식이다. 고발문에 가까운 문체… 이미 결론이 정해진 기사 기사의 문체와 구성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이 글은 사실 보도라기보다 고발문이나 성명서, 논평에 가까운 형식으로 읽힌다. “인격과 풍문은 소문으로 널리 퍼져 있다”는 식의 표현은 풍문을 사실 근거처럼 제시하는 방식이다. “막장” 같은 낙인성 단어는 평가를 일반화한다. “어떻게 총회를 지도하는 지도자로 세울 수 있겠는가”라는 문장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독자를 설득하려는 문장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자에게 ‘이미 결론이 정해진 글’이라는 인상을 준다. 실제 사실관계와 별개로 매도와 편파 논란을 불러오기 쉬운 편집이다. 녹취파일 다운로드 제공… 보도에서 확산으로 넘어간 지점 이번 기사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욕설 녹취파일을 독자가 직접 내려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 점이다. 이는 사실 전달의 영역을 넘어 개인 발언을 대중에게 직접 확산시키는 행위다. 언론은 필요에 따라 자료를 인용할 수 있다. 그러나 녹취 전체를 배포하거나 다운로드를 유도하는 방식은 보도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감정 확산과 낙인의 재생산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독자는 사건의 본질보다 욕설 자체에 집중하게 되고, 인물에 대한 혐오 감정이 강화된다. 언론이 사실 전달자가 아니라 감정 유통자로 변하는 순간이다. 더구나 이런 행위는 형사적 책임의 면책을 벗어날 소지보다 책임을 더 강하게 물을 수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법률적으로도 취약… 공익과 인격 침해의 경계 이 기사에는 법적 위험 요소도 적지 않다. 특정 인물의 인격 결함과 지도자 부적격을 단정적으로 서술하고,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녹취와 평가를 결합했다는 점은 명예훼손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녹취파일 다운로드 제공은 공개 범위의 적정성, 동의 여부, 편집 가능성 등 추가적인 법적 쟁점을 낳는다. 사적 발언이 맥락 없이 유통될 경우 인격권 침해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다. 다른 기사- 비난의 칼날 위에 숨은 본질, 김문훈 목사의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의 두 얼굴 홈페이지 갈무리 신앙 공동체의 기준에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언론 윤리를 넘어 신앙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경은 사랑이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말한다. 이는 잘못을 숨기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경고다. 기사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사역자와 사과한 내용이 등장하고 있다.이미 사과와 해결이 있었던 사안이라면 그것을 현재형 공격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공동체 회복과 거리가 멀다. 회개를 촉구하는 보도와 인물을 낙인찍는 보도는 다르다. 전자는 공동체를 살리고, 후자는 공동체를 찢는다. 공익의 이름으로 행해진 판단이라면 종교 지도자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검증은 절차와 균형 위에서만 설득력을 가진다. 반론이 없고, 맥락이 비어 있으며, 결론이 먼저 제시되고, 녹취까지 확산시키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보도가 아니다. 이미 판단을 강요하는 행위다. 공익을 말하려면 절차가 먼저다. 비판을 하려면 균형이 먼저다. 고발을 하려면 책임이 먼저다. 언론이 공익의 이름으로 개인을 무너뜨리는 순간, 그 피해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로 번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폭로가 아니라 성찰이다. 언론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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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3
  • "작은 교회의 비밀은 '명확한 비전'과 '가족 같은 분위기'"
    목회데이터연구소가 1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개최한 '제4차 목회데이터 포럼'에서 출석교인 50명 미만 '강소교회'에 대한 대규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소형교회 담임목사 300명과 교회 출석자 4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으며, 소형교회가 '작지만 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한 핵심 요인과 현실적 어려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예장통합교단 교세 현황에 따르면 전체 교회 중 출석교인 50명 이하 교회가 58%로 절반을 넘어, 소형교회가 이미 한국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형교회가 단순히 '작은 교회'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경쟁력 있는 '강소교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기획됐다. 명확한 비전과 설교가 만족도 높인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조사 결과, 교인들이 현재 교회에 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분명한 비전과 방향성'(38.9%)과 '목사님의 설교'(36.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교인 간 관계가 끈끈하고 또래와 친밀한 교제가 있어서'(35.2%), '담임목사의 리더십'(22.8%) 순이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특히 소형교회의 최대 강점으로는 '성도 간 가족적 분위기(강한 유대감)'가 67.8%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 약 3명 중 2명이 소형교회만의 친밀한 공동체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대형교회에서 느끼기 어려운 긴밀한 관계성과 돌봄이 소형교회의 핵심 경쟁력임을 보여준다. 김진양 목회데이터연구소 부대표는 "소형교회가 강소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요인은 '목회 비전'과 '공동체 구현'으로 나타났다"며 "소형교회의 정체성과 강점을 살리는 목회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 취약성 심화, 외부 지원도 감소 추세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반면 소형교회의 재정적 취약성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소형교회의 작년 총 결산 규모는 평균 5,442만원, 중위값은 5,000만원 미만으로 집계됐다. 절반 이상(51%)이 연 예산 5천만 원 미만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특히 15명 미만 교회의 평균 결산액은 2,420만원에 불과했다. 반면 30~50명 미만 교회는 8,131만원으로 약 4배 차이를 보여, 교회 규모에 따른 재정 격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더 큰 문제는 외부 재정 지원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 지원이 감소하고 있다'고 응답한 목회자는 36.5%로, 소형교회 3곳 중 1곳은 외부 지원이 줄어들고 있었다. '증가하고 있다'는 응답은 9.5%에 불과했다. 헌금·봉사 부담이 교회 이탈 요인 성도들의 교회 이탈 의향도 주목할 만한 수치를 보였다. 소형교회 성도 4명 중 1명(27.5%)은 교회 이탈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탈을 고려하는 주요 이유로는 '설교에 대한 불만족'(24.6%)이 가장 높았고, 이어 '헌금에 대한 부담감'(22.0%), '봉사에 대한 부담감'(18.8%), '성도 간 관계에서의 소외감'(18.7%) 등이 꼽혔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이는 소형교회일수록 헌신과 재정 부담이 특정 개인에게 집중될 경우 이탈 위험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헌금과 봉사가 자발적이지 않고 의무로 인식될 때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목회자의 자책감과 경제적 빈곤 심각 소형교회 목회자들이 겪는 어려움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목회자의 개인적 어려움으로 '나의 역량 부족'이 48.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교회에 불만족을 느끼는 이유로는 '교회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40.5%를 차지했다. 이는 소형교회 목회자가 느끼는 패배감과 무기력감이 목회 지속에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심각했다. 소형교회 목회자 중 29.0%는 사례비를 비정기적으로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사례비를 받는 목회자의 연 평균 사례비는 2,093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15명 미만 교회 목회자의 평균 사례비는 1,230만원으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제공 이로 인해 소형교회 목회자의 23.7%, 사모의 49.2%가 목회 외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 외 겸직이 선택이 아닌 생계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강소교회는 한국교회의 현실적 대안" 이날 포럼에서는 통계 발표와 함께 어울림교회(임원빈 목사)와 사귐의교회(강정규 목사)의 실제 개척 및 성장 사례가 소개됐다.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합 분석을 통해 "작은 규모 자체가 약점이 아니라, 소형교회에서만 가능한 긴밀한 관계성과 공동체적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강소교회의 핵심"이라며 "강소교회는 한국교회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지용근 대표는 "이번 조사를 통해 소형교회가 직면한 현실과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며 "명확한 비전, 좋은 설교, 가족 같은 관계를 중심으로 한 목회 전략이 강소교회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 발표는 추후 목회데이터연구소 유튜브 채널(youtube.com/@mhdataTV)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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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0
  • 벼랑 끝에 선 아이들, ‘중독’의 늪에서 구하라… 국회서 울려 퍼진 골든타임 경고음
    청예본의 세미나 진행 모습 2026년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위험하다. 과거 술이나 담배에 머물렀던 청소년 비행은 이제 마약류 확산, 온라인 불법 도박, 성범죄와 결합한 디지털 중독 등 범죄와 직결된 고위험군으로 급격히 다변화되고 있다. 특히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은 중독의 문턱을 낮추고 연령대를 초등학생까지 끌어내리는 등 우리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지난 2월 9일,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국회와 학계, 시민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청소년 중독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청소년 중독 예방 촉진 연구 포럼’이 열렸다. 국민의힘 조정훈·김민전·서지영 의원실과 사단법인 청소년중독예방운동본부(이사장 홍호수, 이하 청예본)가 주최한 이번 포럼은 단순한 실태 보고를 넘어 AI 뇌과학적 접근과 미래적 재활 대안을 논의하며 국가적 과제로서의 중독 예방 시스템 구축을 촉구했다. 인사말을 하는 홍호수 목사 인사말에서 청예본 홍호수 이사장은 “청예본은 중독으로 고통받고 가정들을 중독의 폐해로부터 구해내는 국민운동을 하고 있다.”며 “우리가 예방과 재활을 위해 달려가는 속도보다 중독의 속도가 빠르다. 중독 예방의 핵심은 반드시 청소년기에 시작해야 한다.”면서 “한 번 중독의 길에 들어서면 회복 과정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강조하고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평생 전문가의 도움에 의존하거나, 중독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또한 홍 이사장은 “그동안 청예본이 500여 명의 강사를 발굴 교육했지만 우리 목적은 매년 1천 명 이상의 강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중독자도 더 많기 때문이다"며 "재활시설 부족도 큰 상황이지만 아직 우리 청예본의 능력으론 재정 및 여력이 미치지 못해서 회복을 위해서 더 나아가야 하는 길에서 안타까움만 더하고 있지만 국회와 종교계가 더 큰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청소년 중독세미나의 기념 사진 “중독은 사회가 방치한 결과”… 정치권, ‘버텨라’ 대신 ‘지켜주겠다’ 약속 국회 일정으로 참여치 못한 조정훈 의원, 김민전 의원. 서지영 의원이 개회사를 장동혁(국민의힘/당대표), 송언석(국민의힘/원내대표), 정점식(국민의힘/정책위원장), 김용태(국민의힘/의원) 등이 보낸 축사문으로 오늘 포럼에 힘을 보태어 오늘 ‘중독없는 건강한사회, 청소년 중독 예방 촉진 연구포럼’에 중요함을 밝혔다. 한편 이날 배포한 자료집에서 개회사를 한 포럼 주최 조정훈 의원은 “지금의 청소년 중독 문제는 개인의 선택 이전에 사회가 어떤 환경을 허용하고 무엇을 방치했는지를 되묻는 질문”이라며,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치료가 아닌 예방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민전 의원 역시 자료집 축사에서 “청소년 중독은 공교육이 감당해야 할 핵심 정책”이라며, “학교와 지역사회, 전문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회복 중심의 지원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자료집에서 “10대 마약 사범이 2005년 30명에서 2023년 1,477명으로 폭증했다”며, AI·뇌과학 기반 분석 체계 도입과 국가 컨트롤타워 재정비를 지체할 수 없는 국가적 의무로 규정했다. 10대 마약·도박·디지털 성범죄… ‘스마트폰’이 중독의 고속도로 본격적인 발제에서는 현장의 생생한 실태와 과학적 진단이 이어졌다. 최경찬 박사(법무부 주무관)는 국내 마약 사용 실태를, 김영한 대표(Next세대Ministry)는 현대 청소년 문제의 동향을 짚었다. 스마트폰 중독이 불러오는 청소년 문제를 지적하는 김영한 목사 김영한 대표는 특히 스마트폰이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부산 가정법원 판사의 말을 인용해 “청소년 사건 150여 건 중 거의 모든 사건이 스마트폰과 관련되어 있다”며, 초등학생들이 음란물을 강제 시청하게 하거나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의 저연령화 실태를 고발했다. 또한 유해 미디어 노출은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의 상당수가 경험하고 있을 정도로 일상화되었으며, 이는 곧 중독으로 가는 관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뇌과학으로 본 중독 메커니즘… “예방 교육의 패러다임 바꿔야” 이창배 박사(오이코스대 교수)는 중독을 AI 뇌과학적 현상으로 분석하며 과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청소년기의 뇌는 아직 발달 중이기에 중독 물질이나 자극에 노출될 경우 성인보다 훨씬 치명적이며 회복 또한 수배 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창배 박사는 중독과 뇌의 메카니즘을 강의했다. 이미숙 박사(중독전문치유새움교육원장)는 미래적 대안 연구를 통해 현재의 실효성 없는 방안들을 비판하며, 지금 당장 ‘씨를 심는’ 심정으로 대안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적 강화뿐만 아니라 지자체별 예방 교육 활성화, 학교 내 상담 프로그램 운영, 민간단체의 멘토링 등이 입체적으로 작동해야 함을 시사했다. 민간 현장의 외침… “5년간 강사 400명 양성, 이제 국가가 나서야” 포럼을 공동 주최한 청예본의 홍호수 이사장은 지난 5년간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홍 이사장은 “중독은 반드시 청소년기에 선제적으로 예방해야 한다”며, 지난 5년간 400명의 전문 강사를 배출한 데 이어, 사랑의열매 지원을 통해 향후 3년간 1,000명의 강사를 추가로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스스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중독 예방 전문 캠프’를 본격화하고, 영적 회복과 사회 복귀를 돕는 ‘청소년 중독재활 영성센터’ 설립 계획을 밝히며 민간 차원의 사각지대 해소 노력을 설명했다. 종합 토론: “낙인 아닌 치유로, 고립 아닌 연대로” 이어진 토론에서는 김도형 박사(기독교 국제중독전문원장), 윤석주 교수(한국열린사이버대), 신애자 교수(하이맘심리상담센터)가 참여해 열띤 논의를 벌였다. 전문가들은 중독 청소년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사회 밖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치유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용희 대표(바른교육교수연합)는 “한 아이를 중독으로부터 지켜내는 데 온 국가와 학계, 시민사회의 지혜가 결집되어야 한다”며 ‘중독의 대중화 시대’에 걸맞은 국민적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결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 ‘중독 제로’에서 시작된다 이번 포럼은 청소년 중독 문제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국가적 위기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화려한 빛 이면에 중독이라는 짙은 그림자 속에 방치되어 있다. 정치권의 입법 의지와 민간의 헌신적인 활동, 그리고 AI 뇌과학 등 최신 기술을 결합한 통합적 대응 체계만이 우리 아이들을 벼랑 끝에서 구할 수 있다. "버텨라"고 말하기보다 "지켜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중독이 아닌 '성취'를 향해 꿈꿀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기성세대의 가장 시급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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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0
  • “넓고 얕은 인맥은 옛말”... 대한민국, ‘관계 가성비’와 ‘소수 정예’에 빠지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인간관계 지형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과거의 인맥 관리가 ‘다다익선(多多益善)’의 논리에 따라 인맥의 넓이를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면, 2026년을 앞둔 현재의 트렌드는 ‘관계의 효율화’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무분별한 인간관계 확장보다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소수의 핵심 관계에 쏟아붓는 이른바 ‘관계 가성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지인 수’ 줄었는데 ‘행복지수’는 올랐다... 역설적 지표의 의미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2025 인간관계인식조사’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우리 국민이 인지하는 ‘평소 친밀한 지인 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22년 평균 6.4명이었던 지인 수는 2023년과 2024년을 거쳐 2025년 현재 4.1명으로 집계되며 조사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관계의 양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 만족도’는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이다. 2025년 관계 만족도는 6.4점(10점 만점 기준)으로 2022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현대인들이 불필요한 인맥을 걷어내고 내실 있는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정서적 포만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령별로는 70세 이상의 만족도가 7.0점으로 가장 높았고, 18~29세 청년층이 6.7점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가장 젊은 세대와 가장 고령 세대가 전년 대비 만족도 상승폭(각 0.5점)이 가장 컸다는 점은, 두 세대가 각자의 방식대로 관계의 질을 높이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 “다수보다 소수, 다양성보다 동질성”... 유유상종형 관계 선호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89%는 ‘다수와 얕은 관계’보다 ‘소수와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37%)과 2030 청년세대(20대 46%, 30대 40%)에서 이러한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관계의 대상에 있어서도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을 선호하는 비율이 72%에 달했다. 이러한 ‘유유상종형’ 선호 현상은 남성(63%)보다 여성(80%)에서, 그리고 60대 이상 고령층(80~82%)에서 압도적이었다. 이는 사회적 경험이 쌓일수록 성격이나 가치관의 ‘다름’에서 오는 갈등과 에너지 소모를 피하고, 공감대 형성이 쉬운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교회 소그룹이나 커뮤니티 활동 전략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성원 간의 다양성을 강요하기보다는 관심사나 연령대가 비슷한 이들을 그룹화하여 초기 정착의 문턱을 낮추고 공감대를 극대화하는 편성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계에도 도입된 ‘가성비’ 논리... 75%가 “부담되는 인맥 정리했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이 임계점에 달하면서, 이제는 관계 맺기에도 ‘효율성’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응답자의 58%는 한정된 시간과 감정을 고려해 인간관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관계 가성비’ 중심의 태도를 보였다. 65%는 의미 없는 상대에게 들이는 ‘감정노동’에 고통을 느낀다고 답했다. 실제로 국민 4명 중 3명(75%)은 부담스러운 인간관계를 직접 정리한 경험이 있었다. 정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정서적 피로감(46%)’이었다. 만남 후에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거나 에너지가 방전되는 관계라면 과감히 단절을 택하는 ‘관계 다이어트’가 보편화된 것이다. 덕분에 2023년 58%에 달했던 인간관계 피로감 경험률은 2025년 48%로 떨어지며 조사 이래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했다. ■ 세대별 온도 차... ‘축소’에 힘주는 30대 vs ‘확장’ 열망하는 70대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는 세대별로 확연히 달랐다. 30대는 관계 확장에 가장 소극적(34%)인 반면, 관계 축소 및 정리에는 가장 적극적(51%)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직장 내 경쟁, 육아, 경제적 자립 등으로 인해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30대가 새로운 관계를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반면 70세 이상 고령층은 관계 유지(92%)와 확장(54%) 모두에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의지를 보였다. 이는 노년기 고립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연결에 대한 강한 욕구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디지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만남에 대한 열망은 전 세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국민 86%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친구 맺기를 선호했으며, 특히 2030 세대에서 오프라인을 ‘매우 선호’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나 대면 접촉을 통한 실질적 정서 교감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었다. ■ 스트레스 1위는 ‘불통’... 지인 많으면 ‘감정 기복’, 적으면 ‘소외감’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숙제다. 국민 63%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으며, 주된 발원지는 ‘일터(직장 동료 66%, 상사 65%)’였다. 특히 3040 세대는 직장 내 갈등, 20대는 친구 관계, 40대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유발의 핵심 요인은 ‘대화와 소통의 부재(54%)’였다. 이어 ‘반복되는 갈등(47%)’, ‘상대방의 감정 기복(37%)’ 순이었다. 특이한 점은 지인 수에 따라 스트레스의 종류가 달랐다는 점이다. 지인이 10명 이상인 응답자는 ‘상대방의 감정 기복’으로 힘들어한 반면, 지인이 전혀 없는 응답자는 ‘소외감과 거리감’을 주된 고통으로 꼽았다. 결국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은 ‘적정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현대인의 심리 방역에 핵심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전문가들은 “현대인의 인간관계가 ‘양적 팽창’에서 ‘질적 심화’로 옮겨가고 있다”며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과 결이 맞는 사람들과 깊게 교류하는 것은 개인의 정신 건강을 위한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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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 진단
    2026-02-09
  • “유럽의 위기, 교회가 복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Unsplash의 John Price 유럽복음주의연맹 사무총장, 유럽 교회 향해 회개 촉구 유럽이 전쟁과 안보 불안, 악화된 종교 자유, 급속한 세속화와 교회 내부 분열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 교회가 복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유럽 교회는 돌이켜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럽복음주의연맹(EEA) 공동 사무총장인 얀 C. 베셀스(Jan C. Wessels) 목사는 최근 크리스천데일리인더내셔널에 기고한 ‘신실함을 향한 예언적 부르심(A Prophetic Call to Faithfulness)’에서 2026년을 앞둔 유럽 교회를 향해 회개와 분별, 순종을 촉구했다. 베셀스는 이 기고문에서 유럽 교회가 직면한 주요 도전으로 영적·물리적 전쟁, 종교의 자유, 민족주의의 부상, 물질주의, 일부 교회 내부의 세속화, 기후 변화 등을 꼽았다. 동시에 그는 제자훈련의 회복, 복음주의 진영 간 연합, 이주민과 청년 세대를 향한 선교적 기회 등 희망의 징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베셀스는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닌 “가치와 진리, 권력을 둘러싼 전쟁”으로 규정했다. 그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성경적 인간관에서 형성된 핵심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 정치 흐름과 신앙에 대한 문화적 적대감으로 점차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로마서 1장 18절을 인용하며, 교회가 이러한 흐름 앞에서 순진해서는 안 되며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특권 수호가 아니라 “복음과 양심, 연약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 내부 분열에 대한 경고 베셀스는 교회 내부의 깊은 분열 또한 심각한 문제로 지목했다. 같은 주님을 고백하고 같은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례, 남녀 역할, 성 윤리 문제를 두고 서로를 정죄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누가복음 11장 17절과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근거로 “분열된 교회는 깨어진 세상에 화해의 복음을 신뢰성 있게 전할 수 없다”며, 진리와 함께 사랑과 겸손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셀스는 조국 사랑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국가 정체성을 절대화하는 민족주의는 죄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는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은 유럽이나 서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 온 우주에 까지 미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유럽 교회 안에 스며든 물질주의와 안락 중심의 신앙을 지적하며, “세속화는 단지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값비싼 제자도를 대신해 안락함이 자리를 차지할 때 교회 안에서도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럽의 소비와 환경 파괴의 결과가 지구촌 남반구에 전가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베셀스는 자신의 메시지가 결코 절망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유럽에서 성령을 거두지 않으셨다”며, 유럽 전역에서 교회 출석 중심 신앙을 넘어 일상 속에서 살아내는 제자훈련이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국가 연합체와 초교파 사역 단체 간 협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요 17:21)이라고 말했다. 베셀스는 특히 유럽의 젊은 세대가 진정성과 공동체, 의미를 갈망하고 있다는 점을 “두드러진 희망의 신호”로 평가했다. 그는 이것이 아직 부흥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교회가 분별해야 할 하나님의 방문의 순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과 이주민·난민의 증가 역시 위기가 아닌 선교적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AI가 성경 번역과 제자훈련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난민과 이주민을 ‘위협’이 아니라 하나님이 유럽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선교의 기회이자 하나님의 때’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는 따를 준비가 되었는가” 베셀스는 글의 마지막에서 “문제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유럽에서 일하고 계신가가 아니라, 교회가 회개하고 듣고 따를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사야 43장 19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유럽 가운데서 새 일을 행하고 계심을 분별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하나님은 유럽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유럽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고, 사랑 안에서 하나 되며, 복음을 위해 세상으로 파송된 신실한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복음기도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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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5
  • [심층진단] ‘사이비 규제’의 국제적 이면: 종교의 자유인가, 권위주의적 통제인가
    유튜브 영상 갈무리 1. 서론: '사이비 규제'라는 이름의 국가 검열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기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오간 '사이비 종교 규제' 발언은 단순히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넘어, 국가 권력이 신념의 영역에 개입하려는 위험한 신호로 읽힌다. 특히 중국의 종교 통제 방식인 '삼자교회' 모델과 최근 국내의 정치적 상황을 대조해 볼 때,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로서 지켜온 종교의 자유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2. 중국의 사례: '삼자교회'를 통한 종교의 국유화 중국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국가가 공인한 기관을 통해서만 종교 활동을 허용합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삼자애국운동위원회(삼자교회)'이다. 국가 통제의 도구:삼자교회는 '자치, 자양, 자전'을 원칙으로 내세우지만, 본질은 공산당의 지도 아래 종교를 두는 것이다. 당의 정책에 반하는 설교는 금지되며, 이를 거부하는 목회자와 신자들은 '불법 종교 활동'이나 '사회 질서 교란' 혐의로 가차 없이 체포·구금된다. 지하교회 탄압의 명분:최근 중국 당국은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대거 체포하고 있다. 특히 시온교회의 진밍르(김명일) 목사 등 수십 명의 지도자를 구금한 사례는 국가가 '사이비'나 '불법'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어떻게 종교 비판 세력을 거세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3. 3. 해외 선진국의 사례: '반사이비법'의 명암 종교적 갈등이 심한 유럽과 일본에서도 사이비 규제는 언제나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논란을 동반한다. 국가 주요 사례 및 정책 법적 논란 및 비판 프랑스 아부-피카르법 (반사이비법)제정 '종파적 일탈'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소수 종교를 탄압한다는 비판. 최근 신천지 등 한국계 종교에 대한 감시 보고서 발간으로 논란 재점화. 일본 통일교 해산 청구 및 종교법인법 개정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 이후 급격히 추진됨. UN 인권이사회 등은 "모호한 법 개념에 근거해 국제 인권 규범을 위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 미국 레몬 테스트 (Lemon Test)원칙 준수 정부의 행위가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정교분리 원칙 고수. 일본의 정치적 배경:일본 정부의 통일교 해산 청구는 '사회적 분노'를 정치적 지지율 회복으로 연결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기독교계의 반정부 인사를 구속하면서 '사이비 규제'를 언급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4. 법적 진단: 왜 '사이비 규제'는 위헌적인가? 국가가 '사이비'를 규정하고 처벌하려는 시도는 대한민국 법치의 근간을 흔든다. 자기결정권과 신앙의 자유:성인이 자신의 의지로 특정 단체에 헌금하거나 봉사하는 행위를 국가가 '그릇된 신앙'이라며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 정치적 오용의 위험성:이재명 대통령이 비판 세력인 손현보, 전광훈 목사 등을 구속하고,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발언을 왜곡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행위는 '정의로운 규제'가 아닌 '정치적 보복'의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법 전문가의 견해:"이미 형법상 사기, 감금 등의 조항이 존재함에도 특정 종교를 타겟으로 한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국가가 종교재판관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중국식 종교 통제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5. 결론: 법치국가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긍정적 답변'은 피해자 보호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은 '비판 세력 말살'의 칼날일 수 있다. 중국이 삼자교회를 통해 종교를 당의 하부 조직으로 만들었듯, 우리 정부가 '사이비 규제'라는 명목으로 종교를 등급화하고 통제하려 든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 국가는 종교의 내부 교리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 오직 발생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만 보편적인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명령하는 정교분리의 엄중한 원칙이다. 관련 기사 : 지형은 목사의 윤대통령 계엄에대한 설교 및 발언은 신학적 절제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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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5
  • 지형은 목사의 윤대통령 계엄에대한 설교 및 발언은 신학적 절제를 넘었다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는 유튜브 영상에서 지형은 목사를 두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목사라고 비판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독일 경건주의 전문가인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서의 윤석렬 대통령이 계엄과 관련해서 매우 비판적인 설교와 발언을 해서 교계에 주목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좌편의 논지에 가깝고 또한 균형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본지는 그의 학문적 뿌리인 경건주의 신학이 어떻게 사회윤리와 조우하는지, 그리고 왜 그의 발언이 신학적 절제를 상실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는지를 심층 분석한다. 1. 문제 제기의 출발점: 경건주의 학자가 마주한 정치적 현실 지형은 목사는 한국 교계에서 보기 드문 정통 학자 출신 목회자다. 독일 보훔대학교(Ruhr-Universität Bochum)에서 교회사와 교리사를 전공한 그는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필립 야코프 스페너(Philipp Jakob Spener)의 저술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명확하게 ‘경건주의 신학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둘러싼 지 목사의 설교와 사회적 발언은 그를 향한 시선을 학문적 영역에서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으로 옮겨놓았다. 핵심은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그의 발언이 과연 경건주의 신학이 견지해야 할 신학적·법적·정치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본 분석 기사에서는 지형은 목사의 발언을 통해 경건주의 신학이 기독교 사회윤리와 만나는 지점을 고찰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신학적 단절과 권력 인식의 오류를 추적하고자 한다. 2. 경건주의의 본질: 내면적 경건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흔히 경건주의라고 하면 개인의 내밀한 회심이나 신비주의적 성화에만 집중하는 소극적 신학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스페너가 주창한 독일 경건주의의 원형은 결코 사회와 단절된 섬이 아니었다. 스페너의 『경건한 열망』이 제시하는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다. 교회의 본질적 변화: 교회는 단순히 교리를 보존하고 전수하는 화석화된 기관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이끄는 역동적 공동체여야 한다. 성화를 통한 사회적 확장: 개인의 거룩함(성화)은 내면에 머물지 않고 타인을 향한 사랑과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국가에 대한 감시: 국가는 그 자체로 절대선이 될 수 없으며, 교회는 국가의 도덕적 타락을 경계하고 감시할 영적 의무가 있다. 이 지점에서 경건주의는 이후 기독교 사회윤리, 더 나아가 19세기 기독교 사회주의적 전통과 일정 부분 접점을 형성한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결정적인 경계선이 있다. 경건주의는 ‘복음이 사회에 윤리적 책임을 요청한다’고 가르쳤을 뿐, ‘특정 정치 이념이나 진영 논리가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등치 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구분이 무너질 때 경건주의는 도덕적 절대주의 혹은 이념화된 신앙의 도구로 변질될 위험에 처한다. 3. 경건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 접점과 단절의 경계 지형은 목사의 발언이 소위 ‘좌익 시민사회 담론’과 유사하게 읽히는 이유는 그가 강조하는 기독교 사회윤리가 기독교 사회주의적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양측은 가난한 자와 약자에 대한 책임, 구조적 불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한다. 그러나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 경건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는 ‘인간과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를 보인다. 구분 경건주의 (Pietism) 기독교 사회주의 (Christian Socialism) 인간 이해 철저히 타락한 존재 (부패성 강조) 구조가 개선되면 선해질 수 있는 존재 권력 인식 권력은 항상 죄성에 노출됨 (불신) ‘정의로운 권력’의 실현 가능성 낙관 하나님 나라 종말론적이며 초월적인 실재 역사 안에서 점진적으로 실현 가능 국가의 역할 필요하지만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음 정의 구현을 위한 적극적 수단 경건주의의 진정한 강점은 ‘인간과 권력에 대한 냉철한 불신’에 있다. 반면 기독교 사회주의의 위험은 특정 권력을 정의의 편으로 설정하는 ‘권력에 대한 낙관’에 있다. 지형은 목사의 최근 발언에서 우려되는 지점은, 그가 견지해 온 경건주의적 비판 정신이 특정 정치적 상황 앞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적 낙관 혹은 이념적 편향성으로 선회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4. 법치와 신학의 관계: 신학이 사법적 판단을 앞지를 수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지 목사는 이를 “헌법을 짓밟은 행위”, 나아가“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행위”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했다. 여기에는 중대한 신학적·법리적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대한민국 헌법상 계엄 선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명시되어 있다. 선포의 절차나 동기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나, 그것이 곧바로 ‘내란’ 혹은 ‘헌법 파괴’로 성립되는지는 사법적 판단의 영역이다. 둘째, 위증 논란과 정치적 재판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목회자가 법적 판단을 선행하여 종교적·신학적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은 경건주의 전통이 강조해 온 ‘겸손’과 ‘자기 제한’의 원리에 어긋난다. 경건주의의 거장들은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권력의 오만함을 비판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 집행하는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된다.” 지 목사의 발언은 예언자적 외침이라는 명분 하에, 신학적 겸비함이라는 선을 넘어선 것으로 비춰질 소지가 다분하다. 5.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과 국가 권력의 죄성 가장 심각한 신학적 쟁점은 ‘하나님 나라와 국가 권력의 죄성’에 대한 구분이 흐려졌다는 점이다. 정통 신학적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는 그 어떤 지상 정치 체제와도 동일시될 수 없다.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보수주의든 모든 정치 시스템은 인간의 죄성 아래 놓여 있다. 지 목사의 발언에서는 국가 권력 전반에 대한 구조적 불신보다는, 특정 행위에 대한 도덕적 절대주의가 도드라진다. 이는 경건주의의 언어를 빌려왔을 뿐, 실제로는 특정 진영의 정치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시민종교적 담론’에 가깝다. 권력이 좌측에 있든 우측에 있든, 교회가 특정 정치적 해석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는 순간 신학은 이데올로기의 시녀로 전락하게 된다. 6. 결론: 문제는 ‘이념’이 아닌 ‘신학적 절제의 상실’이다 지형은 목사를 향한 비판의 본질은 그가 공산주의자라거나 좌익이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경건주의 신학이라는 탁월한 도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치적 격동기 앞에서 경건주의가 마땅히 지켜야 할 ‘판단 유보의 미덕’을 상실했다는 점에 있다. 경건주의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남겼다.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권력도 반드시 타락한다. 정의를 부르짖는 다수의 목소리 또한 언제든 폭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상의 어느 편에도 완전히 서지 않음으로써만 진정한 비판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기준에서 볼 때, 지형은 목사의 발언은 신학적 균형을 잃은 상태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교회가 시대를 향해 발언하는 것은 마땅한 사명이다. 그러나 그 발언이 세속 정치의 확성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엄격한 절제와 깊은 신학적 분별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로운 분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끝까지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기다리는 신앙이다.” 이 시대적 교훈 앞에서 지 목사의 발언은 한국 교계가 권력과 신앙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에 대한 뼈아픈 신학적 사례 연구(Case Study)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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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5
  • “토요일 저녁이 주일이었다?”, 성경과 교회사로 검증한 온누리교회 ‘토요 주일예배’ 논리의 허점
    온누리교회의 이재훈 목사가 2년 전인 23년 2월 12일에 올린 ‘토요일 주일예배’의 정당성을 설명하며 제시한 영상이 지금도 유튜브에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목사의 토요일의 주일예배가 그의 주장대로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아니면 비성경적 조명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2년 전에 시작된 일이지만 유튜브의 영상은 현재형이라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먼저 이재훈 목사가 토요일에 주일예배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는 짧은 영상의 내용을 다음과 같다. “여러분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킨 역사가 꽤 오래됐습니다 그런데이 주일 성소의 함정에 따지면 안 되는 거죠 토요일 예배를 만들어서 하고 있는데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공휴일이 생겨난게 콘스탄틴 황제 때입니다 그 이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제 모여서 예배 드렸습니까 토요일 저녁이었어요 그리고 일부는 일요일 새벽이었어요 왜 이 두 시간대밖에 없었습니까 나머진 다 일해야 되니까 그리고 안식일이 있어요 유대인들은 그래서 안식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나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저녁 전까지 초기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 저녁에 예배를 드렸어요 또 이방인들은 왜 토요일 날 피곤하게 예배드리느냐 이런 새벽에 모이자 그래서 새벽에도 모였던 거예요 많은 교회들이 주일 오전 시간 때만 대예배라고 오후부터는 대배가 아니에요 소회 예배예요 칼뱅의 기독교 광야에 보면 안식일에 관한 길에 해설에서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다 모일 수 있는 시간 공휴일에 모여서 예배 드리면 되는 것이죠.”(https://www.youtube.com/shorts/dbzrDZ_SZHE) 이 목사의 주장은 요약하면 이렇다. “콘스탄틴 이전에는 공휴일이 없었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토요일 저녁이나 주일 새벽에 예배를 드렸고, 결국 예배는 요일이 아니라 ‘모일 수 있는 시간’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성경 본문, 초대교회 문헌, 종교개혁 신학 어느 하나와도 충분히 합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층위의 자료를 선택적으로 연결한 논리적 비약에 가깝다. 초대교회는 언제 예배했는가? 성경의 명확한 증언 신약성경은 초대교회 예배의 날을 분명히 증언한다. 사도행전 20장 7절은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기록한다. 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성찬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예배를 가리킨다. 바울의 설교가 밤중까지 이어졌다는 기록은 예배의 ‘시간대’를 설명할 뿐, 그 날이 주일임을 흐리게 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 역시 “매 주 첫날에” 헌금을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헌금은 개인 경건이 아니라 공동체 예배 질서와 직결된 행위다. 이미 주일이 교회의 리듬이었음을 보여준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더욱 결정적이다. 이는 1세기 말 이미 ‘안식일’이 아닌 부활의 날, 곧 주일을 가리키는 고유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모든 본문 어디에서도 “토요일 저녁이 정기 예배일이었다”는 암시는 발견되지 않는다. “토요일 저녁 예배” 주장, 문헌적 근거는 있는가 이재훈 목사의 설명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문헌적 공백이다. 초대교회 문헌 가운데, 토요일 저녁을 정규 예배일로 규정한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1–2세기 교회 문헌들은 일관되게 주일을 증언한다. 『디다케』는 “주의 날에 모여 떡을 떼고 감사하라”고 명시한다. 유스티누스의 『변증서』는 로마 제국을 향해 “태양의 날(Sunday)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인다”고 설명한다. 이는 박해 속에서조차 교회가 예배일을 숨기지 않았다는 증거다. 토요일 저녁 모임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일이 시작되는 시점에 모인 경우이거나, 박해와 노동 환경 속에서의 비공식적 모임이었을 가능성이다. 이를 근거로 “초대교회는 토요일에 예배했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역사 해석의 과잉이다. 콘스탄틴 이전엔 주일이 없었는가 또 하나의 문제는 ‘주일은 콘스탄틴이 만들었다’는 오래된 오해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에 주일을 공휴일로 제정했을 뿐, 주일 예배를 창조하지 않았다. 이미 2세기 이전부터 교회는 주일에 모였다. 국가는 교회의 예배일을 제도적으로 인정했을 뿐이다. 즉, 주일 → 교회, 공휴일 → 국가라는 순서를 뒤집어 이해해서는 안 된다. 칼뱅을 호출했지만, 칼뱅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재훈 목사는 장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언급하며 “일주일에 하루, 공휴일에 모이면 된다”고 요약했다. 그러나 이는 칼뱅의 논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이다. 칼뱅은 안식일을 유대 율법으로서 폐기된 규례로 보았지만, 동시에 교회의 질서와 공동체적 예배를 위해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주일을 “아무 날이나 가능한 편의적 선택”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합의한 날을 경시하는 태도 자체를 혼란의 원인으로 경계했다. 칼뱅을 들어 토요 주일예배를 정당화하는 것은, 그의 신학을 실용주의적 도구로 차용한 것에 가깝다. 주일은 ‘시간 선택’이 아니라 ‘신앙 고백’이다 주일 예배의 핵심은 편의가 아니라 부활 신앙이다. 초대교회가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동한 것은 노동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깨뜨리신 날에 자신들의 존재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주일은 단순히 “모일 수 있는 하루”가 아니라, 새 창조의 첫날,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고백하는 날, 교회가 교회임을 드러내는 표지다. 주일을 해체하면 예배는 남을지 모르지만, 교회의 시간 신학은 무너진다. 편의가 신학을 대체할 때, 교회는 길을 잃는다 토요일 예배를 ‘주일’이라 부르기 위해 초대교회와 교회사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무리한 시도다. 예배 시간의 다양화와 주일성수의 의미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일이라는 신앙적 좌표를 흐리게 만드는 설명은 교회를 돕기보다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교회는 언제나 시대의 조건 속에 존재해 왔지만, 시간의 주권만큼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해 왔다. 주일 예배는 그 고백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분명한 형식이다. 교회의 편의주의와 실용주의가 올바름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2년 전의 일이고, 지금 아무 탈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묻혀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토요일 주일예배’라는 모순된 언어 속에 주일에 시간 편하게 사용하기 위한 위로의 용어라면 그것은 이중적인 언어유희 일수 있다. 토요일 주일 예배가 아니라 그냥 토요예배이다. 안식교와 예배 자체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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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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