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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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적인 루틴을 지키라!
    1.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6:4)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농구선수의 징크스와 루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시합 전에 청결을 점검해요. 목욕부터 집안 대청소까지 강박적으로 점검하는데, 그렇게 해야 경기에서 실수를 줄이고 시합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2. 그가 농구 시합 중에 자유투를 던질 때가 있는데요. 던지기 전 공을 바닥에 5번 튕깁니다. 그리고 던졌는데 들어가면 계속 5번씩 공을 튕기고 슛을 던져요. 자유투가 안 들어가면 횟수를 바꿔서 7회 혹은 10회 바닥에 공을 튕기죠. 슛이 성공하면 그 숫자를 기억하고 계속 그 횟수만큼 튕기고, 안 들어갈 때가 오면 다시 공 튕기는 횟수를 조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도 루틴이 있어요. 타석에 들어서면 꼭 야구 배트를 세 바퀴 돌리고 허리와 팔을 세 번 까딱거립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며 실수를 줄이게 된답니다. 이렇게 징크스는 이겨내고, 자신의 좋은 리듬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루틴이라고 하는데요. 3. 저도 신앙의 루틴이 있습니다. (목회자분들마다 영적 루틴이 다를 수 있는데요. 중심은 비슷하거나 같을 것입니다.) 신앙, 목회 본질을 지키는 힘과 삶이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7년 신학생 시절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재발견하였는데 삶과 신앙의 분기점이었어요. 그렇게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추구하면서 영적 루틴이 생겼습니다. 충분히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삶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 바라보는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겁니다. 영적 루틴이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4. 오전에는 가급적 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외부적인 소음을 차단합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SNS를 내려놓고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아요. 사도들의 고백처럼 말씀과 기도 시간으로 선포하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또 다른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영적 루틴으로서 최대한 지키려고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시면 또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방향성이 제게 유익해요. 5. 현재 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가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집회 일정이 바빴어요. 매주 부흥회 초청이 있었고, 전국에 정기모임과 정기집회도 25곳이 넘었습니다. 바쁜 집회 일정도 영적 루틴을 지키면서 다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2일은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가정에 먼저 충실하도록 이끄시며, 사역자가 아니라 아들이요 친구로서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삶에 집중하게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머물러 있는 시간입니다. 6. 어떤 시즌에는 한 달 이상 모든 집회를 거절하거나 1달 이후로 날짜를 조정했습니다. 5~6개월에 한 번씩은 집에서 두문불출했어요. 조용히 성령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멈춰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영적인 루틴이 형성되었어요. 이제 제 영혼에 각인되었습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우게 하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7. 제 사역이 바빠지기보다, 제 이름이 알려지기보다, 우리 교회가 알려지기보다 예수님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제 삶을 통해 예수님 알려지시려면 영적 루틴을 목숨같이 지켜야 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지런해야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분들 사역과도 비교할 필요 없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오직 비교의 대상은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지키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숫자에 속지 않고 성장과 성숙을 함께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연합을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머물러 계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23
  • AGI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데스크 칼럼/양봉식 국장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고(AGI), 노동의 가치가 희석되며, 인간의 생존이 기본소득과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게 될 미래가 목전에 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기술적 적응을 고민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변화는 명백히 ‘인간 이해의 문제’다.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한 자유와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기술에 의해 다시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AG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역할 자체를 흔드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최첨단 기술 대응 전략이 아니다. 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신앙적 재정립이다. 1. 노동이 사라질 때, 소명은 더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노동의 총량이 줄어드는 미래에, 일에서 정체성을 찾던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치를 노동의 유무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Homo Faber)’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다. 그러므로 노동이 소멸해가는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명이 곧 직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명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삶의 본질이 되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다. 2. 기본소득의 시대, 탐욕 대신 절제를 배워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스템적으로 해결되는 사회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대한 위기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삶의 치열한 의미 또한 증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는 풍요가 종종 영적 타락과 궤를 같이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풍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풍요를 절제 없이 향유하는 삶은 경계한다. 인간은 소비로 채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참된 평안을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GI 시대에 우리가 훈련해야 할 영성은 ‘더 많이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가는 태도’다. 단순한 삶, 자발적인 절제,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의 영성은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형태가 될 것이다. 3. 통제받는 사회 속에서 자유의 의미를 지켜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AI는 인간을 해치기보다,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들 것이다. 건강을 위해, 사회적 안정을 위해, 더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은 ‘자유’다. 인간은 실수할 자유, 실패할 자유,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를 가진 존재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변화,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치 있게 여긴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는 안전할지 몰라도 인간다운 사회는 아니다. 편리함보다 자유를, 효율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치다. 4. 인간이 잊게 될 질문을 교회가 붙잡아야 한다 AGI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조건이 완벽히 해결되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깊은 공허가 들어선다. 교회는 세상이 잊어버릴 이 질문들을 끝까지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왜 희생해야 하는가?" "왜 진리를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기술은 답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답이 주어진다. 5.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영성의 깊이로 결정된다 다가오는 시대는 인간이 더 똑똑해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시험받는 시대다. 노동이 줄어들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쉽게 삶의 방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우고, 풍요 속에서도 절제를 배우며, 통제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영성이다. AGI 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는 위기가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데스크 칼럼
    2026-02-19
  • 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2)
    1. 내가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하신 찬양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런 노력이 찬양을 인도하는 실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찬양 인도가 목적이라서 평소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가운데 많은 은혜 끼치고 싶어서가 목적이 아닙니다. 2. 다시 말씀드리지만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나도 순수하게 사랑해서 존중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찬양 사역에서도 성령님께서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순수함과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태도, 감동 주실 때 메모하며 기록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를 잘하는 것보다 동기의 점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기는 평소 삶의 태도에서 점검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찬양들이 모이면 다시금 성령님께 여쭤봅니다. 3. “성령님, 어떤 순서로 찬양드리기 원하세요? 가르쳐 주시겠어요?” 여쭤보고 기도드리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결코 늦지 않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감동 가운데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그 순서대로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찬양 인도할 때는 내 안에 계시며 이 장소에 계신 성령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인식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목소리에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름부으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4.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 인도를 위해 성령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사랑해서 성령님을 찾으려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을 점검하며 강대상 앞에서 좀 더 집중하여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함께 찬양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립니다.” 5. 조용히 마음 가운데 이런 고백을 드리며 첫 찬양을 살펴봅니다.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영적 상태인지 또 점검한다는 겁니다. 내면에 성령님 함께하심으로 인한 안정감과 평안함, 설레임과 기대감, 나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조용히 입을 엽니다. 찬양을 시작합니다. 찬양 인도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쉬운 사역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평상시에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살아간다면 사역 현장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 받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믿습니다. 6. 우리 모두 찬양 인도자로 살지 말고 평소 찬양 드림을 기뻐하는 자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는 찬양”도 인도할 때가 아니라 평소 개인적인 찬양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사용하시길 소망합니다. 순수하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찬양을 합시다. 그러다 보면 찬양 인도의 현장에서도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심을 자연스레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10
  • 목회자의 우선순위 세 가지
    AI이미지 그림 1. 개척 3년차 즈음 연말이었습니다. 감동을 주시는 듯해서 한 달 정도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무를 때였어요. 제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기 원하시는지 여쭤보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삶과 신앙, 목회 가운데 본질적인 우선순위를 자주 점검하도록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해주신 내용들이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2. <첫째, 친구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나 자신이 목사이기 전에 자녀요, 친구의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실 때 사역 성공했다는 사람들 칭찬 많이 받는지의 여부로 판단하시기보다, 하나님 자녀요 친구로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가장 행복할 때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목사인 제가 진정 예수님만으로 인하여 행복할 때, 저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되는 성도님들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성령님께서는 수시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3. “태성아, 교회 갈 때 목사의 정체성으로 먼저 가지 말자. 너 역시 다른 성도들처럼 먼저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친구로서 교회에 가자. 성도로 교회에 가자.” 그래서 집에서 교회로 출발해서 이동하면서 계속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면서 의식합니다. 목사가 아니라 성도로 교회 간다는 인식을 체크합니다. 목사인 제가 먼저 아들이요 친구로서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젖어 들어서 행복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에서 행복을 누리고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4. <둘째, 가정에 충실하기> 가장 먼저 세우신 공동체인 가정에 충실한 목회자여야 합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잘 이끌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시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반대로 가정이, 자녀가 우상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목사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강단에 섰을 때 가족부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제 아내가 가장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는 간증을 하곤 하는데 주님께서 격려해주시는 음성처럼 느껴집니다. 5. 만약 제가 인도하는 예배에서 가족이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사역의 성공도 사람들의 칭찬도 예수님 보실 때 실패입니다. 다행히도 아내부터 아이들도 나름 좋게 평가해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목회자 가정이 행복한 모습을 볼 때 성도님들 가정도 주님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자 본받기를 힘쓸 것입니다. 저도 가정이 행복하신 선배님들의 강의나 책, 개인적 교제를 통해 본받고자 노력 중입니다. 6. <셋째, 하나님 앞에 머물기> 목사가 교회에 머물며 하나님과의 접촉과 만남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목사로서 이 정체성을 풍성하게 누려야 할 장소가 바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도 심방이나 성도의 교제, 부흥회, 긴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교회에 아들이요 친구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머물기를 즐깁니다. 7. 아버지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사랑하며 사랑받고, 교제 나누는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고자 개척 목회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그럴 때 목사가 교회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혼의 기쁨을 성도님들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하늘 아버지 앞에 자녀요, 친구로 나아가 말씀과 기도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1-13
  • 어떻게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
    1. “매순간 하나님께 열려 있다면 당신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라.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에 늘 주파수가 맞춰져 있어서 숨 쉴 때마다 하나님의 생명이 당신에게 흘러들고 당신을 통해 흘러 나간다면, 당신이 자신과 사람들과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얼마나 변할지 생각해 보라. 그런 삶은 그 자체가 기도일 것이다.” -<기도숨> 중에서 우리가 고통을 느끼고 지나치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잊고 있어섭니다.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동행하시는 것이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임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심에도 불구하고 그 임재를 놓치고 있어섭니다. 그 임재를 놓치는 만큼 외부의 충격에 반응하게 되는 겁니다. 2. 반대로 그분의 임재로 충만할수록 외부의 충격에는 점점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충격이 와도 덜 받고, 빨리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일상의 연습이 중요해요.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좋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첫째, 그분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이 진리이며 이미 성취되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반복 학습하며 공부, 묵상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진리가 마음과 생각에 각인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둘째, 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훈련을 위해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기다리는 훈련을 추천드립니다. 규칙적인 훈련으로서 말씀과 기도, 영성일기가 도움이 됩니다. 셋째, 삶 속에서 그 어떤 훈련보다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주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속 그분을 생각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프랭크 루박 목사님의 <1분 게임>, 로렌스 형제님의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참고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이 책들은 평생 반복해서 읽을 책 50권에 선정하여 읽고 또 읽으며 적용합니다. 4. 넷째, 그분께 자주 말을 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쭤보기도 중요해요. 여쭤보고 말을 걸면 종종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음성 듣기라고도 표현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 말을 걸거나 자주 여쭤보는 ‘이유’죠. 음성 듣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듣기에 목적을 두면 미혹당하기 쉽습니다. 이미 성경에 음성이 풍성해요. 우리의 목적은 그분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이 진리이므로 '존중해드린다는 의미'로 말을 거는 것입니다. 5. 성령님과 인격적이고도 친밀한 관계, 교제를 중요하게 여기며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열매들이 있습니다. 집필하게 하신 처음 책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에서 간증했습니다. 하루는 택시를 탔어요. 기사님이 혼자 이야기를 하시더니 곧 우십니다. 내리기 전에 기도 받으시고 예수님을 영접하세요. 전도하러 술집에 들어갔습니다. 저를 보더니 갑자기 여자 사장님이 울기 시작해요. 가정집에 들어갔습니다. 복음을 숨죽이고 들으면서 울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십니다. 6. 지금의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많은 교회들 부흥회 인도하며 설교를 더 잘 하고, 사역을 더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하긴 하지만 우선순위는 다른 부분입니다. 바로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식하는 삶입니다. 존중해드리는 삶입니다. 그 의미로 말을 걸고 대화하며 여쭤보기를 노력해요. 그리고 제 삶 전체로 삶의 예배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의 눈빛, 말투와 언어, 행동에 그분의 임재가 담겨있기를 원합니다. 저를 성전 삼고 계신 그분의 임재로 충만하기를 원해요. 성령님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놓치지 않고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그분의 임재를 원합니다. 7. 그래서 우리 교회의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예배도 모이는 사람의 숫자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어서 혼자일지라도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다는 그 사실로 충분함과 만족을 얻고, 성령님의 임재를 추구하며 머물러 있고자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예배자로 서 있는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부디 좀 더 성령님을 의지하고 찾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의식하든 못하든 그분의 임재가 자연스럽게 넘쳐흐르길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을 통해 예수님께서 왕 되심이 이웃들에게 더 아름답게 드러나실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1-07
  • 그리스도인의 AI 사용 십계명
    AI 기술이 도구(Tool)를 넘어 인간의 사고방식까지 규정하려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중심을 잡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AI 사용 십계명'을 제안합니다. 이 원칙들은 기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주인이 누구인지 고백하며 지혜롭게 다스리기 위한 영적 가이드라인입니다. 제1계명 : 주권의 원칙 (Sovereignty) AI는 도구일 뿐, 오직 하나님만이 지식과 지혜의 근원이심을 기억하라.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그의 입에서 지식과 명철이 나옴이라”(잠 2:6) 제2계명 : 분별의 원칙 (Discernment) AI의 환각을 경계하고, 모든 정보를 말씀의 필터로 걸러내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더라”(행 17:11) 제3계명 : 창조의 원칙 (Creativity) AI가 대신 생각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묵상과 사유의 권리를 지켜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제4계명 : 정직의 원칙 (Integrity) AI의 결과물을 자신의 영성인 양 속이지 말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제5계명 : 인격의 원칙 (Personhood) 기계와의 대화가 하나님 및 이웃과의 인격적 교제를 대체하게 하지 말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 10:24–25) 제6계명 : 책임의 원칙 (Accountability) AI 사용의 결과와 영향력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제7계명 : 존중의 원칙 (Respect) AI로 타인의 명예와 존엄을 훼손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창 1:27) 제8계명 : 안식의 원칙 (Sabbath) 기계를 끄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안식의 시간을 사수하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제9계명 : 청지기의 원칙 (Stewardship) AI를 하나님 나라 확장의 선한 도구로 사용하라.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제10계명 : 소망의 원칙 (Hope) 기술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라. “하늘에서 그의 아들이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니…”(살전 1:10)
    • 영성
    • 목회
    2025-12-29

실시간 목회 기사

  • “뭐? 기도는 노동이라고?” (1)
    1.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기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저는 기도라는 표현보다 대화라는 표현이 더 좋습니다. 누군가는 “기도는 노동이다.”라고 했는데요. 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이 말이 싫은데요. 싫어도 너~~무 싫습니다. 기도가 노동이라는 개념이 꽉 들어찬 사람들은 하루 종일 힘들게 일(노동)하고 왔는데요. 또 자기 전에 기도라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질려버립니다. 아니면 출근해야 하는데 일어나자마자 노동이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2. 종종 경험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건 막상 기도를 하면 처음엔 힘든데 점점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보람되고 기쁩니다. 하지만 노동으로 인식한 기도 시간이 끝나고 다시 노동이라는 기도 시간이 다가올 때 즈음 부담감부터 올라옵니다. 기도가 노동이라는 생각에 기도를 떠올리면 부담부터 느끼게 만듭니다. 3. 물론 노동이라고 표현할 만큼 힘든 때가 있습니다. 잘 아시듯이 중보적 기도가 그렇습니다. 나라와 민족, 열방과 세계를 위한 기도는 씨름의 기도입니다. 남을 위한 중보적 기도도 고통의 기도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발생하면 더 힘든 씨름 기도가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많은 경우 기도는 본질적으로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의 시간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말입니다. 4.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기도의 행복을 많이 배웠어요.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많이 배웠습니다. 체험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말입니다. 딸내미들이 어릴 때였어요. 한별이, 은별이가 새벽에 반드시 화장실을 갑니다. 거실에서 기도하던 저는 딸내미가 사랑스러워서 제 옆을 지나갈 때 꼭 안아줍니다. 안아주면서 그녀들의 온기를 느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5. 한별이는 가볍게 안아주고 금방 들어갑니다. 은별이는 제가 안아준 팔을 풀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요. 피곤한 나머지 제게 기댑니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안겨 있습니다. 나도 딸내미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습니다. 순간 제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간질거려요. 부인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느껴지는 것입니다. 제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안고 있는 그 자체로 온 영혼과 마음, 생각이 사랑으로 소통되고 있음을 느끼며 전율이 일어납니다. 6. 딸내미는 들어가고 저는 사랑의 전율 속에서 다시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갑자기 성령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와 깊은 아버지 사랑이 느껴집니다. 십자가에서 생명 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눈물이 한 방울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 사랑에 제 영혼이 벅차오릅니다. 성령님의 친밀하심이 느껴집니다. 성령님의 임재로 내 몸을 감싸 안아주십니다. 이거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성삼위일체 하나님 마음에 잠겨있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3-04
  • 영적인 루틴을 지키라!
    1.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6:4)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농구선수의 징크스와 루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시합 전에 청결을 점검해요. 목욕부터 집안 대청소까지 강박적으로 점검하는데, 그렇게 해야 경기에서 실수를 줄이고 시합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2. 그가 농구 시합 중에 자유투를 던질 때가 있는데요. 던지기 전 공을 바닥에 5번 튕깁니다. 그리고 던졌는데 들어가면 계속 5번씩 공을 튕기고 슛을 던져요. 자유투가 안 들어가면 횟수를 바꿔서 7회 혹은 10회 바닥에 공을 튕기죠. 슛이 성공하면 그 숫자를 기억하고 계속 그 횟수만큼 튕기고, 안 들어갈 때가 오면 다시 공 튕기는 횟수를 조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도 루틴이 있어요. 타석에 들어서면 꼭 야구 배트를 세 바퀴 돌리고 허리와 팔을 세 번 까딱거립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며 실수를 줄이게 된답니다. 이렇게 징크스는 이겨내고, 자신의 좋은 리듬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루틴이라고 하는데요. 3. 저도 신앙의 루틴이 있습니다. (목회자분들마다 영적 루틴이 다를 수 있는데요. 중심은 비슷하거나 같을 것입니다.) 신앙, 목회 본질을 지키는 힘과 삶이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7년 신학생 시절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재발견하였는데 삶과 신앙의 분기점이었어요. 그렇게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추구하면서 영적 루틴이 생겼습니다. 충분히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삶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 바라보는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겁니다. 영적 루틴이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4. 오전에는 가급적 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외부적인 소음을 차단합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SNS를 내려놓고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아요. 사도들의 고백처럼 말씀과 기도 시간으로 선포하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또 다른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영적 루틴으로서 최대한 지키려고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시면 또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방향성이 제게 유익해요. 5. 현재 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가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집회 일정이 바빴어요. 매주 부흥회 초청이 있었고, 전국에 정기모임과 정기집회도 25곳이 넘었습니다. 바쁜 집회 일정도 영적 루틴을 지키면서 다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2일은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가정에 먼저 충실하도록 이끄시며, 사역자가 아니라 아들이요 친구로서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삶에 집중하게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머물러 있는 시간입니다. 6. 어떤 시즌에는 한 달 이상 모든 집회를 거절하거나 1달 이후로 날짜를 조정했습니다. 5~6개월에 한 번씩은 집에서 두문불출했어요. 조용히 성령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멈춰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영적인 루틴이 형성되었어요. 이제 제 영혼에 각인되었습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우게 하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7. 제 사역이 바빠지기보다, 제 이름이 알려지기보다, 우리 교회가 알려지기보다 예수님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제 삶을 통해 예수님 알려지시려면 영적 루틴을 목숨같이 지켜야 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지런해야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분들 사역과도 비교할 필요 없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오직 비교의 대상은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지키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숫자에 속지 않고 성장과 성숙을 함께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연합을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머물러 계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23
  • AGI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데스크 칼럼/양봉식 국장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고(AGI), 노동의 가치가 희석되며, 인간의 생존이 기본소득과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게 될 미래가 목전에 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기술적 적응을 고민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변화는 명백히 ‘인간 이해의 문제’다.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한 자유와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기술에 의해 다시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AG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역할 자체를 흔드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최첨단 기술 대응 전략이 아니다. 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신앙적 재정립이다. 1. 노동이 사라질 때, 소명은 더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노동의 총량이 줄어드는 미래에, 일에서 정체성을 찾던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치를 노동의 유무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Homo Faber)’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다. 그러므로 노동이 소멸해가는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명이 곧 직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명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삶의 본질이 되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다. 2. 기본소득의 시대, 탐욕 대신 절제를 배워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스템적으로 해결되는 사회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대한 위기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삶의 치열한 의미 또한 증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는 풍요가 종종 영적 타락과 궤를 같이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풍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풍요를 절제 없이 향유하는 삶은 경계한다. 인간은 소비로 채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참된 평안을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GI 시대에 우리가 훈련해야 할 영성은 ‘더 많이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가는 태도’다. 단순한 삶, 자발적인 절제,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의 영성은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형태가 될 것이다. 3. 통제받는 사회 속에서 자유의 의미를 지켜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AI는 인간을 해치기보다,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들 것이다. 건강을 위해, 사회적 안정을 위해, 더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은 ‘자유’다. 인간은 실수할 자유, 실패할 자유,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를 가진 존재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변화,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치 있게 여긴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는 안전할지 몰라도 인간다운 사회는 아니다. 편리함보다 자유를, 효율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치다. 4. 인간이 잊게 될 질문을 교회가 붙잡아야 한다 AGI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조건이 완벽히 해결되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깊은 공허가 들어선다. 교회는 세상이 잊어버릴 이 질문들을 끝까지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왜 희생해야 하는가?" "왜 진리를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기술은 답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답이 주어진다. 5.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영성의 깊이로 결정된다 다가오는 시대는 인간이 더 똑똑해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시험받는 시대다. 노동이 줄어들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쉽게 삶의 방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우고, 풍요 속에서도 절제를 배우며, 통제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영성이다. AGI 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는 위기가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데스크 칼럼
    2026-02-19
  • 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2)
    1. 내가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하신 찬양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런 노력이 찬양을 인도하는 실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찬양 인도가 목적이라서 평소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가운데 많은 은혜 끼치고 싶어서가 목적이 아닙니다. 2. 다시 말씀드리지만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나도 순수하게 사랑해서 존중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찬양 사역에서도 성령님께서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순수함과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태도, 감동 주실 때 메모하며 기록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를 잘하는 것보다 동기의 점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기는 평소 삶의 태도에서 점검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찬양들이 모이면 다시금 성령님께 여쭤봅니다. 3. “성령님, 어떤 순서로 찬양드리기 원하세요? 가르쳐 주시겠어요?” 여쭤보고 기도드리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결코 늦지 않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감동 가운데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그 순서대로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찬양 인도할 때는 내 안에 계시며 이 장소에 계신 성령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인식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목소리에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름부으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4.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 인도를 위해 성령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사랑해서 성령님을 찾으려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을 점검하며 강대상 앞에서 좀 더 집중하여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함께 찬양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립니다.” 5. 조용히 마음 가운데 이런 고백을 드리며 첫 찬양을 살펴봅니다.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영적 상태인지 또 점검한다는 겁니다. 내면에 성령님 함께하심으로 인한 안정감과 평안함, 설레임과 기대감, 나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조용히 입을 엽니다. 찬양을 시작합니다. 찬양 인도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쉬운 사역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평상시에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살아간다면 사역 현장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 받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믿습니다. 6. 우리 모두 찬양 인도자로 살지 말고 평소 찬양 드림을 기뻐하는 자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는 찬양”도 인도할 때가 아니라 평소 개인적인 찬양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사용하시길 소망합니다. 순수하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찬양을 합시다. 그러다 보면 찬양 인도의 현장에서도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심을 자연스레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10
  • 목회자의 우선순위 세 가지
    AI이미지 그림 1. 개척 3년차 즈음 연말이었습니다. 감동을 주시는 듯해서 한 달 정도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무를 때였어요. 제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기 원하시는지 여쭤보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삶과 신앙, 목회 가운데 본질적인 우선순위를 자주 점검하도록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해주신 내용들이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2. <첫째, 친구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나 자신이 목사이기 전에 자녀요, 친구의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실 때 사역 성공했다는 사람들 칭찬 많이 받는지의 여부로 판단하시기보다, 하나님 자녀요 친구로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가장 행복할 때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목사인 제가 진정 예수님만으로 인하여 행복할 때, 저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되는 성도님들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성령님께서는 수시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3. “태성아, 교회 갈 때 목사의 정체성으로 먼저 가지 말자. 너 역시 다른 성도들처럼 먼저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친구로서 교회에 가자. 성도로 교회에 가자.” 그래서 집에서 교회로 출발해서 이동하면서 계속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면서 의식합니다. 목사가 아니라 성도로 교회 간다는 인식을 체크합니다. 목사인 제가 먼저 아들이요 친구로서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젖어 들어서 행복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에서 행복을 누리고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4. <둘째, 가정에 충실하기> 가장 먼저 세우신 공동체인 가정에 충실한 목회자여야 합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잘 이끌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시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반대로 가정이, 자녀가 우상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목사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강단에 섰을 때 가족부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제 아내가 가장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는 간증을 하곤 하는데 주님께서 격려해주시는 음성처럼 느껴집니다. 5. 만약 제가 인도하는 예배에서 가족이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사역의 성공도 사람들의 칭찬도 예수님 보실 때 실패입니다. 다행히도 아내부터 아이들도 나름 좋게 평가해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목회자 가정이 행복한 모습을 볼 때 성도님들 가정도 주님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자 본받기를 힘쓸 것입니다. 저도 가정이 행복하신 선배님들의 강의나 책, 개인적 교제를 통해 본받고자 노력 중입니다. 6. <셋째, 하나님 앞에 머물기> 목사가 교회에 머물며 하나님과의 접촉과 만남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목사로서 이 정체성을 풍성하게 누려야 할 장소가 바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도 심방이나 성도의 교제, 부흥회, 긴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교회에 아들이요 친구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머물기를 즐깁니다. 7. 아버지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사랑하며 사랑받고, 교제 나누는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고자 개척 목회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그럴 때 목사가 교회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혼의 기쁨을 성도님들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하늘 아버지 앞에 자녀요, 친구로 나아가 말씀과 기도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1-13
  • 어떻게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
    1. “매순간 하나님께 열려 있다면 당신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라.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에 늘 주파수가 맞춰져 있어서 숨 쉴 때마다 하나님의 생명이 당신에게 흘러들고 당신을 통해 흘러 나간다면, 당신이 자신과 사람들과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얼마나 변할지 생각해 보라. 그런 삶은 그 자체가 기도일 것이다.” -<기도숨> 중에서 우리가 고통을 느끼고 지나치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잊고 있어섭니다.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동행하시는 것이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임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심에도 불구하고 그 임재를 놓치고 있어섭니다. 그 임재를 놓치는 만큼 외부의 충격에 반응하게 되는 겁니다. 2. 반대로 그분의 임재로 충만할수록 외부의 충격에는 점점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충격이 와도 덜 받고, 빨리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일상의 연습이 중요해요.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좋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첫째, 그분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이 진리이며 이미 성취되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반복 학습하며 공부, 묵상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진리가 마음과 생각에 각인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둘째, 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훈련을 위해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기다리는 훈련을 추천드립니다. 규칙적인 훈련으로서 말씀과 기도, 영성일기가 도움이 됩니다. 셋째, 삶 속에서 그 어떤 훈련보다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주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속 그분을 생각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프랭크 루박 목사님의 <1분 게임>, 로렌스 형제님의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참고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이 책들은 평생 반복해서 읽을 책 50권에 선정하여 읽고 또 읽으며 적용합니다. 4. 넷째, 그분께 자주 말을 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쭤보기도 중요해요. 여쭤보고 말을 걸면 종종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음성 듣기라고도 표현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 말을 걸거나 자주 여쭤보는 ‘이유’죠. 음성 듣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듣기에 목적을 두면 미혹당하기 쉽습니다. 이미 성경에 음성이 풍성해요. 우리의 목적은 그분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이 진리이므로 '존중해드린다는 의미'로 말을 거는 것입니다. 5. 성령님과 인격적이고도 친밀한 관계, 교제를 중요하게 여기며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열매들이 있습니다. 집필하게 하신 처음 책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에서 간증했습니다. 하루는 택시를 탔어요. 기사님이 혼자 이야기를 하시더니 곧 우십니다. 내리기 전에 기도 받으시고 예수님을 영접하세요. 전도하러 술집에 들어갔습니다. 저를 보더니 갑자기 여자 사장님이 울기 시작해요. 가정집에 들어갔습니다. 복음을 숨죽이고 들으면서 울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십니다. 6. 지금의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많은 교회들 부흥회 인도하며 설교를 더 잘 하고, 사역을 더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하긴 하지만 우선순위는 다른 부분입니다. 바로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식하는 삶입니다. 존중해드리는 삶입니다. 그 의미로 말을 걸고 대화하며 여쭤보기를 노력해요. 그리고 제 삶 전체로 삶의 예배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의 눈빛, 말투와 언어, 행동에 그분의 임재가 담겨있기를 원합니다. 저를 성전 삼고 계신 그분의 임재로 충만하기를 원해요. 성령님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놓치지 않고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그분의 임재를 원합니다. 7. 그래서 우리 교회의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예배도 모이는 사람의 숫자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어서 혼자일지라도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다는 그 사실로 충분함과 만족을 얻고, 성령님의 임재를 추구하며 머물러 있고자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예배자로 서 있는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부디 좀 더 성령님을 의지하고 찾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의식하든 못하든 그분의 임재가 자연스럽게 넘쳐흐르길 소망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을 통해 예수님께서 왕 되심이 이웃들에게 더 아름답게 드러나실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1-07
  • 그리스도인의 AI 사용 십계명
    AI 기술이 도구(Tool)를 넘어 인간의 사고방식까지 규정하려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중심을 잡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AI 사용 십계명'을 제안합니다. 이 원칙들은 기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주인이 누구인지 고백하며 지혜롭게 다스리기 위한 영적 가이드라인입니다. 제1계명 : 주권의 원칙 (Sovereignty) AI는 도구일 뿐, 오직 하나님만이 지식과 지혜의 근원이심을 기억하라.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그의 입에서 지식과 명철이 나옴이라”(잠 2:6) 제2계명 : 분별의 원칙 (Discernment) AI의 환각을 경계하고, 모든 정보를 말씀의 필터로 걸러내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더라”(행 17:11) 제3계명 : 창조의 원칙 (Creativity) AI가 대신 생각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묵상과 사유의 권리를 지켜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제4계명 : 정직의 원칙 (Integrity) AI의 결과물을 자신의 영성인 양 속이지 말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제5계명 : 인격의 원칙 (Personhood) 기계와의 대화가 하나님 및 이웃과의 인격적 교제를 대체하게 하지 말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 10:24–25) 제6계명 : 책임의 원칙 (Accountability) AI 사용의 결과와 영향력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제7계명 : 존중의 원칙 (Respect) AI로 타인의 명예와 존엄을 훼손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창 1:27) 제8계명 : 안식의 원칙 (Sabbath) 기계를 끄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안식의 시간을 사수하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제9계명 : 청지기의 원칙 (Stewardship) AI를 하나님 나라 확장의 선한 도구로 사용하라.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제10계명 : 소망의 원칙 (Hope) 기술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라. “하늘에서 그의 아들이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니…”(살전 1:10)
    • 영성
    • 목회
    2025-12-29
  • 성령님 인도하시는 예배
    1. 잘 아시듯이 예배는 신앙생활의 기본이자 기준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해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과 노력으로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예배자가 될 때만이 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주일에 한 번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 평소에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살 때 진정한 예배가 가능합니다.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이 곧 ‘예배의 삶’입니다. 2. 교회마다 많은 예배가 드려지는데요. 문제는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리며 봉사해도 창조의 목적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고요. 오히려 비판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친구, 연인’으로서 기쁘게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일꾼’은 늘 일에 시달리며 대가를 요구하게 되어 있어요. 대가에 집착하게 되어 있지요. 기복신앙입니다. 3.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무언가를 받기 위해 갑니다. 예배를 하나님께로부터 무언가를 받고 돌아오는 행사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좋은 설교를 청취하려고 교회에 가요. 어떤 사람들은 감동적인 찬양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교회에 갑니다. 하지만 찬양 이외의 시간, 특히, 설교 시간에는 바로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굽니다. 설교가 끝날 때 즈음 누가 깨우지 않아도 놀랍게 알아서 일어납니다. 4. 어떤 사람들은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재앙이 다가오거나 구원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참석합니다. 천국 보험 든 것처럼 출석체크를 할 뿐이죠. 여전히 삶의 주인은 자신이며, 자신의 노력에 하나님께서 제동을 거시지 않도록 하나님께 눈도장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합니다. 축도 끝나면 찬양 반주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나는 성도들도 있어요. 성도들 대부분은 5분도 되지 않아 예배당을 벗어나 버립니다. 한 번은 우리나라를 방문하셨던 유명한 외국 목회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5. “몇 해 전에 서울의 한 유명한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인도했다. 설교와 축도로 예배를 마친 다음, 나는 개인 사물을 챙기느라 회중석을 뒤로 하고 돌아서서 통역을 맡았던 아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축도를 끝내고 몇 십 초도 안 되어서, 내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예배당 안은 그야말로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그 많던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자마자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렇게 빨리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인가!” 6.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어요. 정말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예배가 끝나도 그 장소에서 빨리 떠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종종 부흥회를 인도합니다. 그때 예배 중에 큰 은혜를 부어주시면 늘 비슷한 현상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청년들이 되었든, 어른들이 되었든 예배 장소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성령님의 임재하심, 주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한 그 장소에서 좀 더 오래, 더 깊이 머무르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다음 날의 삶을 위해 돌아가 주시기를 부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7. 제가 아는 어떤 자매님은 금요일에 퇴근하면 서둘러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향해요. 4시간 정도를 기차를 타고 한 작은 교회에 도착하죠. 그 교회를 섬깁니다. 금요일 예배 시간에 도착하여 다음 날 새벽이 되도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합니다.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 봉사하고 주일 오후 예배까지 드린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옵니다. 단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모든 교회가 예배에서 성공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8. 우리 모든 예배에 성령님의 임재와 체험이 있는 예배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교회마다 예배마다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령님 주도하시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일상의 삶에서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삶의 예배에서 성공하는 예배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5-12-16
  • 24시간 성령님 바라보기
    1. 진리의 측면에는 성령님께서 이미 내 안에 계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바라볼수록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령님과 친밀할수록 예수님 영광을 위한 삶이 진정한 기쁨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언제나 바라보는 삶이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처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도 이렇게 언급하세요.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사실이며 성취된 진리이지만 내가 모를 수 있음을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바르게 알고 존중해드리는 삶을 살자고 계속 이야기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라는 책을 집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습니다. 이후에도 성령님에 대한 책들을 집필했고, 주제가 다른 책들을 집필하면서도 꼭 성령님의 인격성에 대해 설명하기를 힘썼어요. 제 개인적으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성령님의 인격성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끊임없이 훈련시켜주십니다. 3. 20살에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이후 28년 동안 성령님과 친밀하게 대화 나누고 동행하는 삶을 훈련받으면서 절감해요. 일평생 성령님의 도우심이 더욱 필요하다는 진리를요. 무엇보다 예수님을 24시간 바라보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오직 성령님과 친밀한 만큼, 성령님과 동행하는 만큼, 성령님과 가까워지는 만큼만 예수님을 바라보며 동행하는데 성공할 수 있습니다. 4.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에 지름길이 있다면 성령님을 24시간 의지하며, 24시간 성령님을 바라보고, 24시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친밀해지고자 집중할 때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예수님께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는 만큼 예수님을 24시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을 빼놓고 직접 예수님께로 나갈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내려놓으면 좋겠어요.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단 한 순간도, 그 어느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아요.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없고, 자녀의 삶도 살 수 없습니다. 5. 그렇다면 성령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성령님을 잊고 생활하다가 갑자기 성령님이 생각났나요?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거세요. 성령님께 친구 대하듯 친근하고 순수하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식적으로 계획적으로 자주 말을 거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그분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아도 함께하심이 진리이니 믿음으로 동행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입시다. 말을 겁시다. 어렵지 않아요. 이렇게 시작해보세요. 6. “사랑하는 성령님, 저와 동행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제가 성령님을 친하게 느끼지 못할 때도 십자가 은혜 때문에 저와 친밀하게 이미 동행해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도 성령님께서 저를 통해 친밀함을 느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도와주시겠어요? 성령님을 더 알고 싶어요. 말씀으로 가르쳐주시고, 기도중에 만나주세요. 이미 24시간 동행하시고 계신 성령님을 저도 24시간 의식하고 의지하고 동행하는데 익숙해지도록 도와주세요. 성령님과 저도 친한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7.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내 안에서 친밀하게 동행하시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말을 걸면 그분께서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내 사랑아, 네가 이제야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구나! 드디어 나를 생각하고 바라보는구나. 그래, 나는 언제나 네 안에 있었고 너와 함께 하고 있단다. 내가 너와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내가 도와주리라!” 8. 성령님과 친밀해지는 과정 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감동이나 세미한 음성으로 속삭이시는 사랑의 음성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음성이 안 들리고 느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는 증거는 느낌이 아닙니다. 십자가 은혜로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씀이 증거입니다. 느낌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며, 구원받은 것이 평소에 그냥 믿어지듯이 성령님과도 그냥 믿음으로 동행하는 겁니다. 9. 성령님에 대한 성경 공부를 추천드립니다. 여러 책들을 읽고 배우는 노력도 필요해요. 감동이 있으시다면 저를 통해 집필하게 하신 책들을 빌려서라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과 24시간 동행하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최고의 사역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하시는 은혜를 24시간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5-12-08
  • 성령님께 한 단어 한 단어 진심을 담아 표현하기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29:20) 1. <팬텀싱어>라는 방송을 봤습니다. 남성 4중창 크로스 오버 팀을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시즌 1부터 꽤 호응이 좋습니다. 일반인부터 오페라 가수, 뮤지컬 배우, 연극배우, 판소리 가수 등등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사연도 제각각이라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점도 좋은데, 드라마틱한 인생에 걸맞은 노래 실력으로 감동도 주니 참 좋습니다. 그 중에 외국인 참가자가 눈에 띕니다. 남태평양 피지 섬에서 한국으로 성악 공부하러 온 소코 라는 참가자입니다. ‘첫 사랑’이라는 한국 노래를 부릅니다. 김효근 교수의 시에 음정을 붙인 아트 팝 가곡인데요. 심사위원 중에 유명한 작사가 김이나 씨가 노래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아서 말합니다. 2. “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우리 가사를 더 잘 표현했어요. 우리한테는 너무 당연한 한글이기 때문에 표현에 더 소홀하게 되는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소코 씨는 가사 단어 하나하나를 자기 나라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고민하고 진지하게 해석하셨어요.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잘 표현하셨어요. 우리나라 가수들이 이런 점은 더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대'라는 단어는 '너'와 '당신'이라는 단어와는 다름을 잘 표현해주셨어요. 우리나라 가수들도 한 단어 한 단어를 노랫말로 뱉어낼 때 그 단어의 깊은 의미와 감정을 진지하게 해석해내셔서 불러주시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나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3.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노래의 감동과 김이나 씨의 심사평이 성령님과의 교제에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종종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방법으로 편하게 말을 걸도록 추천합니다. 여쭤보기, 질문하기도 말을 거는 겁니다. 내 생각과 기분, 감정들을 성령님께 말로 표현하는 것이 그분과 교제 나누는 좋은 방법입니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리고자 할 때 함께 사용하면 좋은 방법이 간접적인 침묵입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넌 좀 생각하고 말해!” 4. 그런데 성령님께도 생각을 하면서 말씀드리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진지함과 순수함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진심을 담아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나누고 싶은 겁니다. 저 같은 경우 교회 오자마자 앉아서 성령님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의식합니다. 이미 함께 계시지만 존중해 드리고 싶은 나의 의지를 담아서 초청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께 계신 성령님을 기다립니다. 제가 그분께 순수하게 진심을 담아서 한 단어, 한 문장을 고백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간접적인 침묵 모드가 됩니다. 5. 얼마나 침묵 할까요? 중요한 건 내가 성령님께 순수하고도 진심을 담아 잘 존중해 드리는 언어생활이 가능하겠다 싶을 때까지 입니다. 가수들이 노래 시작 전에 잠시 눈을 감고 노래 가사에 집중하듯 침묵합니다.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기다립니다. 언제부터인지 많은 말이 중심이던 제 기도생활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진심을 담아 한 단어, 한 문장 표현하는 관계 중심의 기도생활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재인식하면서부터입니다. 6. 그래서인지 종종 제 기도 시작은 침묵으로 시작됩니다. 침묵이 길어지면 침묵으로 시작 된 기도가 침묵으로 마칠 때도 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 영혼의 충족감을 얻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들으시고 나도 성령님을 듣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진심을 담아 “성령님~”하고 부르는 것조차도 내가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만을 담아 입술로 부르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점검합니다. 7. 간접적인 침묵 가운데 성령님의 함께 계심을 나타내주십니다. 그럴 때면 제 영혼이 성령님의 사역을 먼저 경험합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침묵으로 성령님의 임재에 집중하다 보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생명주신 예수님 사랑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 사랑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 중심이 순수함과 진심이 담기며 영혼의 충만감이 커집니다. 그리고 오늘의 삶도 어떻게 복음적인 순종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 드릴까를 성령님 안에서 고민합니다. 8. 부디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바라보게 도우시는 성령님 안에서 침묵해보세요. 순수함과 진심을 담아 말을 거세요. 성급하게 말하기보다 한 단어, 한 문장,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씀드리는 훈련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순수한 동기 점검을 마친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더욱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살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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