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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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령님과 자기관리, 칼과 칼집
    1. 둘째 딸 은별이가 3년 동안의 백혈병 투병 생활을 마치는 시기의 일입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어요. 중심정맥관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해섭니다. 중심정맥관은 독한 항암 약을 주입하는 케모 포트를 말해요. 어깨 쇄골 아래에 심장에서 나오는 튼튼한 혈관에 연결한 것이 중심정맥관-케모 포트입니다. 팔이나 손등 혈관으로는 독한 항암약물을 견딜 수 없어요. 혈관이 타들어 가고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 있어서 처음 항암치료 시작하기 전에 전신마취 후 수술해서 심었던 겁니다. 2. 은별이는 3년 가까이 백혈병 항암치료로 고생했는데 감사하게도 치료과정 중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치료 일정도 잘 지켰어요. 포트 제거 수술 한 이후 10~20% 재발하는 경우가 있어서 앞으로 잘 지켜보면 됩니다. 5년을 지켜보고 이상 없으면 완치 느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도 부모님들도 3년 치료과정을 마치면 암묵적으로 완치되었다고 보는 듯해요. 아무튼 환자 보호자로서 병원 올 때는 조금 더 은혜가 필요합니다. 온통 아픈 분들, 어려움 가운데 있는 보호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입니다. 아픈 게 잘못이 아니건만 더욱 긴장감 있는 병원 생활이 현실입니다. 3. 그런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섬겨주시는 의료진들은 그래서 함께 긴장합니다. 공감해주시고 먼저 잘 챙겨주시려고 애쓰십니다. 말 한마디도 행동 하나도 긴장감 속에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아픔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주의합니다. 위로가 되어 주고자 애쓰십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사명감은 투철하나 공감 능력은 덜떨어진 의사를 볼 때가 있어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필 은별이 검사받으러 온 그날 그 모습을 봤습니다. 얼굴은 악의가 전혀 없어요. 투철한 사명감 가지고 <원칙대로!>를 외칩니다. 4. 보호자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이 병원에 와 있는지는 관심 없는 어설픈 인턴, 레지던트더라고요. 누가 원칙을 모를까요. 그걸 설명해주는 의사가 말투와 톤에 따뜻함과 배려가 묻어나지 않음이 안타깝다는 것이죠.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지 않습니까? 아직 어려서 저러겠거니 생각하고 웃고 스쳐 지나갔지만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의사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아요. 다른 때보다 불편함이 좀 더 길어져요. 불편함도 때로는 성령님의 감동일 수도 있음을 이젠 압니다. 조용히 성령님께 마음으로 여쭤보고 주시는 감동에 귀를 기울여 보니... 맞습니다. 그 꼴, 그 모습이 영혼의 의사라는 제게서 아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편한 이유가 바로 내 모습이었던 겁니다. 5. “어”라고 말해도 “아”라고 해석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시는 성숙한 분들도 있습니다. 험한 세상, 치열한 영적 전투로 인하여 상처가 심한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라고 말해도 “어”라고 해석하고 분노합니다. 영혼이 아파서죠. 내면에 여유가 없어서죠. 그래서 영혼의 의사들에게는 말과 말투, 말의 톤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과 함께 세트로 드러나는 손짓, 몸짓 하나도 아픈 영혼을 대하는 의사로서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6. 때로는 말과 글에서, 행동과 태도로 교묘하게 감춘 듯해요.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성령님께서 직면하게 하시는 시간이 꼭 옵니다. 그래서 평소 나를 돌아보는 삶을 부단히 살아내야 합니다. 처음 책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에서 일부 나눴습니다. 신학교에서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제게 목회자로서 주의하라시며 여러 번 당부의 감동을 주셨었습니다. 7. “사랑하는 태성아. 너는 길을 걸을 때 뒷짐 지고 다니지 말아라. 그리고 의자에 앉을 때 다리 꼬고 앉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교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가 않구나. 너는 사람들 앞에서 짝다리 짚고 있지 말거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 다니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단다. 너는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라. 나는 너를 보는 사람들이 네가 예의바른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너는 항상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여라. 몸을 청결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이 너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나의 성전인 너의 몸이 지저분하거나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8. 물론 이런 내용은 율법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다리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픈 분들은 짝다리, 뒷짐 질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게는 목사로서 모범이 되기 원하시는 사랑의 권면이십니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리고,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성령님을 사랑하게 되니 그렇게 살고 싶어집니다. 지금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다만 감동으로 주신 말씀들에 순종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9. 험한 세상 가운데 내게 맡겨주기 원하시는 영혼들을 만났을 때,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마음 중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십자가 사랑으로 따뜻하고, 말과 태도, 자세라는 그릇도 따뜻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진리의 칼이 따뜻함을 품으면 생명의 검이 됩니다. 진리의 칼이 차가우면 죽이는 칼이 됩니다. 망나니 춤추는 칼 됩니다. 은별이 검사하러 온 날, 제가 검사받은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영혼의 의사로서 진리의 칼을 잘 갈고 닦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크신 예수님 십자가 사랑의 따뜻함이라는 칼집을 잊지 말고 들고 다녀야겠습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4-14
  • “뭐? 기도는 노동이라고?”(2)
    1. 기도할 때 제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조금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영적으로 안고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잠시 나의 사랑 고백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잠시 감사나 회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십자가로 생명을 내어주신 아버지 사랑이 크고 놀라운 이유입니다. 저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사랑받기에 합당하고 이미 충분합니다. 2.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머물러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기도는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먼저입니다. 친밀한 교제 말입니다. 그래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제가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꼭 말이 존재해야만 기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는 말이 없어도 통합니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요. 3.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서 기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요. 종종 점점 말이 줄어들기 시작해요. 완벽한 침묵에 이르곤 합니다. 그분의 마음에 제 온 영혼이 집중하여 바라봅니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듭니다. 그렇게 영원의 시간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요. 여러분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어떤 때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두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떤 때는 엄청 기쁨의 희열을 느끼며 분명히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이삼 십 분도 안 지나 있습니다. 영원의 시간을 경험한 겁니다. 4. 결국 기도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접촉이 일어나는 감격적인 시간이고요. 더불어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할 생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정도가 되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교회 의자에 앉을 생각만 해도 설레임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나만의 기도 골방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 가운데 기대감과 감동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5. 그런 친밀한 교제로서의 기도는 시작했다 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이끕니다. 그분의 달콤한 임재에 잠겨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나도 다시금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기도가 기도를 부른다고 할까요. 그 감격이 삶의 순간마다 내 안에, 곁에 계신 성령님을 더욱 찾고 존중해드리며 교제를 나누도록 만들곤 합니다. 6. 기도는 노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만족과 안정감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영적인 충만함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감사한 것은 친밀함의 기도로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사람들에게 중보적 기도를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나눠주십니다. 보여주십니다. 중보기도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7.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를 나누도록 돕는 귀중한 통로입니다. 보다 많은 하나님 자녀들이 기도로 친밀한 교제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특히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도우시고자 우리 안에, 곁에 동행하시는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통로로 적극 기도의 행복과 즐거움을 얻고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3-25
  • 영적인 루틴을 지키라!
    1.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6:4)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농구선수의 징크스와 루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시합 전에 청결을 점검해요. 목욕부터 집안 대청소까지 강박적으로 점검하는데, 그렇게 해야 경기에서 실수를 줄이고 시합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2. 그가 농구 시합 중에 자유투를 던질 때가 있는데요. 던지기 전 공을 바닥에 5번 튕깁니다. 그리고 던졌는데 들어가면 계속 5번씩 공을 튕기고 슛을 던져요. 자유투가 안 들어가면 횟수를 바꿔서 7회 혹은 10회 바닥에 공을 튕기죠. 슛이 성공하면 그 숫자를 기억하고 계속 그 횟수만큼 튕기고, 안 들어갈 때가 오면 다시 공 튕기는 횟수를 조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도 루틴이 있어요. 타석에 들어서면 꼭 야구 배트를 세 바퀴 돌리고 허리와 팔을 세 번 까딱거립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며 실수를 줄이게 된답니다. 이렇게 징크스는 이겨내고, 자신의 좋은 리듬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루틴이라고 하는데요. 3. 저도 신앙의 루틴이 있습니다. (목회자분들마다 영적 루틴이 다를 수 있는데요. 중심은 비슷하거나 같을 것입니다.) 신앙, 목회 본질을 지키는 힘과 삶이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7년 신학생 시절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재발견하였는데 삶과 신앙의 분기점이었어요. 그렇게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추구하면서 영적 루틴이 생겼습니다. 충분히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삶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 바라보는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겁니다. 영적 루틴이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4. 오전에는 가급적 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외부적인 소음을 차단합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SNS를 내려놓고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아요. 사도들의 고백처럼 말씀과 기도 시간으로 선포하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또 다른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영적 루틴으로서 최대한 지키려고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시면 또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방향성이 제게 유익해요. 5. 현재 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가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집회 일정이 바빴어요. 매주 부흥회 초청이 있었고, 전국에 정기모임과 정기집회도 25곳이 넘었습니다. 바쁜 집회 일정도 영적 루틴을 지키면서 다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2일은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가정에 먼저 충실하도록 이끄시며, 사역자가 아니라 아들이요 친구로서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삶에 집중하게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머물러 있는 시간입니다. 6. 어떤 시즌에는 한 달 이상 모든 집회를 거절하거나 1달 이후로 날짜를 조정했습니다. 5~6개월에 한 번씩은 집에서 두문불출했어요. 조용히 성령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멈춰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영적인 루틴이 형성되었어요. 이제 제 영혼에 각인되었습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우게 하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7. 제 사역이 바빠지기보다, 제 이름이 알려지기보다, 우리 교회가 알려지기보다 예수님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제 삶을 통해 예수님 알려지시려면 영적 루틴을 목숨같이 지켜야 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지런해야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분들 사역과도 비교할 필요 없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오직 비교의 대상은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지키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숫자에 속지 않고 성장과 성숙을 함께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연합을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머물러 계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23
  • AGI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데스크 칼럼/양봉식 국장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고(AGI), 노동의 가치가 희석되며, 인간의 생존이 기본소득과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게 될 미래가 목전에 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기술적 적응을 고민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변화는 명백히 ‘인간 이해의 문제’다.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한 자유와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기술에 의해 다시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AG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역할 자체를 흔드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최첨단 기술 대응 전략이 아니다. 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신앙적 재정립이다. 1. 노동이 사라질 때, 소명은 더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노동의 총량이 줄어드는 미래에, 일에서 정체성을 찾던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치를 노동의 유무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Homo Faber)’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다. 그러므로 노동이 소멸해가는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명이 곧 직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명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삶의 본질이 되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다. 2. 기본소득의 시대, 탐욕 대신 절제를 배워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스템적으로 해결되는 사회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대한 위기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삶의 치열한 의미 또한 증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는 풍요가 종종 영적 타락과 궤를 같이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풍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풍요를 절제 없이 향유하는 삶은 경계한다. 인간은 소비로 채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참된 평안을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GI 시대에 우리가 훈련해야 할 영성은 ‘더 많이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가는 태도’다. 단순한 삶, 자발적인 절제,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의 영성은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형태가 될 것이다. 3. 통제받는 사회 속에서 자유의 의미를 지켜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AI는 인간을 해치기보다,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들 것이다. 건강을 위해, 사회적 안정을 위해, 더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은 ‘자유’다. 인간은 실수할 자유, 실패할 자유,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를 가진 존재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변화,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치 있게 여긴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는 안전할지 몰라도 인간다운 사회는 아니다. 편리함보다 자유를, 효율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치다. 4. 인간이 잊게 될 질문을 교회가 붙잡아야 한다 AGI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조건이 완벽히 해결되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깊은 공허가 들어선다. 교회는 세상이 잊어버릴 이 질문들을 끝까지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왜 희생해야 하는가?" "왜 진리를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기술은 답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답이 주어진다. 5.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영성의 깊이로 결정된다 다가오는 시대는 인간이 더 똑똑해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시험받는 시대다. 노동이 줄어들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쉽게 삶의 방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우고, 풍요 속에서도 절제를 배우며, 통제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영성이다. AGI 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는 위기가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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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2026-02-19
  • 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2)
    1. 내가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하신 찬양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런 노력이 찬양을 인도하는 실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찬양 인도가 목적이라서 평소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가운데 많은 은혜 끼치고 싶어서가 목적이 아닙니다. 2. 다시 말씀드리지만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나도 순수하게 사랑해서 존중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찬양 사역에서도 성령님께서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순수함과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태도, 감동 주실 때 메모하며 기록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를 잘하는 것보다 동기의 점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기는 평소 삶의 태도에서 점검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찬양들이 모이면 다시금 성령님께 여쭤봅니다. 3. “성령님, 어떤 순서로 찬양드리기 원하세요? 가르쳐 주시겠어요?” 여쭤보고 기도드리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결코 늦지 않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감동 가운데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그 순서대로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찬양 인도할 때는 내 안에 계시며 이 장소에 계신 성령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인식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목소리에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름부으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4.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 인도를 위해 성령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사랑해서 성령님을 찾으려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을 점검하며 강대상 앞에서 좀 더 집중하여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함께 찬양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립니다.” 5. 조용히 마음 가운데 이런 고백을 드리며 첫 찬양을 살펴봅니다.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영적 상태인지 또 점검한다는 겁니다. 내면에 성령님 함께하심으로 인한 안정감과 평안함, 설레임과 기대감, 나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조용히 입을 엽니다. 찬양을 시작합니다. 찬양 인도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쉬운 사역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평상시에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살아간다면 사역 현장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 받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믿습니다. 6. 우리 모두 찬양 인도자로 살지 말고 평소 찬양 드림을 기뻐하는 자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는 찬양”도 인도할 때가 아니라 평소 개인적인 찬양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사용하시길 소망합니다. 순수하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찬양을 합시다. 그러다 보면 찬양 인도의 현장에서도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심을 자연스레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10
  • 목회자의 우선순위 세 가지
    AI이미지 그림 1. 개척 3년차 즈음 연말이었습니다. 감동을 주시는 듯해서 한 달 정도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무를 때였어요. 제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기 원하시는지 여쭤보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삶과 신앙, 목회 가운데 본질적인 우선순위를 자주 점검하도록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해주신 내용들이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2. <첫째, 친구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나 자신이 목사이기 전에 자녀요, 친구의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실 때 사역 성공했다는 사람들 칭찬 많이 받는지의 여부로 판단하시기보다, 하나님 자녀요 친구로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가장 행복할 때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목사인 제가 진정 예수님만으로 인하여 행복할 때, 저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되는 성도님들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성령님께서는 수시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3. “태성아, 교회 갈 때 목사의 정체성으로 먼저 가지 말자. 너 역시 다른 성도들처럼 먼저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친구로서 교회에 가자. 성도로 교회에 가자.” 그래서 집에서 교회로 출발해서 이동하면서 계속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면서 의식합니다. 목사가 아니라 성도로 교회 간다는 인식을 체크합니다. 목사인 제가 먼저 아들이요 친구로서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젖어 들어서 행복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에서 행복을 누리고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4. <둘째, 가정에 충실하기> 가장 먼저 세우신 공동체인 가정에 충실한 목회자여야 합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잘 이끌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시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반대로 가정이, 자녀가 우상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목사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강단에 섰을 때 가족부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제 아내가 가장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는 간증을 하곤 하는데 주님께서 격려해주시는 음성처럼 느껴집니다. 5. 만약 제가 인도하는 예배에서 가족이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사역의 성공도 사람들의 칭찬도 예수님 보실 때 실패입니다. 다행히도 아내부터 아이들도 나름 좋게 평가해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목회자 가정이 행복한 모습을 볼 때 성도님들 가정도 주님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자 본받기를 힘쓸 것입니다. 저도 가정이 행복하신 선배님들의 강의나 책, 개인적 교제를 통해 본받고자 노력 중입니다. 6. <셋째, 하나님 앞에 머물기> 목사가 교회에 머물며 하나님과의 접촉과 만남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목사로서 이 정체성을 풍성하게 누려야 할 장소가 바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도 심방이나 성도의 교제, 부흥회, 긴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교회에 아들이요 친구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머물기를 즐깁니다. 7. 아버지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사랑하며 사랑받고, 교제 나누는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고자 개척 목회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그럴 때 목사가 교회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혼의 기쁨을 성도님들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하늘 아버지 앞에 자녀요, 친구로 나아가 말씀과 기도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1-13

실시간 목회 기사

  •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한다고?
    1.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라고 했을 때 ‘연습’이라는 단어가 어떤 분들에게는 오해 혹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마치 그분의 임재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훈련하면 “내 힘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들어와(내주하심) 계십니다. (사역을 위해 충만하게 해주시는 부분은 다른 글에서 나누겠습니다) 2. 성경에서 약속하셨듯이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생활해도 그분께서는 우리를 놓치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계시며 동행하십니다. 그렇다면 “임재를 연습하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요? 인격적이신 성령님께서는 나와 동행하시면서 나를 단 한 순간도 놓치시지 않으시며 인격적으로 대해주시지요. 이처럼 나도 내 안에 계신 분을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존중해 드리고자 사람 편에서도 최선을 다해 성령님께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런 말입니다. 3.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식하며 존중해드리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때 내가 노력한다고 그분을 항상 잘 느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인격이 있으십니다. 당연히 우리에게 존중받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분과 교제 나누고자 노력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철저히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존중해드리고자 노력하는 우리의 친밀한 자세와 태도를 보실 때면 기뻐하십니다. 종종 친구처럼 자연스레 임재를 나타내주시기도 하십니다. 4. 성령님의 임재의 결과는 언제나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고 싶어지는 감동과 감격이라는 열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좀 더 깨닫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반응하게 되는 열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임재연습’ 말고도 자주 사용하지만 비슷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부흥회나 기도의 열기가 뜨거워지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5. “성령님, 오시옵소서. 더욱 오시옵소서.” “성령님, 더 임재 해 주시옵소서.” 이런 고백들을 외치면 과연 성령님께서 위로부터 하늘을 가르시고 임하실까요? 아닙니다. 앞에서 나누었듯이 이미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시기를 요청 드린다고 성령님께서 오셨다가, 안 오셨다가를 반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의 간절함이 담긴 정도에 따라 어느 날은 성령님의 팔이 하나 오시고, 어느 날은 다리 하나 보내주시고 그러시지 않으십니다. 6. 그렇다면 이런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별 다른 의미 아닙니다. 그냥 이런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더 의지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더욱 존중해드리기를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더욱 나를 붙드셔서 사용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저를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7. 한편으로 저는 우리 인간의 언어적인 부분에서 한계를 느끼곤 합니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리겠다고 나름대로 고상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며 노력해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우리의 성령님께 대한 감동과 감사, 간구를 표현할 때 언어적 한계가 있기에 이런 표현들이 사용되기도 하며, 오해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예배나 공동체 모임 가운데 은혜가 충만한 영적 분위기가 느껴지실 경우 주위에서 “성령님, 오시옵소서. 좀 더 오시옵소서. 임재해 주시옵소서. 더 많이 임재해 주시옵소서”라고 표현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시며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해석을 잘하셔서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8. 부디 부단히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십시오. 인격적이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삶의 모든 순간마다 존중해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을 친밀하게 계속 생각하십시오. 생각과 마음으로라도 계속 성령님께 집중하시며 인도하심을 부탁드리십시오. 모든 상황과 말, 뉴스들을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화젯거리로 사용하십시오.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서 인정하시고 신뢰하실 만큼 친밀함을 가꾸어 나가시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5-05-09
  •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도 잘 안된다고 말하며 금방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분들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되어져 있다고 오해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방송 전파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싶다면 나의 라디오를 튜너로 주파수를 잘 조정하여 맞추면 된다. 당신이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절대로 들을 수 없다. 그것은 방송국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는 당신에게 있다. 2.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때때로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들었다 말았다 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파에 지속적으로 자신을 맞추지 못하였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는 말씀처럼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방법들은 다양합니다. 3.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방법인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영적 권위를 두신 목회자의 설교와 목회자의 권면, 상담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꿈과 환상으로도 말씀하십니다. 크고 작은 세미한 음성과 감동, 생각으로도 말씀하십니다. 가족과 친구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스쳐지나가는 어린 아이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뉴스에 보도되는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각종 신문 방송 매체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길가에 핀 들풀, 들꽃 하나,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이 외에도 너무나 다양한 방법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4. 그러나 그분의 음성이나 인도하심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신비주의나 결정장애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조종당하고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주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동일하신 사랑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님께 자연스레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친밀하게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린다는 의미로 연습하며 훈련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격적이신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연습과 훈련입니다. 크고도 세미하며 다양하신 성령님의 음성이 성령님의 음성임을 알아채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작은 인도하심에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임을 알아채는 연습과 훈련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성령님에 대한 영적인 민감함, 영적인 예민함, 영적인 순발력과 기민함 등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5. 그럴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령님께서 친밀하고도 인격적으로 인도하심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기회를 주실 때마다 나누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이와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단순히 큰 문제에 대해 기도하고 응답받는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 얼마나 크신 사랑과 애정을 가지시고 계신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성령님께서 얼마나 인격적이신 분이신지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인격적으로 말씀하시며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6. 성령님과 인격적이고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영적우선순위를 회복한 사람들을 더 잘 사용하실 수 있으심을 나누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러한 성령님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영적우선순위가 회복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그럼에도 성령님께서는 절대로 스스로 영광을 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존중해드릴수록, 의지할수록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릴수록 예수님께서 주목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드러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도록 도우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중심사역이십니다. 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15: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13-14) 성령님의 이러한 본질적이신 사역이 우리 삶과 사역에서 성공적으로 성취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을 예수님처럼 존중해드리기 원하십니다. 8. 부디 많은 분들이 삶 전체에서 성령님과의 깊고 친밀한 행복한 교제를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령님과의 친밀한 우정과 사랑을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5-05-01
  •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1.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져있습니다. 그것은 노력이라는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리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 겸손히 여쭤보지 않습니다. 성경과 설교 및 다양한 방법으로 들려주시는 성령님의 친밀하신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5:2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29)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3:7-8) 3.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0-1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하심 받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을 통하셔서 우리 개개인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4. 또한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계획을 모두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요.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놀랍도록 영광 받으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 없으므로 자신들의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왕이 계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시지요. 단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왕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5. 마찬가지로 성령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영으로서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성령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삽니다. 영적전투와 반복해서 다가오는 인생의 문제 가운데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 시대는 욥의 고백이 공감이 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6.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욥9:11)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욥9:16) 바실레아 쉬링크 바실레아 쉬링크가 쓴 [20세기의 기적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마리아 수녀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수녀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기 위해 기도했고, 수녀원 건물을 지을 때 필요한 벽돌 한 장까지도 기적적으로 삶에 개입하시는 성령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7. ICCC(국제기독상공회의소) 창시자이며 탁월한 CEO인 군나르 올슨도 철저하게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과 가족, 사업과 시간까지도 성령님께 드립니다. 순종과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드려진 사업은 정상적인 시장의 변동 상황과 무관하게 움직이며 수많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의 사업은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의 지배를 받습니다. 군나르 올슨의 비지니스 간증을 담은 책 8. 그는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현실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아침식사에 필요한 커피 몇 그램(g)까지도 성령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을 통해 기적적으로 얻는 삶을 간증하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권위를 가지고 세상의 왕궁을 다니며 권력자들을 만나고, 화해와 회복의 메시지를 통해 ‘위대한 위임’을 이루어갑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누구나 성령님의 친밀하신 인도하심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목회자이든 사업가이든 학생이든 가정주부든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모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9. 성경과 설교 및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예수님을 더 잘 바라보도록 인도하시는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존중해드리고 순종할 때, 친밀하신 성령님의 개입하심과 인도하심이 자연스레 경험되어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5-04-18
  •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
    1. 성령님과 교제를 나누는 삶은 참으로 귀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을 임시로 제 1의 체험이라 부르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 단계가 있습니다(성령세례와 방언 포함). 이것을 임시로 제 2의 체험이라 부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3의 체험이라고까지 부르며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알고 교제 나누는 단계입니다. 2. 보통 오순절 계통(물론 요즘은 교단을 초월한 모습이 많지요)의 교단 및 교회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제 2의 체험 단계까지 거치면서 풍성한 은혜를 받고 누려왔습니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도 잘 체계화 시켜왔습니다. 그러나 제2의 체험 단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집회나 세미나도 다녀보고 장기간 금식도 해 보지만 많은 경우 그때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3. 바로 제 3의 체험 단계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삶을 살지 못해서입니다.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며 동행하는 삶에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이렇게까지 생각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고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면 그걸로 만족해.’ 이상하게도 너무나 많은 분들이 방언의 은사만 받으면 놀라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고 너무나 귀한 은사입니다)합니다. 4. 그리고 방언의 은사로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은 은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나눠주시는 분과의 깊고 친밀한 관계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은사로 즐거워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성령님 자체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과 직접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사랑과 우정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5.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하나님을 위해 살 수도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3) 그래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고 어리석은 상태로 일평생을 살아야 했던 우리를 예수님을 통해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창세기 6장 3절의 말씀을 철회하신 것과 다름없는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7. 그렇습니다.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신다던 성령님께서 즐거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며칠만 계시다가 나가신다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일평생의 삶을 사는 동안에 항상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며, 예수님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역사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태고로부터 계획 된 최고의 계획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5-04-08
  • 목회자 71%, 행복하다 응답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목회자를 대상으로 ‘요즘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는지’를 물은 결과, 71%의 목회자가 ‘행복하다’(매우+약간)고 응답했고, ‘행복하지 않다’(별로+전혀)는 29%로 목회자 10명 중 7명은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입소스에서 지난 2023년 세계 행복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인의 경우 ‘행복하다’(매우+약간) 응답한 비율이 57%였다. 일반 국민과 비교했을 때 목회자가 느끼는 행복도가 훨씬 높음을 알 수 있다.
    • 영성
    • 목회
    20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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