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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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령님과 자기관리, 칼과 칼집
    1. 둘째 딸 은별이가 3년 동안의 백혈병 투병 생활을 마치는 시기의 일입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어요. 중심정맥관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해섭니다. 중심정맥관은 독한 항암 약을 주입하는 케모 포트를 말해요. 어깨 쇄골 아래에 심장에서 나오는 튼튼한 혈관에 연결한 것이 중심정맥관-케모 포트입니다. 팔이나 손등 혈관으로는 독한 항암약물을 견딜 수 없어요. 혈관이 타들어 가고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 있어서 처음 항암치료 시작하기 전에 전신마취 후 수술해서 심었던 겁니다. 2. 은별이는 3년 가까이 백혈병 항암치료로 고생했는데 감사하게도 치료과정 중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치료 일정도 잘 지켰어요. 포트 제거 수술 한 이후 10~20% 재발하는 경우가 있어서 앞으로 잘 지켜보면 됩니다. 5년을 지켜보고 이상 없으면 완치 느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도 부모님들도 3년 치료과정을 마치면 암묵적으로 완치되었다고 보는 듯해요. 아무튼 환자 보호자로서 병원 올 때는 조금 더 은혜가 필요합니다. 온통 아픈 분들, 어려움 가운데 있는 보호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입니다. 아픈 게 잘못이 아니건만 더욱 긴장감 있는 병원 생활이 현실입니다. 3. 그런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섬겨주시는 의료진들은 그래서 함께 긴장합니다. 공감해주시고 먼저 잘 챙겨주시려고 애쓰십니다. 말 한마디도 행동 하나도 긴장감 속에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아픔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주의합니다. 위로가 되어 주고자 애쓰십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사명감은 투철하나 공감 능력은 덜떨어진 의사를 볼 때가 있어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필 은별이 검사받으러 온 그날 그 모습을 봤습니다. 얼굴은 악의가 전혀 없어요. 투철한 사명감 가지고 <원칙대로!>를 외칩니다. 4. 보호자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이 병원에 와 있는지는 관심 없는 어설픈 인턴, 레지던트더라고요. 누가 원칙을 모를까요. 그걸 설명해주는 의사가 말투와 톤에 따뜻함과 배려가 묻어나지 않음이 안타깝다는 것이죠.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지 않습니까? 아직 어려서 저러겠거니 생각하고 웃고 스쳐 지나갔지만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의사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아요. 다른 때보다 불편함이 좀 더 길어져요. 불편함도 때로는 성령님의 감동일 수도 있음을 이젠 압니다. 조용히 성령님께 마음으로 여쭤보고 주시는 감동에 귀를 기울여 보니... 맞습니다. 그 꼴, 그 모습이 영혼의 의사라는 제게서 아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편한 이유가 바로 내 모습이었던 겁니다. 5. “어”라고 말해도 “아”라고 해석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시는 성숙한 분들도 있습니다. 험한 세상, 치열한 영적 전투로 인하여 상처가 심한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라고 말해도 “어”라고 해석하고 분노합니다. 영혼이 아파서죠. 내면에 여유가 없어서죠. 그래서 영혼의 의사들에게는 말과 말투, 말의 톤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과 함께 세트로 드러나는 손짓, 몸짓 하나도 아픈 영혼을 대하는 의사로서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6. 때로는 말과 글에서, 행동과 태도로 교묘하게 감춘 듯해요.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성령님께서 직면하게 하시는 시간이 꼭 옵니다. 그래서 평소 나를 돌아보는 삶을 부단히 살아내야 합니다. 처음 책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에서 일부 나눴습니다. 신학교에서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제게 목회자로서 주의하라시며 여러 번 당부의 감동을 주셨었습니다. 7. “사랑하는 태성아. 너는 길을 걸을 때 뒷짐 지고 다니지 말아라. 그리고 의자에 앉을 때 다리 꼬고 앉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교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가 않구나. 너는 사람들 앞에서 짝다리 짚고 있지 말거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 다니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단다. 너는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라. 나는 너를 보는 사람들이 네가 예의바른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너는 항상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여라. 몸을 청결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이 너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나의 성전인 너의 몸이 지저분하거나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8. 물론 이런 내용은 율법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다리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픈 분들은 짝다리, 뒷짐 질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게는 목사로서 모범이 되기 원하시는 사랑의 권면이십니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리고,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성령님을 사랑하게 되니 그렇게 살고 싶어집니다. 지금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다만 감동으로 주신 말씀들에 순종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9. 험한 세상 가운데 내게 맡겨주기 원하시는 영혼들을 만났을 때,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마음 중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십자가 사랑으로 따뜻하고, 말과 태도, 자세라는 그릇도 따뜻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진리의 칼이 따뜻함을 품으면 생명의 검이 됩니다. 진리의 칼이 차가우면 죽이는 칼이 됩니다. 망나니 춤추는 칼 됩니다. 은별이 검사하러 온 날, 제가 검사받은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영혼의 의사로서 진리의 칼을 잘 갈고 닦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크신 예수님 십자가 사랑의 따뜻함이라는 칼집을 잊지 말고 들고 다녀야겠습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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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4
  • "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캐나다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MDMotivator' 채널 이야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 (화면캡처) 한 청년이 있었다. 의사의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그를 짓눌렀다.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었다. 그 청년은 어느 날 교과서를 덮고 거리로 나섰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그 단순한 질문 하나가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그 자신도 몰랐다. 캐나다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의 이야기다. 한 청년의 결단, 의대 강의실에서 거리로 1993년에 태어난 재커리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의학이었다. 의대에 입학한 그는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성적은 올랐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것은 번아웃이었고, 우울감이었다. "의대에서 배우는 것은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의 마음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바쁘고 경쟁적이었죠.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재커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외로움과 우울감은 의대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직장인도, 노인도, 청소년도 — 저마다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의학 공부보다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Kindness is Cool — 친절은 멋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처음 카메라를 켰던 날, 두려움을 넘은 첫 걸음 재커리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초창기 에피소드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 날이었다. 남성은 처음에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재커리가 진심으로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자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말 못 하며 혼자 고통받고 있었다. 재커리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고, 가진 현금 전부를 꺼내 건넸다. "이것이 당신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간 뒤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창에는 "나도 저 남성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커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제가 남성을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분이 저를 구해 주신 거예요. 제게 '계속 하라'는 이유를 주셨으니까요." 재커리의 운영 채널의 목록(화면 캡처) 선한 영향력의 연쇄 , 나눔이 나눔을 낳다 MDMotivator 채널이 다른 감동 채널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커리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이어가도록 유도하는 '선순환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재커리가 한 홈리스 남성에게 음식과 현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남성은 받은 돈의 일부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다른 노숙인에게 나눠 주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성경이 말하는 과부의 헌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영상들은 단순한 조회수를 넘어 실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한 영상에서 소개된 암 투병 중인 싱글맘의 사연은 며칠 만에 수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고, 재정 위기에 처한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캠페인은 수천 명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다. 재커리의 채널은 이미 하나의 '선행 플랫폼'이 되어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MDMotivator의 또 다른 축은 정신 건강이다. 재커리는 자신이 의대 시절 겪었던 우울감, 번아웃, 고립감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콘텐츠의 심장으로 삼는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즘 가장 힘든 게 뭐예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대도시의 바쁜 거리에서 처음 만난 청년에게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현대 사회의 역설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은 깊은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재커리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채널은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용감한 행동입니다." 이 메시지는 영상마다 반복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사연이 나간 뒤에 구독자들이 보낸 모금의 기적, 이 후원금으로 출연자들의 삶을 개선한다(화면 캡처) 전 세계로 퍼진 친절의 물결, 수천만 명이 응답하다 오늘날 MDMotivator는 유튜브에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전체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한 명의 청년이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선 지 몇 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러나 재커리는 숫자보다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 채널 댓글에는 매일 수천 개의 메시지가 달린다. "이 영상이 저를 자살 충동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당신 덕분에요." 이런 고백들이 재커리를 다시 거리로 이끄는 힘이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영상 재생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문화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Kindness is Cool'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절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MDMotivator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낯설지 않은 울림을 준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약한 자를 돌보라'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한다(갈라디아서 6:2). MDMotivator가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이 성경적 원리의 세속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공원 벤치의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주머니를 털어 건네는 지폐, 눈물을 흘리는 타인의 손을 꼭 잡는 그 행동들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미셨던 그 방식과 닮아 있다. 종교를 앞세우지 않지만, 그 콘텐츠의 본질에는 깊은 인도주의적 사랑이 흐른다. 한국 교회는 오늘, MDMotivator에서 하나의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교회 밖으로 나가, 아무 조건 없이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설교단 위의 말씀이 골목 안의 일상으로 살아 움직일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한다. 재커리는 그것을 카메라로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당신이 낯선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소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친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 MDMotivator, Zachery Dereniowski 의학을 포기한 청년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게 되었다.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처방전 대신 진심 어린 대화를 택한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그는 오늘도 거리로 나간다. 우리 곁에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묻는 것 —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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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증
    2026-04-11
  • “뭐? 기도는 노동이라고?”(2)
    1. 기도할 때 제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조금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영적으로 안고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잠시 나의 사랑 고백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잠시 감사나 회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십자가로 생명을 내어주신 아버지 사랑이 크고 놀라운 이유입니다. 저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사랑받기에 합당하고 이미 충분합니다. 2.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머물러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기도는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먼저입니다. 친밀한 교제 말입니다. 그래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제가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꼭 말이 존재해야만 기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는 말이 없어도 통합니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요. 3.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서 기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요. 종종 점점 말이 줄어들기 시작해요. 완벽한 침묵에 이르곤 합니다. 그분의 마음에 제 온 영혼이 집중하여 바라봅니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듭니다. 그렇게 영원의 시간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요. 여러분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어떤 때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두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떤 때는 엄청 기쁨의 희열을 느끼며 분명히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이삼 십 분도 안 지나 있습니다. 영원의 시간을 경험한 겁니다. 4. 결국 기도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접촉이 일어나는 감격적인 시간이고요. 더불어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할 생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정도가 되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교회 의자에 앉을 생각만 해도 설레임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나만의 기도 골방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 가운데 기대감과 감동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5. 그런 친밀한 교제로서의 기도는 시작했다 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이끕니다. 그분의 달콤한 임재에 잠겨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나도 다시금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기도가 기도를 부른다고 할까요. 그 감격이 삶의 순간마다 내 안에, 곁에 계신 성령님을 더욱 찾고 존중해드리며 교제를 나누도록 만들곤 합니다. 6. 기도는 노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만족과 안정감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영적인 충만함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감사한 것은 친밀함의 기도로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사람들에게 중보적 기도를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나눠주십니다. 보여주십니다. 중보기도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7.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를 나누도록 돕는 귀중한 통로입니다. 보다 많은 하나님 자녀들이 기도로 친밀한 교제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특히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도우시고자 우리 안에, 곁에 동행하시는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통로로 적극 기도의 행복과 즐거움을 얻고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3-25
  • 영적인 루틴을 지키라!
    1.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6:4)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농구선수의 징크스와 루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시합 전에 청결을 점검해요. 목욕부터 집안 대청소까지 강박적으로 점검하는데, 그렇게 해야 경기에서 실수를 줄이고 시합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2. 그가 농구 시합 중에 자유투를 던질 때가 있는데요. 던지기 전 공을 바닥에 5번 튕깁니다. 그리고 던졌는데 들어가면 계속 5번씩 공을 튕기고 슛을 던져요. 자유투가 안 들어가면 횟수를 바꿔서 7회 혹은 10회 바닥에 공을 튕기죠. 슛이 성공하면 그 숫자를 기억하고 계속 그 횟수만큼 튕기고, 안 들어갈 때가 오면 다시 공 튕기는 횟수를 조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도 루틴이 있어요. 타석에 들어서면 꼭 야구 배트를 세 바퀴 돌리고 허리와 팔을 세 번 까딱거립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며 실수를 줄이게 된답니다. 이렇게 징크스는 이겨내고, 자신의 좋은 리듬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루틴이라고 하는데요. 3. 저도 신앙의 루틴이 있습니다. (목회자분들마다 영적 루틴이 다를 수 있는데요. 중심은 비슷하거나 같을 것입니다.) 신앙, 목회 본질을 지키는 힘과 삶이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7년 신학생 시절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재발견하였는데 삶과 신앙의 분기점이었어요. 그렇게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추구하면서 영적 루틴이 생겼습니다. 충분히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삶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 바라보는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겁니다. 영적 루틴이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4. 오전에는 가급적 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외부적인 소음을 차단합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SNS를 내려놓고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아요. 사도들의 고백처럼 말씀과 기도 시간으로 선포하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또 다른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영적 루틴으로서 최대한 지키려고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시면 또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방향성이 제게 유익해요. 5. 현재 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가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집회 일정이 바빴어요. 매주 부흥회 초청이 있었고, 전국에 정기모임과 정기집회도 25곳이 넘었습니다. 바쁜 집회 일정도 영적 루틴을 지키면서 다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2일은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가정에 먼저 충실하도록 이끄시며, 사역자가 아니라 아들이요 친구로서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삶에 집중하게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머물러 있는 시간입니다. 6. 어떤 시즌에는 한 달 이상 모든 집회를 거절하거나 1달 이후로 날짜를 조정했습니다. 5~6개월에 한 번씩은 집에서 두문불출했어요. 조용히 성령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멈춰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영적인 루틴이 형성되었어요. 이제 제 영혼에 각인되었습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우게 하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7. 제 사역이 바빠지기보다, 제 이름이 알려지기보다, 우리 교회가 알려지기보다 예수님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제 삶을 통해 예수님 알려지시려면 영적 루틴을 목숨같이 지켜야 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지런해야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분들 사역과도 비교할 필요 없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오직 비교의 대상은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지키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숫자에 속지 않고 성장과 성숙을 함께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연합을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머물러 계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23
  • AGI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데스크 칼럼/양봉식 국장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고(AGI), 노동의 가치가 희석되며, 인간의 생존이 기본소득과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게 될 미래가 목전에 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기술적 적응을 고민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변화는 명백히 ‘인간 이해의 문제’다.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한 자유와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기술에 의해 다시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AG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역할 자체를 흔드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최첨단 기술 대응 전략이 아니다. 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신앙적 재정립이다. 1. 노동이 사라질 때, 소명은 더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노동의 총량이 줄어드는 미래에, 일에서 정체성을 찾던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치를 노동의 유무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Homo Faber)’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다. 그러므로 노동이 소멸해가는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명이 곧 직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명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삶의 본질이 되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다. 2. 기본소득의 시대, 탐욕 대신 절제를 배워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스템적으로 해결되는 사회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대한 위기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삶의 치열한 의미 또한 증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는 풍요가 종종 영적 타락과 궤를 같이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풍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풍요를 절제 없이 향유하는 삶은 경계한다. 인간은 소비로 채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참된 평안을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GI 시대에 우리가 훈련해야 할 영성은 ‘더 많이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가는 태도’다. 단순한 삶, 자발적인 절제,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의 영성은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형태가 될 것이다. 3. 통제받는 사회 속에서 자유의 의미를 지켜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AI는 인간을 해치기보다,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들 것이다. 건강을 위해, 사회적 안정을 위해, 더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은 ‘자유’다. 인간은 실수할 자유, 실패할 자유,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를 가진 존재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변화,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치 있게 여긴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는 안전할지 몰라도 인간다운 사회는 아니다. 편리함보다 자유를, 효율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치다. 4. 인간이 잊게 될 질문을 교회가 붙잡아야 한다 AGI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조건이 완벽히 해결되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깊은 공허가 들어선다. 교회는 세상이 잊어버릴 이 질문들을 끝까지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왜 희생해야 하는가?" "왜 진리를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기술은 답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답이 주어진다. 5.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영성의 깊이로 결정된다 다가오는 시대는 인간이 더 똑똑해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시험받는 시대다. 노동이 줄어들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쉽게 삶의 방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우고, 풍요 속에서도 절제를 배우며, 통제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영성이다. AGI 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는 위기가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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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9
  • 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2)
    1. 내가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하신 찬양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런 노력이 찬양을 인도하는 실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찬양 인도가 목적이라서 평소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가운데 많은 은혜 끼치고 싶어서가 목적이 아닙니다. 2. 다시 말씀드리지만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나도 순수하게 사랑해서 존중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찬양 사역에서도 성령님께서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순수함과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태도, 감동 주실 때 메모하며 기록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를 잘하는 것보다 동기의 점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기는 평소 삶의 태도에서 점검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찬양들이 모이면 다시금 성령님께 여쭤봅니다. 3. “성령님, 어떤 순서로 찬양드리기 원하세요? 가르쳐 주시겠어요?” 여쭤보고 기도드리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결코 늦지 않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감동 가운데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그 순서대로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찬양 인도할 때는 내 안에 계시며 이 장소에 계신 성령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인식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목소리에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름부으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4.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 인도를 위해 성령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사랑해서 성령님을 찾으려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을 점검하며 강대상 앞에서 좀 더 집중하여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함께 찬양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립니다.” 5. 조용히 마음 가운데 이런 고백을 드리며 첫 찬양을 살펴봅니다.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영적 상태인지 또 점검한다는 겁니다. 내면에 성령님 함께하심으로 인한 안정감과 평안함, 설레임과 기대감, 나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조용히 입을 엽니다. 찬양을 시작합니다. 찬양 인도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쉬운 사역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평상시에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살아간다면 사역 현장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 받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믿습니다. 6. 우리 모두 찬양 인도자로 살지 말고 평소 찬양 드림을 기뻐하는 자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는 찬양”도 인도할 때가 아니라 평소 개인적인 찬양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사용하시길 소망합니다. 순수하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찬양을 합시다. 그러다 보면 찬양 인도의 현장에서도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심을 자연스레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10

실시간 영성 기사

  • 성령님과 자기관리, 칼과 칼집
    1. 둘째 딸 은별이가 3년 동안의 백혈병 투병 생활을 마치는 시기의 일입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어요. 중심정맥관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해섭니다. 중심정맥관은 독한 항암 약을 주입하는 케모 포트를 말해요. 어깨 쇄골 아래에 심장에서 나오는 튼튼한 혈관에 연결한 것이 중심정맥관-케모 포트입니다. 팔이나 손등 혈관으로는 독한 항암약물을 견딜 수 없어요. 혈관이 타들어 가고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 있어서 처음 항암치료 시작하기 전에 전신마취 후 수술해서 심었던 겁니다. 2. 은별이는 3년 가까이 백혈병 항암치료로 고생했는데 감사하게도 치료과정 중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치료 일정도 잘 지켰어요. 포트 제거 수술 한 이후 10~20% 재발하는 경우가 있어서 앞으로 잘 지켜보면 됩니다. 5년을 지켜보고 이상 없으면 완치 느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도 부모님들도 3년 치료과정을 마치면 암묵적으로 완치되었다고 보는 듯해요. 아무튼 환자 보호자로서 병원 올 때는 조금 더 은혜가 필요합니다. 온통 아픈 분들, 어려움 가운데 있는 보호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입니다. 아픈 게 잘못이 아니건만 더욱 긴장감 있는 병원 생활이 현실입니다. 3. 그런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섬겨주시는 의료진들은 그래서 함께 긴장합니다. 공감해주시고 먼저 잘 챙겨주시려고 애쓰십니다. 말 한마디도 행동 하나도 긴장감 속에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아픔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주의합니다. 위로가 되어 주고자 애쓰십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사명감은 투철하나 공감 능력은 덜떨어진 의사를 볼 때가 있어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필 은별이 검사받으러 온 그날 그 모습을 봤습니다. 얼굴은 악의가 전혀 없어요. 투철한 사명감 가지고 <원칙대로!>를 외칩니다. 4. 보호자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이 병원에 와 있는지는 관심 없는 어설픈 인턴, 레지던트더라고요. 누가 원칙을 모를까요. 그걸 설명해주는 의사가 말투와 톤에 따뜻함과 배려가 묻어나지 않음이 안타깝다는 것이죠.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지 않습니까? 아직 어려서 저러겠거니 생각하고 웃고 스쳐 지나갔지만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의사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아요. 다른 때보다 불편함이 좀 더 길어져요. 불편함도 때로는 성령님의 감동일 수도 있음을 이젠 압니다. 조용히 성령님께 마음으로 여쭤보고 주시는 감동에 귀를 기울여 보니... 맞습니다. 그 꼴, 그 모습이 영혼의 의사라는 제게서 아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편한 이유가 바로 내 모습이었던 겁니다. 5. “어”라고 말해도 “아”라고 해석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시는 성숙한 분들도 있습니다. 험한 세상, 치열한 영적 전투로 인하여 상처가 심한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라고 말해도 “어”라고 해석하고 분노합니다. 영혼이 아파서죠. 내면에 여유가 없어서죠. 그래서 영혼의 의사들에게는 말과 말투, 말의 톤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과 함께 세트로 드러나는 손짓, 몸짓 하나도 아픈 영혼을 대하는 의사로서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6. 때로는 말과 글에서, 행동과 태도로 교묘하게 감춘 듯해요.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성령님께서 직면하게 하시는 시간이 꼭 옵니다. 그래서 평소 나를 돌아보는 삶을 부단히 살아내야 합니다. 처음 책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에서 일부 나눴습니다. 신학교에서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제게 목회자로서 주의하라시며 여러 번 당부의 감동을 주셨었습니다. 7. “사랑하는 태성아. 너는 길을 걸을 때 뒷짐 지고 다니지 말아라. 그리고 의자에 앉을 때 다리 꼬고 앉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교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가 않구나. 너는 사람들 앞에서 짝다리 짚고 있지 말거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 다니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단다. 너는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라. 나는 너를 보는 사람들이 네가 예의바른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너는 항상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여라. 몸을 청결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이 너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나의 성전인 너의 몸이 지저분하거나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8. 물론 이런 내용은 율법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다리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픈 분들은 짝다리, 뒷짐 질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게는 목사로서 모범이 되기 원하시는 사랑의 권면이십니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리고,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성령님을 사랑하게 되니 그렇게 살고 싶어집니다. 지금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다만 감동으로 주신 말씀들에 순종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9. 험한 세상 가운데 내게 맡겨주기 원하시는 영혼들을 만났을 때,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마음 중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십자가 사랑으로 따뜻하고, 말과 태도, 자세라는 그릇도 따뜻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진리의 칼이 따뜻함을 품으면 생명의 검이 됩니다. 진리의 칼이 차가우면 죽이는 칼이 됩니다. 망나니 춤추는 칼 됩니다. 은별이 검사하러 온 날, 제가 검사받은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영혼의 의사로서 진리의 칼을 잘 갈고 닦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크신 예수님 십자가 사랑의 따뜻함이라는 칼집을 잊지 말고 들고 다녀야겠습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4-14
  • "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캐나다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MDMotivator' 채널 이야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 (화면캡처) 한 청년이 있었다. 의사의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그를 짓눌렀다.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었다. 그 청년은 어느 날 교과서를 덮고 거리로 나섰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그 단순한 질문 하나가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그 자신도 몰랐다. 캐나다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의 이야기다. 한 청년의 결단, 의대 강의실에서 거리로 1993년에 태어난 재커리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의학이었다. 의대에 입학한 그는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성적은 올랐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것은 번아웃이었고, 우울감이었다. "의대에서 배우는 것은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의 마음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바쁘고 경쟁적이었죠.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재커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외로움과 우울감은 의대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직장인도, 노인도, 청소년도 — 저마다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의학 공부보다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Kindness is Cool — 친절은 멋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처음 카메라를 켰던 날, 두려움을 넘은 첫 걸음 재커리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초창기 에피소드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 날이었다. 남성은 처음에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재커리가 진심으로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자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말 못 하며 혼자 고통받고 있었다. 재커리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고, 가진 현금 전부를 꺼내 건넸다. "이것이 당신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간 뒤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창에는 "나도 저 남성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커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제가 남성을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분이 저를 구해 주신 거예요. 제게 '계속 하라'는 이유를 주셨으니까요." 재커리의 운영 채널의 목록(화면 캡처) 선한 영향력의 연쇄 , 나눔이 나눔을 낳다 MDMotivator 채널이 다른 감동 채널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커리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이어가도록 유도하는 '선순환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재커리가 한 홈리스 남성에게 음식과 현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남성은 받은 돈의 일부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다른 노숙인에게 나눠 주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성경이 말하는 과부의 헌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영상들은 단순한 조회수를 넘어 실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한 영상에서 소개된 암 투병 중인 싱글맘의 사연은 며칠 만에 수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고, 재정 위기에 처한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캠페인은 수천 명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다. 재커리의 채널은 이미 하나의 '선행 플랫폼'이 되어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MDMotivator의 또 다른 축은 정신 건강이다. 재커리는 자신이 의대 시절 겪었던 우울감, 번아웃, 고립감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콘텐츠의 심장으로 삼는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즘 가장 힘든 게 뭐예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대도시의 바쁜 거리에서 처음 만난 청년에게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현대 사회의 역설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은 깊은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재커리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채널은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용감한 행동입니다." 이 메시지는 영상마다 반복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사연이 나간 뒤에 구독자들이 보낸 모금의 기적, 이 후원금으로 출연자들의 삶을 개선한다(화면 캡처) 전 세계로 퍼진 친절의 물결, 수천만 명이 응답하다 오늘날 MDMotivator는 유튜브에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전체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한 명의 청년이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선 지 몇 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러나 재커리는 숫자보다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 채널 댓글에는 매일 수천 개의 메시지가 달린다. "이 영상이 저를 자살 충동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당신 덕분에요." 이런 고백들이 재커리를 다시 거리로 이끄는 힘이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영상 재생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문화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Kindness is Cool'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절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MDMotivator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낯설지 않은 울림을 준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약한 자를 돌보라'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한다(갈라디아서 6:2). MDMotivator가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이 성경적 원리의 세속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공원 벤치의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주머니를 털어 건네는 지폐, 눈물을 흘리는 타인의 손을 꼭 잡는 그 행동들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미셨던 그 방식과 닮아 있다. 종교를 앞세우지 않지만, 그 콘텐츠의 본질에는 깊은 인도주의적 사랑이 흐른다. 한국 교회는 오늘, MDMotivator에서 하나의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교회 밖으로 나가, 아무 조건 없이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설교단 위의 말씀이 골목 안의 일상으로 살아 움직일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한다. 재커리는 그것을 카메라로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당신이 낯선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소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친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 MDMotivator, Zachery Dereniowski 의학을 포기한 청년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게 되었다.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처방전 대신 진심 어린 대화를 택한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그는 오늘도 거리로 나간다. 우리 곁에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묻는 것 —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 영성
    • 간증
    2026-04-11
  • “뭐? 기도는 노동이라고?”(2)
    1. 기도할 때 제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조금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영적으로 안고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잠시 나의 사랑 고백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잠시 감사나 회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십자가로 생명을 내어주신 아버지 사랑이 크고 놀라운 이유입니다. 저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사랑받기에 합당하고 이미 충분합니다. 2.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머물러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기도는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먼저입니다. 친밀한 교제 말입니다. 그래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제가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꼭 말이 존재해야만 기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는 말이 없어도 통합니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요. 3.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서 기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요. 종종 점점 말이 줄어들기 시작해요. 완벽한 침묵에 이르곤 합니다. 그분의 마음에 제 온 영혼이 집중하여 바라봅니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듭니다. 그렇게 영원의 시간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요. 여러분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어떤 때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두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떤 때는 엄청 기쁨의 희열을 느끼며 분명히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이삼 십 분도 안 지나 있습니다. 영원의 시간을 경험한 겁니다. 4. 결국 기도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접촉이 일어나는 감격적인 시간이고요. 더불어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할 생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정도가 되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교회 의자에 앉을 생각만 해도 설레임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나만의 기도 골방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 가운데 기대감과 감동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5. 그런 친밀한 교제로서의 기도는 시작했다 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이끕니다. 그분의 달콤한 임재에 잠겨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나도 다시금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기도가 기도를 부른다고 할까요. 그 감격이 삶의 순간마다 내 안에, 곁에 계신 성령님을 더욱 찾고 존중해드리며 교제를 나누도록 만들곤 합니다. 6. 기도는 노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만족과 안정감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영적인 충만함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감사한 것은 친밀함의 기도로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사람들에게 중보적 기도를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나눠주십니다. 보여주십니다. 중보기도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7.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를 나누도록 돕는 귀중한 통로입니다. 보다 많은 하나님 자녀들이 기도로 친밀한 교제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특히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도우시고자 우리 안에, 곁에 동행하시는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통로로 적극 기도의 행복과 즐거움을 얻고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3-25
  • “뭐? 기도는 노동이라고?” (1)
    1.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기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저는 기도라는 표현보다 대화라는 표현이 더 좋습니다. 누군가는 “기도는 노동이다.”라고 했는데요. 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이 말이 싫은데요. 싫어도 너~~무 싫습니다. 기도가 노동이라는 개념이 꽉 들어찬 사람들은 하루 종일 힘들게 일(노동)하고 왔는데요. 또 자기 전에 기도라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질려버립니다. 아니면 출근해야 하는데 일어나자마자 노동이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2. 종종 경험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건 막상 기도를 하면 처음엔 힘든데 점점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보람되고 기쁩니다. 하지만 노동으로 인식한 기도 시간이 끝나고 다시 노동이라는 기도 시간이 다가올 때 즈음 부담감부터 올라옵니다. 기도가 노동이라는 생각에 기도를 떠올리면 부담부터 느끼게 만듭니다. 3. 물론 노동이라고 표현할 만큼 힘든 때가 있습니다. 잘 아시듯이 중보적 기도가 그렇습니다. 나라와 민족, 열방과 세계를 위한 기도는 씨름의 기도입니다. 남을 위한 중보적 기도도 고통의 기도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발생하면 더 힘든 씨름 기도가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많은 경우 기도는 본질적으로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의 시간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말입니다. 4.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기도의 행복을 많이 배웠어요.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많이 배웠습니다. 체험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말입니다. 딸내미들이 어릴 때였어요. 한별이, 은별이가 새벽에 반드시 화장실을 갑니다. 거실에서 기도하던 저는 딸내미가 사랑스러워서 제 옆을 지나갈 때 꼭 안아줍니다. 안아주면서 그녀들의 온기를 느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5. 한별이는 가볍게 안아주고 금방 들어갑니다. 은별이는 제가 안아준 팔을 풀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요. 피곤한 나머지 제게 기댑니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안겨 있습니다. 나도 딸내미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습니다. 순간 제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간질거려요. 부인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느껴지는 것입니다. 제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안고 있는 그 자체로 온 영혼과 마음, 생각이 사랑으로 소통되고 있음을 느끼며 전율이 일어납니다. 6. 딸내미는 들어가고 저는 사랑의 전율 속에서 다시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갑자기 성령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와 깊은 아버지 사랑이 느껴집니다. 십자가에서 생명 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눈물이 한 방울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 사랑에 제 영혼이 벅차오릅니다. 성령님의 친밀하심이 느껴집니다. 성령님의 임재로 내 몸을 감싸 안아주십니다. 이거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성삼위일체 하나님 마음에 잠겨있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3-04
  • 영적인 루틴을 지키라!
    1.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6:4)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농구선수의 징크스와 루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시합 전에 청결을 점검해요. 목욕부터 집안 대청소까지 강박적으로 점검하는데, 그렇게 해야 경기에서 실수를 줄이고 시합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2. 그가 농구 시합 중에 자유투를 던질 때가 있는데요. 던지기 전 공을 바닥에 5번 튕깁니다. 그리고 던졌는데 들어가면 계속 5번씩 공을 튕기고 슛을 던져요. 자유투가 안 들어가면 횟수를 바꿔서 7회 혹은 10회 바닥에 공을 튕기죠. 슛이 성공하면 그 숫자를 기억하고 계속 그 횟수만큼 튕기고, 안 들어갈 때가 오면 다시 공 튕기는 횟수를 조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도 루틴이 있어요. 타석에 들어서면 꼭 야구 배트를 세 바퀴 돌리고 허리와 팔을 세 번 까딱거립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며 실수를 줄이게 된답니다. 이렇게 징크스는 이겨내고, 자신의 좋은 리듬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루틴이라고 하는데요. 3. 저도 신앙의 루틴이 있습니다. (목회자분들마다 영적 루틴이 다를 수 있는데요. 중심은 비슷하거나 같을 것입니다.) 신앙, 목회 본질을 지키는 힘과 삶이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7년 신학생 시절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재발견하였는데 삶과 신앙의 분기점이었어요. 그렇게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추구하면서 영적 루틴이 생겼습니다. 충분히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삶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 바라보는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겁니다. 영적 루틴이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4. 오전에는 가급적 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외부적인 소음을 차단합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SNS를 내려놓고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아요. 사도들의 고백처럼 말씀과 기도 시간으로 선포하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또 다른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영적 루틴으로서 최대한 지키려고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시면 또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방향성이 제게 유익해요. 5. 현재 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가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집회 일정이 바빴어요. 매주 부흥회 초청이 있었고, 전국에 정기모임과 정기집회도 25곳이 넘었습니다. 바쁜 집회 일정도 영적 루틴을 지키면서 다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2일은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가정에 먼저 충실하도록 이끄시며, 사역자가 아니라 아들이요 친구로서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삶에 집중하게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머물러 있는 시간입니다. 6. 어떤 시즌에는 한 달 이상 모든 집회를 거절하거나 1달 이후로 날짜를 조정했습니다. 5~6개월에 한 번씩은 집에서 두문불출했어요. 조용히 성령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멈춰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영적인 루틴이 형성되었어요. 이제 제 영혼에 각인되었습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우게 하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7. 제 사역이 바빠지기보다, 제 이름이 알려지기보다, 우리 교회가 알려지기보다 예수님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제 삶을 통해 예수님 알려지시려면 영적 루틴을 목숨같이 지켜야 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지런해야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분들 사역과도 비교할 필요 없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오직 비교의 대상은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지키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숫자에 속지 않고 성장과 성숙을 함께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연합을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머물러 계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23
  • AGI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데스크 칼럼/양봉식 국장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고(AGI), 노동의 가치가 희석되며, 인간의 생존이 기본소득과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게 될 미래가 목전에 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기술적 적응을 고민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변화는 명백히 ‘인간 이해의 문제’다.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한 자유와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기술에 의해 다시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AG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역할 자체를 흔드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최첨단 기술 대응 전략이 아니다. 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신앙적 재정립이다. 1. 노동이 사라질 때, 소명은 더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노동의 총량이 줄어드는 미래에, 일에서 정체성을 찾던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치를 노동의 유무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Homo Faber)’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다. 그러므로 노동이 소멸해가는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명이 곧 직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명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삶의 본질이 되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다. 2. 기본소득의 시대, 탐욕 대신 절제를 배워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스템적으로 해결되는 사회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대한 위기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삶의 치열한 의미 또한 증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는 풍요가 종종 영적 타락과 궤를 같이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풍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풍요를 절제 없이 향유하는 삶은 경계한다. 인간은 소비로 채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참된 평안을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GI 시대에 우리가 훈련해야 할 영성은 ‘더 많이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가는 태도’다. 단순한 삶, 자발적인 절제,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의 영성은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형태가 될 것이다. 3. 통제받는 사회 속에서 자유의 의미를 지켜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AI는 인간을 해치기보다,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들 것이다. 건강을 위해, 사회적 안정을 위해, 더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은 ‘자유’다. 인간은 실수할 자유, 실패할 자유,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를 가진 존재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변화,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치 있게 여긴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는 안전할지 몰라도 인간다운 사회는 아니다. 편리함보다 자유를, 효율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치다. 4. 인간이 잊게 될 질문을 교회가 붙잡아야 한다 AGI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조건이 완벽히 해결되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깊은 공허가 들어선다. 교회는 세상이 잊어버릴 이 질문들을 끝까지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왜 희생해야 하는가?" "왜 진리를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기술은 답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답이 주어진다. 5.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영성의 깊이로 결정된다 다가오는 시대는 인간이 더 똑똑해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시험받는 시대다. 노동이 줄어들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쉽게 삶의 방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우고, 풍요 속에서도 절제를 배우며, 통제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영성이다. AGI 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는 위기가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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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2026-02-19
  • 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2)
    1. 내가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하신 찬양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런 노력이 찬양을 인도하는 실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찬양 인도가 목적이라서 평소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가운데 많은 은혜 끼치고 싶어서가 목적이 아닙니다. 2. 다시 말씀드리지만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나도 순수하게 사랑해서 존중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찬양 사역에서도 성령님께서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순수함과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태도, 감동 주실 때 메모하며 기록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를 잘하는 것보다 동기의 점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기는 평소 삶의 태도에서 점검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찬양들이 모이면 다시금 성령님께 여쭤봅니다. 3. “성령님, 어떤 순서로 찬양드리기 원하세요? 가르쳐 주시겠어요?” 여쭤보고 기도드리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결코 늦지 않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감동 가운데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그 순서대로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찬양 인도할 때는 내 안에 계시며 이 장소에 계신 성령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인식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목소리에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름부으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4.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 인도를 위해 성령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사랑해서 성령님을 찾으려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을 점검하며 강대상 앞에서 좀 더 집중하여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함께 찬양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립니다.” 5. 조용히 마음 가운데 이런 고백을 드리며 첫 찬양을 살펴봅니다.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영적 상태인지 또 점검한다는 겁니다. 내면에 성령님 함께하심으로 인한 안정감과 평안함, 설레임과 기대감, 나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조용히 입을 엽니다. 찬양을 시작합니다. 찬양 인도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쉬운 사역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평상시에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살아간다면 사역 현장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 받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믿습니다. 6. 우리 모두 찬양 인도자로 살지 말고 평소 찬양 드림을 기뻐하는 자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는 찬양”도 인도할 때가 아니라 평소 개인적인 찬양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사용하시길 소망합니다. 순수하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찬양을 합시다. 그러다 보면 찬양 인도의 현장에서도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심을 자연스레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2-10
  • 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1)
    1. 성령님께서는 찬양 인도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찬양 인도의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노래와 찬양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항상 합창단과 성가대에 들어가 활동했어요. 더군다나 제 목소리는 정말 고음이 잘 나오는 미성이었고 발성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성합창단에서 청일점처럼 활동하기도 했고, 노래에 있어서는 항상 칭찬받았습니다. 2. 그러나 신학교에 들어와서 보니 저만 크게 기도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크게 소리 지르면서 기도하면 목이 쉴 것이 뻔하고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목소리가 바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걱정되어 크게 소리 높여 기도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입학한 지 한 달 정도 후에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재발견하고는 그런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던 목소리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했기 때문이죠. 그다음부터는 그 누구보다 크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3. 당연히 목은 금방 쉬기도 하고 점점 변했습니다. 목소리의 변화 여부와 상관없이 나의 목소리에 성령님의 임재가 담겨지기를 사모하며 날마다 성령님께 부탁드렸어요. 그러면서 점점 성령님께서 제 목소리를 책임지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전의 미성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목소리에 은혜를 주셨음을 압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찬양 인도할 때마다 큰 은혜를 더해 주심을 봅니다. 하지만 찬양 인도하시는 분들이 일부러 목소리를 포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다른 분들에게는 기도할 때도 목이 상하지 않는 발성을 추천드립니다. 4. 목회자들은 찬양 인도를 자주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찬양 인도할 때 어떻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면서 준비하고 인도할까요? 핵심을 먼저 나누자면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 말은 쉽지만 첫 음을 맡기는 마음 상태,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평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삶이 가능해야 쉬워집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기는 찬양은 평상시 삶에서 준비가 더 중요합니다. 가령 찬양 인도 날짜가 정해지면 성령님께 여쭤보며 삶을 삽니다. 5. “성령님, 어떤 찬양을 드리기 원하세요? 어떤 찬양으로 함께 찬양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나요? 어떤 찬양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지 너무나 잘 아시는 성령님!!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세요.” 이렇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면서 삶을 살다 보면 다양한 채널들로 감동을 주시는 찬양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콘티 구성할 찬양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하루에 한 곡, 혹은 두세 곡씩, 혹은 전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6. 기도드리는 가운데 생각나게도 하시고, 내가 먼저 부르지 않았는데 길을 걸어가다가 내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찬양도 있습니다. 때로는 잠에서 깼는데 내 속에서 울려 퍼지거나, 비몽사몽 중에도 입술을 열고 찬양을 부르고 있음을 깨닫는 찬양이 있습니다. 어떤 분의 글을 읽다가 그분이 은혜받으셨다며 소개해주시는 찬양이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7. 하루는 페이스북에 제가 올린 글을 읽으신 분께서 찬양이 생각난다시며 댓글로 올려주셨는데 감동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방송이나 유튜브로 평소 즐겨듣는 찬양들 가운데 그날따라 더욱 은혜가 되는 찬양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찬양들을 꼭 메모하고 기록해둡니다. 물론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하신 찬양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2026-01-28
  • 흉악범의 눈을 뜬 아침, 사랑의 눈동자를 만나다
    스스로를 닦던 고독한 구도자, 바나바를 연기하다 이탈리아의 연극배우 피에트로 사루비에게 삶은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한 고단한 수행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티베트 불교에 심취했던 그는 명상과 윤회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닦아내려 했던 고독한 구도자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인류사의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출연 제의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맡은 역은 민란을 주도하고 살인을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인 ‘바라바’였습니다. 사루비는 이 역할을 대단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저 직업적인 도전이라 생각하며 거친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연기가 멈춘 찰나, 시선이 마주치다 빌라도의 법정, 따가운 햇살 아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사루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관중의 야유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채찍질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 예수(짐 카비즐 분)가 서 있었습니다. 대본대로라면 사루비는 자신을 대신해 죽으러 가는 예수를 비웃으며 광기 어린 표정으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눈과 마주친 순간, 사루비의 연기는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눈은 나를 꿰뚫고 있었고, 동시에 나를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도, 죽음의 공포도 없었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깊은 침묵과 가늠할 수 없는 사랑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사루비는 그 찰나의 시선 속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압도적인 진실과 마주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 바라바였습니다” 그 눈빛은 사루비의 영혼에 소리 없이 말을 건넸습니다. “내가 침묵하는 이유는 네가 소리치게 하기 위함이고, 내가 매를 맞는 이유는 네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함이며, 내가 죽는 이유는 네가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2,000년 전의 바라바는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예수를 대신해 풀려나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이 주어지는 ‘선물’임을 그는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시선이 바꾼 새로운 세계: 바라바 이후의 삶 1. 《바라바에서 예수에게로》: 눈빛으로 기록한 회심 사루비는 이후 자신의 회심 과정을 담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구원이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바라바는 우리 인류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2.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광대’가 되다 가장 아름다운 변화는 그가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광대(Clown)로 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험악한 살인자 ‘바라바’의 얼굴을 했던 그가, 이제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합니다. 자신이 받은 자비로운 시선을 타인에게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공이 아닌 ‘사랑’을 쫓는 삶 성공과 해탈에만 집중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그는 이제 헌신적인 남편과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 눈빛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듯, 나도 내 곁의 사람들을 가장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당신은 그 눈과 마주한 적이 있습니까? 사루비는 이제 의무감이 아니라 ‘그분’이 보고 싶어 성당에 갑니다. 그 눈빛이 여전히 자신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피에트로 사루비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 역시 저마다의 죄를 지은 채, 이유 없는 용서를 받고 풀려난 바라바들이 아니냐고.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하며 미소 짓던 그 눈과 마주한 적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살인자의 눈을 가졌던 배우는, 이제 그 눈에 용서와 평안을 담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 영성
    • 간증
    2026-01-26
  • 목회자의 우선순위 세 가지
    AI이미지 그림 1. 개척 3년차 즈음 연말이었습니다. 감동을 주시는 듯해서 한 달 정도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무를 때였어요. 제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기 원하시는지 여쭤보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삶과 신앙, 목회 가운데 본질적인 우선순위를 자주 점검하도록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해주신 내용들이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2. <첫째, 친구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나 자신이 목사이기 전에 자녀요, 친구의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실 때 사역 성공했다는 사람들 칭찬 많이 받는지의 여부로 판단하시기보다, 하나님 자녀요 친구로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가장 행복할 때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목사인 제가 진정 예수님만으로 인하여 행복할 때, 저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되는 성도님들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성령님께서는 수시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3. “태성아, 교회 갈 때 목사의 정체성으로 먼저 가지 말자. 너 역시 다른 성도들처럼 먼저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친구로서 교회에 가자. 성도로 교회에 가자.” 그래서 집에서 교회로 출발해서 이동하면서 계속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면서 의식합니다. 목사가 아니라 성도로 교회 간다는 인식을 체크합니다. 목사인 제가 먼저 아들이요 친구로서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젖어 들어서 행복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에서 행복을 누리고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4. <둘째, 가정에 충실하기> 가장 먼저 세우신 공동체인 가정에 충실한 목회자여야 합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잘 이끌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시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반대로 가정이, 자녀가 우상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목사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강단에 섰을 때 가족부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제 아내가 가장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는 간증을 하곤 하는데 주님께서 격려해주시는 음성처럼 느껴집니다. 5. 만약 제가 인도하는 예배에서 가족이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사역의 성공도 사람들의 칭찬도 예수님 보실 때 실패입니다. 다행히도 아내부터 아이들도 나름 좋게 평가해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목회자 가정이 행복한 모습을 볼 때 성도님들 가정도 주님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자 본받기를 힘쓸 것입니다. 저도 가정이 행복하신 선배님들의 강의나 책, 개인적 교제를 통해 본받고자 노력 중입니다. 6. <셋째, 하나님 앞에 머물기> 목사가 교회에 머물며 하나님과의 접촉과 만남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목사로서 이 정체성을 풍성하게 누려야 할 장소가 바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도 심방이나 성도의 교제, 부흥회, 긴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교회에 아들이요 친구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머물기를 즐깁니다. 7. 아버지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사랑하며 사랑받고, 교제 나누는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고자 개척 목회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그럴 때 목사가 교회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혼의 기쁨을 성도님들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하늘 아버지 앞에 자녀요, 친구로 나아가 말씀과 기도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 영성
    • 목회
    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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