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권력의 종교 개입과 신앙의 본질적 자유에 대한 성찰
데스크칼럼/양봉식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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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 거꾸로 된 질문
최근 이단으로 규정된 집단인 신천지가 정부의 특정 종교 단체 해산 논의와 관련하여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의 문장을 읽어 내려가며 묘한 불쾌감과 함께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교차함을 느꼈다. 정통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온 집단이 역설적이게도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를 역설하며 국가 권력의 향방에 문제를 제기하는 장면은 지극히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목소리가 옳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던진 ‘종교 자유의 위기’라는 화두가 현재 한국 교회가 마주한 거대한 시대적 징후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인가. 이단의 입에서 나온 정의(正義)가 오히려 잠자는 정통 교회의 죽비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자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를 넘어 체제와 가치의 영역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논쟁은 블랙홀처럼 정치적 구도로 수렴되곤 한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좌와 우라는 이분법적 틀은 복잡한 본질을 단순한 호불호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종교 단체 해산 논의와 그에 따른 갈등은 단순한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아니다. 이는 국가의 체제와 자유의 근간, 그리고 신앙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토양에 관한 실존적 문제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혹은 대중적 지지율에 따라 특정 집단을 ‘해산’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정당화된다면, 그 칼날의 끝이 언제나 이단만을 향해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종교의 자유는 국가가 부여한 시혜적 권리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천부적 권리이자 국가 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다. 이를 훼손하는 선례가 만들어질 때, 우리는 신앙의 자유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정치적 거래의 제물로 바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진리의 분별과 권력의 칼날
정통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단과 거짓 교리에 맞서 피 흘리는 싸움을 지속해 왔다.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거짓된 누룩을 경계하고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라고 끊임없이 가르쳤다. 교회는 교리를 세우고 분별의 잣대를 엄격히 함으로써 공동체를 지켜왔다.
참된 진리를 붙드는 공동체는 이단의 존재 그 자체에 과도한 공포를 느끼거나 국가 권력을 빌려 그들을 멸절하려 들지 않는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가고, 참이 서면 거짓은 스스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교회의 힘은 공권력의 강제 집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생명력과 도덕적 우위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금의 형국은 묘하기 짝이 없다. 이단 집단이 ‘자유’를 외치며 방어막을 치는 동안, 정작 한국 교회는 이 문제를 ‘체제와 자유’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성찰하기보다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다.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집단을 공권력이 대신 처리해 주는 것에 안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가진 영적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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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 그 헌법적 가치의 엄중함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를 헌법적 핵심 가치로 삼는 국가다. 우리가 거리에서 찬양하고, 노방전도를 하며, 대규모 광장 집회를 통해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토양은 바로 이 자유의 보장에서 기인한다. 만약 현재 눈앞에 가시 같은 종교 집단을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국가 권력의 종교 개입을 묵인하거나 당연시한다면, 훗날 그 '개입의 기준'이 정통 교회를 향할 때 우리는 어떤 명분으로 저항할 수 있겠는가.
역사는 반복된다. 권력에 의한 종교 억압은 대개 사회적 공감대가 낮고 소외된 집단을 제물 삼아 시작된다. 대중의 분노를 동력 삼아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그 칼날은 점차 예리해지고 범위는 넓어진다. 결국 국가가 '허용하는 신앙'과 '허용하지 않는 신앙'을 가르는 심판관의 자리에 앉게 될 때, 진정한 신앙의 공간은 사라지게 된다. 이는 이미 수많은 전체주의 국가와 역사 속에서 증명된 비극적인 공식이다.
말세의 징후와 깨어 있는 영성
성경은 마지막 때를 경고하며 예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는 날이 올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막연한 종말론적 상상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로서 우리 앞에 다가오는 현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종교에 대한 적대감과 행정적 규제의 움직임이 어떤 영적 징후를 내포하고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깨어 있음’이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조차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 성명서를 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 현실 앞에서, 한국 교회의 평온함은 오히려 위태로워 보인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차원을 넘어, 복음이 선포되고 신앙이 호흡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 그 자체를 사수하는 일이다.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
사람의 세계관과 신념은 법이나 강압으로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간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주입해도 인간의 내면은 완강한 성벽과 같다. 하물며 국가 권력이 물리적 힘으로 종교적 확신을 통제하거나 교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회심하게 하는 역사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에 속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 파수꾼의 사명으로 질문을 던지고, 시대의 오류에 대해 경고하며, 성도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혐오에 편승하여 자유를 파괴하는 길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더라도 진리의 길을 묵묵히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파수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 분노나 선동적 구호가 아니다. 무엇이 본질이며, 무엇이 체제의 문제인가를 차분히 짚어보는 지혜다. 또한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 단순히 내 울타리를 지키는 것을 넘어,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지키는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단의 성명서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시대, 한국 교회는 과연 무엇을 파수하고 있는가. 눈앞의 편의인가, 아니면 영원한 자유의 가치인가. 이 무거운 질문 앞에 더 이상 외면이나 침묵으로 답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그 대답을 삶과 실천으로 증명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