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쓰는 복음(1)
양봉식 목사(길과 생명연구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담의 자손들을 다시 회복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획을 실행하십니다. 그런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 전에,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입니다.
그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을 때, 성령님으로 잉태하셨으며,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을 통해 수많은 얻게 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들려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죽음이며, 그 죽음을 통해 비로소 인류 가운데 새로운 생명이 들어오게 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4-16)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며, 이 생명은 오직 하늘에서 오는 것으로 믿는 자는 땅에서 태어난 육신의 출생과 다른 하늘에서 오는 새로운 출생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태어나신 것처럼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늘로부터 태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되며, 그 생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성품, 혹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한 자라고 말합니다. 정말 놀라운 소식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죄사함이 아닌 하니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 새로운 피조물에 관한 것입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마귀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어둠에서 빛의 존재가 된 이야기가 복음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복음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열어 제칩니다. 현실에 있으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초월적이고 내재적이며, 낯설면서도 가장 친밀한 삶, 현실의 시간을 넘어서 경이로운 세계를 들어가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실상의 세계, 즉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셰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이 경이로운 세계와 보이는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입니다. 이 생명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태초부터 예정하신 계획이 분명해질 뿐만 아니라 삶에 의미가 살아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실 때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고 다가올 미래의 일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생명을 간절히 원하고 믿는다고 예수님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주셨음을 고백하는 자는 누리기 시작합니다.
삶의 유일한 기적은 바로 이 생명이 주어졌을 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과 똑같은 신적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아무런 대가 없이 오직 믿기만 하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생명(조에, ζωὴ)은 단순히 “죽지 않는 생명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 인간 안에 들어와 작동하는 실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이미 이 생명을 받았습니다(요 5:24).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
이 말씀은 왜 이미 받은 생명이 더 풍성해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생명이 실제 삶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를 묻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1. 왜 하나님의 생명은 ‘소유’가 아니라 ‘충만’이어야 하는가
첫 번째, 생명은 씨앗이 아니라 ‘통치하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거듭날 때 하나님의 생명은 씨앗처럼 우리 안에 심어집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그러나 씨앗은 심어졌다고 자동으로 숲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은 “새로운 피조물”의 신분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0:10은 그 신분이 삶 전체를 지배하는 상태로 확장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즉, 조에는 단순한 ‘출생 사건’이 아니라 ‘삶을 지배하는 생명 질서’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왜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하지 않으면 ‘구원받은 옛 사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도록 계획하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은 받았지만, 사고방식은 여전히 육신 중심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 8:5)
육신이 중심이 되면 육신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명을 따르지 않게 되면 삶에서 나타나는 반응은 두려움과 분노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리고 삶의 결정은 세상 논리에 의해 좌우됩니다. 이는 생명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명이 통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골 2:6)
받은 생명으로 ‘행하지 않으면’, 생명은 잠재력에 머물 뿐입니다.
2.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해질 때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일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생명은 ‘죄를 참는 힘’이 아니라 ‘죄를 이기는 능력’으로 작동합니다
로마서 8장은 조에의 작동 방식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느니라.”(롬 8:2)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감정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 원리입니다. 죄를 참는 윤리가 아니라 죄를 넘어서는 생명의 질서입니다. 이 생명이 풍성해질수록 그리스도인은 싸우지 않고도 이기게 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생명의 풍성함을 의미하는 것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말씀의 지배가 생명의 풍성함입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가득할 때, 그 말씀은 생명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생명은 정체성을 ‘증명’이 아니라 ‘표현’으로 바꿉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부족할수록 사람은 인정받으려 애쓰고, 자기 의를 세우고 비교와 경쟁 속에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해지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14)
아들은 증명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드러날 뿐입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존재는 변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하고 착하게 살아도 죄인이자 마귀 자녀입니다. 노력해도 그 정체성은 그대로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천상에서 빛나는 존재입니다. 흰 옷을 입은 의롭고 거룩한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찮아 보이고, 성공하지 못하고, 잘 못살아도 영의 세계에서는 빛나는 존재입니다. 숨어있어도 빛나는 존재입니다. 그냥 드러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십니다.
마귀도 알고 천사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즉 아들이면 이렇게 해 봐 라고 미혹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진짜 아들이다”라고 외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성령님이 보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뭐래도 유일하신 독생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처럼 생각하고 아들처럼 행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그리스도인을 ‘애써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성품을 흘려보내는 존재’로 만듭니다.
네 번째, 하나님의 생명은 고난의 의미를 바꿉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세력이 약해지면 고난은 항상 질문이 됩니다.
“왜 나에게?”
“왜 하나님이 허락하셨지?”
그러나 생명이 풍성해질수록 고난은 차단막이 아니라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하나님의 생명은 고난을 제거하기보다 고난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드러내게 합니다.
다섯 번째, 하나님의 생명의 풍성함은 교회를 ‘조직’이 아니라 ‘몸’으로 작동하게 합니다.
교회 안에 갈등과 분열이 많은 이유는 대부분 조직 논리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풍성해지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몸의 조직인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유연하게 서로를 위해 헌신합니다.
“온 몸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에베소서 4:16)
조에는 교회를 규칙으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생명이 흐르며 자라는 몸으로 만듭니다.
결국, 하나님의 생명은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존재, 새사람입니다. 그런데 새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계속 변화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하게 되어 있고 변화하는 것만이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 또한 이 초점에 맞추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율법적인 완전함을 하나님의 온전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또 자기 생각의 틀에 갇혀 생명의 욕구를 제거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온전함은 '생명의 성장'입니다. 매일매일 생명의 영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것이 새사람의 완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실 때 생명의 언약을 주십니다. 그 뜻이 주어지는 것은 10년, 20년, 후은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 씨는 아무리 작아도 생명이기에 반드시 자라고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도 영원한 생명의 비밀에 속한 영역은 알 수 없기에. 그 언약이 실현되는 동안 매일 깨어나는 새로운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를 향한 뜻은 단순히 일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기경하고 영적 실상을 바라보는 눈이 깨어나야 합니다.
Already, but Not Yet(이미와 아직)
어둠의 진영은 끊임없이 이 단순한 믿음을 반대하고 박해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실현되는 것을 결코 방해할 수 없습니다. 사단은 십자가에 예수님이 못박히셨을 때 드디어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승리를 믿고 나갈 때 우리의 옛사람, 자아가 깨지면서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점점 알게 됩니다.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중요한 일이 함께 따라옵니다. 바로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옛사람의 영역을 다루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했고 하나님께 생명을 받아 새사람으로 거듭났을지라도, 옛사람으로 살아오며 무의식적으로 고집했던 지-정-의의 삶의 방식들까지 모두 정복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믿음은 '이미(already)' 이루어졌지만 '아직(not yet)' 이루어지지 않은 긴장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망의 옛 영역을 완전히 정복하고 새로운 생명의 영역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는 짧은 기도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하나님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한 또 하나의 산고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 길은 목자되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가야 하는 길입니다.
3. 결국, 왜 하나님의 생명은 풍성해야 하는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존재의 신분이 아니라 삶의 통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풍성하지 않으면 구원받았어도 여전히 육신의 방식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죄, 두려움, 죽음, 고난을 다루는 하나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이 풍성해질 때,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제 증거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천국행 티켓”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생명을 우리 안에 넣으셨고, 그 생명이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로새서 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