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의 소음이 교회 앞마당을 덮치다: 40초 콩트가 불러온 파장과 은평구청의 기부 거부 사태
서울 은평구의 한 조용한 골목, 40년 넘게 지역사회의 이웃으로 자리해 온 은평제일교회 앞마당이 예기치 못한 갈등의 현장으로 변했다. 차가운 겨울바람보다 더 시린 것은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날 선 언어들이었다. 지난 2026년 1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은평갑·을 지역위원회 소속 관계자들과 지지자 50여 명은 교회 앞에서 대규모 규탄 집회를 열었다.

▲청년들의 정치적 꽁트를 내란, 극우 선동 프레임으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 은평갑을 지역위원회가 만든 교회 항의 독려 포스터
그들이 손에 든 피켓에는 ‘극우선동’, ‘혐오’, ‘내란’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들이 적혀 있었고, 확성기를 통해 쏟아지는 규탄의 목소리는 예배당 문턱까지 울려 퍼졌다. 이 사태의 발단은 작년 12월 2일, 교회 공간을 빌려 진행된 청년들의 ‘문학의 밤’ 행사 중 포함된 약 40초 분량의 짧은 연극 콩트였다. 현 이재명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은 이를 ‘대통령 비하’이자 ‘극우 선동’으로 규정하고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이다.


▲심하보 목사는 교회 앞 시위 현장에 은평구에 전달할 ‘사랑의 나눔 라면 1,000상자’를 쌓아 올리고, 그 옆에 뜨거운 물과 커피, 종이컵을 준비한 테이블을 놓았다.
“추운데 따뜻한 커피 드세요”… 적대 앞에 문을 연 ‘그리스도의 방식’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 목격된 장면은 일반적인 갈등의 문법과는 사뭇 달랐다. 자신들을 향해 거친 언어를 쏟아내는 시위대를 향해 교회는 맞대응이나 항의 성명 대신 전혀 다른 언어를 선택했다. 바로 ‘사랑’과 ‘환대’였다.
심하보 목사와 교인들은 규탄의 함성이 들리는 바로 그 자리 옆에 테이블을 놓았다. 그리고 따뜻한 물과 커피, 종이컵을 준비했다. 안내문에는 그 흔한 해명 한마디 없이 “추운데 따뜻한 커피 드세요”라는 짧은 문구만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교회는 시위대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을 개방하고,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직접 제공하는 배려를 보였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심하보 목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보가 말하면 의식이 있고, 보수가 말하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입니다. 풍자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를 과연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원수로 보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양심에 따라 그저 이웃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정치적 이념이 삶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버린 시대에, 은평제일교회가 보여준 이 침묵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강력했다. 비난의 확성기 옆에 놓인 종이컵 하나는, 세상의 증오가 교회의 담장을 넘지 못하도록 막아세운 그리스도인의 ‘방패’이자 ‘초대장’이었다.

▲심하보 목사는 “청년들이 문학의밤을 하겠다 교회에 장소를 요청하여. 허락했고 작년 12.2일 청년들이 문학의밤 진행 중 콩트에서 40초가량, 현 대통령에 대하여 다룬 것이고 우리 교회가 연극을 기획하고 만든 것도 아닌데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및 전, 현직 구, 시의원까지 와서 항의 집회를 했다.”고 밝혔다.
정치에 가로막힌 ‘사랑의 라면 1,000박스’… 결국 의정부로 떠나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 갈등의 불씨가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순수한 나눔의 손길마저 꺾어버렸다는 점이다. 은평제일교회는 매년 겨울 쪽방촌과 소외 계층을 위해 라면 나눔을 이어왔다. 올해도 심 목사와 성도들은 정성껏 라면 1,000박스를 준비해 은평구청에 기부 의사를 전달했다.
기부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구청 담당 공무원은 적극적으로 전달식 일정을 조율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구청 측은 돌연 태도를 바꾸어 “라면을 기부받을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내부 검토 결과, 최근 교회가 휩싸인 정치적 논란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심하보 목사는 이 결정을 두고 “행정이 정치적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통탄했다.
“라면은 구청에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구청을 통해 우리 주변의 가장 약한 이웃들에게 전달되길 바랐을 뿐입니다. 정치가 나눔의 영역까지 가로막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결국 은평구 주민들을 위해 준비되었던 라면 1,000박스는 구청의 거부로 인해 갈 곳을 잃었다가, 소식을 들은 경기도 의정부시청 측의 차량에 실려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만 했다. 나눔의 현장에 시위대가 몰려와 목소리를 높이는 진풍경 속에서, 40년간 이어온 지역사회의 헌신은 정치라는 장벽에 부딪혀 짓밟혔다.

▲은평제일교회를 향한 더불어민주당의 항의 집회는 교회의 장소를 빌려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선동과 내란으로 몰아가는 것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개신교 수사와 맞물려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은평제일교회는 성경적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성경이 기준이 되는 ‘애국 신앙’의 길: 옳고 그름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인터뷰에 응한 심하보 목사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차분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한 교회의 수난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가 처한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진단했다.
교계지와 인터뷰에서 성경이 유일한 잣대라고 말하는 심하보 목사는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성경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목소리를 높여왔음을 강조했다. 과거 보수 정부 시절에도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정책에 대해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혔던 이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심 목사는 “소매치기를 보고도 침묵하면 피해자는 생기지만 소리치면 모두가 자유로워진다”는 비유를 들며, 교회가 사회적 불의와 진리의 훼손 앞에 침묵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은평제일교회는 99억 원 규모의 빚 탕감 프로젝트, 세월호 참사 당시의 구호 활동,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 등 이념을 초월한 나눔을 실천해 왔다. 심 목사는 이것이 바로 자신이 믿는 ‘애국 신앙’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소음이 멈춘 자리에 남은 질문
이날 집회는 끝났고 시위대는 떠났지만, 은평제일교회 앞마당에 남겨진 온기는 여전히 많은 질문을 던진다. 정치가 종교를 길들이려 하고, 이념의 잣대가 이웃 사랑의 실천까지 검열하는 시대에 교회는 과연 무엇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가.
은평제일교회는 성명서나 투쟁 대신 라면 상자와 따뜻한 커피를 내놓음으로써 그 답을 대신했다. 비록 그 라면이 지역 이웃들에게 전달되지는 못했으나, 증오의 한복판에서 끝내 문을 닫지 않고 손을 내민 그들의 ‘그리스도적 방식’은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품격이 무엇인지를 고요하고도 강렬하게 웅변하고 있다.
2026년의 이 차가운 겨울, 은평제일교회가 뿌린 사랑의 씨앗이 정치의 소음을 넘어 진정한 화해와 진리의 빛으로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