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올림푸스 스파 판결이 한국 교회에 던지는 경고
  • 양봉식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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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9연방항소법원이 워싱턴주 올림푸스 스파(Olympus Spa) 사건에서 내린 판결은 단순한 법리 다툼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공적 공간으로부터의 축출을 선언한 판결이며, 창조 질서에 근거한 신앙 양심의 경영권을 법의 이름으로 무력화한 사건이다. 법원은 트랜스젠더의 출입을 제한한 스파의 방침을 차별로 규정함으로써, 성별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그에 따른 삶의 실천을 공적 영역에서 퇴출시켰다.


이 판결이 낯선 타국의 이야기로 들린다면, 우리는 아직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이 끊임없이 추진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번 사건은 우리가 마주하게 될 내일의 예고편이다.


“중립”이라는 허울과 신앙의 공동화

법원은 차별금지법(WLAD)이“중립적이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이기 때문에 종교적 신념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사의 자유에 관한 스파 측의 주장은 모두 기각됐다. 법원이 말하는 중립은, 그러나 진정한 중립이 아니다. 특정한 세계관을 법의 언어로 확정하고, 그에 배치되는 신앙을 사적 영역으로 봉인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세대를 거슬려 살기를 요구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12:2). 


신앙은 예배당 안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공적 생활에서 그 분별의 권리를 박탈했다. 신앙을 가질 자유는 허용하되, 신앙대로 살 자유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는 역설이다.


창조 질서의 훼손과 원죄적 오만

이번 판결의 핵심 문제는 생물학적 성(Sex)보다 개인의 젠더 정체성(Gender Identity) 선언을 법적으로 우선시했다는 데 있다. 이는 성경의 선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1:27). 하나님이 세우신 남녀의 구별은 억압이 아니라 창조의 질서이며 은혜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성별을 규정하겠다는 주장은, 창조주의 섭리를 넘어서려는 오만이다. 그것은 에덴의 원죄 -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 -의 현대적 재현이다. 법이 이를 권리로 옹호하는 순간, 가정과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질서는 흔들린다. 올림푸스 스파는 한국 전통 목욕 문화(찜질방)에 기반한 시설로, 나체 서비스의 특성상 성별 분리는 운영의 핵심 원칙이었다. 이러한 문화적·윤리적 맥락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 평등 기준을 적용한 것은, 창조 질서를 차별로 낙인찍는 가치 전도의 극치다.


한국 교회가 대비해야 할 세 가지 전선

미국의 이 판결은 차별금지법이 실제로 작동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국 교회는 다음 세 가지 전선에서 진지한 대비가 필요하다.


첫째는 강단의 자유다. 죄를 죄라 말하는 설교, 성경적 인간 이해를 전하는 선포가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디모데후서4:2)는 사명이 법치의 이름 아래 위협받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둘째는 교육의 영역이다. 기독교 학교에서 창조 질서를 가르치는 것이 혐오 표현으로 규정되고,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이 법적 제약을 받게 될 수 있다.


셋째는 일상의 공간이다.여성 전용 사우나, 탈의실과 같은 최소한의 도덕적 경계마저 평등의 이름으로 허물어지는 날이 올 수 있다. 이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미국에서 이미 현실이 된 문제다.


진리의 기치를 내려놓지 말라

교회는 두 가지 유혹 앞에 서 있다. 세상의 법에 굴복하여 타협의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감정적 반발로 소모적 갈등을 자초하는 것이다. 어느 쪽도 답이 아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사도들이 걸어간 그 길이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5:29).


기독교는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한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교회는 그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은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담보로 한 타협은 결국 사랑도, 진리도 아닌 것이 된다.


한국 교회는 이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며 더 깊은 신학적 성찰과 성숙한 공적 발언으로 나아가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마태복음5:13). 맛을 잃은 소금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 바로 진리의 짠맛을 지켜야 할 때다.


진리를 배제한 자유는 방종이며, 하나님을 떠난 평등은 억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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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신앙의 자유인가, 타협의 강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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