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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캐나다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MDMotivator' 채널 이야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 (화면캡처) 한 청년이 있었다. 의사의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그를 짓눌렀다.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었다. 그 청년은 어느 날 교과서를 덮고 거리로 나섰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그 단순한 질문 하나가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그 자신도 몰랐다. 캐나다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의 이야기다. 한 청년의 결단, 의대 강의실에서 거리로 1993년에 태어난 재커리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의학이었다. 의대에 입학한 그는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성적은 올랐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것은 번아웃이었고, 우울감이었다. "의대에서 배우는 것은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의 마음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바쁘고 경쟁적이었죠.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재커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외로움과 우울감은 의대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직장인도, 노인도, 청소년도 — 저마다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의학 공부보다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Kindness is Cool — 친절은 멋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처음 카메라를 켰던 날, 두려움을 넘은 첫 걸음 재커리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초창기 에피소드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 날이었다. 남성은 처음에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재커리가 진심으로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자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말 못 하며 혼자 고통받고 있었다. 재커리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고, 가진 현금 전부를 꺼내 건넸다. "이것이 당신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간 뒤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창에는 "나도 저 남성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커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제가 남성을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분이 저를 구해 주신 거예요. 제게 '계속 하라'는 이유를 주셨으니까요." 재커리의 운영 채널의 목록(화면 캡처) 선한 영향력의 연쇄 , 나눔이 나눔을 낳다 MDMotivator 채널이 다른 감동 채널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커리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이어가도록 유도하는 '선순환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재커리가 한 홈리스 남성에게 음식과 현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남성은 받은 돈의 일부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다른 노숙인에게 나눠 주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성경이 말하는 과부의 헌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영상들은 단순한 조회수를 넘어 실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한 영상에서 소개된 암 투병 중인 싱글맘의 사연은 며칠 만에 수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고, 재정 위기에 처한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캠페인은 수천 명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다. 재커리의 채널은 이미 하나의 '선행 플랫폼'이 되어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MDMotivator의 또 다른 축은 정신 건강이다. 재커리는 자신이 의대 시절 겪었던 우울감, 번아웃, 고립감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콘텐츠의 심장으로 삼는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즘 가장 힘든 게 뭐예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대도시의 바쁜 거리에서 처음 만난 청년에게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현대 사회의 역설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은 깊은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재커리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채널은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용감한 행동입니다." 이 메시지는 영상마다 반복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사연이 나간 뒤에 구독자들이 보낸 모금의 기적, 이 후원금으로 출연자들의 삶을 개선한다(화면 캡처) 전 세계로 퍼진 친절의 물결, 수천만 명이 응답하다 오늘날 MDMotivator는 유튜브에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전체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한 명의 청년이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선 지 몇 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러나 재커리는 숫자보다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 채널 댓글에는 매일 수천 개의 메시지가 달린다. "이 영상이 저를 자살 충동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당신 덕분에요." 이런 고백들이 재커리를 다시 거리로 이끄는 힘이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영상 재생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문화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Kindness is Cool'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절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MDMotivator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낯설지 않은 울림을 준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약한 자를 돌보라'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한다(갈라디아서 6:2). MDMotivator가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이 성경적 원리의 세속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공원 벤치의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주머니를 털어 건네는 지폐, 눈물을 흘리는 타인의 손을 꼭 잡는 그 행동들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미셨던 그 방식과 닮아 있다. 종교를 앞세우지 않지만, 그 콘텐츠의 본질에는 깊은 인도주의적 사랑이 흐른다. 한국 교회는 오늘, MDMotivator에서 하나의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교회 밖으로 나가, 아무 조건 없이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설교단 위의 말씀이 골목 안의 일상으로 살아 움직일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한다. 재커리는 그것을 카메라로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당신이 낯선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소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친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 MDMotivator, Zachery Dereniowski 의학을 포기한 청년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게 되었다.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처방전 대신 진심 어린 대화를 택한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그는 오늘도 거리로 나간다. 우리 곁에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묻는 것 —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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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눈을 뜬 아침, 사랑의 눈동자를 만나다
스스로를 닦던 고독한 구도자, 바나바를 연기하다 이탈리아의 연극배우 피에트로 사루비에게 삶은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한 고단한 수행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티베트 불교에 심취했던 그는 명상과 윤회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닦아내려 했던 고독한 구도자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인류사의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출연 제의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맡은 역은 민란을 주도하고 살인을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인 ‘바라바’였습니다. 사루비는 이 역할을 대단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저 직업적인 도전이라 생각하며 거친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연기가 멈춘 찰나, 시선이 마주치다 빌라도의 법정, 따가운 햇살 아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사루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관중의 야유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채찍질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 예수(짐 카비즐 분)가 서 있었습니다. 대본대로라면 사루비는 자신을 대신해 죽으러 가는 예수를 비웃으며 광기 어린 표정으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눈과 마주친 순간, 사루비의 연기는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눈은 나를 꿰뚫고 있었고, 동시에 나를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도, 죽음의 공포도 없었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깊은 침묵과 가늠할 수 없는 사랑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사루비는 그 찰나의 시선 속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압도적인 진실과 마주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 바라바였습니다” 그 눈빛은 사루비의 영혼에 소리 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침묵하는 이유는 네가 소리치게 하기 위함이고, 내가 매를 맞는 이유는 네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함이며, 내가 죽는 이유는 네가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2,000년 전의 바라바는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예수를 대신해 풀려나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이 주어지는 ‘선물’임을 그는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시선이 바꾼 새로운 세계: 바라바 이후의 삶 1. 《바라바에서 예수에게로》: 눈빛으로 기록한 회심 사루비는 이후 자신의 회심 과정을 담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구원이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바라바는 우리 인류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2.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광대’가 되다 가장 아름다운 변화는 그가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광대(Clown)로 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험악한 살인자 ‘바라바’의 얼굴을 했던 그가, 이제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합니다. 자신이 받은 자비로운 시선을 타인에게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공이 아닌 ‘사랑’을 쫓는 삶 성공과 해탈에만 집중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그는 이제 헌신적인 남편과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 눈빛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듯, 나도 내 곁의 사람들을 가장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당신은 그 눈과 마주한 적이 있습니까? 사루비는 이제 의무감이 아니라 ‘그분’이 보고 싶어 성당에 갑니다. 그 눈빛이 여전히 자신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피에트로 사루비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 역시 저마다의 죄를 지은 채, 이유 없는 용서를 받고 풀려난 바라바들이 아니냐고.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하며 미소 짓던 그 눈과 마주한 적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살인자의 눈을 가졌던 배우는, 이제 그 눈에 용서와 평안을 담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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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말씀, 창조주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다
유듀브 동영상 갈무리 1.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비웃음 속에 찾아온 낯선 초대 저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뼛속까지 불교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제게 교회란 그저 ‘천국과 지옥’이라는 보이지 않는 담보로 사람들을 현혹해 장사를 하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저 또한 평생을 교회를 욕하며 지냈습니다. 서른다섯 되던 해, 서울에서 사업에 매진하던 제게 뜻밖의 제안이 찾아왔습니다. 평소 신앙이 깊어 보이지 않던 한 지인이 ‘크리스천 CEO 스쿨’을 추천한 것이지요. "저 형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습니다. 이전에도 친구를 따라 새벽기도에 가본 적은 있었으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기겁하여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기억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CEO 스쿨의 ‘섬김의 리더십’ 강의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비록 속으로는 "나중에 저들도 뒤에서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도하겠지"라고 비웃었지만, 그들의 삶에 배어있는 진정성은 제 차가운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녹여갔습니다. 2. 창조의 확증: 원숭이의 후예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제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여름 방학 중 떠난 ‘미국 창조과학 탐사’ 비전트립이었습니다. 그저 휴가나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신청한 그곳에서 지질학자 출신의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본래 철저한 진화론자였던 그분이 어떻게 성경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강의를 듣는 동안, 제 평생을 지탱해온 진화론의 허구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사실이다. 이것은 팩트다.” 그 외침이 제 심장에 박혔습니다. 제가 우연히 생겨난 원숭이의 후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 지어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그분이 바로 제가 그토록 욕했던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지자 세상 모든 만물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옆에 앉은 장로님부터 어린아이 한 명까지 모두가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였고, 그들을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이 제 안에서 솟구쳤습니다. 3. 주인이 바뀌는 회개: 내 삶의 보좌를 내어드리다 예수님을 창조주로 영접하고 나니 비로소 제가 지은 ‘진짜 죄’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저는 제가 꽤 의롭고 도덕적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열심은 결국 나를 주인 삼고 내 영광을 위해 살아온 교만일 뿐이었습니다. 진짜 죄는 살인이나 강도가 아니라, 내 생명의 주인인 창조주를 거부하고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고집했던 바로 그 마음이었습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제 생명보다 귀한 자식의 생명인데, 하늘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사랑의 확증은 없었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나니 과거에 함부로 대했던 인연들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관계가 끊겼던 친구들과 퇴사한 직원들에게까지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당신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형상인지 몰랐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며 깨어진 관계들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4. 팩트를 외치는 사명: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다 이제 제 삶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팩트’를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진화론과 공산주의라는 거짓 사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가리고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귀의 전략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치 현장이나 대형 교회 앞에서도 이 복음을 타협 없이 전합니다. 때로는 과격하다는 소리를 듣고 불편해하는 시선도 마주하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보다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 더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으나, 영원한 내일인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는 반드시 정해야 합니다. 믿음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전적인 선물입니다. 저처럼 평생 교회를 욕하던 완악한 사람도 창조주를 만나 새 생명을 얻었듯,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삶의 주인을 바꾸는 참된 회개를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간증 출처 : 간증. 풀버전.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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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예비하신 뒤, 길을 여신다”
1997년, 아프리카 중서부 케냐에 들어가 27년 동안 한결같이 케냐를 사랑하고 온몸으로 사랑을 전하다가 2023년 7월 5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토록 사랑하던 그곳에서 하나님께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선교의 삶 가운데 일어났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간증을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TWNt6PiiJg0)에서 발췌하여 싣습니다. -편집자 주- ▲ “제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그다음에 저를 그 길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케냐의 오지,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 이슬람권 지역에서 사역해 온 이원철 선교사는 자신의 선교 여정에 대해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 고백은 추상적인 신학적 표현이 아니라, 한 아이의 생명이 꺼져가던 시간 속에서 ‘기가 막히게’ 준비되어 있던 사람들, 문, 돈, 그리고 결정을 통해 확인된 현실의 기록이다. 이 간증은 ‘믿으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 순간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는가’, ‘왜 그 문이 그때 열렸는가’, ‘왜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를 촘촘히 되짚으며, 한 선교사가 경험한 섭리의 디테일을 따라가게 만든다. 1. “예배 때마다 밀려오던 사랑”이 방향을 바꿨다 그가 처음 선교사의 길을 결심한 계기는 거창한 ‘소명 체험’의 장면이 아니라, 반복되는 예배의 시간이었다. 그는 “매주일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너를 구했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밀려왔다”고 말한다. 그 사랑이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 “내가 나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결론은 단순했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라는 확신. 그 확신은 그를 케냐의 오지로 데려갔다. 2. “현상금이 걸린 사역지”… 그러나 더 큰 전쟁은 ‘집 안’에서 시작됐다 사역지는 험했다. 그는 “무슬림들이 나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죽이면 얼마”라는 말을 담담히 꺼낸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담대한 믿음을 주셔서 두려움 없이 사역한다”고 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가장 깊은 흔들림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가족의 위기’에서 왔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보딩스쿨)에 아이를 맡기고 사역하던 어느 때, 큰아이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못 자고, 화장실을 자주 가고, 먹지 못하고, 물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마셨다. 체중은 급속도로 줄어들어 마침내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로 내려갔다. 병원은 “이 아이가 이렇게 말라가면 죽는다”고 했다. 케냐에 있던 의료진, 미국에서 온 의료선교사 의사들까지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 방법도, 저 방법도” 다 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3. “회교 병원에 가라”는 권유 앞에서—그는 왜 ‘거절’했나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케냐 나이로비에 위장 전문의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약까지 잡혔다. 병원 이름도 있었다. 아가칸(Aga Khan) 병원.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결박되었다. 그는 그 병원을 “회교 병원”이라고 표현하며, 그 문턱을 넘는 순간을 상상했다. 병원 서류에 적힐 “부모 직업: 기독교 선교사”라는 한 줄.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올 것 같은 조롱—“네가 믿는 하나님으로는 아이를 못 살려서 여기 왔느냐.” 의료적 판단만 놓고 보면, ‘가야 한다’는 결론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을 수 있다”는 영적 문제로 받아들였다. 간호사 선교사가 격하게 반응할 만큼 그는 단호했다. “나는 이 아이를 회교 병원에 데려갈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그의 신앙은 ‘기적을 요구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신앙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그 결정이야말로 이후의 모든 길을 여는 ‘첫 단추’였다고 회고한다. 4. “아내의 울음”… 그리고 한 줄기 균열 하지만 믿음의 고백은 흔들리지 않는 강철이 아니었다. 현실은 계속해서 ‘급박’으로 밀어붙였다. 어느 날, 사역 일정 중이던 그에게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 아내는 잘 울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내는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전해진 말은 단순했다. “아이(큰아들)가 화장실 갔다가 오면서 쓰러졌어요.” 그는 차를 세웠고, 마음 한가운데로 “이 아이가 죽는구나”라는 직감이 찔러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덮쳤다. “죽을 때 아빠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는 남은 거리(약 한 시간 반)를 달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5. “응답은 받았는데… 왜 현실은 안 변하는가” 기도팀에서 연락이 왔다.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이 이 일을 고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기뻤다. 아이에게 달려가 “하나님이 너를 고치셨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도 기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하루 이틀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토하고, 힘들어하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엔 낙심이 쌓였다. 그때 그가 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는 차를 닦고 있었다. 그 평범한 순간에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지만, 하나님은 이미 고치셨다. 그러나 그 고치신 ‘시점’이 우리에게 도달할 때, 우리는 그 치유를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그는 이 깨달음을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믿음의 시간표’로 받아들였다.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인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를 고치셨다. 그 시점까지 믿음을 잃지 말자.” 6. LA로 가라는 낯선 초대—“갈 형편이 아닌데, 길이 열렸다” 그때 또 하나의 의외의 통로가 등장한다. LA로 오라는 메시지. 그것도 넉넉해 보이지 않는 한 전도사에게서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이는 누워 있어야 했고, 선교지 사역은 진행 중이었다. 무엇보다 항공권 값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는 기도 중 “네가 LA 가서 할 일이 있다”는 마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 마치 그 ‘마음’에 반응하듯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이미 고인이 된 한 목회자가 그에게 3천 불을 건네며 말했다. “병원 좀 데려가 봐.” 놀랍게도 그 돈은 “두 사람 비행기 값”과 거의 맞아떨어졌다. 그는 그 돈을 사역비로 쓰고 싶었지만, 마음에 주어진 ‘LA로 가야 한다’는 부르심을 따라 항공권으로 바꿨다. 여기서부터 ‘사람의 예비’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말을, 필요한 액수로 가져온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보내게 하신 것”이라고 표현한다. 7. 비자도, 비행기도—“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통과되었다” LA행의 또 다른 벽은 비자였다. 아이는 대사관 인터뷰를 받을 상태가 아니었다. “의자에 앉으면 머리가 무거워서” 버티지 못했다. “거부당할 게 당연”해 보였다. 그는 마지막 방법을 택했다. 아이를 대사관 밖에 두고, 아이의 여권만 들고 들어갔다. “아이 비자를 주십시오.” 영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이 얼굴도 안 보고 비자를 줄 수 없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흘렀다. 영사는 결국 비자를 찍어주었다. 인터뷰도 없이. 아이는 비자를 받았다. 비행기에서도 길이 열렸다. 걷지 못하는 아이는 휠체어로 탑승했고, 승무원은 아이를 눕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심지어 그들이 안내한 자리는 “맨 앞자리(1등석)”였다. ‘상식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따라붙는 장면들이 연속된다. 그는 그 연속성 속에서 ‘우연’이 아니라 ‘인도’의 패턴을 읽어낸다. 8. “응급실에 안 가려 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왔다 미국 도착 후에도 그는 쉽게 응급실로 향하지 못했다. “선교사”라는 정체가 또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하나님이 비난받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때, 링거를 놓아주려 찾아온 간호사와 단기팀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동행했다. 중국인 의사. 그것도 의대 교수. 그 의사는 아이를 보자마자 단정했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의료 조언이 아니었다. 선교사의 마음을 굳게 잠근 ‘종교적 체면’의 문을 강제로 두드리는 선포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망설였지만,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살아서 미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는 아이에게 직접 물었다. “병원에 가고 싶니?” 아이는 답했다. “아빠, 왜 이렇게 오래 토했는지 원인이라도 알고 싶어요.” 바로 이 ‘아이의 입’이, 아버지의 완강함을 무너뜨리는 열쇠가 되었다. 그가 문을 열자, 주변 사람들은 기뻐했다. 어떤 이는 “당신 마음이 바뀌도록 우리가 기도했다”고 나중에 말했다고 한다. 9. 응급실의 기적: “절차 없이 들어갔고, 곧바로 CT를 찍었다” 응급실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쟁터 같았다. 그런데 그 중국인 의사가 미리 전화한 덕분에 “아무 수속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인턴이 아이를 보더니 말했다. “뇌를 찍어야 합니다.” 곧바로 CT. 그리고 아이는 ICU(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때 선교사는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해 복도 의자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새벽, 의료진이 환자 요약 파일을 복도에 두고 간 일이 있었다. 그는 무심코 그것을 보게 된다. 거기에 적혀 있던 한 문장이 그를 멈춰 세웠다. “부모에게 알리지 말 것.” 그리고 이어진 내용. “뇌에 종양 2개(1cm, 2cm).” 이 장면이 이 간증의 독특한 역설을 만든다. 보통 ‘종양’은 절망의 단어다. 그런데 그는 “너무 기뻤다”고 말한다. 이유는 분명했다. 케냐에서도, 미국에서도 찾지 못했던 원인을 하나님이 드디어 “알게 하셨다.” “고칠 수 있는 병원에서 원인을 알게 하셨다.” 그는 아이에게 달려가 말했다. “드디어 원인을 알았다. 하나님이 너를 고치시려고 여기로 인도하셨다.” 10. “그때, 그 교수”… 그리고 또 하나의 예비 중환자실에서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키가 크고 머리가 희끗한 교수. 차트를 보더니 묻는다. “너 케냐에서 왔니? 우리 아버지가 케냐 의료선교사였다.” 그리고 그는 거의 ‘개인 담당’처럼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놀랄 정도의 관심. “돈도 없어 보이는 선교사 가족”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말이 뒤이어 나왔다. “네 아이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병원비를 무료로 하겠습니다.” 선교사는 당황했다. 아이와 “평생 갚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것이 무너졌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하나의 확신이 찾아왔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고치시려고, 네가 돈이 없으니 하나님이 책임지시려고, 여기로 부르셨다.” 이쯤 되면 ‘사람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말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가 된다. 케냐를 아는 교수, 케냐 선교사의 아들을 돕는 의료진, 비용을 감당하는 시스템, 그리고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하는 안내자들. 이들은 마치 “누군가가 미리 배치해 둔 것”처럼 움직인다. 11. “머리를 열지 않아도 되는 병원”으로—또 한 번 문이 열렸다 아이의 종양을 제거하려면 머리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의료진은 “머리를 열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더 좋은 병원”이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곳이 사립병원이라는 점. 비용이 또 다른 벽이었다. 하지만 그 병원도 아이를 받아주기로 했다. 의료진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기도 많이 했지? 기도 많이 해서 하나님이 길을 여신 거야.” 아이를 태운 앰뷸런스가 또 한 번 문을 통과했다. 새 병원에 도착하자 젊은 의사는 말했다. “이 아이는 케냐에 있었거나, 한국으로 갔으면 죽었을 겁니다.” 그는 그것을 “럭키”라고 표현했지만, 선교사는 그 ‘럭키’라는 말을 ‘인도’로 번역했다. 12. “우리는 둘 다 ‘사역자의 자녀’야”—마지막 열쇠 같은 한 마디 새 병원에서 또 한 사람이 들어온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의사. 차트를 쭉 보더니 묻는다. “너의 아버지가 케냐 선교사냐?”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목사다. 너와 나는 둘 다 미니스터의 자녀다.” 이 짧은 문장은, 선교사의 눈에 ‘우연히 만난 의료진’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으로 그를 확정시켰다. 그 의사는 아이를 끝까지 치료했고, 아이는 회복했다.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마침내 케냐로 돌아와 “선교사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 13. “그때 병원에 갔으면 오히려 죽었을 것”—하나님이 ‘눈을 가리신’ 시간 그는 한 가지 섬뜩한 결론을 덧붙인다. “제가 (처음부터) 그 병원에 데려갔으면, 얘는 죽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초기에 의료진이 찾은 건 위장 문제가 아니었다. 뇌 문제였다. 케냐에서 섣불리 수술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손을 댔다면 더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이 ‘수술할 수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셨다. 원인을 못 찾게 하셨다. 그리고 ‘고칠 수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원인을 보게 하셨다. 이 대목에서 그의 간증은 단순한 기적담을 넘어선다. 하나님이 “치유”만 행하신 것이 아니라, 치유가 가능한 “시간과 장소”를 먼저 준비하셨다는 서술이기 때문이다. 14. 선교 재정이 끊겼을 때도—“하나님이 돈은 안 주시고, 말씀을 주셨다” 아이의 치유가 ‘생명의 극적 인도’였다면, 재정의 사건은 ‘사역의 지속을 위한 인도’였다. 그는 한 교단 선교를 통해 파송을 받았고, 초기에는 교회가 생활비와 사역비를 약속했다. 그는 케냐에서 기독교 학교를 세웠다. 그 지역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교가 되었고, 회교도든 기독교인이든 4년 동안 성경을 배우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회 내부 분쟁이 터졌다. 헌금이 ‘재판 비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헌금을 멈췄고, 결국 선교 후원이 끊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도저히 못 보낸다”는 통보가 왔다. 그는 현실적으로 ‘신입생을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건물을 더 지을 수 없으니, 확장을 멈추자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주신 것은 돈이 아니라 말씀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는 “돈은 안 주시고 말씀만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씀이 그를 움직였다. 그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을 택했다. 직접 땅을 파고, 가능한 만큼 기초를 놓았다. 그리고 나이로비로 돌아왔을 때, 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와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돈. 그는 그 돈으로 건물을 올렸다. 또 필요가 생겼을 때 또 돈이 들어와 있었다. 결국 후원이 끊어진 해에 건물 두 개를 세우려 했던 계획은 더 커져, “보너스로 교회까지” 세웠다. 그는 결론을 이렇게 내린다. “중요한 건 ‘재정이 있느냐’가 아니라, ‘이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가’다. 그분의 뜻이면 재정은 따라온다.” 15. “하나님은 ‘길’을 예비하신다”—그의 간증이 남기는 한 가지 질문 이원철 선교사의 간증은 ‘나는 믿었더니 기적이 왔다’는 단순한 도식으로 닫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묻는다. 왜 그때 3천 불이 ‘항공권 값만큼’ 주어졌는가? 왜 아이는 인터뷰도 없이 비자를 받았는가? 왜 응급실에서 ‘절차 없이’ 들어갈 수 있었는가? 왜 케냐를 아는 교수, 사역자의 자녀임을 공유하는 의사가 연달아 나타났는가? 왜 ‘원인을 찾지 못하게’ 하셨다가, ‘고칠 수 있는 곳’에서 보게 하셨는가? 그는 이 모든 질문을 하나로 묶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나를 준비시키시고, 길을 준비시키신다.” 그리고 그 준비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는 방식으로 그를 붙들었다. 맺으며: 케냐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 아들의 치유는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와 같이 선교사 하지 않을래?” 아들은 “하겠다”고 답했다. 지금 그 아들은 케냐에서 선교사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 선교사는 이 결말을 ‘내 아이를 살려보자’는 목적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열매로 본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난 한 아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미리 배치된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지 않게 해달라”고 울며 기도하던 한 아버지. 그가 말하는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은, 멀리 있는 교리가 아니라 현장 한복판에서 사람과 시간과 길을 정교하게 엮어내는 살아 있는 인도였다. ※ 故 이원철 선교사의 이들 이인 선교사와 그의 장모는 무슬림에 납치되어 2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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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판결은 정의 이전에 연민과 존엄과 존중이 먼저입니다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 법정은 차갑다. 나무 망치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판결은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벌금을 내지 못해 절망하는 가난한 시민, 병든 가족을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 힘겨운 생계 속에서 실수를 저지른 이들에게 법정은 두려움의 공간이다. 그러나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한 법정에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의 법정이다. 그는 단순히 벌금과 형벌을 집행하는 판사가 아니었다. 법복을 입은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는 법정에 선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를 실행하기 위해 여기 있고, 정의에는 연민과 이해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 한 마디에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카프리오 판사는 법의 원칙을 지키되,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판결을 내리는 데 주력했다. 그에게 법은 인간을 돕는 수단이었고, 처벌보다 회복과 회생이 우선이었다. 가난, 질병, 가족 문제 같은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모든 사람을 존엄과 존중으로 대했다. 공정함과 이해, 그리고 연민—이 세 가지가 그의 판결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그의 법정은 단순한 재판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사람의 눈물과 사정을 들어주는 공간이었고, 절망한 이들이 다시 희망을 발견하는 치유의 장소였다. 사람들은 그를 '미국에서 가장 따뜻한 판사', '자비로운 정의의 상징'이라 불렀다. 그의 판결은 미국 사법제도에 '연민 사법'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수많은 시민들에게 "법은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따뜻할 수 있다", "정의는 인간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법의 본질적 목적은 무엇인가? 교통법규의 목적은 교통질서를 지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구하는 데 있다. 일반적인 법의 목적도 동일하다.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의 유익과 정의를 세워 사람들이 공평하고 안심하며 평화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법은 질서를 깨뜨리는 이에게 징벌을 행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의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카프리오 판사는 바로 이 본질을 잊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미국을 여행 온 데이지라는 젊은 여성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그의 법정에 섰다. 긴장한 얼굴로 판사를 바라보던 그녀에게 카프리오 판사는 부드럽게 물었다. "지금 미국을 방문 중이시죠?" 데이지가 대답했다. "네, 여기 정말 마음에 듭니다. 아름다운 곳이에요." 판사는 다시 물었다. "미국은 브라질과 어떻게 다른가요?" 데이지의 눈이 반짝였다. "티켓을 받으면 설명할 기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자비롭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카프리오 판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말했다. "데이지,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법정은 이해와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를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정의란 종종 우리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연민과 이해를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들에게 어떤 필요가 있을 때 말입니다. 아이들이 있다면, 일하며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 돈이 없다면 말이지요. 만약 그렇지 않고 그냥 면허를 정지시켜 버리면, 그들은 차를 몰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생계를 위해 불법으로 운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법정에 고요가 흘렀다. 판사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저는 특별한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을 존엄하게 대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존엄과 이해, 그리고 연민 속에서 대우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노력하는 일입니다. 오늘 제가 그렇게 했나요?" 데이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네, 그렇게 했습니다." 판사는 미소 지었다. "이것은 판단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나간 뒤 누군가 이렇게 물을 겁니다. '거기서 당신을 어떻게 대하던가요?'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게 되겠죠. '정말 친절했어요.' 이 말을 기억하세요. 공정함, 이해, 그리고 연민."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는 엄격한 정의와 따뜻한 인간애를 동시에 실천한 판사였다. 그의 판결은 단순히 법 집행을 넘어서,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정의가 무엇인가"를 온 세상에 보여주었다. 전 세계 기독교인, 종교인, 교육자, 사회복지 관계자들이 그의 태도를 모범 사례로 언급한다. 법정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감사가, 절망 대신 희망이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카프리오 판사가 꿈꾸는 정의의 모습이다. 법은 사람을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어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이 오늘도 그의 법정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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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만난 히브리어 구약성경 철학박사
셋 포스텔 교수 (현 이스라엘성서대학 학장) "너는 유대인인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느냐? 히브리어 성경을 정말 제대로 안다면, 원어로 읽을 수 있다면,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이 제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탐구는 학사에서 석사로, 석사에서 박사로, 그리고 두 번째 박사 과정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더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신약이 구약을 어떻게 읽는지 더 깊이 살피면 살필수록, 저는 오히려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다 저는 뉴저지에서 자라며 '우리는 유대인이다'라는 정체성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아버지가 정말 화가 나시면 가장 심하게 하는 말이 "Jesus Christ!"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집에서 금기어였죠.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점점 더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구약'이라고 불렀던 히브리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어머니는 예수에 대해 지적으로, 또 영적으로 점점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레이, 내가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했는데… 예수가 메시아야." 아버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난 유대인과 결혼했다고 믿었는데… 어떻게 우리 민족을 배신할 수 있어? 왜 예수를 믿는지 말해줘. 그런데 신약은 절대 보여주지 마. 우리는 알잖아.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싫어하고, 신약은 분명 반유대적일 거라고." 그래서 어머니는 이사야 53장을 읽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로레인, 신약은 듣고 싫지 않다고 했잖아."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머레이, 이건 우리의 성경이야. 신약이 아니야. 예수 오기 700년 전에 기록된 예언이야."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란과 두려움의 시간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 가정에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저를 히브리 학교에 꼭 보내려 하고 유대인 정체성을 강조하던 부모님이 갑자기 예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부모님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어떤 예배 모임에 참석했고, 예배 후 저는 엄마의 친구 린다와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세스, 너는 언제 예슈아(예수)를 네 메시아로 받아들일 거니?"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린다, 나 아직 젊잖아요. 인생 좀 살아보고, 즐기고 싶은데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스, 예수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어." "그래서요?"라고 제가 말하자 그녀는 계속 말했습니다. "만약 지금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 예수님이 오신다면, 나는 하늘로 들려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거야. 그런데 너는 운전자 없는 차에 남겨져 55마일로 달리다 사고 나서 죽고 지옥에 가게 될 거야." 그 순간 제 기도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지금은 오지 마세요. 제발 오지 마세요." 자기혐오와 영적 고통 저는 심각한 소아 천식을 앓았고 강력한 약을 복용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프레드니손이었는데, 이 약은 제 감정뿐 아니라 제 외모까지 바꿔놓았습니다. 얼굴이 붓고 빨갛게 변했습니다. 저는 이미 제 자신을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심하게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추하고 가치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죄를 이길 수 없는 나 자신, 약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더 추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도 나를 싫어하신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거듭났다고 믿었다가, 다시 불안해지고 또 거듭나야 한다고 느끼는" 반복 속에 살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나를 지옥에 보내려고 기다리고 계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말입니다. 사랑의 팔을 만나다 몇 년 후 어느 예배에서 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유독 제 쪽을 계속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제 마음속 깊이 감추고 싶었던 수치와 상처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 목사님은 사람들에게 일어서라고 했고, 저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는 순간, 저는 예슈아가 두 팔을 벌리고 저를 기다리고 계신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분의 팔은 분노의 팔이 아니라, 저를 끌어안으려는 팔이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상처는 너를 위한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죄인을 위해 왔다." 그 순간 저는 처음으로 "나는 추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속박이 풀렸고, 저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적 탐구의 시작 그 후 제가 예수를 믿는다고 가족과 주변에 알리자 많은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넌 유대인인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어?" "네가 랍비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냐?" "히브리어를 정말 알았다면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거야." 이 말들을 듣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히브리 성경을 정말 정확히 알아야겠다." 그래서 첫 번째 박사를 마친 후 이스라엘에서 히브리 성경으로 두 번째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제 모든 지적 무게를 '텍스트 자체' 위에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구약을 신약이 어떻게 읽고 있는지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마음과 머리의 확신 이것은 단지 마음의 확신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과 소망을 주셨다는 영적 경험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머리로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이해하고, 선지자를 이해하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곧 예슈아를 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가장 위대한 유대인이며, 우리의 구원자이자 세상의 구원자입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kKl-HEXqy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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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 캐나다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MDMotivator' 채널 이야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 (화면캡처) 한 청년이 있었다. 의사의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그를 짓눌렀다.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었다. 그 청년은 어느 날 교과서를 덮고 거리로 나섰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그 단순한 질문 하나가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그 자신도 몰랐다. 캐나다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의 이야기다. 한 청년의 결단, 의대 강의실에서 거리로 1993년에 태어난 재커리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의학이었다. 의대에 입학한 그는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성적은 올랐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것은 번아웃이었고, 우울감이었다. "의대에서 배우는 것은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의 마음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바쁘고 경쟁적이었죠.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재커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외로움과 우울감은 의대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직장인도, 노인도, 청소년도 — 저마다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의학 공부보다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Kindness is Cool — 친절은 멋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처음 카메라를 켰던 날, 두려움을 넘은 첫 걸음 재커리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초창기 에피소드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 날이었다. 남성은 처음에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재커리가 진심으로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자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말 못 하며 혼자 고통받고 있었다. 재커리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고, 가진 현금 전부를 꺼내 건넸다. "이것이 당신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간 뒤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창에는 "나도 저 남성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커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제가 남성을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분이 저를 구해 주신 거예요. 제게 '계속 하라'는 이유를 주셨으니까요." 재커리의 운영 채널의 목록(화면 캡처) 선한 영향력의 연쇄 , 나눔이 나눔을 낳다 MDMotivator 채널이 다른 감동 채널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커리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이어가도록 유도하는 '선순환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재커리가 한 홈리스 남성에게 음식과 현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남성은 받은 돈의 일부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다른 노숙인에게 나눠 주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성경이 말하는 과부의 헌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영상들은 단순한 조회수를 넘어 실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한 영상에서 소개된 암 투병 중인 싱글맘의 사연은 며칠 만에 수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고, 재정 위기에 처한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캠페인은 수천 명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다. 재커리의 채널은 이미 하나의 '선행 플랫폼'이 되어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MDMotivator의 또 다른 축은 정신 건강이다. 재커리는 자신이 의대 시절 겪었던 우울감, 번아웃, 고립감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콘텐츠의 심장으로 삼는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즘 가장 힘든 게 뭐예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대도시의 바쁜 거리에서 처음 만난 청년에게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현대 사회의 역설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은 깊은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재커리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채널은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용감한 행동입니다." 이 메시지는 영상마다 반복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사연이 나간 뒤에 구독자들이 보낸 모금의 기적, 이 후원금으로 출연자들의 삶을 개선한다(화면 캡처) 전 세계로 퍼진 친절의 물결, 수천만 명이 응답하다 오늘날 MDMotivator는 유튜브에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전체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한 명의 청년이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선 지 몇 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러나 재커리는 숫자보다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 채널 댓글에는 매일 수천 개의 메시지가 달린다. "이 영상이 저를 자살 충동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당신 덕분에요." 이런 고백들이 재커리를 다시 거리로 이끄는 힘이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영상 재생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문화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Kindness is Cool'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절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MDMotivator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낯설지 않은 울림을 준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약한 자를 돌보라'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한다(갈라디아서 6:2). MDMotivator가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이 성경적 원리의 세속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공원 벤치의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주머니를 털어 건네는 지폐, 눈물을 흘리는 타인의 손을 꼭 잡는 그 행동들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미셨던 그 방식과 닮아 있다. 종교를 앞세우지 않지만, 그 콘텐츠의 본질에는 깊은 인도주의적 사랑이 흐른다. 한국 교회는 오늘, MDMotivator에서 하나의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교회 밖으로 나가, 아무 조건 없이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설교단 위의 말씀이 골목 안의 일상으로 살아 움직일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한다. 재커리는 그것을 카메라로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당신이 낯선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소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친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 MDMotivator, Zachery Dereniowski 의학을 포기한 청년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게 되었다.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처방전 대신 진심 어린 대화를 택한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그는 오늘도 거리로 나간다. 우리 곁에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묻는 것 —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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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
-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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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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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눈을 뜬 아침, 사랑의 눈동자를 만나다
- 스스로를 닦던 고독한 구도자, 바나바를 연기하다 이탈리아의 연극배우 피에트로 사루비에게 삶은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한 고단한 수행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티베트 불교에 심취했던 그는 명상과 윤회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닦아내려 했던 고독한 구도자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인류사의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출연 제의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맡은 역은 민란을 주도하고 살인을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인 ‘바라바’였습니다. 사루비는 이 역할을 대단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저 직업적인 도전이라 생각하며 거친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연기가 멈춘 찰나, 시선이 마주치다 빌라도의 법정, 따가운 햇살 아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사루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관중의 야유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채찍질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 예수(짐 카비즐 분)가 서 있었습니다. 대본대로라면 사루비는 자신을 대신해 죽으러 가는 예수를 비웃으며 광기 어린 표정으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눈과 마주친 순간, 사루비의 연기는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눈은 나를 꿰뚫고 있었고, 동시에 나를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도, 죽음의 공포도 없었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깊은 침묵과 가늠할 수 없는 사랑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사루비는 그 찰나의 시선 속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압도적인 진실과 마주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 바라바였습니다” 그 눈빛은 사루비의 영혼에 소리 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침묵하는 이유는 네가 소리치게 하기 위함이고, 내가 매를 맞는 이유는 네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함이며, 내가 죽는 이유는 네가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2,000년 전의 바라바는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예수를 대신해 풀려나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이 주어지는 ‘선물’임을 그는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시선이 바꾼 새로운 세계: 바라바 이후의 삶 1. 《바라바에서 예수에게로》: 눈빛으로 기록한 회심 사루비는 이후 자신의 회심 과정을 담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구원이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바라바는 우리 인류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2.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광대’가 되다 가장 아름다운 변화는 그가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광대(Clown)로 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험악한 살인자 ‘바라바’의 얼굴을 했던 그가, 이제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합니다. 자신이 받은 자비로운 시선을 타인에게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공이 아닌 ‘사랑’을 쫓는 삶 성공과 해탈에만 집중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그는 이제 헌신적인 남편과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 눈빛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듯, 나도 내 곁의 사람들을 가장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당신은 그 눈과 마주한 적이 있습니까? 사루비는 이제 의무감이 아니라 ‘그분’이 보고 싶어 성당에 갑니다. 그 눈빛이 여전히 자신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피에트로 사루비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 역시 저마다의 죄를 지은 채, 이유 없는 용서를 받고 풀려난 바라바들이 아니냐고.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하며 미소 짓던 그 눈과 마주한 적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살인자의 눈을 가졌던 배우는, 이제 그 눈에 용서와 평안을 담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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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눈을 뜬 아침, 사랑의 눈동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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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말씀, 창조주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다
- 유듀브 동영상 갈무리 1.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비웃음 속에 찾아온 낯선 초대 저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뼛속까지 불교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제게 교회란 그저 ‘천국과 지옥’이라는 보이지 않는 담보로 사람들을 현혹해 장사를 하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저 또한 평생을 교회를 욕하며 지냈습니다. 서른다섯 되던 해, 서울에서 사업에 매진하던 제게 뜻밖의 제안이 찾아왔습니다. 평소 신앙이 깊어 보이지 않던 한 지인이 ‘크리스천 CEO 스쿨’을 추천한 것이지요. "저 형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습니다. 이전에도 친구를 따라 새벽기도에 가본 적은 있었으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기겁하여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기억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CEO 스쿨의 ‘섬김의 리더십’ 강의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비록 속으로는 "나중에 저들도 뒤에서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도하겠지"라고 비웃었지만, 그들의 삶에 배어있는 진정성은 제 차가운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녹여갔습니다. 2. 창조의 확증: 원숭이의 후예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제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여름 방학 중 떠난 ‘미국 창조과학 탐사’ 비전트립이었습니다. 그저 휴가나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신청한 그곳에서 지질학자 출신의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본래 철저한 진화론자였던 그분이 어떻게 성경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강의를 듣는 동안, 제 평생을 지탱해온 진화론의 허구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사실이다. 이것은 팩트다.” 그 외침이 제 심장에 박혔습니다. 제가 우연히 생겨난 원숭이의 후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 지어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그분이 바로 제가 그토록 욕했던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지자 세상 모든 만물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옆에 앉은 장로님부터 어린아이 한 명까지 모두가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였고, 그들을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이 제 안에서 솟구쳤습니다. 3. 주인이 바뀌는 회개: 내 삶의 보좌를 내어드리다 예수님을 창조주로 영접하고 나니 비로소 제가 지은 ‘진짜 죄’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저는 제가 꽤 의롭고 도덕적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열심은 결국 나를 주인 삼고 내 영광을 위해 살아온 교만일 뿐이었습니다. 진짜 죄는 살인이나 강도가 아니라, 내 생명의 주인인 창조주를 거부하고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고집했던 바로 그 마음이었습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제 생명보다 귀한 자식의 생명인데, 하늘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사랑의 확증은 없었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나니 과거에 함부로 대했던 인연들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관계가 끊겼던 친구들과 퇴사한 직원들에게까지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당신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형상인지 몰랐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며 깨어진 관계들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4. 팩트를 외치는 사명: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다 이제 제 삶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팩트’를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진화론과 공산주의라는 거짓 사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가리고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귀의 전략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치 현장이나 대형 교회 앞에서도 이 복음을 타협 없이 전합니다. 때로는 과격하다는 소리를 듣고 불편해하는 시선도 마주하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보다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 더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으나, 영원한 내일인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는 반드시 정해야 합니다. 믿음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전적인 선물입니다. 저처럼 평생 교회를 욕하던 완악한 사람도 창조주를 만나 새 생명을 얻었듯,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삶의 주인을 바꾸는 참된 회개를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간증 출처 : 간증. 풀버전.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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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말씀, 창조주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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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예비하신 뒤, 길을 여신다”
- 1997년, 아프리카 중서부 케냐에 들어가 27년 동안 한결같이 케냐를 사랑하고 온몸으로 사랑을 전하다가 2023년 7월 5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토록 사랑하던 그곳에서 하나님께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선교의 삶 가운데 일어났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간증을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TWNt6PiiJg0)에서 발췌하여 싣습니다. -편집자 주- ▲ “제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그다음에 저를 그 길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케냐의 오지,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 이슬람권 지역에서 사역해 온 이원철 선교사는 자신의 선교 여정에 대해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 고백은 추상적인 신학적 표현이 아니라, 한 아이의 생명이 꺼져가던 시간 속에서 ‘기가 막히게’ 준비되어 있던 사람들, 문, 돈, 그리고 결정을 통해 확인된 현실의 기록이다. 이 간증은 ‘믿으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 순간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는가’, ‘왜 그 문이 그때 열렸는가’, ‘왜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를 촘촘히 되짚으며, 한 선교사가 경험한 섭리의 디테일을 따라가게 만든다. 1. “예배 때마다 밀려오던 사랑”이 방향을 바꿨다 그가 처음 선교사의 길을 결심한 계기는 거창한 ‘소명 체험’의 장면이 아니라, 반복되는 예배의 시간이었다. 그는 “매주일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너를 구했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밀려왔다”고 말한다. 그 사랑이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 “내가 나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결론은 단순했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라는 확신. 그 확신은 그를 케냐의 오지로 데려갔다. 2. “현상금이 걸린 사역지”… 그러나 더 큰 전쟁은 ‘집 안’에서 시작됐다 사역지는 험했다. 그는 “무슬림들이 나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죽이면 얼마”라는 말을 담담히 꺼낸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담대한 믿음을 주셔서 두려움 없이 사역한다”고 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가장 깊은 흔들림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가족의 위기’에서 왔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보딩스쿨)에 아이를 맡기고 사역하던 어느 때, 큰아이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못 자고, 화장실을 자주 가고, 먹지 못하고, 물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마셨다. 체중은 급속도로 줄어들어 마침내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로 내려갔다. 병원은 “이 아이가 이렇게 말라가면 죽는다”고 했다. 케냐에 있던 의료진, 미국에서 온 의료선교사 의사들까지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 방법도, 저 방법도” 다 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3. “회교 병원에 가라”는 권유 앞에서—그는 왜 ‘거절’했나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케냐 나이로비에 위장 전문의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약까지 잡혔다. 병원 이름도 있었다. 아가칸(Aga Khan) 병원.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결박되었다. 그는 그 병원을 “회교 병원”이라고 표현하며, 그 문턱을 넘는 순간을 상상했다. 병원 서류에 적힐 “부모 직업: 기독교 선교사”라는 한 줄.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올 것 같은 조롱—“네가 믿는 하나님으로는 아이를 못 살려서 여기 왔느냐.” 의료적 판단만 놓고 보면, ‘가야 한다’는 결론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을 수 있다”는 영적 문제로 받아들였다. 간호사 선교사가 격하게 반응할 만큼 그는 단호했다. “나는 이 아이를 회교 병원에 데려갈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그의 신앙은 ‘기적을 요구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신앙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그 결정이야말로 이후의 모든 길을 여는 ‘첫 단추’였다고 회고한다. 4. “아내의 울음”… 그리고 한 줄기 균열 하지만 믿음의 고백은 흔들리지 않는 강철이 아니었다. 현실은 계속해서 ‘급박’으로 밀어붙였다. 어느 날, 사역 일정 중이던 그에게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 아내는 잘 울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내는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전해진 말은 단순했다. “아이(큰아들)가 화장실 갔다가 오면서 쓰러졌어요.” 그는 차를 세웠고, 마음 한가운데로 “이 아이가 죽는구나”라는 직감이 찔러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덮쳤다. “죽을 때 아빠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는 남은 거리(약 한 시간 반)를 달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5. “응답은 받았는데… 왜 현실은 안 변하는가” 기도팀에서 연락이 왔다.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이 이 일을 고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기뻤다. 아이에게 달려가 “하나님이 너를 고치셨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도 기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하루 이틀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토하고, 힘들어하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엔 낙심이 쌓였다. 그때 그가 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는 차를 닦고 있었다. 그 평범한 순간에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지만, 하나님은 이미 고치셨다. 그러나 그 고치신 ‘시점’이 우리에게 도달할 때, 우리는 그 치유를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그는 이 깨달음을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믿음의 시간표’로 받아들였다.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인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를 고치셨다. 그 시점까지 믿음을 잃지 말자.” 6. LA로 가라는 낯선 초대—“갈 형편이 아닌데, 길이 열렸다” 그때 또 하나의 의외의 통로가 등장한다. LA로 오라는 메시지. 그것도 넉넉해 보이지 않는 한 전도사에게서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이는 누워 있어야 했고, 선교지 사역은 진행 중이었다. 무엇보다 항공권 값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는 기도 중 “네가 LA 가서 할 일이 있다”는 마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 마치 그 ‘마음’에 반응하듯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이미 고인이 된 한 목회자가 그에게 3천 불을 건네며 말했다. “병원 좀 데려가 봐.” 놀랍게도 그 돈은 “두 사람 비행기 값”과 거의 맞아떨어졌다. 그는 그 돈을 사역비로 쓰고 싶었지만, 마음에 주어진 ‘LA로 가야 한다’는 부르심을 따라 항공권으로 바꿨다. 여기서부터 ‘사람의 예비’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말을, 필요한 액수로 가져온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보내게 하신 것”이라고 표현한다. 7. 비자도, 비행기도—“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통과되었다” LA행의 또 다른 벽은 비자였다. 아이는 대사관 인터뷰를 받을 상태가 아니었다. “의자에 앉으면 머리가 무거워서” 버티지 못했다. “거부당할 게 당연”해 보였다. 그는 마지막 방법을 택했다. 아이를 대사관 밖에 두고, 아이의 여권만 들고 들어갔다. “아이 비자를 주십시오.” 영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이 얼굴도 안 보고 비자를 줄 수 없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흘렀다. 영사는 결국 비자를 찍어주었다. 인터뷰도 없이. 아이는 비자를 받았다. 비행기에서도 길이 열렸다. 걷지 못하는 아이는 휠체어로 탑승했고, 승무원은 아이를 눕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심지어 그들이 안내한 자리는 “맨 앞자리(1등석)”였다. ‘상식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따라붙는 장면들이 연속된다. 그는 그 연속성 속에서 ‘우연’이 아니라 ‘인도’의 패턴을 읽어낸다. 8. “응급실에 안 가려 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왔다 미국 도착 후에도 그는 쉽게 응급실로 향하지 못했다. “선교사”라는 정체가 또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하나님이 비난받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때, 링거를 놓아주려 찾아온 간호사와 단기팀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동행했다. 중국인 의사. 그것도 의대 교수. 그 의사는 아이를 보자마자 단정했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의료 조언이 아니었다. 선교사의 마음을 굳게 잠근 ‘종교적 체면’의 문을 강제로 두드리는 선포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망설였지만,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살아서 미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는 아이에게 직접 물었다. “병원에 가고 싶니?” 아이는 답했다. “아빠, 왜 이렇게 오래 토했는지 원인이라도 알고 싶어요.” 바로 이 ‘아이의 입’이, 아버지의 완강함을 무너뜨리는 열쇠가 되었다. 그가 문을 열자, 주변 사람들은 기뻐했다. 어떤 이는 “당신 마음이 바뀌도록 우리가 기도했다”고 나중에 말했다고 한다. 9. 응급실의 기적: “절차 없이 들어갔고, 곧바로 CT를 찍었다” 응급실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쟁터 같았다. 그런데 그 중국인 의사가 미리 전화한 덕분에 “아무 수속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인턴이 아이를 보더니 말했다. “뇌를 찍어야 합니다.” 곧바로 CT. 그리고 아이는 ICU(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때 선교사는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해 복도 의자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새벽, 의료진이 환자 요약 파일을 복도에 두고 간 일이 있었다. 그는 무심코 그것을 보게 된다. 거기에 적혀 있던 한 문장이 그를 멈춰 세웠다. “부모에게 알리지 말 것.” 그리고 이어진 내용. “뇌에 종양 2개(1cm, 2cm).” 이 장면이 이 간증의 독특한 역설을 만든다. 보통 ‘종양’은 절망의 단어다. 그런데 그는 “너무 기뻤다”고 말한다. 이유는 분명했다. 케냐에서도, 미국에서도 찾지 못했던 원인을 하나님이 드디어 “알게 하셨다.” “고칠 수 있는 병원에서 원인을 알게 하셨다.” 그는 아이에게 달려가 말했다. “드디어 원인을 알았다. 하나님이 너를 고치시려고 여기로 인도하셨다.” 10. “그때, 그 교수”… 그리고 또 하나의 예비 중환자실에서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키가 크고 머리가 희끗한 교수. 차트를 보더니 묻는다. “너 케냐에서 왔니? 우리 아버지가 케냐 의료선교사였다.” 그리고 그는 거의 ‘개인 담당’처럼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놀랄 정도의 관심. “돈도 없어 보이는 선교사 가족”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말이 뒤이어 나왔다. “네 아이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병원비를 무료로 하겠습니다.” 선교사는 당황했다. 아이와 “평생 갚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것이 무너졌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하나의 확신이 찾아왔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고치시려고, 네가 돈이 없으니 하나님이 책임지시려고, 여기로 부르셨다.” 이쯤 되면 ‘사람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말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가 된다. 케냐를 아는 교수, 케냐 선교사의 아들을 돕는 의료진, 비용을 감당하는 시스템, 그리고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하는 안내자들. 이들은 마치 “누군가가 미리 배치해 둔 것”처럼 움직인다. 11. “머리를 열지 않아도 되는 병원”으로—또 한 번 문이 열렸다 아이의 종양을 제거하려면 머리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의료진은 “머리를 열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더 좋은 병원”이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곳이 사립병원이라는 점. 비용이 또 다른 벽이었다. 하지만 그 병원도 아이를 받아주기로 했다. 의료진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기도 많이 했지? 기도 많이 해서 하나님이 길을 여신 거야.” 아이를 태운 앰뷸런스가 또 한 번 문을 통과했다. 새 병원에 도착하자 젊은 의사는 말했다. “이 아이는 케냐에 있었거나, 한국으로 갔으면 죽었을 겁니다.” 그는 그것을 “럭키”라고 표현했지만, 선교사는 그 ‘럭키’라는 말을 ‘인도’로 번역했다. 12. “우리는 둘 다 ‘사역자의 자녀’야”—마지막 열쇠 같은 한 마디 새 병원에서 또 한 사람이 들어온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의사. 차트를 쭉 보더니 묻는다. “너의 아버지가 케냐 선교사냐?”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목사다. 너와 나는 둘 다 미니스터의 자녀다.” 이 짧은 문장은, 선교사의 눈에 ‘우연히 만난 의료진’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으로 그를 확정시켰다. 그 의사는 아이를 끝까지 치료했고, 아이는 회복했다.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마침내 케냐로 돌아와 “선교사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 13. “그때 병원에 갔으면 오히려 죽었을 것”—하나님이 ‘눈을 가리신’ 시간 그는 한 가지 섬뜩한 결론을 덧붙인다. “제가 (처음부터) 그 병원에 데려갔으면, 얘는 죽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초기에 의료진이 찾은 건 위장 문제가 아니었다. 뇌 문제였다. 케냐에서 섣불리 수술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손을 댔다면 더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이 ‘수술할 수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셨다. 원인을 못 찾게 하셨다. 그리고 ‘고칠 수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원인을 보게 하셨다. 이 대목에서 그의 간증은 단순한 기적담을 넘어선다. 하나님이 “치유”만 행하신 것이 아니라, 치유가 가능한 “시간과 장소”를 먼저 준비하셨다는 서술이기 때문이다. 14. 선교 재정이 끊겼을 때도—“하나님이 돈은 안 주시고, 말씀을 주셨다” 아이의 치유가 ‘생명의 극적 인도’였다면, 재정의 사건은 ‘사역의 지속을 위한 인도’였다. 그는 한 교단 선교를 통해 파송을 받았고, 초기에는 교회가 생활비와 사역비를 약속했다. 그는 케냐에서 기독교 학교를 세웠다. 그 지역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교가 되었고, 회교도든 기독교인이든 4년 동안 성경을 배우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회 내부 분쟁이 터졌다. 헌금이 ‘재판 비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헌금을 멈췄고, 결국 선교 후원이 끊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도저히 못 보낸다”는 통보가 왔다. 그는 현실적으로 ‘신입생을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건물을 더 지을 수 없으니, 확장을 멈추자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주신 것은 돈이 아니라 말씀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는 “돈은 안 주시고 말씀만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씀이 그를 움직였다. 그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을 택했다. 직접 땅을 파고, 가능한 만큼 기초를 놓았다. 그리고 나이로비로 돌아왔을 때, 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와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돈. 그는 그 돈으로 건물을 올렸다. 또 필요가 생겼을 때 또 돈이 들어와 있었다. 결국 후원이 끊어진 해에 건물 두 개를 세우려 했던 계획은 더 커져, “보너스로 교회까지” 세웠다. 그는 결론을 이렇게 내린다. “중요한 건 ‘재정이 있느냐’가 아니라, ‘이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가’다. 그분의 뜻이면 재정은 따라온다.” 15. “하나님은 ‘길’을 예비하신다”—그의 간증이 남기는 한 가지 질문 이원철 선교사의 간증은 ‘나는 믿었더니 기적이 왔다’는 단순한 도식으로 닫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묻는다. 왜 그때 3천 불이 ‘항공권 값만큼’ 주어졌는가? 왜 아이는 인터뷰도 없이 비자를 받았는가? 왜 응급실에서 ‘절차 없이’ 들어갈 수 있었는가? 왜 케냐를 아는 교수, 사역자의 자녀임을 공유하는 의사가 연달아 나타났는가? 왜 ‘원인을 찾지 못하게’ 하셨다가, ‘고칠 수 있는 곳’에서 보게 하셨는가? 그는 이 모든 질문을 하나로 묶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나를 준비시키시고, 길을 준비시키신다.” 그리고 그 준비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는 방식으로 그를 붙들었다. 맺으며: 케냐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 아들의 치유는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와 같이 선교사 하지 않을래?” 아들은 “하겠다”고 답했다. 지금 그 아들은 케냐에서 선교사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 선교사는 이 결말을 ‘내 아이를 살려보자’는 목적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열매로 본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난 한 아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미리 배치된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지 않게 해달라”고 울며 기도하던 한 아버지. 그가 말하는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은, 멀리 있는 교리가 아니라 현장 한복판에서 사람과 시간과 길을 정교하게 엮어내는 살아 있는 인도였다. ※ 故 이원철 선교사의 이들 이인 선교사와 그의 장모는 무슬림에 납치되어 2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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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예비하신 뒤, 길을 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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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판결은 정의 이전에 연민과 존엄과 존중이 먼저입니다
-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 법정은 차갑다. 나무 망치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판결은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벌금을 내지 못해 절망하는 가난한 시민, 병든 가족을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 힘겨운 생계 속에서 실수를 저지른 이들에게 법정은 두려움의 공간이다. 그러나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한 법정에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의 법정이다. 그는 단순히 벌금과 형벌을 집행하는 판사가 아니었다. 법복을 입은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는 법정에 선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를 실행하기 위해 여기 있고, 정의에는 연민과 이해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 한 마디에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카프리오 판사는 법의 원칙을 지키되,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판결을 내리는 데 주력했다. 그에게 법은 인간을 돕는 수단이었고, 처벌보다 회복과 회생이 우선이었다. 가난, 질병, 가족 문제 같은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모든 사람을 존엄과 존중으로 대했다. 공정함과 이해, 그리고 연민—이 세 가지가 그의 판결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그의 법정은 단순한 재판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사람의 눈물과 사정을 들어주는 공간이었고, 절망한 이들이 다시 희망을 발견하는 치유의 장소였다. 사람들은 그를 '미국에서 가장 따뜻한 판사', '자비로운 정의의 상징'이라 불렀다. 그의 판결은 미국 사법제도에 '연민 사법'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수많은 시민들에게 "법은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따뜻할 수 있다", "정의는 인간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법의 본질적 목적은 무엇인가? 교통법규의 목적은 교통질서를 지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구하는 데 있다. 일반적인 법의 목적도 동일하다.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의 유익과 정의를 세워 사람들이 공평하고 안심하며 평화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법은 질서를 깨뜨리는 이에게 징벌을 행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의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카프리오 판사는 바로 이 본질을 잊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미국을 여행 온 데이지라는 젊은 여성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그의 법정에 섰다. 긴장한 얼굴로 판사를 바라보던 그녀에게 카프리오 판사는 부드럽게 물었다. "지금 미국을 방문 중이시죠?" 데이지가 대답했다. "네, 여기 정말 마음에 듭니다. 아름다운 곳이에요." 판사는 다시 물었다. "미국은 브라질과 어떻게 다른가요?" 데이지의 눈이 반짝였다. "티켓을 받으면 설명할 기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자비롭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카프리오 판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말했다. "데이지,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법정은 이해와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를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정의란 종종 우리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연민과 이해를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들에게 어떤 필요가 있을 때 말입니다. 아이들이 있다면, 일하며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 돈이 없다면 말이지요. 만약 그렇지 않고 그냥 면허를 정지시켜 버리면, 그들은 차를 몰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생계를 위해 불법으로 운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법정에 고요가 흘렀다. 판사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저는 특별한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을 존엄하게 대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존엄과 이해, 그리고 연민 속에서 대우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노력하는 일입니다. 오늘 제가 그렇게 했나요?" 데이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네, 그렇게 했습니다." 판사는 미소 지었다. "이것은 판단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나간 뒤 누군가 이렇게 물을 겁니다. '거기서 당신을 어떻게 대하던가요?'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게 되겠죠. '정말 친절했어요.' 이 말을 기억하세요. 공정함, 이해, 그리고 연민."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는 엄격한 정의와 따뜻한 인간애를 동시에 실천한 판사였다. 그의 판결은 단순히 법 집행을 넘어서,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정의가 무엇인가"를 온 세상에 보여주었다. 전 세계 기독교인, 종교인, 교육자, 사회복지 관계자들이 그의 태도를 모범 사례로 언급한다. 법정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감사가, 절망 대신 희망이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카프리오 판사가 꿈꾸는 정의의 모습이다. 법은 사람을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어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이 오늘도 그의 법정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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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판결은 정의 이전에 연민과 존엄과 존중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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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만난 히브리어 구약성경 철학박사
- 셋 포스텔 교수 (현 이스라엘성서대학 학장) "너는 유대인인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느냐? 히브리어 성경을 정말 제대로 안다면, 원어로 읽을 수 있다면,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이 제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탐구는 학사에서 석사로, 석사에서 박사로, 그리고 두 번째 박사 과정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더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신약이 구약을 어떻게 읽는지 더 깊이 살피면 살필수록, 저는 오히려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다 저는 뉴저지에서 자라며 '우리는 유대인이다'라는 정체성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아버지가 정말 화가 나시면 가장 심하게 하는 말이 "Jesus Christ!"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집에서 금기어였죠.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점점 더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구약'이라고 불렀던 히브리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어머니는 예수에 대해 지적으로, 또 영적으로 점점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레이, 내가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했는데… 예수가 메시아야." 아버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난 유대인과 결혼했다고 믿었는데… 어떻게 우리 민족을 배신할 수 있어? 왜 예수를 믿는지 말해줘. 그런데 신약은 절대 보여주지 마. 우리는 알잖아.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싫어하고, 신약은 분명 반유대적일 거라고." 그래서 어머니는 이사야 53장을 읽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로레인, 신약은 듣고 싫지 않다고 했잖아."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머레이, 이건 우리의 성경이야. 신약이 아니야. 예수 오기 700년 전에 기록된 예언이야."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란과 두려움의 시간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 가정에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저를 히브리 학교에 꼭 보내려 하고 유대인 정체성을 강조하던 부모님이 갑자기 예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부모님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어떤 예배 모임에 참석했고, 예배 후 저는 엄마의 친구 린다와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세스, 너는 언제 예슈아(예수)를 네 메시아로 받아들일 거니?"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린다, 나 아직 젊잖아요. 인생 좀 살아보고, 즐기고 싶은데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스, 예수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어." "그래서요?"라고 제가 말하자 그녀는 계속 말했습니다. "만약 지금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 예수님이 오신다면, 나는 하늘로 들려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거야. 그런데 너는 운전자 없는 차에 남겨져 55마일로 달리다 사고 나서 죽고 지옥에 가게 될 거야." 그 순간 제 기도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지금은 오지 마세요. 제발 오지 마세요." 자기혐오와 영적 고통 저는 심각한 소아 천식을 앓았고 강력한 약을 복용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프레드니손이었는데, 이 약은 제 감정뿐 아니라 제 외모까지 바꿔놓았습니다. 얼굴이 붓고 빨갛게 변했습니다. 저는 이미 제 자신을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심하게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추하고 가치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죄를 이길 수 없는 나 자신, 약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더 추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도 나를 싫어하신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거듭났다고 믿었다가, 다시 불안해지고 또 거듭나야 한다고 느끼는" 반복 속에 살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나를 지옥에 보내려고 기다리고 계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말입니다. 사랑의 팔을 만나다 몇 년 후 어느 예배에서 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유독 제 쪽을 계속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제 마음속 깊이 감추고 싶었던 수치와 상처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 목사님은 사람들에게 일어서라고 했고, 저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는 순간, 저는 예슈아가 두 팔을 벌리고 저를 기다리고 계신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분의 팔은 분노의 팔이 아니라, 저를 끌어안으려는 팔이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상처는 너를 위한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죄인을 위해 왔다." 그 순간 저는 처음으로 "나는 추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속박이 풀렸고, 저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적 탐구의 시작 그 후 제가 예수를 믿는다고 가족과 주변에 알리자 많은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넌 유대인인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어?" "네가 랍비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냐?" "히브리어를 정말 알았다면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거야." 이 말들을 듣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히브리 성경을 정말 정확히 알아야겠다." 그래서 첫 번째 박사를 마친 후 이스라엘에서 히브리 성경으로 두 번째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제 모든 지적 무게를 '텍스트 자체' 위에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구약을 신약이 어떻게 읽고 있는지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마음과 머리의 확신 이것은 단지 마음의 확신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과 소망을 주셨다는 영적 경험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머리로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이해하고, 선지자를 이해하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곧 예슈아를 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가장 위대한 유대인이며, 우리의 구원자이자 세상의 구원자입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kKl-HEXqy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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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 캐나다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MDMotivator' 채널 이야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 (화면캡처) 한 청년이 있었다. 의사의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그를 짓눌렀다.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었다. 그 청년은 어느 날 교과서를 덮고 거리로 나섰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그 단순한 질문 하나가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그 자신도 몰랐다. 캐나다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의 이야기다. 한 청년의 결단, 의대 강의실에서 거리로 1993년에 태어난 재커리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의학이었다. 의대에 입학한 그는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성적은 올랐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것은 번아웃이었고, 우울감이었다. "의대에서 배우는 것은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의 마음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바쁘고 경쟁적이었죠.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재커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외로움과 우울감은 의대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직장인도, 노인도, 청소년도 — 저마다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의학 공부보다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Kindness is Cool — 친절은 멋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처음 카메라를 켰던 날, 두려움을 넘은 첫 걸음 재커리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초창기 에피소드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 날이었다. 남성은 처음에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재커리가 진심으로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자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말 못 하며 혼자 고통받고 있었다. 재커리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고, 가진 현금 전부를 꺼내 건넸다. "이것이 당신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간 뒤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창에는 "나도 저 남성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커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제가 남성을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분이 저를 구해 주신 거예요. 제게 '계속 하라'는 이유를 주셨으니까요." 재커리의 운영 채널의 목록(화면 캡처) 선한 영향력의 연쇄 , 나눔이 나눔을 낳다 MDMotivator 채널이 다른 감동 채널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커리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이어가도록 유도하는 '선순환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재커리가 한 홈리스 남성에게 음식과 현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남성은 받은 돈의 일부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다른 노숙인에게 나눠 주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성경이 말하는 과부의 헌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영상들은 단순한 조회수를 넘어 실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한 영상에서 소개된 암 투병 중인 싱글맘의 사연은 며칠 만에 수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고, 재정 위기에 처한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캠페인은 수천 명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다. 재커리의 채널은 이미 하나의 '선행 플랫폼'이 되어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MDMotivator의 또 다른 축은 정신 건강이다. 재커리는 자신이 의대 시절 겪었던 우울감, 번아웃, 고립감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콘텐츠의 심장으로 삼는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즘 가장 힘든 게 뭐예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대도시의 바쁜 거리에서 처음 만난 청년에게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현대 사회의 역설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은 깊은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재커리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채널은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용감한 행동입니다." 이 메시지는 영상마다 반복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사연이 나간 뒤에 구독자들이 보낸 모금의 기적, 이 후원금으로 출연자들의 삶을 개선한다(화면 캡처) 전 세계로 퍼진 친절의 물결, 수천만 명이 응답하다 오늘날 MDMotivator는 유튜브에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전체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한 명의 청년이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선 지 몇 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러나 재커리는 숫자보다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 채널 댓글에는 매일 수천 개의 메시지가 달린다. "이 영상이 저를 자살 충동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당신 덕분에요." 이런 고백들이 재커리를 다시 거리로 이끄는 힘이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영상 재생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문화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Kindness is Cool'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절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MDMotivator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낯설지 않은 울림을 준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약한 자를 돌보라'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한다(갈라디아서 6:2). MDMotivator가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이 성경적 원리의 세속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공원 벤치의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주머니를 털어 건네는 지폐, 눈물을 흘리는 타인의 손을 꼭 잡는 그 행동들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미셨던 그 방식과 닮아 있다. 종교를 앞세우지 않지만, 그 콘텐츠의 본질에는 깊은 인도주의적 사랑이 흐른다. 한국 교회는 오늘, MDMotivator에서 하나의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교회 밖으로 나가, 아무 조건 없이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설교단 위의 말씀이 골목 안의 일상으로 살아 움직일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한다. 재커리는 그것을 카메라로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당신이 낯선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소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친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 MDMotivator, Zachery Dereniowski 의학을 포기한 청년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게 되었다.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처방전 대신 진심 어린 대화를 택한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그는 오늘도 거리로 나간다. 우리 곁에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묻는 것 —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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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
-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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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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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눈을 뜬 아침, 사랑의 눈동자를 만나다
- 스스로를 닦던 고독한 구도자, 바나바를 연기하다 이탈리아의 연극배우 피에트로 사루비에게 삶은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한 고단한 수행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티베트 불교에 심취했던 그는 명상과 윤회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닦아내려 했던 고독한 구도자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인류사의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출연 제의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맡은 역은 민란을 주도하고 살인을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인 ‘바라바’였습니다. 사루비는 이 역할을 대단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저 직업적인 도전이라 생각하며 거친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연기가 멈춘 찰나, 시선이 마주치다 빌라도의 법정, 따가운 햇살 아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사루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관중의 야유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채찍질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 예수(짐 카비즐 분)가 서 있었습니다. 대본대로라면 사루비는 자신을 대신해 죽으러 가는 예수를 비웃으며 광기 어린 표정으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눈과 마주친 순간, 사루비의 연기는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눈은 나를 꿰뚫고 있었고, 동시에 나를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도, 죽음의 공포도 없었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깊은 침묵과 가늠할 수 없는 사랑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사루비는 그 찰나의 시선 속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압도적인 진실과 마주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 바라바였습니다” 그 눈빛은 사루비의 영혼에 소리 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침묵하는 이유는 네가 소리치게 하기 위함이고, 내가 매를 맞는 이유는 네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함이며, 내가 죽는 이유는 네가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2,000년 전의 바라바는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예수를 대신해 풀려나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이 주어지는 ‘선물’임을 그는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시선이 바꾼 새로운 세계: 바라바 이후의 삶 1. 《바라바에서 예수에게로》: 눈빛으로 기록한 회심 사루비는 이후 자신의 회심 과정을 담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구원이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바라바는 우리 인류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2.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광대’가 되다 가장 아름다운 변화는 그가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광대(Clown)로 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험악한 살인자 ‘바라바’의 얼굴을 했던 그가, 이제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합니다. 자신이 받은 자비로운 시선을 타인에게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공이 아닌 ‘사랑’을 쫓는 삶 성공과 해탈에만 집중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그는 이제 헌신적인 남편과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 눈빛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듯, 나도 내 곁의 사람들을 가장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당신은 그 눈과 마주한 적이 있습니까? 사루비는 이제 의무감이 아니라 ‘그분’이 보고 싶어 성당에 갑니다. 그 눈빛이 여전히 자신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피에트로 사루비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 역시 저마다의 죄를 지은 채, 이유 없는 용서를 받고 풀려난 바라바들이 아니냐고.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하며 미소 짓던 그 눈과 마주한 적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살인자의 눈을 가졌던 배우는, 이제 그 눈에 용서와 평안을 담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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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눈을 뜬 아침, 사랑의 눈동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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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말씀, 창조주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다
- 유듀브 동영상 갈무리 1.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비웃음 속에 찾아온 낯선 초대 저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뼛속까지 불교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제게 교회란 그저 ‘천국과 지옥’이라는 보이지 않는 담보로 사람들을 현혹해 장사를 하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저 또한 평생을 교회를 욕하며 지냈습니다. 서른다섯 되던 해, 서울에서 사업에 매진하던 제게 뜻밖의 제안이 찾아왔습니다. 평소 신앙이 깊어 보이지 않던 한 지인이 ‘크리스천 CEO 스쿨’을 추천한 것이지요. "저 형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습니다. 이전에도 친구를 따라 새벽기도에 가본 적은 있었으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기겁하여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기억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CEO 스쿨의 ‘섬김의 리더십’ 강의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비록 속으로는 "나중에 저들도 뒤에서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도하겠지"라고 비웃었지만, 그들의 삶에 배어있는 진정성은 제 차가운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녹여갔습니다. 2. 창조의 확증: 원숭이의 후예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제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여름 방학 중 떠난 ‘미국 창조과학 탐사’ 비전트립이었습니다. 그저 휴가나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신청한 그곳에서 지질학자 출신의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본래 철저한 진화론자였던 그분이 어떻게 성경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강의를 듣는 동안, 제 평생을 지탱해온 진화론의 허구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사실이다. 이것은 팩트다.” 그 외침이 제 심장에 박혔습니다. 제가 우연히 생겨난 원숭이의 후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 지어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그분이 바로 제가 그토록 욕했던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지자 세상 모든 만물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옆에 앉은 장로님부터 어린아이 한 명까지 모두가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였고, 그들을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이 제 안에서 솟구쳤습니다. 3. 주인이 바뀌는 회개: 내 삶의 보좌를 내어드리다 예수님을 창조주로 영접하고 나니 비로소 제가 지은 ‘진짜 죄’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저는 제가 꽤 의롭고 도덕적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열심은 결국 나를 주인 삼고 내 영광을 위해 살아온 교만일 뿐이었습니다. 진짜 죄는 살인이나 강도가 아니라, 내 생명의 주인인 창조주를 거부하고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고집했던 바로 그 마음이었습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제 생명보다 귀한 자식의 생명인데, 하늘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사랑의 확증은 없었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나니 과거에 함부로 대했던 인연들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관계가 끊겼던 친구들과 퇴사한 직원들에게까지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당신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형상인지 몰랐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며 깨어진 관계들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4. 팩트를 외치는 사명: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다 이제 제 삶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팩트’를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진화론과 공산주의라는 거짓 사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가리고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귀의 전략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치 현장이나 대형 교회 앞에서도 이 복음을 타협 없이 전합니다. 때로는 과격하다는 소리를 듣고 불편해하는 시선도 마주하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보다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 더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으나, 영원한 내일인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는 반드시 정해야 합니다. 믿음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전적인 선물입니다. 저처럼 평생 교회를 욕하던 완악한 사람도 창조주를 만나 새 생명을 얻었듯,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삶의 주인을 바꾸는 참된 회개를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간증 출처 : 간증. 풀버전.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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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말씀, 창조주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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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예비하신 뒤, 길을 여신다”
- 1997년, 아프리카 중서부 케냐에 들어가 27년 동안 한결같이 케냐를 사랑하고 온몸으로 사랑을 전하다가 2023년 7월 5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토록 사랑하던 그곳에서 하나님께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선교의 삶 가운데 일어났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간증을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TWNt6PiiJg0)에서 발췌하여 싣습니다. -편집자 주- ▲ “제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그다음에 저를 그 길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케냐의 오지,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 이슬람권 지역에서 사역해 온 이원철 선교사는 자신의 선교 여정에 대해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 고백은 추상적인 신학적 표현이 아니라, 한 아이의 생명이 꺼져가던 시간 속에서 ‘기가 막히게’ 준비되어 있던 사람들, 문, 돈, 그리고 결정을 통해 확인된 현실의 기록이다. 이 간증은 ‘믿으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 순간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는가’, ‘왜 그 문이 그때 열렸는가’, ‘왜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를 촘촘히 되짚으며, 한 선교사가 경험한 섭리의 디테일을 따라가게 만든다. 1. “예배 때마다 밀려오던 사랑”이 방향을 바꿨다 그가 처음 선교사의 길을 결심한 계기는 거창한 ‘소명 체험’의 장면이 아니라, 반복되는 예배의 시간이었다. 그는 “매주일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너를 구했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밀려왔다”고 말한다. 그 사랑이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 “내가 나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결론은 단순했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라는 확신. 그 확신은 그를 케냐의 오지로 데려갔다. 2. “현상금이 걸린 사역지”… 그러나 더 큰 전쟁은 ‘집 안’에서 시작됐다 사역지는 험했다. 그는 “무슬림들이 나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죽이면 얼마”라는 말을 담담히 꺼낸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담대한 믿음을 주셔서 두려움 없이 사역한다”고 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가장 깊은 흔들림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가족의 위기’에서 왔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보딩스쿨)에 아이를 맡기고 사역하던 어느 때, 큰아이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못 자고, 화장실을 자주 가고, 먹지 못하고, 물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마셨다. 체중은 급속도로 줄어들어 마침내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로 내려갔다. 병원은 “이 아이가 이렇게 말라가면 죽는다”고 했다. 케냐에 있던 의료진, 미국에서 온 의료선교사 의사들까지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 방법도, 저 방법도” 다 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3. “회교 병원에 가라”는 권유 앞에서—그는 왜 ‘거절’했나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케냐 나이로비에 위장 전문의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약까지 잡혔다. 병원 이름도 있었다. 아가칸(Aga Khan) 병원.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결박되었다. 그는 그 병원을 “회교 병원”이라고 표현하며, 그 문턱을 넘는 순간을 상상했다. 병원 서류에 적힐 “부모 직업: 기독교 선교사”라는 한 줄.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올 것 같은 조롱—“네가 믿는 하나님으로는 아이를 못 살려서 여기 왔느냐.” 의료적 판단만 놓고 보면, ‘가야 한다’는 결론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을 수 있다”는 영적 문제로 받아들였다. 간호사 선교사가 격하게 반응할 만큼 그는 단호했다. “나는 이 아이를 회교 병원에 데려갈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그의 신앙은 ‘기적을 요구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신앙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그 결정이야말로 이후의 모든 길을 여는 ‘첫 단추’였다고 회고한다. 4. “아내의 울음”… 그리고 한 줄기 균열 하지만 믿음의 고백은 흔들리지 않는 강철이 아니었다. 현실은 계속해서 ‘급박’으로 밀어붙였다. 어느 날, 사역 일정 중이던 그에게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 아내는 잘 울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내는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전해진 말은 단순했다. “아이(큰아들)가 화장실 갔다가 오면서 쓰러졌어요.” 그는 차를 세웠고, 마음 한가운데로 “이 아이가 죽는구나”라는 직감이 찔러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덮쳤다. “죽을 때 아빠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는 남은 거리(약 한 시간 반)를 달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5. “응답은 받았는데… 왜 현실은 안 변하는가” 기도팀에서 연락이 왔다.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이 이 일을 고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기뻤다. 아이에게 달려가 “하나님이 너를 고치셨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도 기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하루 이틀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토하고, 힘들어하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엔 낙심이 쌓였다. 그때 그가 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는 차를 닦고 있었다. 그 평범한 순간에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지만, 하나님은 이미 고치셨다. 그러나 그 고치신 ‘시점’이 우리에게 도달할 때, 우리는 그 치유를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그는 이 깨달음을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믿음의 시간표’로 받아들였다.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인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를 고치셨다. 그 시점까지 믿음을 잃지 말자.” 6. LA로 가라는 낯선 초대—“갈 형편이 아닌데, 길이 열렸다” 그때 또 하나의 의외의 통로가 등장한다. LA로 오라는 메시지. 그것도 넉넉해 보이지 않는 한 전도사에게서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이는 누워 있어야 했고, 선교지 사역은 진행 중이었다. 무엇보다 항공권 값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는 기도 중 “네가 LA 가서 할 일이 있다”는 마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 마치 그 ‘마음’에 반응하듯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이미 고인이 된 한 목회자가 그에게 3천 불을 건네며 말했다. “병원 좀 데려가 봐.” 놀랍게도 그 돈은 “두 사람 비행기 값”과 거의 맞아떨어졌다. 그는 그 돈을 사역비로 쓰고 싶었지만, 마음에 주어진 ‘LA로 가야 한다’는 부르심을 따라 항공권으로 바꿨다. 여기서부터 ‘사람의 예비’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말을, 필요한 액수로 가져온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보내게 하신 것”이라고 표현한다. 7. 비자도, 비행기도—“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통과되었다” LA행의 또 다른 벽은 비자였다. 아이는 대사관 인터뷰를 받을 상태가 아니었다. “의자에 앉으면 머리가 무거워서” 버티지 못했다. “거부당할 게 당연”해 보였다. 그는 마지막 방법을 택했다. 아이를 대사관 밖에 두고, 아이의 여권만 들고 들어갔다. “아이 비자를 주십시오.” 영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이 얼굴도 안 보고 비자를 줄 수 없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흘렀다. 영사는 결국 비자를 찍어주었다. 인터뷰도 없이. 아이는 비자를 받았다. 비행기에서도 길이 열렸다. 걷지 못하는 아이는 휠체어로 탑승했고, 승무원은 아이를 눕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심지어 그들이 안내한 자리는 “맨 앞자리(1등석)”였다. ‘상식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따라붙는 장면들이 연속된다. 그는 그 연속성 속에서 ‘우연’이 아니라 ‘인도’의 패턴을 읽어낸다. 8. “응급실에 안 가려 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왔다 미국 도착 후에도 그는 쉽게 응급실로 향하지 못했다. “선교사”라는 정체가 또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하나님이 비난받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때, 링거를 놓아주려 찾아온 간호사와 단기팀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동행했다. 중국인 의사. 그것도 의대 교수. 그 의사는 아이를 보자마자 단정했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의료 조언이 아니었다. 선교사의 마음을 굳게 잠근 ‘종교적 체면’의 문을 강제로 두드리는 선포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망설였지만,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살아서 미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는 아이에게 직접 물었다. “병원에 가고 싶니?” 아이는 답했다. “아빠, 왜 이렇게 오래 토했는지 원인이라도 알고 싶어요.” 바로 이 ‘아이의 입’이, 아버지의 완강함을 무너뜨리는 열쇠가 되었다. 그가 문을 열자, 주변 사람들은 기뻐했다. 어떤 이는 “당신 마음이 바뀌도록 우리가 기도했다”고 나중에 말했다고 한다. 9. 응급실의 기적: “절차 없이 들어갔고, 곧바로 CT를 찍었다” 응급실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쟁터 같았다. 그런데 그 중국인 의사가 미리 전화한 덕분에 “아무 수속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인턴이 아이를 보더니 말했다. “뇌를 찍어야 합니다.” 곧바로 CT. 그리고 아이는 ICU(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때 선교사는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해 복도 의자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새벽, 의료진이 환자 요약 파일을 복도에 두고 간 일이 있었다. 그는 무심코 그것을 보게 된다. 거기에 적혀 있던 한 문장이 그를 멈춰 세웠다. “부모에게 알리지 말 것.” 그리고 이어진 내용. “뇌에 종양 2개(1cm, 2cm).” 이 장면이 이 간증의 독특한 역설을 만든다. 보통 ‘종양’은 절망의 단어다. 그런데 그는 “너무 기뻤다”고 말한다. 이유는 분명했다. 케냐에서도, 미국에서도 찾지 못했던 원인을 하나님이 드디어 “알게 하셨다.” “고칠 수 있는 병원에서 원인을 알게 하셨다.” 그는 아이에게 달려가 말했다. “드디어 원인을 알았다. 하나님이 너를 고치시려고 여기로 인도하셨다.” 10. “그때, 그 교수”… 그리고 또 하나의 예비 중환자실에서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키가 크고 머리가 희끗한 교수. 차트를 보더니 묻는다. “너 케냐에서 왔니? 우리 아버지가 케냐 의료선교사였다.” 그리고 그는 거의 ‘개인 담당’처럼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놀랄 정도의 관심. “돈도 없어 보이는 선교사 가족”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말이 뒤이어 나왔다. “네 아이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병원비를 무료로 하겠습니다.” 선교사는 당황했다. 아이와 “평생 갚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것이 무너졌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하나의 확신이 찾아왔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고치시려고, 네가 돈이 없으니 하나님이 책임지시려고, 여기로 부르셨다.” 이쯤 되면 ‘사람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말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가 된다. 케냐를 아는 교수, 케냐 선교사의 아들을 돕는 의료진, 비용을 감당하는 시스템, 그리고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하는 안내자들. 이들은 마치 “누군가가 미리 배치해 둔 것”처럼 움직인다. 11. “머리를 열지 않아도 되는 병원”으로—또 한 번 문이 열렸다 아이의 종양을 제거하려면 머리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의료진은 “머리를 열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더 좋은 병원”이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곳이 사립병원이라는 점. 비용이 또 다른 벽이었다. 하지만 그 병원도 아이를 받아주기로 했다. 의료진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기도 많이 했지? 기도 많이 해서 하나님이 길을 여신 거야.” 아이를 태운 앰뷸런스가 또 한 번 문을 통과했다. 새 병원에 도착하자 젊은 의사는 말했다. “이 아이는 케냐에 있었거나, 한국으로 갔으면 죽었을 겁니다.” 그는 그것을 “럭키”라고 표현했지만, 선교사는 그 ‘럭키’라는 말을 ‘인도’로 번역했다. 12. “우리는 둘 다 ‘사역자의 자녀’야”—마지막 열쇠 같은 한 마디 새 병원에서 또 한 사람이 들어온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의사. 차트를 쭉 보더니 묻는다. “너의 아버지가 케냐 선교사냐?”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목사다. 너와 나는 둘 다 미니스터의 자녀다.” 이 짧은 문장은, 선교사의 눈에 ‘우연히 만난 의료진’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으로 그를 확정시켰다. 그 의사는 아이를 끝까지 치료했고, 아이는 회복했다.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마침내 케냐로 돌아와 “선교사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 13. “그때 병원에 갔으면 오히려 죽었을 것”—하나님이 ‘눈을 가리신’ 시간 그는 한 가지 섬뜩한 결론을 덧붙인다. “제가 (처음부터) 그 병원에 데려갔으면, 얘는 죽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초기에 의료진이 찾은 건 위장 문제가 아니었다. 뇌 문제였다. 케냐에서 섣불리 수술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손을 댔다면 더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이 ‘수술할 수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셨다. 원인을 못 찾게 하셨다. 그리고 ‘고칠 수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원인을 보게 하셨다. 이 대목에서 그의 간증은 단순한 기적담을 넘어선다. 하나님이 “치유”만 행하신 것이 아니라, 치유가 가능한 “시간과 장소”를 먼저 준비하셨다는 서술이기 때문이다. 14. 선교 재정이 끊겼을 때도—“하나님이 돈은 안 주시고, 말씀을 주셨다” 아이의 치유가 ‘생명의 극적 인도’였다면, 재정의 사건은 ‘사역의 지속을 위한 인도’였다. 그는 한 교단 선교를 통해 파송을 받았고, 초기에는 교회가 생활비와 사역비를 약속했다. 그는 케냐에서 기독교 학교를 세웠다. 그 지역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교가 되었고, 회교도든 기독교인이든 4년 동안 성경을 배우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회 내부 분쟁이 터졌다. 헌금이 ‘재판 비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헌금을 멈췄고, 결국 선교 후원이 끊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도저히 못 보낸다”는 통보가 왔다. 그는 현실적으로 ‘신입생을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건물을 더 지을 수 없으니, 확장을 멈추자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주신 것은 돈이 아니라 말씀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는 “돈은 안 주시고 말씀만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씀이 그를 움직였다. 그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을 택했다. 직접 땅을 파고, 가능한 만큼 기초를 놓았다. 그리고 나이로비로 돌아왔을 때, 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와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돈. 그는 그 돈으로 건물을 올렸다. 또 필요가 생겼을 때 또 돈이 들어와 있었다. 결국 후원이 끊어진 해에 건물 두 개를 세우려 했던 계획은 더 커져, “보너스로 교회까지” 세웠다. 그는 결론을 이렇게 내린다. “중요한 건 ‘재정이 있느냐’가 아니라, ‘이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가’다. 그분의 뜻이면 재정은 따라온다.” 15. “하나님은 ‘길’을 예비하신다”—그의 간증이 남기는 한 가지 질문 이원철 선교사의 간증은 ‘나는 믿었더니 기적이 왔다’는 단순한 도식으로 닫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묻는다. 왜 그때 3천 불이 ‘항공권 값만큼’ 주어졌는가? 왜 아이는 인터뷰도 없이 비자를 받았는가? 왜 응급실에서 ‘절차 없이’ 들어갈 수 있었는가? 왜 케냐를 아는 교수, 사역자의 자녀임을 공유하는 의사가 연달아 나타났는가? 왜 ‘원인을 찾지 못하게’ 하셨다가, ‘고칠 수 있는 곳’에서 보게 하셨는가? 그는 이 모든 질문을 하나로 묶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나를 준비시키시고, 길을 준비시키신다.” 그리고 그 준비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는 방식으로 그를 붙들었다. 맺으며: 케냐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 아들의 치유는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와 같이 선교사 하지 않을래?” 아들은 “하겠다”고 답했다. 지금 그 아들은 케냐에서 선교사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 선교사는 이 결말을 ‘내 아이를 살려보자’는 목적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열매로 본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난 한 아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미리 배치된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지 않게 해달라”고 울며 기도하던 한 아버지. 그가 말하는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은, 멀리 있는 교리가 아니라 현장 한복판에서 사람과 시간과 길을 정교하게 엮어내는 살아 있는 인도였다. ※ 故 이원철 선교사의 이들 이인 선교사와 그의 장모는 무슬림에 납치되어 2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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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예비하신 뒤, 길을 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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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판결은 정의 이전에 연민과 존엄과 존중이 먼저입니다
-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 법정은 차갑다. 나무 망치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판결은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벌금을 내지 못해 절망하는 가난한 시민, 병든 가족을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 힘겨운 생계 속에서 실수를 저지른 이들에게 법정은 두려움의 공간이다. 그러나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한 법정에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의 법정이다. 그는 단순히 벌금과 형벌을 집행하는 판사가 아니었다. 법복을 입은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는 법정에 선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를 실행하기 위해 여기 있고, 정의에는 연민과 이해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 한 마디에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카프리오 판사는 법의 원칙을 지키되,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판결을 내리는 데 주력했다. 그에게 법은 인간을 돕는 수단이었고, 처벌보다 회복과 회생이 우선이었다. 가난, 질병, 가족 문제 같은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모든 사람을 존엄과 존중으로 대했다. 공정함과 이해, 그리고 연민—이 세 가지가 그의 판결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그의 법정은 단순한 재판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사람의 눈물과 사정을 들어주는 공간이었고, 절망한 이들이 다시 희망을 발견하는 치유의 장소였다. 사람들은 그를 '미국에서 가장 따뜻한 판사', '자비로운 정의의 상징'이라 불렀다. 그의 판결은 미국 사법제도에 '연민 사법'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수많은 시민들에게 "법은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따뜻할 수 있다", "정의는 인간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법의 본질적 목적은 무엇인가? 교통법규의 목적은 교통질서를 지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구하는 데 있다. 일반적인 법의 목적도 동일하다.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의 유익과 정의를 세워 사람들이 공평하고 안심하며 평화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법은 질서를 깨뜨리는 이에게 징벌을 행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의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카프리오 판사는 바로 이 본질을 잊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미국을 여행 온 데이지라는 젊은 여성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그의 법정에 섰다. 긴장한 얼굴로 판사를 바라보던 그녀에게 카프리오 판사는 부드럽게 물었다. "지금 미국을 방문 중이시죠?" 데이지가 대답했다. "네, 여기 정말 마음에 듭니다. 아름다운 곳이에요." 판사는 다시 물었다. "미국은 브라질과 어떻게 다른가요?" 데이지의 눈이 반짝였다. "티켓을 받으면 설명할 기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자비롭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카프리오 판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말했다. "데이지,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법정은 이해와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를 행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정의란 종종 우리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연민과 이해를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들에게 어떤 필요가 있을 때 말입니다. 아이들이 있다면, 일하며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 돈이 없다면 말이지요. 만약 그렇지 않고 그냥 면허를 정지시켜 버리면, 그들은 차를 몰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생계를 위해 불법으로 운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법정에 고요가 흘렀다. 판사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저는 특별한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을 존엄하게 대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존엄과 이해, 그리고 연민 속에서 대우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노력하는 일입니다. 오늘 제가 그렇게 했나요?" 데이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네, 그렇게 했습니다." 판사는 미소 지었다. "이것은 판단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나간 뒤 누군가 이렇게 물을 겁니다. '거기서 당신을 어떻게 대하던가요?'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게 되겠죠. '정말 친절했어요.' 이 말을 기억하세요. 공정함, 이해, 그리고 연민."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는 엄격한 정의와 따뜻한 인간애를 동시에 실천한 판사였다. 그의 판결은 단순히 법 집행을 넘어서,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정의가 무엇인가"를 온 세상에 보여주었다. 전 세계 기독교인, 종교인, 교육자, 사회복지 관계자들이 그의 태도를 모범 사례로 언급한다. 법정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감사가, 절망 대신 희망이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카프리오 판사가 꿈꾸는 정의의 모습이다. 법은 사람을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어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이 오늘도 그의 법정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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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판결은 정의 이전에 연민과 존엄과 존중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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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만난 히브리어 구약성경 철학박사
- 셋 포스텔 교수 (현 이스라엘성서대학 학장) "너는 유대인인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느냐? 히브리어 성경을 정말 제대로 안다면, 원어로 읽을 수 있다면,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이 제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탐구는 학사에서 석사로, 석사에서 박사로, 그리고 두 번째 박사 과정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더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신약이 구약을 어떻게 읽는지 더 깊이 살피면 살필수록, 저는 오히려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다 저는 뉴저지에서 자라며 '우리는 유대인이다'라는 정체성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아버지가 정말 화가 나시면 가장 심하게 하는 말이 "Jesus Christ!"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집에서 금기어였죠.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점점 더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구약'이라고 불렀던 히브리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어머니는 예수에 대해 지적으로, 또 영적으로 점점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레이, 내가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했는데… 예수가 메시아야." 아버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난 유대인과 결혼했다고 믿었는데… 어떻게 우리 민족을 배신할 수 있어? 왜 예수를 믿는지 말해줘. 그런데 신약은 절대 보여주지 마. 우리는 알잖아.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싫어하고, 신약은 분명 반유대적일 거라고." 그래서 어머니는 이사야 53장을 읽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로레인, 신약은 듣고 싫지 않다고 했잖아."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머레이, 이건 우리의 성경이야. 신약이 아니야. 예수 오기 700년 전에 기록된 예언이야."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란과 두려움의 시간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 가정에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저를 히브리 학교에 꼭 보내려 하고 유대인 정체성을 강조하던 부모님이 갑자기 예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부모님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어떤 예배 모임에 참석했고, 예배 후 저는 엄마의 친구 린다와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세스, 너는 언제 예슈아(예수)를 네 메시아로 받아들일 거니?"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린다, 나 아직 젊잖아요. 인생 좀 살아보고, 즐기고 싶은데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스, 예수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어." "그래서요?"라고 제가 말하자 그녀는 계속 말했습니다. "만약 지금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 예수님이 오신다면, 나는 하늘로 들려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거야. 그런데 너는 운전자 없는 차에 남겨져 55마일로 달리다 사고 나서 죽고 지옥에 가게 될 거야." 그 순간 제 기도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지금은 오지 마세요. 제발 오지 마세요." 자기혐오와 영적 고통 저는 심각한 소아 천식을 앓았고 강력한 약을 복용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프레드니손이었는데, 이 약은 제 감정뿐 아니라 제 외모까지 바꿔놓았습니다. 얼굴이 붓고 빨갛게 변했습니다. 저는 이미 제 자신을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심하게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추하고 가치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죄를 이길 수 없는 나 자신, 약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더 추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도 나를 싫어하신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거듭났다고 믿었다가, 다시 불안해지고 또 거듭나야 한다고 느끼는" 반복 속에 살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나를 지옥에 보내려고 기다리고 계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말입니다. 사랑의 팔을 만나다 몇 년 후 어느 예배에서 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유독 제 쪽을 계속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제 마음속 깊이 감추고 싶었던 수치와 상처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 목사님은 사람들에게 일어서라고 했고, 저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는 순간, 저는 예슈아가 두 팔을 벌리고 저를 기다리고 계신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분의 팔은 분노의 팔이 아니라, 저를 끌어안으려는 팔이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상처는 너를 위한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죄인을 위해 왔다." 그 순간 저는 처음으로 "나는 추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속박이 풀렸고, 저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적 탐구의 시작 그 후 제가 예수를 믿는다고 가족과 주변에 알리자 많은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넌 유대인인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어?" "네가 랍비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냐?" "히브리어를 정말 알았다면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거야." 이 말들을 듣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히브리 성경을 정말 정확히 알아야겠다." 그래서 첫 번째 박사를 마친 후 이스라엘에서 히브리 성경으로 두 번째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제 모든 지적 무게를 '텍스트 자체' 위에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구약을 신약이 어떻게 읽고 있는지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마음과 머리의 확신 이것은 단지 마음의 확신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과 소망을 주셨다는 영적 경험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머리로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이해하고, 선지자를 이해하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곧 예슈아를 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가장 위대한 유대인이며, 우리의 구원자이자 세상의 구원자입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kKl-HEXqy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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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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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만난 히브리어 구약성경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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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종교의 감옥에서, 단 한 줄의 말씀으로 자유를 얻다
- 저는 평생을 몰몬교 교수로 살았습니다. 교회의 리더였고, 사람들은 저를 모범 신자라 불렀습니다. 신앙의 확신으로 가득했고, 제 믿음에 의심의 여지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밤마다 새벽 2시, 정확히 같은 시간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다시 잠들 수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 14일이 지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몸은 지쳐갔고, 정신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쳐가는 것 같았습니다. 14일째 되던 날, 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모든 것을 말씀해 주세요. 저는... 더 이상 못 버티겠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문장이 강렬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성경을 읽어라."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성경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몰몬교는 늘 가르쳤으니까요. "성경은 불완전하다. 몰몬경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이 제가 30년간 믿어온 진리였습니다. 유튜브 캡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제 손은 요한복음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제 안에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충격이었습니다. 몰몬교는 분명히 성경과 다르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도 한때 사람이었고, 나중에 신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성경은... 성경은 명백하게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태초부터,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셨다고. 그날 이후, 저는 성경에 사로잡혔습니다. 10개월 동안 말씀만 읽었습니다. 처음엔 의심하며, 그다음엔 혼란 속에서, 그리고 마침내... 무릎 꿇으며 읽었습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몰몬의 가르침은 저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며 울었습니다. "예수님... 저는 종교에 속은 줄도 몰랐습니다. 30년을 헛되이 살았습니다. 이제... 이제 진짜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세요." 그 순간, 제 눈앞에서 세계가 바뀌었습니다. 세상이 달라 보였고, 마음이 가벼워졌고,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평안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30년간 쌓아온 무게가 단 한순간에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진리는 조직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전통 안에도, 의식 안에도, 계율 안에도 없었습니다. 진리는 오직 예수님, 그 한 분 안에만 있었습니다. 몰몬교에서 30년을 보낸 제가, 말씀 단 한 줄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찾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간증 출처 : https://www.youtube.com/shorts/5PLAMABsZ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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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종교의 감옥에서, 단 한 줄의 말씀으로 자유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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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부흥회
- 나는 공원을 좋아한다. 어느 도시를 방문하든지 꼭 공원을 찾는다. 공원을 걸으며 자연을 음미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오늘은 주일이다. 방콕 수쿰빗에 있는 브릿지교회의 예배에 참석했다가 2번 버스를 타기 위해 아속 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구글 지도에서 보았던 벤짜낏디 공원이 떠올랐다.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공원으로 들어섰다. 직사각형의 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나는 두 손을 들고 나직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걸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여호와~'가 들려왔다. 길 건너에 한 남자가 앞서서 걷고 그 뒤를 두 여인이 한 여자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이 찬양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내가 소리쳤다. "예수님을 알아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요." 나는 두 손을 치켜들고 지저스를 반복해서 외쳤다. 그들도 따라 외쳤다. 내가 물었다. "당신들은 인도인입니까?" "아닙니다. 파키스탄인입니다. 우리는 난민입니다." "오, 나는 한국인입니다. 목사입니다. 네팔에 선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실 수 있나요?" 나는 잠시 하나님께서 기도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펴서 읽어주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와 의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들이 아멘 했다. "아무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들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십니다." 더 큰 소리로 그들이 아멘 했다. 나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따라 불렀다. 나보다 더 크게 불렀다. 그들이 내게 말했다. "우리 집을 방문하고 예배를 드려 주실 수 있습니까?" 이 시대에도 이토록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이 있다니 신기했다.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방문하겠습니다." 우리는 페이스북을 주고받았다. 나는 지갑에서 20밧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며 진심을 담아 축복했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될 것이며 너의 나라로 돌아가 대학에서 가르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무엘과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듯 나의 축복 또한 그리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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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부흥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