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0(화)
 
  • 케냐 오지 선교사 故이원철 목사의 고백…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의료진과 공급, 그리고 다시 케냐로 돌아온 아들의 결단

1997년, 아프리카 중서부 케냐에 들어가 27년 동안 한결같이 케냐를 사랑하고 온몸으로 사랑을 전하다가 2023년 7월 5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토록 사랑하던 그곳에서 하나님께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선교의 삶 가운데 일어났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간증을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TWNt6PiiJg0)에서 발췌하여 싣습니다. -편집자 주-

    

이원철선교사 간증영상.jpg

 ▲

“제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그다음에 저를 그 길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케냐의 오지,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 이슬람권 지역에서 사역해 온 이원철 선교사는 자신의 선교 여정에 대해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 고백은 추상적인 신학적 표현이 아니라, 한 아이의 생명이 꺼져가던 시간 속에서 ‘기가 막히게’ 준비되어 있던 사람들, 문, 돈, 그리고 결정을 통해 확인된 현실의 기록이다.

 

이 간증은 ‘믿으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 순간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는가’, ‘왜 그 문이 그때 열렸는가’, ‘왜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를 촘촘히 되짚으며, 한 선교사가 경험한 섭리의 디테일을 따라가게 만든다. 

 

1. “예배 때마다 밀려오던 사랑”이 방향을 바꿨다

그가 처음 선교사의 길을 결심한 계기는 거창한 ‘소명 체험’의 장면이 아니라, 반복되는 예배의 시간이었다. 그는 “매주일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너를 구했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밀려왔다”고 말한다. 그 사랑이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 “내가 나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결론은 단순했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라는 확신. 그 확신은 그를 케냐의 오지로 데려갔다.

 

2. “현상금이 걸린 사역지”… 그러나 더 큰 전쟁은 ‘집 안’에서 시작됐다

사역지는 험했다. 그는 “무슬림들이 나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죽이면 얼마”라는 말을 담담히 꺼낸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담대한 믿음을 주셔서 두려움 없이 사역한다”고 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가장 깊은 흔들림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가족의 위기’에서 왔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보딩스쿨)에 아이를 맡기고 사역하던 어느 때, 큰아이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못 자고, 화장실을 자주 가고, 먹지 못하고, 물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마셨다. 체중은 급속도로 줄어들어 마침내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로 내려갔다.

 

병원은 “이 아이가 이렇게 말라가면 죽는다”고 했다. 케냐에 있던 의료진, 미국에서 온 의료선교사 의사들까지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 방법도, 저 방법도” 다 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3. “회교 병원에 가라”는 권유 앞에서—그는 왜 ‘거절’했나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케냐 나이로비에 위장 전문의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약까지 잡혔다. 병원 이름도 있었다. 아가칸(Aga Khan) 병원.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결박되었다. 그는 그 병원을 “회교 병원”이라고 표현하며, 그 문턱을 넘는 순간을 상상했다. 병원 서류에 적힐 “부모 직업: 기독교 선교사”라는 한 줄.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올 것 같은 조롱—“네가 믿는 하나님으로는 아이를 못 살려서 여기 왔느냐.”

 

의료적 판단만 놓고 보면, ‘가야 한다’는 결론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을 수 있다”는 영적 문제로 받아들였다. 간호사 선교사가 격하게 반응할 만큼 그는 단호했다. “나는 이 아이를 회교 병원에 데려갈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그의 신앙은 ‘기적을 요구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신앙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그 결정이야말로 이후의 모든 길을 여는 ‘첫 단추’였다고 회고한다.

 

4. “아내의 울음”… 그리고 한 줄기 균열

하지만 믿음의 고백은 흔들리지 않는 강철이 아니었다.
현실은 계속해서 ‘급박’으로 밀어붙였다.

어느 날, 사역 일정 중이던 그에게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 아내는 잘 울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내는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전해진 말은 단순했다.

“아이(큰아들)가 화장실 갔다가 오면서 쓰러졌어요.”

 

그는 차를 세웠고, 마음 한가운데로 “이 아이가 죽는구나”라는 직감이 찔러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덮쳤다. “죽을 때 아빠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는 남은 거리(약 한 시간 반)를 달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5. “응답은 받았는데… 왜 현실은 안 변하는가”

기도팀에서 연락이 왔다.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이 이 일을 고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기뻤다. 아이에게 달려가 “하나님이 너를 고치셨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도 기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하루 이틀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토하고, 힘들어하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엔 낙심이 쌓였다.

 

그때 그가 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는 차를 닦고 있었다. 그 평범한 순간에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지만, 하나님은 이미 고치셨다. 그러나 그 고치신 ‘시점’이 우리에게 도달할 때, 우리는 그 치유를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그는 이 깨달음을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믿음의 시간표’로 받아들였다.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인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를 고치셨다. 그 시점까지 믿음을 잃지 말자.”


6. LA로 가라는 낯선 초대—“갈 형편이 아닌데, 길이 열렸다”

그때 또 하나의 의외의 통로가 등장한다. LA로 오라는 메시지. 그것도 넉넉해 보이지 않는 한 전도사에게서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이는 누워 있어야 했고, 선교지 사역은 진행 중이었다. 무엇보다 항공권 값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는 기도 중 “네가 LA 가서 할 일이 있다”는 마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 마치 그 ‘마음’에 반응하듯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이미 고인이 된 한 목회자가 그에게 3천 불을 건네며 말했다.

“병원 좀 데려가 봐.”

놀랍게도 그 돈은 “두 사람 비행기 값”과 거의 맞아떨어졌다. 그는 그 돈을 사역비로 쓰고 싶었지만, 마음에 주어진 ‘LA로 가야 한다’는 부르심을 따라 항공권으로 바꿨다.

 

여기서부터 ‘사람의 예비’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말을, 필요한 액수로 가져온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보내게 하신 것”이라고 표현한다.

 

7. 비자도, 비행기도—“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통과되었다”

LA행의 또 다른 벽은 비자였다. 아이는 대사관 인터뷰를 받을 상태가 아니었다. “의자에 앉으면 머리가 무거워서” 버티지 못했다. “거부당할 게 당연”해 보였다.

 

그는 마지막 방법을 택했다.
아이를 대사관 밖에 두고, 아이의 여권만 들고 들어갔다.

“아이 비자를 주십시오.”

영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이 얼굴도 안 보고 비자를 줄 수 없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흘렀다. 영사는 결국 비자를 찍어주었다. 인터뷰도 없이. 아이는 비자를 받았다.

 

비행기에서도 길이 열렸다. 걷지 못하는 아이는 휠체어로 탑승했고, 승무원은 아이를 눕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심지어 그들이 안내한 자리는 “맨 앞자리(1등석)”였다.

 

‘상식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따라붙는 장면들이 연속된다. 그는 그 연속성 속에서 ‘우연’이 아니라 ‘인도’의 패턴을 읽어낸다.

 

8. “응급실에 안 가려 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왔다

미국 도착 후에도 그는 쉽게 응급실로 향하지 못했다. “선교사”라는 정체가 또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하나님이 비난받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때, 링거를 놓아주려 찾아온 간호사와 단기팀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동행했다. 중국인 의사. 그것도 의대 교수.

그 의사는 아이를 보자마자 단정했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의료 조언이 아니었다. 

선교사의 마음을 굳게 잠근 ‘종교적 체면’의 문을 강제로 두드리는 선포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망설였지만,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살아서 미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는 아이에게 직접 물었다. “병원에 가고 싶니?” 아이는 답했다.
“아빠, 왜 이렇게 오래 토했는지 원인이라도 알고 싶어요.”

 

바로 이 ‘아이의 입’이, 아버지의 완강함을 무너뜨리는 열쇠가 되었다. 그가 문을 열자, 주변 사람들은 기뻐했다. 어떤 이는 “당신 마음이 바뀌도록 우리가 기도했다”고 나중에 말했다고 한다.

 

9. 응급실의 기적: “절차 없이 들어갔고, 곧바로 CT를 찍었다”

응급실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쟁터 같았다. 그런데 그 중국인 의사가 미리 전화한 덕분에 “아무 수속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인턴이 아이를 보더니 말했다.

“뇌를 찍어야 합니다.”

곧바로 CT. 그리고 아이는 ICU(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때 선교사는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해 복도 의자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새벽, 의료진이 환자 요약 파일을 복도에 두고 간 일이 있었다. 그는 무심코 그것을 보게 된다. 거기에 적혀 있던 한 문장이 그를 멈춰 세웠다.

“부모에게 알리지 말 것.”
그리고 이어진 내용.
“뇌에 종양 2개(1cm, 2cm).”

 

이 장면이 이 간증의 독특한 역설을 만든다.
보통 ‘종양’은 절망의 단어다. 그런데 그는 “너무 기뻤다”고 말한다. 이유는 분명했다.

케냐에서도, 미국에서도 찾지 못했던 원인을 하나님이 드디어 “알게 하셨다.”
“고칠 수 있는 병원에서 원인을 알게 하셨다.”

그는 아이에게 달려가 말했다.

“드디어 원인을 알았다. 하나님이 너를 고치시려고 여기로 인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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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때, 그 교수”… 그리고 또 하나의 예비

중환자실에서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키가 크고 머리가 희끗한 교수. 차트를 보더니 묻는다.

“너 케냐에서 왔니? 우리 아버지가 케냐 의료선교사였다.”

그리고 그는 거의 ‘개인 담당’처럼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놀랄 정도의 관심. “돈도 없어 보이는 선교사 가족”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말이 뒤이어 나왔다.

“네 아이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병원비를 무료로 하겠습니다.”

선교사는 당황했다. 아이와 “평생 갚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것이 무너졌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하나의 확신이 찾아왔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고치시려고, 네가 돈이 없으니 하나님이 책임지시려고, 여기로 부르셨다.”

 

이쯤 되면 ‘사람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말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가 된다.
케냐를 아는 교수, 케냐 선교사의 아들을 돕는 의료진, 비용을 감당하는 시스템, 그리고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하는 안내자들. 이들은 마치 “누군가가 미리 배치해 둔 것”처럼 움직인다.

 

11. “머리를 열지 않아도 되는 병원”으로—또 한 번 문이 열렸다

아이의 종양을 제거하려면 머리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의료진은 “머리를 열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더 좋은 병원”이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곳이 사립병원이라는 점. 비용이 또 다른 벽이었다.

하지만 그 병원도 아이를 받아주기로 했다. 의료진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기도 많이 했지? 기도 많이 해서 하나님이 길을 여신 거야.”

아이를 태운 앰뷸런스가 또 한 번 문을 통과했다. 새 병원에 도착하자 젊은 의사는 말했다.

“이 아이는 케냐에 있었거나, 한국으로 갔으면 죽었을 겁니다.”

그는 그것을 “럭키”라고 표현했지만, 선교사는 그 ‘럭키’라는 말을 ‘인도’로 번역했다.

 

12. “우리는 둘 다 ‘사역자의 자녀’야”—마지막 열쇠 같은 한 마디

새 병원에서 또 한 사람이 들어온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의사. 차트를 쭉 보더니 묻는다.

“너의 아버지가 케냐 선교사냐?”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목사다. 너와 나는 둘 다 미니스터의 자녀다.”

이 짧은 문장은, 선교사의 눈에 ‘우연히 만난 의료진’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으로 그를 확정시켰다. 그 의사는 아이를 끝까지 치료했고, 아이는 회복했다.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마침내 케냐로 돌아와 “선교사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 

 

13. “그때 병원에 갔으면 오히려 죽었을 것”—하나님이 ‘눈을 가리신’ 시간

그는 한 가지 섬뜩한 결론을 덧붙인다.

“제가 (처음부터) 그 병원에 데려갔으면, 얘는 죽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초기에 의료진이 찾은 건 위장 문제가 아니었다. 뇌 문제였다. 케냐에서 섣불리 수술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손을 댔다면 더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이 ‘수술할 수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셨다. 원인을 못 찾게 하셨다. 그리고 ‘고칠 수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원인을 보게 하셨다.

 

이 대목에서 그의 간증은 단순한 기적담을 넘어선다.
하나님이 “치유”만 행하신 것이 아니라, 치유가 가능한 “시간과 장소”를 먼저 준비하셨다는 서술이기 때문이다.

 

14. 선교 재정이 끊겼을 때도—“하나님이 돈은 안 주시고, 말씀을 주셨다”

아이의 치유가 ‘생명의 극적 인도’였다면, 재정의 사건은 ‘사역의 지속을 위한 인도’였다.

그는 한 교단 선교를 통해 파송을 받았고, 초기에는 교회가 생활비와 사역비를 약속했다. 그는 케냐에서 기독교 학교를 세웠다. 그 지역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교가 되었고, 회교도든 기독교인이든 4년 동안 성경을 배우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회 내부 분쟁이 터졌다. 헌금이 ‘재판 비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헌금을 멈췄고, 결국 선교 후원이 끊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도저히 못 보낸다”는 통보가 왔다.

 

그는 현실적으로 ‘신입생을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건물을 더 지을 수 없으니, 확장을 멈추자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주신 것은 돈이 아니라 말씀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는 “돈은 안 주시고 말씀만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씀이 그를 움직였다. 그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을 택했다. 직접 땅을 파고, 가능한 만큼 기초를 놓았다.

 

그리고 나이로비로 돌아왔을 때, 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와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돈. 그는 그 돈으로 건물을 올렸다. 또 필요가 생겼을 때 또 돈이 들어와 있었다. 결국 후원이 끊어진 해에 건물 두 개를 세우려 했던 계획은 더 커져, “보너스로 교회까지” 세웠다.

 

그는 결론을 이렇게 내린다.

“중요한 건 ‘재정이 있느냐’가 아니라, ‘이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가’다. 그분의 뜻이면 재정은 따라온다.”

 

15. “하나님은 ‘길’을 예비하신다”—그의 간증이 남기는 한 가지 질문

이원철 선교사의 간증은 ‘나는 믿었더니 기적이 왔다’는 단순한 도식으로 닫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묻는다.

 

왜 그때 3천 불이 ‘항공권 값만큼’ 주어졌는가?

왜 아이는 인터뷰도 없이 비자를 받았는가?

왜 응급실에서 ‘절차 없이’ 들어갈 수 있었는가?

왜 케냐를 아는 교수, 사역자의 자녀임을 공유하는 의사가 연달아 나타났는가?

왜 ‘원인을 찾지 못하게’ 하셨다가, ‘고칠 수 있는 곳’에서 보게 하셨는가?

 

그는 이 모든 질문을 하나로 묶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나를 준비시키시고, 길을 준비시키신다.”

그리고 그 준비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는 방식으로 그를 붙들었다.

 

 

 

맺으며: 케냐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

아들의 치유는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와 같이 선교사 하지 않을래?”

아들은 “하겠다”고 답했다. 지금 그 아들은 케냐에서 선교사로 아버지를 돕고 있다. 선교사는 이 결말을 ‘내 아이를 살려보자’는 목적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열매로 본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난 한 아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미리 배치된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지 않게 해달라”고 울며 기도하던 한 아버지.

그가 말하는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은, 멀리 있는 교리가 아니라 현장 한복판에서 사람과 시간과 길을 정교하게 엮어내는 살아 있는 인도였다.

 

 

 

 

※ 故 이원철 선교사의 이들 이인 선교사와 그의 장모는 무슬림에 납치되어 2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원철 선교사 약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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