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절 연합예배와 이재명·소강석 논란,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재명 대통령과 소강석 목사가 부활절연합예배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청와대 사진단 제공)
'부활절'은 기독교 신앙의 정점이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기념일이 아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 역사적 사건 위에 교회의 존재 이유가 서 있다. 그러므로 부활절 예배는 오직 한 분 ‑ 부활하신 주님 ‑ 만이 중심에 서야 한다. 그런데 지난 4월 5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2026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장면을 목격했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예배에 참석했고, 소강석CBS 재단이사장(새에덴교회 담임)은 환영사에서 대통령을 향해 찬사를 쏟아냈다. 기독교 최고의 절기에 정치 지도자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신학적·역사적 좌표를 되묻게 하는 심각한 사건이다.
강단에서 울려 퍼진'용비어천가'
소강석 목사는 환영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누구보다 뼈저린 절망을 경험하셨던 이재명 대통령은 이 시대에 어렵고 힘든 자들을 소망으로 일으켜 주시고, 실개천 출신이지만 결코 그 개천을 잊지 않으신다'고 했다. 이어 '우리 대통령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며, 한반도에 평화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이 자리에 오셨다고 믿는다'고 선언했다.
예배당 강단에서, 부활절 예배 환영사의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회중을 섬기는 직분이다. 강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거룩한 자리이지, 정치 지도자를 위한 헌사(獻辭)의 무대가 아니다. 소강석 목사가 쏟아낸 언어들은 대통령을 향한 것이었지, 부활하신 주님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설교의 주 목적은 하나님을 높여 청중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구린내 나는 인간을 드높이는 것은 강단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설교다." — 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이것이 단지 한 목사의 개인적 실수라면 논란은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깊다. 소강석 목사는CBS 재단 이사장이라는 공적 지위를 갖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주요 대중적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가 부활절이라는 공적 예배 자리에서 국가 지도자를 향해 이런 찬사를 바치는 것은, 한국교회 전체가 그 지도자를 신앙적으로 인증하는 것처럼 비쳐질 위험이 있다.
성경은 인간을 높이는 것을 경계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아무도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린도전서3:21)고 엄중히 경고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이 닷새 후 “십자가에 못 박으라”를 외쳤던 것처럼, 정치적 환호와 신앙적 찬사는 본질상 다르다. 강단에서 이 둘이 뒤섞일 때,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 아니라 권력의 시녀가 된다.
부활절연합예배에서 축사하는 이재명
정교분리를 말하던 입으로 예배당에 선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이 자리에 선 배경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불과 수 개월 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직적으로 종교적 신념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제재가 엄정하다는 것을 반드시 이번 기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정교분리 원칙이 깨지는 이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며 종교단체에 대한 법적 제재까지 거론했다.
그런 사람이 4월 5일 부활절 예배에 직접 참석하여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사도신경을 따라 읊으며, 헌금까지 드렸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정교분리를 강조하던 그가 스스로 교회의 정치화를 주도한 것은 아닌가. 교회를 향해서는 정치에서 손 떼라 하면서, 자신은 교회라는 공간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되묻고 싶다.
정교분리의 본래 취지는 국가가 종교를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을 뒤집어 국가가 종교를 단속하는 명분으로 삼는 것은 헌법 정신의 왜곡이다.
지난1월 기자회견에서 정교분리를 강조했던 사람이, 그것도 나라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또 반복하고 있다. 자신이 종교를 향해 정치를 멀리하라고 경고하면서, 정작 자신은 가장 거룩한 예배의 자리로 들어와 축사를 하고 박수를 받는 것—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이중성이다.
교회해산법을 추진하며 교회당에 들어선 아이러니
이 사건의 가장 심각한 층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재명은 집권 이후, 민주당 주도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발의자 11명 중 8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이 법안은 종교법인이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거나 선거에 개입한 경우 주무관청이 직접 설립허가를 취소하고, 해산된 법인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장 없는 종교법인 사무소 출입·검사 조항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 기독교계는 '교회폐쇄법'이라 명명하며 격렬히 반발했다. 4월 1일에는 7,000여 명의 개신교인이 국회 본관 앞에 집결해 “종교법인 강제해산 종교의자유 입틀막법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로부터 불과 나흘 후, 이재명 대통령은 부활절 예배에 나타났다.
한 손으로는 교회해산법을 밀어붙이고, 다른 손으로는 부활절 예배에서 헌금을 드린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가, 아니면 정교한 정치 연출인가.
법무법인 전문가들은 이 법안에 대해 “특정 정치 세력과 결탁해 공익을 해칠 경우 법인을 해산하고 재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교회법학회도 “민법 개정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민법 개정이 아닌 특별법 제정을 주장했다.
바로 이 긴장 속에서 대통령의 부활절 예배 참석이 이루어졌다. 기독교를 압박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기독교 최대 절기의 예배에 등장하는 것 — 이것은 한국 기독교를 향한 정치적 회유이자, 기독교계의 조직적 반발을 무력화하려는 전략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예배는 권력의 무대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자들이 있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열왕기상12:28)고 선포했다. 그의 동기는 종교적 열정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이었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경은 이것을 “이스라엘에게 죄가 되게 한 것”이라고 기록한다.
정치 지도자가 예배당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예배가 정치적 목적을 위한 무대로 전락할 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공의를 저버린 백성의 형식적 예배를 향해 “내가 너희의 다수한 제물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의 분향을 싫어하노라”(이사야1:11,13)고 선언했다. 하나님은 형식이 아니라 진실을 원하신다.
부활절 예배에서 정치인이 “아멘”을 외치고 헌금을 드리는 모습이 미디어를 가득 채울 때, 그리고 그 예배의 사회자가 대통령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으로 선포할 때, 그 예배당 안에 계신 분은 과연 누구인가? 군중의 환호와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어디에 계신가?
예배와 권련 앞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예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권력 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교회는 국가 권력에 아첨하는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맹목적인 반정부 구호의 집결지가 되어서도 안 된다. 교회의 길은 예언자적 비판과 복음적 초월성에 있다.
세례 요한은 왕의 잘못을 그 앞에서 직언하다 목이 잘렸다(마가복음6:18). 그는 헤롯 왕의 예배당에 초청받아 “왕이시여, 위대하십니다”라고 환영사를 올리지 않았다. 개혁자 칼뱅은 제네바 시의회의 권력에 맞서 복음의 순수성을 지켰다. 독일의 본회퍼는 히틀러 치하에서 교회가 국가에 굴종하는 것을'값싼 은혜'라 이름하며 저항했다.
한국교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권력을 향한 환호가 아니라 복음의 언어로 권력에게 말하는 용기다.
소강석 목사는 예배 강단에서 대통령을 높이는 대신, 부활절 예배의 의미를 선포했어야 한다. “권세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선을 이루는 자”(로마서13:4)이어야 하지만, 그 권세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두려움 없이 선포했어야 한다. 그것이 예언자적 목회자의 직분이다.
부활절은 인간의 권력이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패배하는 날이다. 빌라도의 법정도, 로마의 군병도, 무덤 앞의 돌도 부활을 막지 못했다. 그 부활의 능력 앞에서 교회는 어떤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지금, 그 부활의 담대함을 회복해야 한다. 예배당에 들어온 정치 앞에서 주눅 드는 것도, 정치 권력에 아부하며 강단을 내주는 것도—모두 부활 신앙에 합당하지 않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마태복음22:21). 이것이 정교분리의 복음적 원리이다. 예배당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 거룩한 공간이 정치적 연출의 무대로 활용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그 엄중한 경계선을 다시 세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