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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명의 아버지를 거쳐 만난 ‘진짜 아버지’… 오테레사가 전하는 치유와 화해의 대서사시
    인간의 존재는 부모 없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은 든든한 울타리이자 따뜻한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지우고 싶은 상처이자 분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여기, 한반도의 남과 북, 그리고 중국이라는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인생의 절반씩을 살아온 한 여성이 있습니다. 최근 저서 <진짜 아버지>(아르카)를 출간한 박예영 사모(오테레사)는 자신의 50년 세월을 관통하는 네 명의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에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북한의 ‘아버지 대원수’부터 육신의 아버지, 그리고 영적 아버지를 지나 ‘진짜 아버지’인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그 파란만장한 여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편집자 주] 1. 북한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그리고 첫 번째 ‘아버지’ 박예영 사모는 북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모든 주민이 그러하듯, 그에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주어지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대원수님’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그분은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집마다 걸린 초상화를 보며 매일 감사의 인사를 올렸죠. 매스컴과 교육을 통해 주입된 그 이름은 제 가슴 깊은 곳에 ‘존경과 흠모’라는 단어로 새겨졌습니다.” 어린 박예영에게 그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였고, 절대적인 기준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리고 박 사모가 그 땅을 떠나기 전까지도 그분은 인생의 처음이자 단 한 분의 아버지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숙명이기도 했습니다. 2. 가난과 폭력의 그늘 속, 미움의 대상이었던 ‘친아버지’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두 번째 아버지는 자신을 무릎에 앉혀 키워준 육신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박 사모가 성장할수록 가장 미운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북한 체제의 모순 속에서 아버지는 술에 의지했고, 술기운은 곧 폭력과 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엄마의 출신 성분을 탓하셨습니다. 북한에서 신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평생 출세할 수 없다는 뜻이었고,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큰 한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술이 깨면 엄마를 위해 밥을 짓기도 하는 다정한 분이었지만, 술만 들어가면 돌변하는 모습에 저는 아버지를 원수처럼 미워하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박 사모는 훗날 한국에 와서야 아버지의 뒷모습에 담긴 눈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영하 50도의 혹한이 몰아치는 러시아에서 3년간 노동을 견뎌냈던 아버지 , 게가 상할까 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를 타던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말입니다. “제가 탈북한 후에도 아버지는 딸이 보고 싶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수백 리 길을 걸어 혜산까지 오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진심을 알지 못한 채 아버지를 미워하며 집을 뛰쳐나왔고 , 아버지는 제가 당신을 용서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2008년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가혹한 후회로 남는 대목입니다.” 3. 태국에서 만난 ‘세 번째 아버지’와 거부할 수 없는 울림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오기 전 태국에 머물던 시절, 박 사모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세 번째 아버지를 만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제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마 북한에서 ‘아버지 대원수님’이라고 불러왔던 습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하나님 아버지는 제가 이전에 알았던 아버지들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분이었습니다. 그분을 부를 때마다 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떨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라는 존재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시간 끝에 만난 진짜 창조주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그냥 좀 잘난 줄로만 알고 살았으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죄인’인지를 깨달으며 참회와 감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4. 오대원 목사와의 만남, 그리고 ‘오테레사’라는 새 삶 한국에 정착한 박 사모에게 하나님은 네 번째 아버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미국에서 온 데이비드 로스(David E. Ross) 선교사, 한국 이름으로 오대원 목사입니다. “성령께서 ‘오 목사님은 조선의 아버지다’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마’ 하시며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죠. 그것은 저를 새로운 딸로 삼아주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오 목사가 지어준 새 이름은 ‘테레사’였습니다. 박 사모는 오 목사의 성을 따 ‘오테레사’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중보기도 사역을 하며 살았습니다. 실제로 오 목사는 박 사모의 결혼식에서 친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입장했습니다. 그 손은 단순한 의전이 아닌, 사랑과 축복의 손이었으며 또 다른 삶으로의 연결이었습니다. 5. 이스라엘에서의 충격적 고백: “주님,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합니까?” 박 사모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2008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세계 기도집회 ‘컨버케이션’이었습니다. 160여 개국에서 모인 2천 명의 그리스도인 앞에서 그는 북한 대표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강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인 목사 앞에 가서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북한이 일본을 미워한 죄, 일본인을 납치한 죄를 대신하여 용서를 구하라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는 순간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놀란 일본인 목사님도 함께 무릎을 꿇고 서로 용서를 빌었죠.” 다음 날에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세계 평화를 위협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또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뒤늦게 억울함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전 세계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며 울었습니다. 그때 들려온 주님의 음성은 명료했습니다. “나는 죄가 있어서 세상에 내려갔니?” 아무 죄 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박 사모는 다시 한번 주저앉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북한을 사용하시기 위해 먼저 겸손하게 만드시려고 그를 무릎 꿇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크신 계획 앞에서 그는 자신이 그저 작은 도구였음을 깨닫고 무한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6. ‘악의 축’에서 ‘복의 축’으로… 응답받은 기도 박 사모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르는 전 세계인의 인식을 ‘복의 축’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 집회에서 한 미국인 여성 선교사가 다가와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것을 용서해달라”며 눈물로 사과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 선교사에게 박 사모의 기도 제목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11일, 1988년부터 이어져 온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 순간 저는 확신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북한도, 일본도, 미국도 모두 사랑하시는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는 사실을요.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미 용서와 화해의 선포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7. 남북통일은 이미 우리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박 사모의 곁에는 17년째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 김승근 목사가 있습니다. 숙대 앞에서 ‘킹스컵밥’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숙대디’라고 불리는 남편은 박 사모에게 때로는 남편으로, 때로는 아빠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었습니다. “저희는 ‘통일 가정’입니다. 남한 출신 남편과 북한 출신 제가 만나 신학적 교리로 다툰 적 없이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이미 우리 가정에는 남북통일이 이루어진 셈이죠.” 그는 이제 고향 김책으로 향할 날을 꿈꿉니다. 가서 아직 고향에 남아있을 동생을 찾고, 아버지와 막내 동생의 묘소를 돌보며 친척들에게 ‘진짜 아버지’를 소개해 주고 싶어 합니다. 또한 고향 아이들이 원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밥을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오늘도 기도합니다. 박예영 사모는 인터뷰를 마치며 독자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버지가 있는데도 아버지를 모르는 것은 스스로 ‘고아’가 되기로 결정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탈북자라 불러도, 저의 분명한 정체성은 ‘하나님의 딸’이라는 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를 만나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회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고난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그의 삶은, 이제 미움을 넘어 사랑으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박예영(오테레사) 1976년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태어나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7월에 한국에 왔다. ‘고난의 행군’ 때문에, 그저 생존을 위해 육신의 아버지와 김일성이라는 아버지 둘을 두고 북한을 떠난다고 생각했으나, 2차에 걸친 탈북 과정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인생과 이 민족의 진짜 아버지이심을 뼈저리게 깨닫고 만다. 남한에 와서 신학을 하고 태백산에 올라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운동까지 펼치면서 “통일코리아는 뉴코리아(New Korea)다”라는 비전을 받았고, ‘통일비전캠프’ 등의 통일운동과 기도 사역에 동참하면서 ‘통일소녀’와 ‘부흥소녀’라는 애칭을 얻었다. 예수전도단 DTS 훈련 과정에서 오대원(David O Ross) 목사를 만나 영적 수양딸이 되어 얻은 이름 ‘오테레사’로 한동안 알려졌고, 2009년 남에서 만난 탈북민 정착도우미 김승근과 결혼할 때 저자의 손을 잡고 입장해준 이는 당연히 오대원 목사였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국립통일교육원 교육위원, 코스타 강사 등을 역임했다. 북한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고 통일운동을 펼쳐오는 가운데 ‘탈북자’ 대신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을 뜻하는 ‘북향민’ 용어가 널리 쓰이도록 앞장서기도 했다. 현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청년미래위원장,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사)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대(평통연대) 전문위원, CBMC 뉴코리아지회 회장 등으로 섬기고 있다. 2021년 민간통일운동 유공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202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 평화 챌린지에 부부가 출연한 영상을 올려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감리교신학대학원 신학석사,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Wesley Theological Seminary(미국 워싱턴DC) 목회학박사이며,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정치법학과 박사과정 중이다. 어려운 북향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돕기도 하며, 통일가정을 이룬 남편과 함께 앞선 통일을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payy2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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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8
  • “선교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 “선교는 결국 사람이 남는다” “선교는 사람이다.” 이현국 목사는 이 말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내뱉었다. ▲선교 사역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밝힌 이현국 목사(운화교회) 그의 목소리에는 30여 년의 목회와 선교 여정이 응축된 단단한 울림이 배어 있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신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 남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건물이 크고, 프로그램이 많고, 헌금이 많아도 제자가 세워지지 않으면 그건 잠깐의 열매일 뿐이죠.” 그는 “선교란 사람을 세우는 일이며,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그가 쓴 책 『사람을 세우는 선교』(쿰란출판사)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책 속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일도 결국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 이현국 목사는 경기도 성남의 온화교회 담임목사로, 1990년대 초부터 인도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선교 여정은 ‘성공 스토리’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그 안에는 ‘실패’와 ‘절망’, 그리고 ‘회복’을 통한 진정한 선교의 본질 발견이 담겨 있다. ■ “열정과 재정으로 시작했지만… 실패를 통해 배웠다” 그의 인도 선교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같은 노회의 한 목사로부터 인도 마니푸르 지역의 소식을 들었다. “그곳 인구의 40퍼센트가 기독교인이라 들었어요. 그래서 그곳을 중심으로 선교 거점을 세우면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등으로 복음이 확산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는 곧바로 한 인도인 신학생(D)을 소개받았다. 그는 신학교 건립을 요청했고, 온화교회는 열정적으로 응답했다. “기도하고 헌금하면 하나님이 하시겠지요. 그렇게만 믿었습니다.” 교회는 매월 50만 원으로 시작해 점차 후원 규모를 늘렸다. 2008년 이후에는 1억 원 가까이 지원하기도 했다. 신학교 건물 건축, 운영비, 교회당 건축까지 합쳐 약 1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그 재정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보니 현지인 리더의 사생활 문제, 재정 부정, 관리 실패가 연이어 드러났습니다. 결국 신학교는 무너졌죠.” 그는 “그때 선교의 본질을 몰랐다”며 회고했다. “열정만 있었지, 선교가 뭔지 몰랐어요. 사람을 세우지 않고 돈만 보냈죠. 그게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 “선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현국 목사는 그 실패를 통해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으로 하는 겁니다.” 그는 한동안 인도 사역을 중단했다. 그러나 ‘왜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깊은 고민 끝에 선교의 본질을 다시 성경에서 찾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를 세웠지요. 그게 바로 선교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제자 삼는 제자’라는 원리를 붙잡았다. 그제야 그가 말하는 ‘사람을 세우는 선교’의 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 피터 티우마이와의 만남 — “한 사람으로 다시 시작하다” 그런 전환의 시기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 그가 바로 인도 나갈랜드 출신의 피터 티우마이(Peter Thiumai) 교수였다. ▲이현국 목사는 선교의 동역자 피터 티우마이(Peter Thiumai) 교수를 통해 선교자의 사람을 세우는 일을 사역하고 있다. “그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40대 젊은 교수였습니다. 신앙이 진실하고, 제자 양육에 열정이 있었어요.” 피터 교수는 기존 신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자, 디마푸르 지역의 작은 월세집에서 학생들과 함께 합숙하며 복음 전도를 시작했다. 이 목사는 그에게 재정적 후원을 약속하는 대신, 단 하나의 원칙을 제시했다. “먼저 교회를 개척하고, 제자를 세워 자립하시오.” 그것이 멘토링의 출발점이었다. 피터는 곧 집을 떠나 한 교단의 수양관을 빌려 신학교를 열었고, 교회를 개척했다. 몇 년 후 그 교회는 스스로 자립했다. “그는 매년 충실하게 보고서를 보내왔고, 사역의 결실이 보였어요. 저는 매년 그를 만나 함께 멘토링을 했습니다.” ■ “제자를 세우는 신학교, 1,000개의 교회를 낳다” 10년이 지난 지금, 피터 티우마이의 신학교는 인도 동북부 6개 지역에 ‘제자훈련센터(DTC)’를 운영하며 1,00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죠. 하지만 직접 가서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더군요. 바로 이것이 ‘제자 삼는 제자’의 선교였습니다.” 그는 “이 신학교는 단순한 학문 기관이 아니라, ‘제자를 세우는 제자를 양성하는 학교’”라며 “피터의 신실함과 헌신은 ‘사람 중심 선교’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 저서 『사람을 세우는 선교』 ― 선교의 본질로 돌아가다 ▲현지인 한 사람을 멘토링하여 10년만에 천교회를 세운 이야기를 수록한 책 이현국 목사는 이러한 여정과 깨달음을 담아 책 『사람을 세우는 선교』(쿰란출판사)를 펴냈다. 그는 책에서 선교의 실패와 성공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 본질을 가르치십니다. 건물을 세우는 선교에서 사람을 세우는 선교로 돌아올 때 비로소 복음의 생명이 살아납니다.” 책은 4부 구성으로 되어 있다. 1장은 “멘토링을 통한 제자 양육”을, 2장은 “피터 선교사의 제자 세우기”, 3장은 “제자의 제자가 세운 교회들”, 4장은 “신학교와 훈련센터 운영의 실제”를 다룬다. 그는 각 장에서 ‘사람 중심의 선교’가 어떻게 교회 자립과 선교 확장을 이끌어냈는지를 실제 사례로 보여준다. 책의 부제처럼, “선교는 사람에게서 시작하여, 사람을 통해 진행되며, 결국 사람이 남는다.” ■ “실패의 뿌리는 무지였다” 이 목사는 자신의 실패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때 저는 선교를 잘 몰랐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면, 현지인이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선교가 아니라 송금이었습니다.” 그는 “선교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라며 “감동으로 시작해도 체계적 훈련과 평가가 없다면 오래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선교사도, 현지인도, 후원 교회도 모두 ‘사람 세우기’ 원리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면 재정은 따라옵니다. 반대로 돈으로 사람을 세우려 하면, 결국 둘 다 잃습니다.” 그는 자립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선교의 목적은 현지의 자립입니다. 하지만 자립은 건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제자 삼는 제자가 세워질 때 자연스럽게 자립이 옵니다.” 그는 현지 교회들이 스스로 땅과 물질을 헌신하며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지 성도들이 제자로 성장하면 그들은 주체가 됩니다. 스스로 목회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죠. 그게 진짜 선교입니다.” ■ “한국 교회 선교,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선교 패러다임에도 경종을 울린다.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보내는 선교’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우는 선교’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는 ‘후원금 중심 구조’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교회가 돈만 보내면 선교사가 알아서 할 것이라 믿는 구조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그건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세우지 않으면 그 사역은 반드시 멈춥니다.” 그는 선교사를 의료인 훈련 과정에 비유했다. “의사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 전문의가 되잖아요. 선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훈련, 멘토링, 실제 사역 경험을 거쳐야 진짜 현장에서 설 수 있습니다.” ▲재정과 선물 중심에서 현지인 사람을 먼저 세우는 것을 우선하는 선교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이현국 목사 “선교사를 세우는 목회자, 교회를 세우는 선교사” 이것은 이 목사의 선교의 경험에서 오는 모토이다. 그는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넘어서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목사로 2~3년 함께 사역하며 전도와 제자 양육, 지역 섬김을 실제로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 개척 과정을 지켜보며 훈련받으면, 선교지에서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온화교회가 실제로 그렇게 해왔음을 밝혔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 중 몇 분은 그렇게 훈련받고 국내 지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지금은 자립해서 잘하고 있죠. 저는 이걸 ‘국내 선교의 모델’이라 부릅니다.” ■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선교하지 말라” 이현국 목사는 선교의 시작점은 언제나 ‘사람’임을 강조한다. “돈이 있다고 바로 시작하면 안 됩니다. 먼저 준비된 사람을 찾으세요. 제자가 된 사람, 신실한 사람과 함께 하세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을 세우면 나중에 두 배의 고통이 옵니다. 차라리 시간을 두고 기다리십시오. 준비된 한 사람이 천 명의 미숙한 사역자보다 낫습니다.” ■ “인도는 지금, 복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현국 목사는 여전히 인도를 향한 열정을 멈추지 않는다. “인도는 14억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중 기독교인은 3퍼센트도 안 돼요.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영혼이 너무 많습니다.” 그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거리마다, 시장마다, 힌두 사원 주변마다 수많은 영혼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 일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교는 재정보다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면 재정은 따라옵니다. 사람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건물을 세워도 금세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핵심은 ‘사람을 세우는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인도의 미종족전도의 현황 ■ 실패에서 성공으로, 그리고 다시 ‘사람으로’ 이현국 목사의 선교 이야기는 ‘실패에서 출발한 성공’이다. 그는 실패를 통해 진리를 배웠고, 진리를 통해 사람을 세웠으며, 그 사람이 다시 사람을 세우는 순환을 만들어냈다. 그의 삶은 이렇게 요약된다. “선교는 제자 삼는 제자다.”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타는 확신이 있었다. “교회가 살아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소 지으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끝까지 사람을 세우는 선교를 하겠습니다. 그게 복음의 길이니까요.” <책 정보> 『사람을 세우는 선교』 | 저자: 이현국 | 출판: 쿰란출판사 | “선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제자 삼는 제자를 세워라.” 실패에서 시작된 참된 선교의 길, 그리고 ‘사람 중심 복음’의 회복. 목회자와 선교사 모두에게 길잡이가 되는 실제적 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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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5
  • “나는 문화로 싸우는 독립군”
    ▲문화를 통한 진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장이레 감독 이름에 담긴 사명, 신앙으로 열리다 장이레 감독의 본명은 장석봉이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서 널리 알려진 이름은 ‘장이레’다. 이 별명은 단순한 예명이 아니었다. 청년 시절 그를 만난 고(故) 하용조 목사가 “장은 짱이다”라는 유쾌한 격려와 함께 ‘이레’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님의 때”를 뜻하는 히브리어적 어감을 품은 이 이름은 장 감독의 이후 여정과 사명을 예고하는 듯했다. 불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우연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10살 무렵 처음 발을 들인 교회는 그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어린 장석봉에게 신앙은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했지만, 이후 연예계 아역 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문화예술의 현장을 경험했고, 신앙은 그의 내면에 조용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깊이는 30대 초반 한차례의 극적인 체험을 통해 열리게 된다. 그는 당시 폐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밥 잘 먹어야지 무슨 금식이냐”라는 자신의 생각을 뒤엎고, 한 목사의 권유로 10일간의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는 금식 중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봉사와 설거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10일이 지나 의사의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어떻게 이렇게 폐가 깨끗할 수 있느냐”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폐에 남아 있던 병의 흔적은 미미하게 사라져 있었다. 장 감독은 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가슴으로 신뢰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신앙은 그에게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실체가 되었다. 우연에서 시작된 역사 탐험 이후 그의 삶은 점차 “복음을 문화로 전하는 길”로 나아갔다. 요한계시록을 주제로 한 뮤지컬 제작, CGN TV 시절 ‘꿈꾸는 요셉’ 같은 작품을 통해 그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예술로 구현하는 일에 전념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는 6·25 전쟁 당시 ‘춘천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춘천대첩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춘천역 앞에서 열린 승전기념 행사를 마주친 것이 시작이었다. 민·관·군·경이 하나 되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다는 이야기는 처음엔 그에게 과장된 전설처럼 들렸다. 그는 “이게 과연 진짜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고, 오히려 그 의심이 발걸음을 역사 속으로 깊이 이끌었다.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찾으며 만난 것은 놀라운 사실의 연속이었다. 공장 여공들이 주먹밥을 쥐고, 학도병과 대한청년들이 폭탄을 나르며, 민초들이 단 한 시간을 버텨 군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던 실체적 기록들이 쏟아졌다. “이건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확신이 생긴 그는 3일간 금식 기도를 드린 끝에,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이 역사를 먼저 증언하기로 결심했다. ▲2024년에 개봉되었던 <춘천대첩 72시간>다큐멘터리 영화 다큐멘터리 「춘천대첩」의 탄생 그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데 쏟아부은 시간은 6년. 처음엔 영화 「작전명 폭풍」을 구상했지만,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계획’처럼 다큐·영화·뮤지컬 세 가지 형식으로 역사적 진실을 전하겠다는 비전을 품게 됐다. 그는 100명이 넘는 증언자를 만나며 사실 고증을 거듭했고, 국회·CGV·롯데시네마 등에서 시사회를 열며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완성까지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계엄 선포로 인해 극장 상영이 갑자기 중단됐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려는 진보 진영의 조직적 방해가 이어졌다. 동시에 보수 진영의 무관심은 그를 더욱 깊은 실망에 빠뜨렸다. 춘천시의 지원도 끝내 받지 못한 그는 결국 “집을 팔았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좌우 진영 모두에게 외면받았지만, 그는 “나는 좌우를 떠나 사실을 밝히려 한다”는 신념으로 버텼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그의 열망은 신앙적 확신과 맞닿아 있었다. “장이레 감독이 역사와 문화에 천착하는 이유는 단순한 예술적 취향이 아니다. 그는 공산주의가 “무력보다 더 무서운 방식으로, 문화 속에 사상을 스며들게 한다”고 경고한다.” 문화는 곧 전쟁터 장이레 감독이 역사와 문화에 천착하는 이유는 단순한 예술적 취향이 아니다. 그는 공산주의가 “무력보다 더 무서운 방식으로, 문화 속에 사상을 스며들게 한다”고 경고한다. 히틀러, 김일성, 소련이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온 역사를 예로 들며, “우리는 너무 모른다. 문화가 곧 전쟁의 최전선”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춘천대첩의 의미는 단순히 과거의 한 전투가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 이전, 민초들이 보여준 결집과 희생은 대한민국 건국의 분수령이었다. “역사를 모르는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그는 춘천대첩이 낙동강 방어선과 UN군의 개입,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존속을 가능케 한 결정적 사건임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의 시각에서, 그날 나라를 지킨 진정한 영웅은 위정자가 아니라 민초들이었다. ▲역사적 인식은 물론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르게 세워야 국가의 미래가 밝다고 말하는 장이레 감독 진보의 공격, 보수의 안일 하지만 그는 좌우 어느 쪽에서도 완전히 환영받지 못했다. 진보 진영은 그의 작업을 방해하거나 왜곡하려 했고, 보수 진영 역시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 “우리 진영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 진보는 (자신의 입맛에 낮게) 조금만 고치라며 미혹한다”는 그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이 정작 문화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진보 진영의 치밀한 문화 전략에 밀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겉으로는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공산주의적 사고가 깊이 침투했다”고 진단한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거짓과 카르텔적 구조, 그리고 교회마저도 세속적 권력 다툼에 휩쓸린 현실을 그는 성경적 관점에서 통렬히 비판했다. 장 감독은 “공산주의의 첫 번째 작전은 거짓말”이라며, 진영 논리에 갇혀 스스로를 속이는 시대를 향해 “회개와 고백 없이는 진정한 자유도 없다”고 경고했다. 다큐에서 영화, 그리고 뮤지컬로 「춘천대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장 감독은 현재 영화 「작전명 폭풍」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이 6·25 남침 작전명을 ‘폭풍’으로 명명했던 것에서 따온 이 제목은, 그가 3일 금식기도 중에 받은 영감을 담고 있다. 그는 홍천전투까지 포함해 “한국전쟁의 전모”를 영화로 완결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뮤지컬 제작을 통해 젊은 세대가 역사적 진실을 더 깊이 체험하도록 하는 꿈도 품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제작비 조달을 위해 국내외 투자자를 찾고 있지만, 그는 “나는 월세에 살며 집을 팔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열정은 단순히 흥행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문화로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그의 신앙적 사명감이 이 모든 노력을 지탱한다. ▲춘천대첩을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장 감독은 재정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고 밝혔다. 신앙이 삶을 이끌다 장이레 감독에게 작품 활동은 곧 신앙의 연장이다. 그는 “예수님이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셨다”고 말한다.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믿을 자유와 믿지 않을 자유”를 발견하며, 이를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뿌리로 본다. 정치적 좌우를 넘어, 인간의 죄성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것이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이다. 그는 복음이 단순한 종교적 교리나 사상이 아니라, 역사를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힘임을 믿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다큐나 공연을 넘어, ‘문화 독립 운동’이라는 이름의 영적 전쟁으로 자리 잡는다. 장 감독이 말하는 “문화 독립군”이란 표현에는, 복음을 드러내는 문화가 곧 시대와 사상을 변혁하는 힘이라는 신념이 담겨 있다. “문화는 전쟁터다. 우리는 문화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한다.” “민초들이 나라를 지켰다” – 후대를 향한 메시지 그가 「춘천대첩」을 통해 가장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라를 지킨 것은 위정자가 아니라 평범한 민초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민초들이야말로 진정한 주권자이며, 그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자유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매년 이들을 위한 진정한 예배와 감사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 감독은 이 메시지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젊은 세대가 직접 느끼고 고민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그는 학교와 교회에서 자비를 들여 상영회를 열며 학생들과 교인들이 “공산주의의 위협과 자유의 가치를 뼈아프게 깨닫는다”고 증언한다. “우리가 역사를 잊으면 미래는 없다”는 그의 호소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다음 세대가 스스로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는 간절한 부탁이다. 장이레 감독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이자 신앙의 증언이다. 어린 시절 불교 가정에서 출발해, 금식 기도를 통해 신앙의 깊이에 들어서고, 역사 속 숨겨진 진실을 문화로 드러내기까지—그의 여정은 단순히 한 감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한 도전이자 초대다. ▲ 정치적 좌우를 넘어, 인간의 죄성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것이 장 이레 감독의 작품 세계의 중심이다. 그는 말한다. “문화는 전쟁터다. 우리는 문화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한다.” 그의 발걸음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문화
    • 인터뷰
    2025-09-22
  • "천천히 부자 되기" - 철강공학자가 말하는 신앙과 투자의 품위
    주식회사의 시대, 우리는 왜 '주주가 되는 길'을 외면하는가? "이상하게도 나는 기업의 R&D를 총괄하며 수많은 자문과 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정작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회사'의 혜택을 절반만 누려왔다." ▲ <천천히 부자되기>저자 이덕락 집사 포스코에서 부사장과 기술연구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포스코 고문으로 일하는 이덕락 저자(남서울은혜교회 안수집사)의 솔직한 고백이다. 은퇴를 바라보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평생 월급을 받는 '근로자'로만 살았지, 기업의 성과를 함께 나누는 '주주'로는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개인적 반성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포항공대(POSTECH)의 교수·교직원·대학원생을 시작으로 인근 연구소·대학·기업을 다니며 '천천히 부자 되기'의 핵심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알아야 할 상식"이라는 확신 끝에 강의안을 책으로 묶었다. 제목은 단호하다. 《천천히 부자 되기》. 철강 분야에서 평생을 보낸 공학자가 왜 갑자기 투자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이 단순한 재테크 조언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오히려 그는 신앙과 일, 그리고 돈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탐욕의 회로를 끊는 투자 원칙 이덕락의 출발점은 역설적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성경의 명령을 투자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그는 답을 '방식의 전환'에서 찾는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택하는 길—개별종목 선택과 단기매매—은 변동성이 커서 마음을 빼앗기기 쉽고, 일상과 직무를 흔든다"고 그는 말한다. 모델을 맞추려는 강박, 호가창과 차트를 붙드는 불안, 저점·고점에 대한 집착이 신자의 내면을 소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시장 전체를 사는 장기·분산·적립은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 그는 이를 "탐욕의 회로를 끊는 신앙적 기율"이라고 표현한다. 투자 방식 자체가 신앙적 삶을 도울 수 있다는 발상이다. 그의 투자 원칙은 명확하다: - 무엇을 살 것인가? 개별종목이 아니라 주가지수 추종 ETF(국내·미국·글로벌 시장). 즉, '전체 경제의 흐름'에 참여하라. -언제 살 것인가? 타이밍을 재지 말고 매달 급여일에 10~30%를 기계적으로 적립하라(정액·정기 매수). - 얼마나 오래? 평생. 최소 20~30년의 복리를 전제로 한다. - 어떻게 흔들림을 견딜 것인가? 시세 확인을 습관에서 지워라. "처음엔 6개월쯤 궁금하지만 곧 일상이 된다." 그는 강연에서 미국 지수의 장기수익률 같은 수치를 예시로 들곤 하지만, 더 강조하는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리듬이다. "복리는 시간을 친구로 삼는 훈련이다." '빨리'가 아니라 '꾸준히'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 워런 버핏의 지혜, 신자의 생활 기율 "아무도 천천히 부자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그 유혹을 이기는 법 이덕락은 워런 버핏의 유명한 일화를 자주 인용한다. "사람들이 내 방식대로 투자하지 않는 이유? 아무도 천천히 부자 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한 투자 격언이 아니라, 현대인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이다. 특히 그는 '빨리'의 유혹이 신자에게 더욱 위험하다고 본다. 빠른 시세차익과 일확천금의 서사는 탐욕을 정당화하고, 결국 돈에 마음을 빼앗기는 구조를 강화한다. 반대로 ETF·장기·적립은 '느림'을 제도화하여 마음을 지켜 준다. 그는 이를 "신앙의 절제와 금융의 규율을 결합한 생활 기율"이라 부른다. "주가는 우리 통제 밖에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매수의 규칙성과 기간뿐이다. 신앙생활이 매일의 기도와 예배 루틴에 기대듯, 재정도 규칙과 기간에 기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투자법은 단순한 재테크를 넘어선다. 그것은 일종의 '영성 수련'이다. 욕망을 통제하고, 시간을 존중하며, 규칙을 통해 자유를 얻는 훈련이다. 마치 수도사가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듯,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다. ▣ '코인'이 아닌 '회사'에 투자하라 "밤새 시세가 출렁이면 삶이 무너진다" 그는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을 긋는다. 한 증권사 지점장의 경험담을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분이 코인에 투자했더니 3일을 잠을 못 잤다고 하더군요." 이덕락의 평가는 간명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회사'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본질적이다. 회사는 생산·연구·고용을 통해 사회와 상호작용한다. 그들은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람을 고용하고, 세금을 납부한다. 신자가 장기 주주로 남을 때 기업은 안정적 자본으로 성장하고, 주주는 그 과실을 나눈다. "내가 속한 소사이어티의 성장에 동참하면서 과실을 나누는 선순환"—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투자 윤리다. 반면 암호화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생산적 활동과는 거리가 멀고, 순전히 투기적 성격이 강하다. 무엇보다 변동성이 극심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밤새 시세가 출렁이면 삶이 무너집니다.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데, 코인 차트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은퇴자의 포트폴리오: '가격'보다 '현금흐름' 배당 위주, 생활비의 '두 번째 월급'을 만들라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현금흐름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덕락은 자신의 사례를 솔직하게 밝힌다. 고문 재직의 마지막 해를 지나며 매달 들어오는 급여가 끊길 것을 알기에, 배당이 꾸준한 종목·ETF의 비중을 높여 국민연금 + 배당금으로 생활비 체계를 설계 중이라고 한다. 그는 한때 연금형 상품만으로 노후를 설계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20년 받으면 원금이 사라지는 구조보다, 배당으로 현금흐름을 만들면서 원금을 보전하는 구조가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은퇴 설계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젊을 때는 주가 상승에 초점을 맞출 수 있지만, 은퇴 후에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더 중요하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보다 매달 일정한 배당금이 들어오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 "은퇴자의 핵심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현금흐름의 안정"이라는 그의 조언은 많은 예비 은퇴자들에게 실용적인 지침이 될 것이다. 특히 그는 국내 배당주뿐만 아니라 해외 배당 ETF도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한다. 미국의 우량 기업들은 수십 년간 꾸준히 배당을 지급해왔고, 일부는 매년 배당을 늘려왔다. 이런 기업들에 분산 투자하면 환율 변동 위험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달러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돈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덕락 저자 ▣ '몰빵'의 심리학을 경계하라 목돈의 일시투자보다, '시간에 나눠 사기' 이덕락은 "목돈이 생겼을 때 일시에 투입하는 몰빵 투자는 심리적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고점에서 사면 회복까지 몇 년을 견뎌야 하고, 그 시간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는 많은 투자자들이 겪는 전형적인 실수다. 퇴직금이나 상속받은 돈, 사업 매각 대금 등 목돈이 생기면 '한 번에' 투자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타이밍 리스크를 극대화한다. 대안은 간단하다. "목돈을 열 등분해 수개월~1년에 걸쳐 분할 매수하라." 그는 이 원칙을 자신에게도 엄격히 적용한다. "타이밍은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타이밍과 종목 선택이라는 불가능한 숙제를 포기하는 순간, 투자는 삶을 방해하지 않는 일상이 됩니다." 실제로 그는 강의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1억 원의 목돈이 생겼다면, 한 번에 투자하지 말고 매월 1천만 원씩 10개월에 걸쳐 투자하라는 것이다. 혹은 더 보수적으로 2천만 원씩 5개월, 아니면 5천만 원씩 2개월에 나눠서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에'라는 유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죠." ▣ 직장에서의 '승리' : 일의 탁월함이 신자의 명함 "존경받는 동료가 먼저다. 돈 이야기는 그 다음이다" 흥미롭게도 이덕락의 책은 앞부분에 직장 생활의 원칙을 배치한다. 투자 이야기보다 일의 품위를 먼저 다루는 것이다. 그는 카이스트 김영길 총장을 멘토로 떠올리며 "자기 분야에서 탁월함을 이루어 타인의 신뢰와 존경을 얻는 것"을 신자의 첫 소명으로 제시한다.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회식이나 소통에서 스스로 담을 쌓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존경받는 동료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한국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직격하는 조언이다. 일부 신자들은 '세상과 구별된다'는 명목 하에 동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거나, 심지어 업무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덕락의 생각은 다르다. "신앙은 일을 도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동력이어야 합니다." 투자 원칙 역시 이 맥락에서 제시된다. 개별종목 단타는 업무 집중을 해치고 '월급 루팡'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반면 지수·장기·적립은 직무의 탁월함을 보존하면서 재정을 꾸리는 길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차트부터 보고, 점심시간에 매매하고, 퇴근 전에 또 확인하면서 어떻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모습을 동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의 투자 철학은 결국 '일 잘하는 신자'가 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투자 때문에 일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 교회와 기금 운용: 쉬쉬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대형 교단은 ETF로 연금을 운용한다—공개적 토론을" 취재와 강의를 다니다 보니, 교회 안에는 여전히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덕락은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제도와 문화는 변합니다. 우리는 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그 핵심 제도는 주식회사입니다.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실제로 이미 대형 교단들은 목회자 연금을 주식 등에 투자해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교회 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는 특히 목회자 연금과 같은 제도적 재정은 공개적 토론과 원칙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ETF가 수익이 적다는 통념은 오해입니다. 복리 10~15%의 장기 성과가 기금 운용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직접투자를 통한 고수익 집착이 아니라, 규칙·분산·기간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교회 기금을 특정 부동산이나 개별 종목에 몰빵하기보다는, 분산된 지수 상품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용하자는 제안이다. "교회도 하나의 조직입니다. 미래의 목회자들을 위해, 그리고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합리적인 재정 운용이 필요합니다.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요." 특히 그는 젊은 목회자들의 현실을 언급한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은 학자금 대출도 있고, 집값도 비싸고, 아이 교육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청빈'만 강조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에요." 주식을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라 삶을 자유롭게 하는데 사용하면 된자는 저자 ▣ FIRE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돈이 많아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삶은 허물어졌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운동에 대해서도 그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그가 들려준 지인의 사례는 강렬하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어 조기 은퇴했으나, 일상의 구조가 무너지고 소비와 방황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경제적 자유가 곧 삶의 의미인가요?" 그의 대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먹고사는 걱정이 없어도, 보람과 공동선에 기여하는 일이 없으면 삶은 쉽게 무너집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질문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아실현을 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의 '자유'는 일에서 도망치는 자유가 아니라, 탐욕과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다. 그 자유는 규칙적인 투자와 성실한 직무가 함께 만든다. "진정한 자유는 일하지 않는 자유가 아니라,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의 투자법은 FIRE와는 방향이 다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서 일을 그만두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돈에 대한 걱정 없이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 그리스도인과 부(富): '깨끗한 부자'의 윤리 "부 자체는 죄가 아니다—문제는 방식과 마음" 이덕락은 "아브라함도 부자였다"는 성경적 상식을 조용히 상기한다. 부의 문제는 존재론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는 김동호 목사의 표현을 빌려 '깨끗한 부자'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깨끗한 부자'의 윤리는 세 가지 층위로 나뉜다: 방식의 윤리 : 투기는 배제하고,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회사에 장기 참여한다. 이는 돈을 버는 방법 자체에 관한 것이다. 남의 손실을 전제로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포지티브섬 게임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주식 투자가 도박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의 윤리 : 탐욕을 부채질하는 단타·레버리지·코인에 거리를 둔다. 이는 투자하는 과정에서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투자라도 마음을 빼앗기면 신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투자 방식 자체가 마음의 평정을 해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사용의 윤리 : 나중에 남에게 짐이 되지 않는 재정, 이웃의 짐을 덜어 주는 자원을 준비한다. 이는 모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나아가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그는 "투자는 신앙의 본질 문제가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다만 한다면 방식이 신앙을 도와야 합니다"라고 못 박는다.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투자 자체를 신앙의 필수 요소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조건 금기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다면 올바른 방식으로, 신앙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 강의 현장에서 들려온 실제 변화들 "월급의 10~30%를 기계적으로"—대학원생·교수들의 반응 그의 강의를 들은 대학원생들은 "장래가 걱정되던 마음이 정리됐다"며 소액 적립투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월 20~30만 원이지만 꾸준히 시작한 것이다. 교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무엇을 사야 하나, 언제 사야 하나'의 고민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한 포스텍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에는 주식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는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어차피 매달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만 투자하면 되니까요." 실제로 이것이 핵심이다. 투자 결정의 부담을 없애는 것이다. 매일 매일 '사야 하나, 팔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원칙을 정하면 그 이후에는 기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물론 부정적 반응도 있다. 개별종목 발굴로 높은 수익을 노리는 이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단조롭고 재미없어" 보인다. 하지만 성과를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조롭지만 지속 가능한 길이 결국 삶을 지킵니다." 그의 확신이다.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생활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 신앙·일·투자의 삼중주 '느림'의 미학, '복리'의 언어, '품위'의 직업윤리 이덕락이 말하는 '천천히 부자 되기'는 단순한 재정 테크닉을 넘어 삶의 태도다. 그의 철학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신앙의 축 : 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규칙과 절제로 탐욕의 회로를 끊는다. 이는 투자를 영성 훈련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기도를 하듯,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투 자 : 시장 전체·장기·적립·분할로 삶을 안정시키고, 은퇴에는 현금흐름(배당)을 더한다. 그는 말한다. “빠름의 욕망을 이기는 길은, 느림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매달 정해진 날, 정해진 비율로, 정해진 상품을, 평생 사는 것. 신앙의 일상처럼.” 철강 연구의 오랜 시간 끝에, 그는 이제 사람의 마음과 돈의 시간을 연구한다. 그 연구의 결론은 간명하다. “천천히”는 재정의 전략이자, 신앙의 언어다.
    • 문화
    • 인터뷰
    2025-09-10
  • 자연이 들려준 소리, 믿음으로 빚어낸 빛의 기록
    “꽃은 어두운 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언제나 빛을 향해 자라죠. 마침내 향기로운 꽃잎을 열고 세상을 향기로 채우는 것처럼요.” 한정희 작가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곧 그의 삶이며, 그림이며, 신앙의 고백이자, 회복을 향한 내밀한 서사이다. 2025년 봄, 뉴욕과 스톡홀름을 오가며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서양화가 한정희가 8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자연의 소리 – 전개〉, 경기도 안산 ‘꿈의 교회’ 내 더갤러리에서 4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단지 작가의 귀국전이 아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 예술과 신앙, 봉사와 회복의 길을 걸어온 작가의 진실된 내면의 기록이자, 관람객과 영적으로 호흡하고자 하는 그의 가장 깊은 기도에 가깝다. ■예술은 그에게 신앙의 통로 한정희 작가는 1953년생, 화가인 한봉덕 화백의 딸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예술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고교 시절 첫 개인전을 열며 미술계의 이목을 끈 그는 24살이던 1978년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유학을 떠나며 본격적인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의 예술 여정은 이후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스웨덴 스톡홀름 등 세계 각지에서 100회가 넘는 전시를 이어가며 활발히 펼쳐졌다. 그러나 그에게 예술은 단순한 작업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을 체현하는 삶의 도구이자, 이웃과 연결되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봄의 환희> 한정희 작가는 모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삶의 시련과 함께 깊어졌다. 결혼과 이혼, 홀로 아들을 키우는 고단한 시간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고백한다. “‘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 울림이 왔어요. '너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웃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진리를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후, 자신의 그림이 하나님과의 만남과 깨달음을 고백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랐고, 자연을 주제로 작품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연은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누가 만들었는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죠. 저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한정희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인사동 인사이트 전시관 풍경 ■한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색’을 금식하다 그의 삶과 예술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뉴욕에 머물던 시절, 그는 도시에 만연한 마약과 음란, 물질주의의 이면을 뼈저리게 목격했다. 그때 만난 한국계 마약 중독 청소년들, 고통과 방황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그는 예술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색을 금식'했다. “10년 넘게 흑백으로만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이들의 어둠 속 고통을 더 진실하게 담고 싶었거든요.” 그는 그렇게 ‘빛’을 내려놓았다. 그가 말하는 흑백은 단지 색상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실체였다. 그러나 이 깊은 동참의 시간은 그의 몸과 정신을 점점 병들게 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산토리니에 갔을 때였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바다를 마주하며 마음속으로 외쳤죠. ‘나는 다시 색을 그려야 한다. 이것이 진리다.’” 그 순간부터 그의 작품은 부활의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고통에서 소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흑백에서 다시 원색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은 마치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향하는 신앙의 순례길 같았다. ■ 그림, 그 이상의 실천… 예술은 '살아있는 사랑' 한정희 작가의 삶은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실천가로서도 빛난다. 그는 스웨덴 유학 시절, 8000여 명의 한국 입양아를 위해 15년간 한글학교에서 봉사했고, 미국 LA에서는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에 헌신했다. 그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체험했다”며, “단순히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회복되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길”이라고 말한다. 작품 활동의 수익도 봉사와 선교로 이어졌다. 그에게 예술은 물질이 아니라 도구였고, 명성이 아니라 통로였다. “예술은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죠. 그 세계가 진실하고 따뜻해야 관람자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그는 지금도 뉴욕에서 권사로 활동하며, 신앙과 예술을 결합한 나눔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림이 곧 예배이고, 전시가 곧 설교이며, 색채 하나하나가 곧 기도이자 사랑인 셈이다. ■‘자연의 소리’, 그리고 ‘전개’ 이번 전시 〈자연의 소리 – 전개〉는 그의 지난 시간들을 아우르는 예술적 신앙 여정의 연속선상에 있다. ‘전개’라는 부제는 그가 경험한 자연 속 하나님의 메시지를, 화폭 위에 차곡차곡 펼쳐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정희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추운 겨울을 이겨낸 꽃처럼, 고난을 견디고 믿음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삶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전시작들 속 자연은 생명력 그 자체로 피어오른다. 바람 속에서 꺾이지 않는 가지들,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잎들, 광야에서 솟아오르는 푸른 싹은 모두 그의 내면에서 피어난 영혼의 풍경이다. 작품의 색채 또한 의미가 뚜렷하다. 붉은색은 성령의 열매, 노란색은 예수의 영광, 파란색은 평안, 하얀색은 정결, 검은색은 고난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전하는 것은 단순한 신학적 상징을 넘어선다. 그것은 결국 ‘감사’와 ‘기쁨’이라는 깊은 정서, 다시 살아갈 힘을 관람자에게 전하는 조용한 감동이다. ■ 귀향, 그리고 새봄처럼 다시 피어난 이야기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제 마음속 밑바닥엔 언제나 한국이 있었습니다. 이 땅의 분들에게 저의 그림이 위안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한정희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땅에 '신앙적 감성'을 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품고, 다시금 이곳의 공기와 눈빛을 마주하며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되묻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젊은 작가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한다. “진실한 자기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술은 결국 자신을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정희 작가의 삶과 그림은 이 성경 구절을 증명하는 여정이었다. 그는 진리를 좇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림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했다. 그의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작품 전시’가 아니라, 삶의 고백이고, 신앙의 찬송이며, 사랑의 전도다. 그는 말한다. “제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있고 싶진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나누며 살다 가고 싶습니다.” 그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안산의 더갤러리 한편에서 새처럼 날아와, 조용히 우리 가슴 어딘가에 내려앉고 있을 것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자연의 소리 – 전개 기 간: 2025년 4월 3일 ~ 13일 장 소: 경기도 안산시 꿈의교회 ‘더 갤러리’ 작 가: 서양화가 한정희 특 징: 자연을 주제로 한 영적 회복, 동서양 융합의 색채 표현, 신앙과 예술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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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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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명의 아버지를 거쳐 만난 ‘진짜 아버지’… 오테레사가 전하는 치유와 화해의 대서사시
    인간의 존재는 부모 없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은 든든한 울타리이자 따뜻한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지우고 싶은 상처이자 분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여기, 한반도의 남과 북, 그리고 중국이라는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인생의 절반씩을 살아온 한 여성이 있습니다. 최근 저서 <진짜 아버지>(아르카)를 출간한 박예영 사모(오테레사)는 자신의 50년 세월을 관통하는 네 명의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에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북한의 ‘아버지 대원수’부터 육신의 아버지, 그리고 영적 아버지를 지나 ‘진짜 아버지’인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그 파란만장한 여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편집자 주] 1. 북한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그리고 첫 번째 ‘아버지’ 박예영 사모는 북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모든 주민이 그러하듯, 그에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주어지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대원수님’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그분은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집마다 걸린 초상화를 보며 매일 감사의 인사를 올렸죠. 매스컴과 교육을 통해 주입된 그 이름은 제 가슴 깊은 곳에 ‘존경과 흠모’라는 단어로 새겨졌습니다.” 어린 박예영에게 그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였고, 절대적인 기준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리고 박 사모가 그 땅을 떠나기 전까지도 그분은 인생의 처음이자 단 한 분의 아버지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숙명이기도 했습니다. 2. 가난과 폭력의 그늘 속, 미움의 대상이었던 ‘친아버지’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두 번째 아버지는 자신을 무릎에 앉혀 키워준 육신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박 사모가 성장할수록 가장 미운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북한 체제의 모순 속에서 아버지는 술에 의지했고, 술기운은 곧 폭력과 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엄마의 출신 성분을 탓하셨습니다. 북한에서 신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평생 출세할 수 없다는 뜻이었고,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큰 한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술이 깨면 엄마를 위해 밥을 짓기도 하는 다정한 분이었지만, 술만 들어가면 돌변하는 모습에 저는 아버지를 원수처럼 미워하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박 사모는 훗날 한국에 와서야 아버지의 뒷모습에 담긴 눈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영하 50도의 혹한이 몰아치는 러시아에서 3년간 노동을 견뎌냈던 아버지 , 게가 상할까 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를 타던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말입니다. “제가 탈북한 후에도 아버지는 딸이 보고 싶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수백 리 길을 걸어 혜산까지 오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진심을 알지 못한 채 아버지를 미워하며 집을 뛰쳐나왔고 , 아버지는 제가 당신을 용서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2008년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가혹한 후회로 남는 대목입니다.” 3. 태국에서 만난 ‘세 번째 아버지’와 거부할 수 없는 울림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오기 전 태국에 머물던 시절, 박 사모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세 번째 아버지를 만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제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마 북한에서 ‘아버지 대원수님’이라고 불러왔던 습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하나님 아버지는 제가 이전에 알았던 아버지들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분이었습니다. 그분을 부를 때마다 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떨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라는 존재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시간 끝에 만난 진짜 창조주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그냥 좀 잘난 줄로만 알고 살았으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죄인’인지를 깨달으며 참회와 감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4. 오대원 목사와의 만남, 그리고 ‘오테레사’라는 새 삶 한국에 정착한 박 사모에게 하나님은 네 번째 아버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미국에서 온 데이비드 로스(David E. Ross) 선교사, 한국 이름으로 오대원 목사입니다. “성령께서 ‘오 목사님은 조선의 아버지다’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마’ 하시며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죠. 그것은 저를 새로운 딸로 삼아주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오 목사가 지어준 새 이름은 ‘테레사’였습니다. 박 사모는 오 목사의 성을 따 ‘오테레사’라는 이름으로 10년 넘게 중보기도 사역을 하며 살았습니다. 실제로 오 목사는 박 사모의 결혼식에서 친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입장했습니다. 그 손은 단순한 의전이 아닌, 사랑과 축복의 손이었으며 또 다른 삶으로의 연결이었습니다. 5. 이스라엘에서의 충격적 고백: “주님,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합니까?” 박 사모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2008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세계 기도집회 ‘컨버케이션’이었습니다. 160여 개국에서 모인 2천 명의 그리스도인 앞에서 그는 북한 대표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강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인 목사 앞에 가서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북한이 일본을 미워한 죄, 일본인을 납치한 죄를 대신하여 용서를 구하라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는 순간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놀란 일본인 목사님도 함께 무릎을 꿇고 서로 용서를 빌었죠.” 다음 날에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세계 평화를 위협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또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뒤늦게 억울함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전 세계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며 울었습니다. 그때 들려온 주님의 음성은 명료했습니다. “나는 죄가 있어서 세상에 내려갔니?” 아무 죄 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박 사모는 다시 한번 주저앉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북한을 사용하시기 위해 먼저 겸손하게 만드시려고 그를 무릎 꿇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크신 계획 앞에서 그는 자신이 그저 작은 도구였음을 깨닫고 무한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6. ‘악의 축’에서 ‘복의 축’으로… 응답받은 기도 박 사모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르는 전 세계인의 인식을 ‘복의 축’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 집회에서 한 미국인 여성 선교사가 다가와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것을 용서해달라”며 눈물로 사과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 선교사에게 박 사모의 기도 제목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11일, 1988년부터 이어져 온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 순간 저는 확신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북한도, 일본도, 미국도 모두 사랑하시는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는 사실을요.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미 용서와 화해의 선포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7. 남북통일은 이미 우리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박 사모의 곁에는 17년째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 김승근 목사가 있습니다. 숙대 앞에서 ‘킹스컵밥’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숙대디’라고 불리는 남편은 박 사모에게 때로는 남편으로, 때로는 아빠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었습니다. “저희는 ‘통일 가정’입니다. 남한 출신 남편과 북한 출신 제가 만나 신학적 교리로 다툰 적 없이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이미 우리 가정에는 남북통일이 이루어진 셈이죠.” 그는 이제 고향 김책으로 향할 날을 꿈꿉니다. 가서 아직 고향에 남아있을 동생을 찾고, 아버지와 막내 동생의 묘소를 돌보며 친척들에게 ‘진짜 아버지’를 소개해 주고 싶어 합니다. 또한 고향 아이들이 원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밥을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오늘도 기도합니다. 박예영 사모는 인터뷰를 마치며 독자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버지가 있는데도 아버지를 모르는 것은 스스로 ‘고아’가 되기로 결정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탈북자라 불러도, 저의 분명한 정체성은 ‘하나님의 딸’이라는 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를 만나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회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고난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그의 삶은, 이제 미움을 넘어 사랑으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박예영(오테레사) 1976년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태어나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7월에 한국에 왔다. ‘고난의 행군’ 때문에, 그저 생존을 위해 육신의 아버지와 김일성이라는 아버지 둘을 두고 북한을 떠난다고 생각했으나, 2차에 걸친 탈북 과정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인생과 이 민족의 진짜 아버지이심을 뼈저리게 깨닫고 만다. 남한에 와서 신학을 하고 태백산에 올라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운동까지 펼치면서 “통일코리아는 뉴코리아(New Korea)다”라는 비전을 받았고, ‘통일비전캠프’ 등의 통일운동과 기도 사역에 동참하면서 ‘통일소녀’와 ‘부흥소녀’라는 애칭을 얻었다. 예수전도단 DTS 훈련 과정에서 오대원(David O Ross) 목사를 만나 영적 수양딸이 되어 얻은 이름 ‘오테레사’로 한동안 알려졌고, 2009년 남에서 만난 탈북민 정착도우미 김승근과 결혼할 때 저자의 손을 잡고 입장해준 이는 당연히 오대원 목사였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국립통일교육원 교육위원, 코스타 강사 등을 역임했다. 북한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고 통일운동을 펼쳐오는 가운데 ‘탈북자’ 대신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을 뜻하는 ‘북향민’ 용어가 널리 쓰이도록 앞장서기도 했다. 현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청년미래위원장,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사)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대(평통연대) 전문위원, CBMC 뉴코리아지회 회장 등으로 섬기고 있다. 2021년 민간통일운동 유공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202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 평화 챌린지에 부부가 출연한 영상을 올려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감리교신학대학원 신학석사,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Wesley Theological Seminary(미국 워싱턴DC) 목회학박사이며,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정치법학과 박사과정 중이다. 어려운 북향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돕기도 하며, 통일가정을 이룬 남편과 함께 앞선 통일을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payy2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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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8
  • “선교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 “선교는 결국 사람이 남는다” “선교는 사람이다.” 이현국 목사는 이 말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내뱉었다. ▲선교 사역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밝힌 이현국 목사(운화교회) 그의 목소리에는 30여 년의 목회와 선교 여정이 응축된 단단한 울림이 배어 있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신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 남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건물이 크고, 프로그램이 많고, 헌금이 많아도 제자가 세워지지 않으면 그건 잠깐의 열매일 뿐이죠.” 그는 “선교란 사람을 세우는 일이며,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그가 쓴 책 『사람을 세우는 선교』(쿰란출판사)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책 속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일도 결국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 이현국 목사는 경기도 성남의 온화교회 담임목사로, 1990년대 초부터 인도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선교 여정은 ‘성공 스토리’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그 안에는 ‘실패’와 ‘절망’, 그리고 ‘회복’을 통한 진정한 선교의 본질 발견이 담겨 있다. ■ “열정과 재정으로 시작했지만… 실패를 통해 배웠다” 그의 인도 선교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같은 노회의 한 목사로부터 인도 마니푸르 지역의 소식을 들었다. “그곳 인구의 40퍼센트가 기독교인이라 들었어요. 그래서 그곳을 중심으로 선교 거점을 세우면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등으로 복음이 확산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는 곧바로 한 인도인 신학생(D)을 소개받았다. 그는 신학교 건립을 요청했고, 온화교회는 열정적으로 응답했다. “기도하고 헌금하면 하나님이 하시겠지요. 그렇게만 믿었습니다.” 교회는 매월 50만 원으로 시작해 점차 후원 규모를 늘렸다. 2008년 이후에는 1억 원 가까이 지원하기도 했다. 신학교 건물 건축, 운영비, 교회당 건축까지 합쳐 약 1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그 재정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보니 현지인 리더의 사생활 문제, 재정 부정, 관리 실패가 연이어 드러났습니다. 결국 신학교는 무너졌죠.” 그는 “그때 선교의 본질을 몰랐다”며 회고했다. “열정만 있었지, 선교가 뭔지 몰랐어요. 사람을 세우지 않고 돈만 보냈죠. 그게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 “선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현국 목사는 그 실패를 통해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으로 하는 겁니다.” 그는 한동안 인도 사역을 중단했다. 그러나 ‘왜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깊은 고민 끝에 선교의 본질을 다시 성경에서 찾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를 세웠지요. 그게 바로 선교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제자 삼는 제자’라는 원리를 붙잡았다. 그제야 그가 말하는 ‘사람을 세우는 선교’의 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 피터 티우마이와의 만남 — “한 사람으로 다시 시작하다” 그런 전환의 시기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 그가 바로 인도 나갈랜드 출신의 피터 티우마이(Peter Thiumai) 교수였다. ▲이현국 목사는 선교의 동역자 피터 티우마이(Peter Thiumai) 교수를 통해 선교자의 사람을 세우는 일을 사역하고 있다. “그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40대 젊은 교수였습니다. 신앙이 진실하고, 제자 양육에 열정이 있었어요.” 피터 교수는 기존 신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자, 디마푸르 지역의 작은 월세집에서 학생들과 함께 합숙하며 복음 전도를 시작했다. 이 목사는 그에게 재정적 후원을 약속하는 대신, 단 하나의 원칙을 제시했다. “먼저 교회를 개척하고, 제자를 세워 자립하시오.” 그것이 멘토링의 출발점이었다. 피터는 곧 집을 떠나 한 교단의 수양관을 빌려 신학교를 열었고, 교회를 개척했다. 몇 년 후 그 교회는 스스로 자립했다. “그는 매년 충실하게 보고서를 보내왔고, 사역의 결실이 보였어요. 저는 매년 그를 만나 함께 멘토링을 했습니다.” ■ “제자를 세우는 신학교, 1,000개의 교회를 낳다” 10년이 지난 지금, 피터 티우마이의 신학교는 인도 동북부 6개 지역에 ‘제자훈련센터(DTC)’를 운영하며 1,00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죠. 하지만 직접 가서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더군요. 바로 이것이 ‘제자 삼는 제자’의 선교였습니다.” 그는 “이 신학교는 단순한 학문 기관이 아니라, ‘제자를 세우는 제자를 양성하는 학교’”라며 “피터의 신실함과 헌신은 ‘사람 중심 선교’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 저서 『사람을 세우는 선교』 ― 선교의 본질로 돌아가다 ▲현지인 한 사람을 멘토링하여 10년만에 천교회를 세운 이야기를 수록한 책 이현국 목사는 이러한 여정과 깨달음을 담아 책 『사람을 세우는 선교』(쿰란출판사)를 펴냈다. 그는 책에서 선교의 실패와 성공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 본질을 가르치십니다. 건물을 세우는 선교에서 사람을 세우는 선교로 돌아올 때 비로소 복음의 생명이 살아납니다.” 책은 4부 구성으로 되어 있다. 1장은 “멘토링을 통한 제자 양육”을, 2장은 “피터 선교사의 제자 세우기”, 3장은 “제자의 제자가 세운 교회들”, 4장은 “신학교와 훈련센터 운영의 실제”를 다룬다. 그는 각 장에서 ‘사람 중심의 선교’가 어떻게 교회 자립과 선교 확장을 이끌어냈는지를 실제 사례로 보여준다. 책의 부제처럼, “선교는 사람에게서 시작하여, 사람을 통해 진행되며, 결국 사람이 남는다.” ■ “실패의 뿌리는 무지였다” 이 목사는 자신의 실패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때 저는 선교를 잘 몰랐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면, 현지인이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선교가 아니라 송금이었습니다.” 그는 “선교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라며 “감동으로 시작해도 체계적 훈련과 평가가 없다면 오래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선교사도, 현지인도, 후원 교회도 모두 ‘사람 세우기’ 원리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면 재정은 따라옵니다. 반대로 돈으로 사람을 세우려 하면, 결국 둘 다 잃습니다.” 그는 자립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선교의 목적은 현지의 자립입니다. 하지만 자립은 건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제자 삼는 제자가 세워질 때 자연스럽게 자립이 옵니다.” 그는 현지 교회들이 스스로 땅과 물질을 헌신하며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지 성도들이 제자로 성장하면 그들은 주체가 됩니다. 스스로 목회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죠. 그게 진짜 선교입니다.” ■ “한국 교회 선교,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선교 패러다임에도 경종을 울린다.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보내는 선교’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우는 선교’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는 ‘후원금 중심 구조’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교회가 돈만 보내면 선교사가 알아서 할 것이라 믿는 구조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그건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세우지 않으면 그 사역은 반드시 멈춥니다.” 그는 선교사를 의료인 훈련 과정에 비유했다. “의사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 전문의가 되잖아요. 선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훈련, 멘토링, 실제 사역 경험을 거쳐야 진짜 현장에서 설 수 있습니다.” ▲재정과 선물 중심에서 현지인 사람을 먼저 세우는 것을 우선하는 선교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이현국 목사 “선교사를 세우는 목회자, 교회를 세우는 선교사” 이것은 이 목사의 선교의 경험에서 오는 모토이다. 그는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넘어서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목사로 2~3년 함께 사역하며 전도와 제자 양육, 지역 섬김을 실제로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 개척 과정을 지켜보며 훈련받으면, 선교지에서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온화교회가 실제로 그렇게 해왔음을 밝혔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 중 몇 분은 그렇게 훈련받고 국내 지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지금은 자립해서 잘하고 있죠. 저는 이걸 ‘국내 선교의 모델’이라 부릅니다.” ■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선교하지 말라” 이현국 목사는 선교의 시작점은 언제나 ‘사람’임을 강조한다. “돈이 있다고 바로 시작하면 안 됩니다. 먼저 준비된 사람을 찾으세요. 제자가 된 사람, 신실한 사람과 함께 하세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을 세우면 나중에 두 배의 고통이 옵니다. 차라리 시간을 두고 기다리십시오. 준비된 한 사람이 천 명의 미숙한 사역자보다 낫습니다.” ■ “인도는 지금, 복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현국 목사는 여전히 인도를 향한 열정을 멈추지 않는다. “인도는 14억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중 기독교인은 3퍼센트도 안 돼요.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영혼이 너무 많습니다.” 그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거리마다, 시장마다, 힌두 사원 주변마다 수많은 영혼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 일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교는 재정보다 사람입니다. 사람을 세우면 재정은 따라옵니다. 사람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건물을 세워도 금세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핵심은 ‘사람을 세우는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인도의 미종족전도의 현황 ■ 실패에서 성공으로, 그리고 다시 ‘사람으로’ 이현국 목사의 선교 이야기는 ‘실패에서 출발한 성공’이다. 그는 실패를 통해 진리를 배웠고, 진리를 통해 사람을 세웠으며, 그 사람이 다시 사람을 세우는 순환을 만들어냈다. 그의 삶은 이렇게 요약된다. “선교는 제자 삼는 제자다.”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타는 확신이 있었다. “교회가 살아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소 지으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끝까지 사람을 세우는 선교를 하겠습니다. 그게 복음의 길이니까요.” <책 정보> 『사람을 세우는 선교』 | 저자: 이현국 | 출판: 쿰란출판사 | “선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제자 삼는 제자를 세워라.” 실패에서 시작된 참된 선교의 길, 그리고 ‘사람 중심 복음’의 회복. 목회자와 선교사 모두에게 길잡이가 되는 실제적 교본.
    • 문화
    • 인터뷰
    2025-10-15
  • “나는 문화로 싸우는 독립군”
    ▲문화를 통한 진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장이레 감독 이름에 담긴 사명, 신앙으로 열리다 장이레 감독의 본명은 장석봉이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서 널리 알려진 이름은 ‘장이레’다. 이 별명은 단순한 예명이 아니었다. 청년 시절 그를 만난 고(故) 하용조 목사가 “장은 짱이다”라는 유쾌한 격려와 함께 ‘이레’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님의 때”를 뜻하는 히브리어적 어감을 품은 이 이름은 장 감독의 이후 여정과 사명을 예고하는 듯했다. 불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우연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10살 무렵 처음 발을 들인 교회는 그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어린 장석봉에게 신앙은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했지만, 이후 연예계 아역 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문화예술의 현장을 경험했고, 신앙은 그의 내면에 조용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깊이는 30대 초반 한차례의 극적인 체험을 통해 열리게 된다. 그는 당시 폐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밥 잘 먹어야지 무슨 금식이냐”라는 자신의 생각을 뒤엎고, 한 목사의 권유로 10일간의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는 금식 중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봉사와 설거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10일이 지나 의사의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어떻게 이렇게 폐가 깨끗할 수 있느냐”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폐에 남아 있던 병의 흔적은 미미하게 사라져 있었다. 장 감독은 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가슴으로 신뢰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신앙은 그에게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실체가 되었다. 우연에서 시작된 역사 탐험 이후 그의 삶은 점차 “복음을 문화로 전하는 길”로 나아갔다. 요한계시록을 주제로 한 뮤지컬 제작, CGN TV 시절 ‘꿈꾸는 요셉’ 같은 작품을 통해 그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예술로 구현하는 일에 전념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는 6·25 전쟁 당시 ‘춘천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춘천대첩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춘천역 앞에서 열린 승전기념 행사를 마주친 것이 시작이었다. 민·관·군·경이 하나 되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다는 이야기는 처음엔 그에게 과장된 전설처럼 들렸다. 그는 “이게 과연 진짜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고, 오히려 그 의심이 발걸음을 역사 속으로 깊이 이끌었다.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찾으며 만난 것은 놀라운 사실의 연속이었다. 공장 여공들이 주먹밥을 쥐고, 학도병과 대한청년들이 폭탄을 나르며, 민초들이 단 한 시간을 버텨 군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던 실체적 기록들이 쏟아졌다. “이건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확신이 생긴 그는 3일간 금식 기도를 드린 끝에,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이 역사를 먼저 증언하기로 결심했다. ▲2024년에 개봉되었던 <춘천대첩 72시간>다큐멘터리 영화 다큐멘터리 「춘천대첩」의 탄생 그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데 쏟아부은 시간은 6년. 처음엔 영화 「작전명 폭풍」을 구상했지만,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계획’처럼 다큐·영화·뮤지컬 세 가지 형식으로 역사적 진실을 전하겠다는 비전을 품게 됐다. 그는 100명이 넘는 증언자를 만나며 사실 고증을 거듭했고, 국회·CGV·롯데시네마 등에서 시사회를 열며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완성까지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계엄 선포로 인해 극장 상영이 갑자기 중단됐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려는 진보 진영의 조직적 방해가 이어졌다. 동시에 보수 진영의 무관심은 그를 더욱 깊은 실망에 빠뜨렸다. 춘천시의 지원도 끝내 받지 못한 그는 결국 “집을 팔았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좌우 진영 모두에게 외면받았지만, 그는 “나는 좌우를 떠나 사실을 밝히려 한다”는 신념으로 버텼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그의 열망은 신앙적 확신과 맞닿아 있었다. “장이레 감독이 역사와 문화에 천착하는 이유는 단순한 예술적 취향이 아니다. 그는 공산주의가 “무력보다 더 무서운 방식으로, 문화 속에 사상을 스며들게 한다”고 경고한다.” 문화는 곧 전쟁터 장이레 감독이 역사와 문화에 천착하는 이유는 단순한 예술적 취향이 아니다. 그는 공산주의가 “무력보다 더 무서운 방식으로, 문화 속에 사상을 스며들게 한다”고 경고한다. 히틀러, 김일성, 소련이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온 역사를 예로 들며, “우리는 너무 모른다. 문화가 곧 전쟁의 최전선”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춘천대첩의 의미는 단순히 과거의 한 전투가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 이전, 민초들이 보여준 결집과 희생은 대한민국 건국의 분수령이었다. “역사를 모르는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그는 춘천대첩이 낙동강 방어선과 UN군의 개입,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존속을 가능케 한 결정적 사건임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의 시각에서, 그날 나라를 지킨 진정한 영웅은 위정자가 아니라 민초들이었다. ▲역사적 인식은 물론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르게 세워야 국가의 미래가 밝다고 말하는 장이레 감독 진보의 공격, 보수의 안일 하지만 그는 좌우 어느 쪽에서도 완전히 환영받지 못했다. 진보 진영은 그의 작업을 방해하거나 왜곡하려 했고, 보수 진영 역시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 “우리 진영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 진보는 (자신의 입맛에 낮게) 조금만 고치라며 미혹한다”는 그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이 정작 문화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진보 진영의 치밀한 문화 전략에 밀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겉으로는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공산주의적 사고가 깊이 침투했다”고 진단한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거짓과 카르텔적 구조, 그리고 교회마저도 세속적 권력 다툼에 휩쓸린 현실을 그는 성경적 관점에서 통렬히 비판했다. 장 감독은 “공산주의의 첫 번째 작전은 거짓말”이라며, 진영 논리에 갇혀 스스로를 속이는 시대를 향해 “회개와 고백 없이는 진정한 자유도 없다”고 경고했다. 다큐에서 영화, 그리고 뮤지컬로 「춘천대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장 감독은 현재 영화 「작전명 폭풍」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이 6·25 남침 작전명을 ‘폭풍’으로 명명했던 것에서 따온 이 제목은, 그가 3일 금식기도 중에 받은 영감을 담고 있다. 그는 홍천전투까지 포함해 “한국전쟁의 전모”를 영화로 완결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뮤지컬 제작을 통해 젊은 세대가 역사적 진실을 더 깊이 체험하도록 하는 꿈도 품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제작비 조달을 위해 국내외 투자자를 찾고 있지만, 그는 “나는 월세에 살며 집을 팔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열정은 단순히 흥행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문화로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그의 신앙적 사명감이 이 모든 노력을 지탱한다. ▲춘천대첩을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장 감독은 재정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고 밝혔다. 신앙이 삶을 이끌다 장이레 감독에게 작품 활동은 곧 신앙의 연장이다. 그는 “예수님이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셨다”고 말한다.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믿을 자유와 믿지 않을 자유”를 발견하며, 이를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뿌리로 본다. 정치적 좌우를 넘어, 인간의 죄성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것이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이다. 그는 복음이 단순한 종교적 교리나 사상이 아니라, 역사를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힘임을 믿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다큐나 공연을 넘어, ‘문화 독립 운동’이라는 이름의 영적 전쟁으로 자리 잡는다. 장 감독이 말하는 “문화 독립군”이란 표현에는, 복음을 드러내는 문화가 곧 시대와 사상을 변혁하는 힘이라는 신념이 담겨 있다. “문화는 전쟁터다. 우리는 문화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한다.” “민초들이 나라를 지켰다” – 후대를 향한 메시지 그가 「춘천대첩」을 통해 가장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라를 지킨 것은 위정자가 아니라 평범한 민초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민초들이야말로 진정한 주권자이며, 그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자유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매년 이들을 위한 진정한 예배와 감사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 감독은 이 메시지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젊은 세대가 직접 느끼고 고민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그는 학교와 교회에서 자비를 들여 상영회를 열며 학생들과 교인들이 “공산주의의 위협과 자유의 가치를 뼈아프게 깨닫는다”고 증언한다. “우리가 역사를 잊으면 미래는 없다”는 그의 호소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다음 세대가 스스로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는 간절한 부탁이다. 장이레 감독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이자 신앙의 증언이다. 어린 시절 불교 가정에서 출발해, 금식 기도를 통해 신앙의 깊이에 들어서고, 역사 속 숨겨진 진실을 문화로 드러내기까지—그의 여정은 단순히 한 감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한 도전이자 초대다. ▲ 정치적 좌우를 넘어, 인간의 죄성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것이 장 이레 감독의 작품 세계의 중심이다. 그는 말한다. “문화는 전쟁터다. 우리는 문화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한다.” 그의 발걸음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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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5-09-22
  • "천천히 부자 되기" - 철강공학자가 말하는 신앙과 투자의 품위
    주식회사의 시대, 우리는 왜 '주주가 되는 길'을 외면하는가? "이상하게도 나는 기업의 R&D를 총괄하며 수많은 자문과 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정작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회사'의 혜택을 절반만 누려왔다." ▲ <천천히 부자되기>저자 이덕락 집사 포스코에서 부사장과 기술연구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포스코 고문으로 일하는 이덕락 저자(남서울은혜교회 안수집사)의 솔직한 고백이다. 은퇴를 바라보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평생 월급을 받는 '근로자'로만 살았지, 기업의 성과를 함께 나누는 '주주'로는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개인적 반성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포항공대(POSTECH)의 교수·교직원·대학원생을 시작으로 인근 연구소·대학·기업을 다니며 '천천히 부자 되기'의 핵심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알아야 할 상식"이라는 확신 끝에 강의안을 책으로 묶었다. 제목은 단호하다. 《천천히 부자 되기》. 철강 분야에서 평생을 보낸 공학자가 왜 갑자기 투자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이 단순한 재테크 조언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오히려 그는 신앙과 일, 그리고 돈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탐욕의 회로를 끊는 투자 원칙 이덕락의 출발점은 역설적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성경의 명령을 투자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그는 답을 '방식의 전환'에서 찾는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택하는 길—개별종목 선택과 단기매매—은 변동성이 커서 마음을 빼앗기기 쉽고, 일상과 직무를 흔든다"고 그는 말한다. 모델을 맞추려는 강박, 호가창과 차트를 붙드는 불안, 저점·고점에 대한 집착이 신자의 내면을 소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시장 전체를 사는 장기·분산·적립은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 그는 이를 "탐욕의 회로를 끊는 신앙적 기율"이라고 표현한다. 투자 방식 자체가 신앙적 삶을 도울 수 있다는 발상이다. 그의 투자 원칙은 명확하다: - 무엇을 살 것인가? 개별종목이 아니라 주가지수 추종 ETF(국내·미국·글로벌 시장). 즉, '전체 경제의 흐름'에 참여하라. -언제 살 것인가? 타이밍을 재지 말고 매달 급여일에 10~30%를 기계적으로 적립하라(정액·정기 매수). - 얼마나 오래? 평생. 최소 20~30년의 복리를 전제로 한다. - 어떻게 흔들림을 견딜 것인가? 시세 확인을 습관에서 지워라. "처음엔 6개월쯤 궁금하지만 곧 일상이 된다." 그는 강연에서 미국 지수의 장기수익률 같은 수치를 예시로 들곤 하지만, 더 강조하는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리듬이다. "복리는 시간을 친구로 삼는 훈련이다." '빨리'가 아니라 '꾸준히'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 워런 버핏의 지혜, 신자의 생활 기율 "아무도 천천히 부자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그 유혹을 이기는 법 이덕락은 워런 버핏의 유명한 일화를 자주 인용한다. "사람들이 내 방식대로 투자하지 않는 이유? 아무도 천천히 부자 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한 투자 격언이 아니라, 현대인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이다. 특히 그는 '빨리'의 유혹이 신자에게 더욱 위험하다고 본다. 빠른 시세차익과 일확천금의 서사는 탐욕을 정당화하고, 결국 돈에 마음을 빼앗기는 구조를 강화한다. 반대로 ETF·장기·적립은 '느림'을 제도화하여 마음을 지켜 준다. 그는 이를 "신앙의 절제와 금융의 규율을 결합한 생활 기율"이라 부른다. "주가는 우리 통제 밖에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매수의 규칙성과 기간뿐이다. 신앙생활이 매일의 기도와 예배 루틴에 기대듯, 재정도 규칙과 기간에 기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투자법은 단순한 재테크를 넘어선다. 그것은 일종의 '영성 수련'이다. 욕망을 통제하고, 시간을 존중하며, 규칙을 통해 자유를 얻는 훈련이다. 마치 수도사가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듯,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다. ▣ '코인'이 아닌 '회사'에 투자하라 "밤새 시세가 출렁이면 삶이 무너진다" 그는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을 긋는다. 한 증권사 지점장의 경험담을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분이 코인에 투자했더니 3일을 잠을 못 잤다고 하더군요." 이덕락의 평가는 간명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회사'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본질적이다. 회사는 생산·연구·고용을 통해 사회와 상호작용한다. 그들은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람을 고용하고, 세금을 납부한다. 신자가 장기 주주로 남을 때 기업은 안정적 자본으로 성장하고, 주주는 그 과실을 나눈다. "내가 속한 소사이어티의 성장에 동참하면서 과실을 나누는 선순환"—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투자 윤리다. 반면 암호화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생산적 활동과는 거리가 멀고, 순전히 투기적 성격이 강하다. 무엇보다 변동성이 극심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밤새 시세가 출렁이면 삶이 무너집니다.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데, 코인 차트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은퇴자의 포트폴리오: '가격'보다 '현금흐름' 배당 위주, 생활비의 '두 번째 월급'을 만들라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현금흐름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덕락은 자신의 사례를 솔직하게 밝힌다. 고문 재직의 마지막 해를 지나며 매달 들어오는 급여가 끊길 것을 알기에, 배당이 꾸준한 종목·ETF의 비중을 높여 국민연금 + 배당금으로 생활비 체계를 설계 중이라고 한다. 그는 한때 연금형 상품만으로 노후를 설계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20년 받으면 원금이 사라지는 구조보다, 배당으로 현금흐름을 만들면서 원금을 보전하는 구조가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은퇴 설계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젊을 때는 주가 상승에 초점을 맞출 수 있지만, 은퇴 후에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더 중요하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보다 매달 일정한 배당금이 들어오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 "은퇴자의 핵심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현금흐름의 안정"이라는 그의 조언은 많은 예비 은퇴자들에게 실용적인 지침이 될 것이다. 특히 그는 국내 배당주뿐만 아니라 해외 배당 ETF도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한다. 미국의 우량 기업들은 수십 년간 꾸준히 배당을 지급해왔고, 일부는 매년 배당을 늘려왔다. 이런 기업들에 분산 투자하면 환율 변동 위험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달러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돈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덕락 저자 ▣ '몰빵'의 심리학을 경계하라 목돈의 일시투자보다, '시간에 나눠 사기' 이덕락은 "목돈이 생겼을 때 일시에 투입하는 몰빵 투자는 심리적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고점에서 사면 회복까지 몇 년을 견뎌야 하고, 그 시간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는 많은 투자자들이 겪는 전형적인 실수다. 퇴직금이나 상속받은 돈, 사업 매각 대금 등 목돈이 생기면 '한 번에' 투자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타이밍 리스크를 극대화한다. 대안은 간단하다. "목돈을 열 등분해 수개월~1년에 걸쳐 분할 매수하라." 그는 이 원칙을 자신에게도 엄격히 적용한다. "타이밍은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타이밍과 종목 선택이라는 불가능한 숙제를 포기하는 순간, 투자는 삶을 방해하지 않는 일상이 됩니다." 실제로 그는 강의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1억 원의 목돈이 생겼다면, 한 번에 투자하지 말고 매월 1천만 원씩 10개월에 걸쳐 투자하라는 것이다. 혹은 더 보수적으로 2천만 원씩 5개월, 아니면 5천만 원씩 2개월에 나눠서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에'라는 유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죠." ▣ 직장에서의 '승리' : 일의 탁월함이 신자의 명함 "존경받는 동료가 먼저다. 돈 이야기는 그 다음이다" 흥미롭게도 이덕락의 책은 앞부분에 직장 생활의 원칙을 배치한다. 투자 이야기보다 일의 품위를 먼저 다루는 것이다. 그는 카이스트 김영길 총장을 멘토로 떠올리며 "자기 분야에서 탁월함을 이루어 타인의 신뢰와 존경을 얻는 것"을 신자의 첫 소명으로 제시한다.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회식이나 소통에서 스스로 담을 쌓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존경받는 동료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한국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직격하는 조언이다. 일부 신자들은 '세상과 구별된다'는 명목 하에 동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거나, 심지어 업무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덕락의 생각은 다르다. "신앙은 일을 도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동력이어야 합니다." 투자 원칙 역시 이 맥락에서 제시된다. 개별종목 단타는 업무 집중을 해치고 '월급 루팡'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반면 지수·장기·적립은 직무의 탁월함을 보존하면서 재정을 꾸리는 길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차트부터 보고, 점심시간에 매매하고, 퇴근 전에 또 확인하면서 어떻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모습을 동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의 투자 철학은 결국 '일 잘하는 신자'가 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투자 때문에 일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 교회와 기금 운용: 쉬쉬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대형 교단은 ETF로 연금을 운용한다—공개적 토론을" 취재와 강의를 다니다 보니, 교회 안에는 여전히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덕락은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제도와 문화는 변합니다. 우리는 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그 핵심 제도는 주식회사입니다.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실제로 이미 대형 교단들은 목회자 연금을 주식 등에 투자해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교회 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는 특히 목회자 연금과 같은 제도적 재정은 공개적 토론과 원칙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ETF가 수익이 적다는 통념은 오해입니다. 복리 10~15%의 장기 성과가 기금 운용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직접투자를 통한 고수익 집착이 아니라, 규칙·분산·기간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교회 기금을 특정 부동산이나 개별 종목에 몰빵하기보다는, 분산된 지수 상품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용하자는 제안이다. "교회도 하나의 조직입니다. 미래의 목회자들을 위해, 그리고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합리적인 재정 운용이 필요합니다.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요." 특히 그는 젊은 목회자들의 현실을 언급한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은 학자금 대출도 있고, 집값도 비싸고, 아이 교육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청빈'만 강조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에요." 주식을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라 삶을 자유롭게 하는데 사용하면 된자는 저자 ▣ FIRE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돈이 많아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삶은 허물어졌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운동에 대해서도 그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그가 들려준 지인의 사례는 강렬하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어 조기 은퇴했으나, 일상의 구조가 무너지고 소비와 방황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경제적 자유가 곧 삶의 의미인가요?" 그의 대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먹고사는 걱정이 없어도, 보람과 공동선에 기여하는 일이 없으면 삶은 쉽게 무너집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질문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아실현을 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의 '자유'는 일에서 도망치는 자유가 아니라, 탐욕과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다. 그 자유는 규칙적인 투자와 성실한 직무가 함께 만든다. "진정한 자유는 일하지 않는 자유가 아니라,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의 투자법은 FIRE와는 방향이 다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서 일을 그만두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돈에 대한 걱정 없이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 그리스도인과 부(富): '깨끗한 부자'의 윤리 "부 자체는 죄가 아니다—문제는 방식과 마음" 이덕락은 "아브라함도 부자였다"는 성경적 상식을 조용히 상기한다. 부의 문제는 존재론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는 김동호 목사의 표현을 빌려 '깨끗한 부자'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깨끗한 부자'의 윤리는 세 가지 층위로 나뉜다: 방식의 윤리 : 투기는 배제하고,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회사에 장기 참여한다. 이는 돈을 버는 방법 자체에 관한 것이다. 남의 손실을 전제로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포지티브섬 게임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주식 투자가 도박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의 윤리 : 탐욕을 부채질하는 단타·레버리지·코인에 거리를 둔다. 이는 투자하는 과정에서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투자라도 마음을 빼앗기면 신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투자 방식 자체가 마음의 평정을 해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사용의 윤리 : 나중에 남에게 짐이 되지 않는 재정, 이웃의 짐을 덜어 주는 자원을 준비한다. 이는 모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나아가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그는 "투자는 신앙의 본질 문제가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다만 한다면 방식이 신앙을 도와야 합니다"라고 못 박는다. 이 말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투자 자체를 신앙의 필수 요소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조건 금기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다면 올바른 방식으로, 신앙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 강의 현장에서 들려온 실제 변화들 "월급의 10~30%를 기계적으로"—대학원생·교수들의 반응 그의 강의를 들은 대학원생들은 "장래가 걱정되던 마음이 정리됐다"며 소액 적립투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월 20~30만 원이지만 꾸준히 시작한 것이다. 교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무엇을 사야 하나, 언제 사야 하나'의 고민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한 포스텍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에는 주식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는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어차피 매달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만 투자하면 되니까요." 실제로 이것이 핵심이다. 투자 결정의 부담을 없애는 것이다. 매일 매일 '사야 하나, 팔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원칙을 정하면 그 이후에는 기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물론 부정적 반응도 있다. 개별종목 발굴로 높은 수익을 노리는 이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단조롭고 재미없어" 보인다. 하지만 성과를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조롭지만 지속 가능한 길이 결국 삶을 지킵니다." 그의 확신이다.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생활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 신앙·일·투자의 삼중주 '느림'의 미학, '복리'의 언어, '품위'의 직업윤리 이덕락이 말하는 '천천히 부자 되기'는 단순한 재정 테크닉을 넘어 삶의 태도다. 그의 철학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신앙의 축 : 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규칙과 절제로 탐욕의 회로를 끊는다. 이는 투자를 영성 훈련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기도를 하듯,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투 자 : 시장 전체·장기·적립·분할로 삶을 안정시키고, 은퇴에는 현금흐름(배당)을 더한다. 그는 말한다. “빠름의 욕망을 이기는 길은, 느림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매달 정해진 날, 정해진 비율로, 정해진 상품을, 평생 사는 것. 신앙의 일상처럼.” 철강 연구의 오랜 시간 끝에, 그는 이제 사람의 마음과 돈의 시간을 연구한다. 그 연구의 결론은 간명하다. “천천히”는 재정의 전략이자, 신앙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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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10
  • 자연이 들려준 소리, 믿음으로 빚어낸 빛의 기록
    “꽃은 어두운 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언제나 빛을 향해 자라죠. 마침내 향기로운 꽃잎을 열고 세상을 향기로 채우는 것처럼요.” 한정희 작가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곧 그의 삶이며, 그림이며, 신앙의 고백이자, 회복을 향한 내밀한 서사이다. 2025년 봄, 뉴욕과 스톡홀름을 오가며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서양화가 한정희가 8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자연의 소리 – 전개〉, 경기도 안산 ‘꿈의 교회’ 내 더갤러리에서 4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단지 작가의 귀국전이 아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 예술과 신앙, 봉사와 회복의 길을 걸어온 작가의 진실된 내면의 기록이자, 관람객과 영적으로 호흡하고자 하는 그의 가장 깊은 기도에 가깝다. ■예술은 그에게 신앙의 통로 한정희 작가는 1953년생, 화가인 한봉덕 화백의 딸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예술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고교 시절 첫 개인전을 열며 미술계의 이목을 끈 그는 24살이던 1978년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유학을 떠나며 본격적인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의 예술 여정은 이후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스웨덴 스톡홀름 등 세계 각지에서 100회가 넘는 전시를 이어가며 활발히 펼쳐졌다. 그러나 그에게 예술은 단순한 작업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을 체현하는 삶의 도구이자, 이웃과 연결되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봄의 환희> 한정희 작가는 모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삶의 시련과 함께 깊어졌다. 결혼과 이혼, 홀로 아들을 키우는 고단한 시간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고백한다. “‘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 울림이 왔어요. '너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웃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진리를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후, 자신의 그림이 하나님과의 만남과 깨달음을 고백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랐고, 자연을 주제로 작품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연은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누가 만들었는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죠. 저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한정희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인사동 인사이트 전시관 풍경 ■한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색’을 금식하다 그의 삶과 예술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뉴욕에 머물던 시절, 그는 도시에 만연한 마약과 음란, 물질주의의 이면을 뼈저리게 목격했다. 그때 만난 한국계 마약 중독 청소년들, 고통과 방황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그는 예술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색을 금식'했다. “10년 넘게 흑백으로만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이들의 어둠 속 고통을 더 진실하게 담고 싶었거든요.” 그는 그렇게 ‘빛’을 내려놓았다. 그가 말하는 흑백은 단지 색상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실체였다. 그러나 이 깊은 동참의 시간은 그의 몸과 정신을 점점 병들게 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산토리니에 갔을 때였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바다를 마주하며 마음속으로 외쳤죠. ‘나는 다시 색을 그려야 한다. 이것이 진리다.’” 그 순간부터 그의 작품은 부활의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고통에서 소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흑백에서 다시 원색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은 마치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향하는 신앙의 순례길 같았다. ■ 그림, 그 이상의 실천… 예술은 '살아있는 사랑' 한정희 작가의 삶은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실천가로서도 빛난다. 그는 스웨덴 유학 시절, 8000여 명의 한국 입양아를 위해 15년간 한글학교에서 봉사했고, 미국 LA에서는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에 헌신했다. 그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체험했다”며, “단순히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회복되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길”이라고 말한다. 작품 활동의 수익도 봉사와 선교로 이어졌다. 그에게 예술은 물질이 아니라 도구였고, 명성이 아니라 통로였다. “예술은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죠. 그 세계가 진실하고 따뜻해야 관람자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그는 지금도 뉴욕에서 권사로 활동하며, 신앙과 예술을 결합한 나눔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림이 곧 예배이고, 전시가 곧 설교이며, 색채 하나하나가 곧 기도이자 사랑인 셈이다. ■‘자연의 소리’, 그리고 ‘전개’ 이번 전시 〈자연의 소리 – 전개〉는 그의 지난 시간들을 아우르는 예술적 신앙 여정의 연속선상에 있다. ‘전개’라는 부제는 그가 경험한 자연 속 하나님의 메시지를, 화폭 위에 차곡차곡 펼쳐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정희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추운 겨울을 이겨낸 꽃처럼, 고난을 견디고 믿음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삶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전시작들 속 자연은 생명력 그 자체로 피어오른다. 바람 속에서 꺾이지 않는 가지들,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잎들, 광야에서 솟아오르는 푸른 싹은 모두 그의 내면에서 피어난 영혼의 풍경이다. 작품의 색채 또한 의미가 뚜렷하다. 붉은색은 성령의 열매, 노란색은 예수의 영광, 파란색은 평안, 하얀색은 정결, 검은색은 고난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전하는 것은 단순한 신학적 상징을 넘어선다. 그것은 결국 ‘감사’와 ‘기쁨’이라는 깊은 정서, 다시 살아갈 힘을 관람자에게 전하는 조용한 감동이다. ■ 귀향, 그리고 새봄처럼 다시 피어난 이야기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제 마음속 밑바닥엔 언제나 한국이 있었습니다. 이 땅의 분들에게 저의 그림이 위안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한정희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땅에 '신앙적 감성'을 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품고, 다시금 이곳의 공기와 눈빛을 마주하며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되묻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젊은 작가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한다. “진실한 자기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술은 결국 자신을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정희 작가의 삶과 그림은 이 성경 구절을 증명하는 여정이었다. 그는 진리를 좇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림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했다. 그의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작품 전시’가 아니라, 삶의 고백이고, 신앙의 찬송이며, 사랑의 전도다. 그는 말한다. “제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있고 싶진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나누며 살다 가고 싶습니다.” 그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안산의 더갤러리 한편에서 새처럼 날아와, 조용히 우리 가슴 어딘가에 내려앉고 있을 것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자연의 소리 – 전개 기 간: 2025년 4월 3일 ~ 13일 장 소: 경기도 안산시 꿈의교회 ‘더 갤러리’ 작 가: 서양화가 한정희 특 징: 자연을 주제로 한 영적 회복, 동서양 융합의 색채 표현, 신앙과 예술의 조화
    • 문화
    • 인터뷰
    2025-03-31
  • “나는 이제 미운 오리가 아니라, 왕의 자녀입니다”
    진행자 : 요즘 강연과 저술로 바쁘신 걸로 압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독자들을 위해 작가님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세우기라고 말하는 허두영 대표 허두영 작가 : 네, 반갑습니다. 저는 허두영이라고 합니다. 흔히 ‘작가’라고 불러주시는데 사실 제 정체성은 조금 복합적입니다. 교회에서는 ‘안수집사’로 섬기고 있고요, 본업은 HR 교육 컨설턴트로 25년 넘게 기업 교육 현장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첫 책은 2018년에 출간한 『요즘 것들이』였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하고 그들과의 소통법을 다룬 책인데, 감사하게도 기업에서 반응이 좋아서 이후 강의 요청이 이어졌고요. 그렇게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소중한 타이틀은 ‘그리스도인’이며, 그 안에서 안수집사라는 부름이 제 정체성의 중심입니다. 진행자 : 최근 출간하신 『퍼플 스완』은 기존의 세대론적 분석서들과는 결이 다른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허두영 작가 : 『퍼플 스완』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쓴 책입니다. 전작 『데일리 루틴』이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책은 인생 전체, 즉 '라이프 루틴'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제목인 ‘퍼플 스완’은 상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동화 <미운 오리 새끼>에서 오리가 아니라 백조임을 자각하게 되는 장면, 그 물가에 비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는 장면을 저는 성경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성경에서 ‘물’은 종종 말씀이나 복음을 상징하죠. 저 역시 말씀을 통해 제 정체성—‘나는 왕의 자녀다’—를 깨달았고, 거기서부터 인생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쓰여진 <퍼플 스완> '퍼플(Purple)’은 성경에서 ‘자색’, 왕의 옷을 의미하는 색입니다. ‘스완(Swan)’은 거듭난 존재, 진짜 자아를 상징하지요. 즉, 『퍼플 스완』은 ‘왕의 자녀로 거듭난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탐구이자 고백입니다. 진행자 : 그렇다면 이 책은 신앙고백의 성격도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허두영 작가 : 맞습니다. 사실 이 책은 제가 구원의 확신을 얻은 이후 처음 쓴 책입니다. 원래는 기독교 색채를 최대한 걷어내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독자들이 기피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쓰다 보니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제 삶을 바꾼 힘이 말씀이고 복음이기 때문에, 그 바탕 없이 이야기를 풀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은 교회 밖 독자 중에서도 “기독교 책은 아닌데 왜 이렇게 찡하죠?”라고 말한 분들이 있었고, 교회 안에서는 “복음이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군요”라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하나님께 쓰임받았다고 믿습니다. 진행자 :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 중 하나가 ‘후회 없는 삶’입니다. 그 여정을 책에서는 어떻게 구성하셨는지요? 일상과 결결, 담대한 도전, 자신의 차별화가 책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허두영 저자 허두영 작가 : 책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일상과 결별하라”입니다. 세상에 묻혀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죠. 둘째는 “담대하게 도전하라”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할 것. 셋째는 “자신을 차별화하라”, 즉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 강점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승부하라는 겁니다. 프롤로그에는 ‘인생에서 반드시 던져야 할 9가지 질문’을 정리해두었고, 각 장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 “내 인생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는 나만의 시스템을 갖췄는가?” 같은 질문들이죠. 진행자 : 신앙인으로서의 삶에서 ‘신령한 성소를 지키는 법’도 강조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허두영 작가 :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마음의 성소입니다. 우리 내면의 소음, 세상의 노이즈를 잠재우고 말씀과 하나님을 만나는 고요한 공간을 말하죠. 이를 위해 저는 'NO'라고 말하는 훈련도 많이 했습니다. 무례한 요청, 필요 없는 일에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도 내면의 성소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물리적 성소, 곧 나만의 공간입니다. 저는 스타벅스 창가에 늘 앉는 자리가 있어요. 거기서 책을 쓰고 묵상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런 공간이 있기에 인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AI 시대일수록 이러한 ‘성소’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책에서 “질문이 삶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허두영 작가 : 저는 단연코 “어떻게 후회 없이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문학의 고전적 질문—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후회 없이’를 덧붙이고 싶어요. 그리고 ‘학문(學問)’이란 단어 자체가 ‘배우고 묻는 것’이지 않습니까? 진짜 학문은 좋은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도 건강, 관계, 일, 삶에 관한 고급 질문 리스트를 분야별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AI 시대엔 ‘질문 지능’이 곧 생존력입니다. 진행자 : 목표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I SWEAR’라는 원칙도 소개하셨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허두영 작가 : 네, I SWEAR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사고방식과 행동 습관에서 도출한 원칙입니다. I: Intentional – 목표에 대한 의지가 분명한 사람. S: Selfless & Specific – 이타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목표 설정. W: Written – 반드시 기록하고 눈에 보이도록 관리. E: Emotional – 감정이 움직이는, 가슴 뛰는 목표 설정. A: Adjust & Align – 목표를 수정하며 비전과 일치시키는 작업. R: Romantic – 비현실적일 만큼 높은 목표 설정. 이 마지막 ‘Romantic’이 핵심입니다. 보통은 ‘리얼리스틱(현실적)’한 목표를 세우라고 하지만, 오히려 위대한 성취는 ‘그게 가능하겠어?’ 싶은 꿈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그 대표적 인물 아닐까요? 진행자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가장 경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허두영 작가 : 저는 “다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경계합니다. “다음에 하지, 다음에 보자”라는 말 속에 인생을 미루는 습성이 있죠. 그런데 인생은 철저히 현재의 연속입니다. 다음은 보장되지 않거든요.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또 하나는 “후회”입니다. 하나님조차도 사울을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는 성경 구절을 보며 깊이 묵상했어요. 우리 인생, 단 한 번뿐입니다. 이왕이면 후회 없이 살아가야죠. 『퍼플 스완』은 그런 후회를 줄이기 위한 책입니다. 진행자 : 이 책이 교회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기를 바라시나요? 허두영 작가 :제자훈련 교재나 셀 모임, 혹은 청년부 독서모임에서 아주 잘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중간중간에는 기록 공간도 마련했고요, 신앙과 삶을 연결하는 질문과 통찰들이 많습니다. 특히 신앙은 있지만,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는 맞춤형 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행자 : 마지막으로, 다음 책은 어떤 방향으로 구상하고 계신가요? 허두영 작가 : 다음 책은 좀 더 직접적인 복음서가 될 것 같습니다. 『퍼플 스완』이 ‘신앙 있는 자기계발서’였다면, 이제는 복음 그 자체를 풀어내고 싶어요. 또한 크리스천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같은 현실적 주제로 풀어보려 합니다. * 진행자 주 : 『퍼플 스완』은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구원 여정이자, 왕의 자녀로서의 자각에서 출발한 삶의 설계도다. 우리가 지금 물가에 비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다면, 이제는 깨어날 시간이다. "나는 미운 오리가 아니라 퍼플 스완이다" – 허두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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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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