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식 국장
1. 목회자의 실화(失話), 그리고 그 너머의 이야기
최근 부산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가 부교역자들에게 쏟아낸 과거의 거친 언행이 공개되며 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성직자의 입에서 나온 욕설과 폭언은 성도들에게 배신감과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부 유튜버와 매체들의 태도를 보면, 과연 그 목적이 '교회의 정화'에 있는지 아니면 '자극적인 비난'에 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김문훈 목사의 설화에 대해 확대재생산되는 형태로 SNS에 퍼지고 있다.
특히 ‘마하나임뉴스’ 등이 제작한 콘텐츠는 공익적 제보라는 이름 아래, 성경적 가치와 법적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어 주목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목회자의 잘못을 비판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비판은 상대를 살리기 위한 '수술 칼'이 되어야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도끼'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마하나님뉴스'의 김문훈 목사와 관련된 영상 썸네일 캡처
2. 마하나임뉴스 영상 분석: 고발인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인가?
마하나임뉴스가 공개한 ‘포도원교회 김도끼’ 영상과 관련 보도들은 사실 확인보다는 시청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언론의 기본 사명은 객관적 사실 보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매체는 감정적 선동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마하나님은 정의의 사도처럼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마하나임의 관련 영상의 댓글은 대부분 영상의 내용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댓글의 한계는 보여주는 것에 대한 앞뒤의 사건과 정황,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유튜버가 댓글을 통해 인지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지자의 댓글이 자신의 글이나 주장을 정당화시킬 위험이 있다.
첫째, 원색적인 비하 발언의 향연이다.
영상 속에서는 김 목사를 향해 “마귀”, “개똥차반”, “주둥아리”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표현들이 쏟아진다. 이는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명백한 인신공격이다. 비판의 대상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비판하는 자가 저질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천박한 언어 사용은 보도의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사과를 부정하는 자의적 예단이다.
김 목사는 2026년 2월 24일, 교단 신문을 통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목회자의 언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며 총회 직위에서 물러나고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회복을 돕겠다고 구체적인 결단을 밝혔다.
하지만 마하나임뉴스는 이러한 사과의 몸짓을 시작도 하기 전에 “새빨간 거짓말”이나 “꼼수”로 단정하며 비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진정한 회개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김 목사의 말에 대해, 행동을 지켜보기도 전에 '거짓'으로 낙인찍는 것은 언론의 횡포에 가깝다.
셋째, 일방적인 정보 전달과 반론권 부재다.
언론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반론권 보장이나 객관적인 사실 확인 절차도 부족해 보인다. 김 목사 측의 현재 노력이나 입장은 철저히 배제된 채, 익명 제보자의 발언만이 절대적인 진실로 포장되고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확증 편향을 심어주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3. 법과 상식을 벗어난 비판의 위험성
아무리 비판의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방식이 위법하거나 상식 밖이라면 그 정당성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마하나임뉴스의 보도 행태는 여러 법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법적 책임의 소지: 법조계에서는 영상 제작자가 사용한 경멸적 표현들이 모욕죄나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대법원 판례(2002. 1. 22. 선고 2000다37524)에 따르면, 보도 내용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었는지, 그리고 제보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 근거(상당성)가 있는지가 명예훼손 성립의 핵심 기준이 된다.
월권적인 태도와 법리적 무지: 영상 제작자는 본인이 피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소송을 주도하겠다고 공언하거나, 교단 헌법을 무시한 채 즉각 사퇴만을 정답으로 제시한다. 모욕죄는 친고죄이며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임에도 불구하고 제3자가 고발을 남발하겠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교회의 행정적·종교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기업의 갑질 사례와 단순 비교하며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교단 질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월권적 요구다.
기독교보에 게재된 김문훈 목사의 사과문
4.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비판: ‘죽이는 비난’이 아닌 ‘살리는 권면’
우리는 누구나 남의 잘못을 아주 쉽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비판은 세상의 방식과는 결을 완전히 달리해야 한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마하나임뉴스의 보도 태도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신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① 심판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성경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9)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대신해 누군가를 영원히 매장하려는 태도는 인간의 교만이자 영적 월권이다.
마하나임뉴스는 김 목사의 치리와 관련해 하나님과 교단을 대신해 심판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교단의 소속노회는 심사숙고해서 그를 안수해 목사로 세웠다. 그러므로 단정적으로 김문훈 목사에 대한 치리적 주장은 균형을 잃은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성경이 경계하는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의 본의를 훼손하는 행위다.
② 복음의 중심인 ‘용서’와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용서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다. 회개 전에 용서가 먼저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골 2:13–14).
성경에서 용서는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존재 방식이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용서의 한계를 묻는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윗을 두고 '살인자', 혹은 '간음자'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믿음을 더 높인다. 그가 왕위에 있을 때 저질렀던 죄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누구든 실수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를 향해 비난과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해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거스리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면죄부가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키려는 자에게 끝없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사랑의 원리다. 김 목사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낸 이상, 기독교적 언론이라면 정죄보다는 그 사과가 진정한 열매로 맺어지는지 기도로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다.
③ 비판의 목적은 정죄가 아닌 ‘회복’이어야 한다.
잘못을 드러내는 목적은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게 하고 공동체를 거룩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성경적 용서는 죄의 관계적 단절을 의미하며,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한다.
이런 점에서 마하나임뉴스의 보도는 오직 '단죄'와 '지적'에만 몰두하고 있어, 그 어디에도 복음적 회복이나 사랑의 권면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아쉽다. 용서는 한계가 없으며, 하나님은 죄를 바다 깊은 데 던지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미가 7:19).
5. 맺음말: 언론의 품격이 교회의 품격을 만든다
김문훈 목사의 언어적 실수는 한국 교회에 큰 오점을 남겼고, 목회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실수를 다루는 언론의 방식 또한 그와 닮아 있다면, 우리는 과연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기독교 언론이라면 분노를 부추기는 독설보다는, 아픈 곳을 정확히 찌르되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예언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무조건적인 덮어주기도 위험하지만, 증오에 기반한 무조건적인 발가벗기기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는 비난의 소음 속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공의가 조화를 이루는 현장에서 증명된다. 한국 교회의 건강한 비판 문화가 성경적 원리 위에서 세워지는 것이 바람직한 언론의 방향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