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가 한정희, 8년 만의 귀향과 그녀의 신앙적 예술 서사
“꽃은 어두운 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언제나 빛을 향해 자라죠. 마침내 향기로운 꽃잎을 열고 세상을 향기로 채우는 것처럼요.”

한정희 작가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곧 그의 삶이며, 그림이며, 신앙의 고백이자, 회복을 향한 내밀한 서사이다.
2025년 봄, 뉴욕과 스톡홀름을 오가며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서양화가 한정희가 8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자연의 소리 – 전개〉, 경기도 안산 ‘꿈의 교회’ 내 더갤러리에서 4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단지 작가의 귀국전이 아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 예술과 신앙, 봉사와 회복의 길을 걸어온 작가의 진실된 내면의 기록이자, 관람객과 영적으로 호흡하고자 하는 그의 가장 깊은 기도에 가깝다.
■예술은 그에게 신앙의 통로
한정희 작가는 1953년생, 화가인 한봉덕 화백의 딸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예술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고교 시절 첫 개인전을 열며 미술계의 이목을 끈 그는 24살이던 1978년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유학을 떠나며 본격적인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의 예술 여정은 이후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스웨덴 스톡홀름 등 세계 각지에서 100회가 넘는 전시를 이어가며 활발히 펼쳐졌다. 그러나 그에게 예술은 단순한 작업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을 체현하는 삶의 도구이자, 이웃과 연결되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봄의 환희>
한정희 작가는 모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삶의 시련과 함께 깊어졌다. 결혼과 이혼, 홀로 아들을 키우는 고단한 시간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고백한다.
“‘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 울림이 왔어요. '너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웃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진리를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후, 자신의 그림이 하나님과의 만남과 깨달음을 고백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랐고, 자연을 주제로 작품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연은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누가 만들었는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죠. 저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한정희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인사동 인사이트 전시관 풍경
■한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색’을 금식하다
그의 삶과 예술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뉴욕에 머물던 시절, 그는 도시에 만연한 마약과 음란, 물질주의의 이면을 뼈저리게 목격했다. 그때 만난 한국계 마약 중독 청소년들, 고통과 방황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그는 예술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색을 금식'했다.
“10년 넘게 흑백으로만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이들의 어둠 속 고통을 더 진실하게 담고 싶었거든요.”
그는 그렇게 ‘빛’을 내려놓았다. 그가 말하는 흑백은 단지 색상의 문제가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실체였다. 그러나 이 깊은 동참의 시간은 그의 몸과 정신을 점점 병들게 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산토리니에 갔을 때였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바다를 마주하며 마음속으로 외쳤죠. ‘나는 다시 색을 그려야 한다. 이것이 진리다.’”
그 순간부터 그의 작품은 부활의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고통에서 소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흑백에서 다시 원색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은 마치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향하는 신앙의 순례길 같았다.

■ 그림, 그 이상의 실천… 예술은 '살아있는 사랑'
한정희 작가의 삶은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실천가로서도 빛난다. 그는 스웨덴 유학 시절, 8000여 명의 한국 입양아를 위해 15년간 한글학교에서 봉사했고, 미국 LA에서는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에 헌신했다.
그는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체험했다”며, “단순히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회복되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길”이라고 말한다.
작품 활동의 수익도 봉사와 선교로 이어졌다. 그에게 예술은 물질이 아니라 도구였고, 명성이 아니라 통로였다.
“예술은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죠. 그 세계가 진실하고 따뜻해야 관람자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그는 지금도 뉴욕에서 권사로 활동하며, 신앙과 예술을 결합한 나눔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림이 곧 예배이고, 전시가 곧 설교이며, 색채 하나하나가 곧 기도이자 사랑인 셈이다.


■‘자연의 소리’, 그리고 ‘전개’
이번 전시 〈자연의 소리 – 전개〉는 그의 지난 시간들을 아우르는 예술적 신앙 여정의 연속선상에 있다. ‘전개’라는 부제는 그가 경험한 자연 속 하나님의 메시지를, 화폭 위에 차곡차곡 펼쳐나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정희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추운 겨울을 이겨낸 꽃처럼, 고난을 견디고 믿음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삶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전시작들 속 자연은 생명력 그 자체로 피어오른다. 바람 속에서 꺾이지 않는 가지들,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잎들, 광야에서 솟아오르는 푸른 싹은 모두 그의 내면에서 피어난 영혼의 풍경이다.
작품의 색채 또한 의미가 뚜렷하다. 붉은색은 성령의 열매, 노란색은 예수의 영광, 파란색은 평안, 하얀색은 정결, 검은색은 고난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전하는 것은 단순한 신학적 상징을 넘어선다. 그것은 결국 ‘감사’와 ‘기쁨’이라는 깊은 정서, 다시 살아갈 힘을 관람자에게 전하는 조용한 감동이다.

■ 귀향, 그리고 새봄처럼 다시 피어난 이야기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제 마음속 밑바닥엔 언제나 한국이 있었습니다. 이 땅의 분들에게 저의 그림이 위안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한정희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땅에 '신앙적 감성'을 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품고, 다시금 이곳의 공기와 눈빛을 마주하며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되묻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젊은 작가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한다. “진실한 자기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술은 결국 자신을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정희 작가의 삶과 그림은 이 성경 구절을 증명하는 여정이었다. 그는 진리를 좇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림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했다.
그의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작품 전시’가 아니라, 삶의 고백이고, 신앙의 찬송이며, 사랑의 전도다.
그는 말한다. “제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있고 싶진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나누며 살다 가고 싶습니다.”
그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안산의 더갤러리 한편에서 새처럼 날아와, 조용히 우리 가슴 어딘가에 내려앉고 있을 것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자연의 소리 – 전개
기 간: 2025년 4월 3일 ~ 13일
장 소: 경기도 안산시 꿈의교회 ‘더 갤러리’
작 가: 서양화가 한정희
특 징: 자연을 주제로 한 영적 회복, 동서양 융합의 색채 표현, 신앙과 예술의 조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