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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자기관리, 칼과 칼집
1. 둘째 딸 은별이가 3년 동안의 백혈병 투병 생활을 마치는 시기의 일입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어요. 중심정맥관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해섭니다. 중심정맥관은 독한 항암 약을 주입하는 케모 포트를 말해요. 어깨 쇄골 아래에 심장에서 나오는 튼튼한 혈관에 연결한 것이 중심정맥관-케모 포트입니다. 팔이나 손등 혈관으로는 독한 항암약물을 견딜 수 없어요. 혈관이 타들어 가고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 있어서 처음 항암치료 시작하기 전에 전신마취 후 수술해서 심었던 겁니다. 2. 은별이는 3년 가까이 백혈병 항암치료로 고생했는데 감사하게도 치료과정 중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치료 일정도 잘 지켰어요. 포트 제거 수술 한 이후 10~20% 재발하는 경우가 있어서 앞으로 잘 지켜보면 됩니다. 5년을 지켜보고 이상 없으면 완치 느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도 부모님들도 3년 치료과정을 마치면 암묵적으로 완치되었다고 보는 듯해요. 아무튼 환자 보호자로서 병원 올 때는 조금 더 은혜가 필요합니다. 온통 아픈 분들, 어려움 가운데 있는 보호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입니다. 아픈 게 잘못이 아니건만 더욱 긴장감 있는 병원 생활이 현실입니다. 3. 그런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섬겨주시는 의료진들은 그래서 함께 긴장합니다. 공감해주시고 먼저 잘 챙겨주시려고 애쓰십니다. 말 한마디도 행동 하나도 긴장감 속에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아픔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주의합니다. 위로가 되어 주고자 애쓰십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사명감은 투철하나 공감 능력은 덜떨어진 의사를 볼 때가 있어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필 은별이 검사받으러 온 그날 그 모습을 봤습니다. 얼굴은 악의가 전혀 없어요. 투철한 사명감 가지고 <원칙대로!>를 외칩니다. 4. 보호자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이 병원에 와 있는지는 관심 없는 어설픈 인턴, 레지던트더라고요. 누가 원칙을 모를까요. 그걸 설명해주는 의사가 말투와 톤에 따뜻함과 배려가 묻어나지 않음이 안타깝다는 것이죠.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지 않습니까? 아직 어려서 저러겠거니 생각하고 웃고 스쳐 지나갔지만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의사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아요. 다른 때보다 불편함이 좀 더 길어져요. 불편함도 때로는 성령님의 감동일 수도 있음을 이젠 압니다. 조용히 성령님께 마음으로 여쭤보고 주시는 감동에 귀를 기울여 보니... 맞습니다. 그 꼴, 그 모습이 영혼의 의사라는 제게서 아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편한 이유가 바로 내 모습이었던 겁니다. 5. “어”라고 말해도 “아”라고 해석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시는 성숙한 분들도 있습니다. 험한 세상, 치열한 영적 전투로 인하여 상처가 심한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라고 말해도 “어”라고 해석하고 분노합니다. 영혼이 아파서죠. 내면에 여유가 없어서죠. 그래서 영혼의 의사들에게는 말과 말투, 말의 톤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과 함께 세트로 드러나는 손짓, 몸짓 하나도 아픈 영혼을 대하는 의사로서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6. 때로는 말과 글에서, 행동과 태도로 교묘하게 감춘 듯해요.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성령님께서 직면하게 하시는 시간이 꼭 옵니다. 그래서 평소 나를 돌아보는 삶을 부단히 살아내야 합니다. 처음 책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에서 일부 나눴습니다. 신학교에서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제게 목회자로서 주의하라시며 여러 번 당부의 감동을 주셨었습니다. 7. “사랑하는 태성아. 너는 길을 걸을 때 뒷짐 지고 다니지 말아라. 그리고 의자에 앉을 때 다리 꼬고 앉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교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가 않구나. 너는 사람들 앞에서 짝다리 짚고 있지 말거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 다니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단다. 너는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라. 나는 너를 보는 사람들이 네가 예의바른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너는 항상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여라. 몸을 청결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이 너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나의 성전인 너의 몸이 지저분하거나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8. 물론 이런 내용은 율법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다리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픈 분들은 짝다리, 뒷짐 질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게는 목사로서 모범이 되기 원하시는 사랑의 권면이십니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리고,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성령님을 사랑하게 되니 그렇게 살고 싶어집니다. 지금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다만 감동으로 주신 말씀들에 순종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9. 험한 세상 가운데 내게 맡겨주기 원하시는 영혼들을 만났을 때,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마음 중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십자가 사랑으로 따뜻하고, 말과 태도, 자세라는 그릇도 따뜻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진리의 칼이 따뜻함을 품으면 생명의 검이 됩니다. 진리의 칼이 차가우면 죽이는 칼이 됩니다. 망나니 춤추는 칼 됩니다. 은별이 검사하러 온 날, 제가 검사받은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영혼의 의사로서 진리의 칼을 잘 갈고 닦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크신 예수님 십자가 사랑의 따뜻함이라는 칼집을 잊지 말고 들고 다녀야겠습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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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캐나다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MDMotivator' 채널 이야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 (화면캡처) 한 청년이 있었다. 의사의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그를 짓눌렀다.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었다. 그 청년은 어느 날 교과서를 덮고 거리로 나섰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그 단순한 질문 하나가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그 자신도 몰랐다. 캐나다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의 이야기다. 한 청년의 결단, 의대 강의실에서 거리로 1993년에 태어난 재커리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의학이었다. 의대에 입학한 그는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성적은 올랐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것은 번아웃이었고, 우울감이었다. "의대에서 배우는 것은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의 마음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바쁘고 경쟁적이었죠.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재커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외로움과 우울감은 의대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직장인도, 노인도, 청소년도 — 저마다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의학 공부보다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Kindness is Cool — 친절은 멋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처음 카메라를 켰던 날, 두려움을 넘은 첫 걸음 재커리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초창기 에피소드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 날이었다. 남성은 처음에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재커리가 진심으로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자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말 못 하며 혼자 고통받고 있었다. 재커리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고, 가진 현금 전부를 꺼내 건넸다. "이것이 당신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간 뒤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창에는 "나도 저 남성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커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제가 남성을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분이 저를 구해 주신 거예요. 제게 '계속 하라'는 이유를 주셨으니까요." 재커리의 운영 채널의 목록(화면 캡처) 선한 영향력의 연쇄 , 나눔이 나눔을 낳다 MDMotivator 채널이 다른 감동 채널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커리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이어가도록 유도하는 '선순환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재커리가 한 홈리스 남성에게 음식과 현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남성은 받은 돈의 일부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다른 노숙인에게 나눠 주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성경이 말하는 과부의 헌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영상들은 단순한 조회수를 넘어 실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한 영상에서 소개된 암 투병 중인 싱글맘의 사연은 며칠 만에 수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고, 재정 위기에 처한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캠페인은 수천 명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다. 재커리의 채널은 이미 하나의 '선행 플랫폼'이 되어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MDMotivator의 또 다른 축은 정신 건강이다. 재커리는 자신이 의대 시절 겪었던 우울감, 번아웃, 고립감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콘텐츠의 심장으로 삼는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즘 가장 힘든 게 뭐예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대도시의 바쁜 거리에서 처음 만난 청년에게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현대 사회의 역설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은 깊은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재커리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채널은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용감한 행동입니다." 이 메시지는 영상마다 반복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사연이 나간 뒤에 구독자들이 보낸 모금의 기적, 이 후원금으로 출연자들의 삶을 개선한다(화면 캡처) 전 세계로 퍼진 친절의 물결, 수천만 명이 응답하다 오늘날 MDMotivator는 유튜브에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전체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한 명의 청년이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선 지 몇 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러나 재커리는 숫자보다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 채널 댓글에는 매일 수천 개의 메시지가 달린다. "이 영상이 저를 자살 충동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당신 덕분에요." 이런 고백들이 재커리를 다시 거리로 이끄는 힘이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영상 재생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문화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Kindness is Cool'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절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MDMotivator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낯설지 않은 울림을 준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약한 자를 돌보라'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한다(갈라디아서 6:2). MDMotivator가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이 성경적 원리의 세속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공원 벤치의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주머니를 털어 건네는 지폐, 눈물을 흘리는 타인의 손을 꼭 잡는 그 행동들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미셨던 그 방식과 닮아 있다. 종교를 앞세우지 않지만, 그 콘텐츠의 본질에는 깊은 인도주의적 사랑이 흐른다. 한국 교회는 오늘, MDMotivator에서 하나의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교회 밖으로 나가, 아무 조건 없이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설교단 위의 말씀이 골목 안의 일상으로 살아 움직일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한다. 재커리는 그것을 카메라로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당신이 낯선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소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친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 MDMotivator, Zachery Dereniowski 의학을 포기한 청년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게 되었다.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처방전 대신 진심 어린 대화를 택한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그는 오늘도 거리로 나간다. 우리 곁에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묻는 것 —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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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기도는 노동이라고?”(2)
1. 기도할 때 제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조금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영적으로 안고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잠시 나의 사랑 고백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잠시 감사나 회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십자가로 생명을 내어주신 아버지 사랑이 크고 놀라운 이유입니다. 저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사랑받기에 합당하고 이미 충분합니다. 2.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머물러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기도는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먼저입니다. 친밀한 교제 말입니다. 그래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제가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꼭 말이 존재해야만 기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는 말이 없어도 통합니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요. 3.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서 기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요. 종종 점점 말이 줄어들기 시작해요. 완벽한 침묵에 이르곤 합니다. 그분의 마음에 제 온 영혼이 집중하여 바라봅니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듭니다. 그렇게 영원의 시간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요. 여러분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어떤 때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두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떤 때는 엄청 기쁨의 희열을 느끼며 분명히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이삼 십 분도 안 지나 있습니다. 영원의 시간을 경험한 겁니다. 4. 결국 기도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접촉이 일어나는 감격적인 시간이고요. 더불어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할 생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정도가 되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교회 의자에 앉을 생각만 해도 설레임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나만의 기도 골방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 가운데 기대감과 감동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5. 그런 친밀한 교제로서의 기도는 시작했다 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이끕니다. 그분의 달콤한 임재에 잠겨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나도 다시금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기도가 기도를 부른다고 할까요. 그 감격이 삶의 순간마다 내 안에, 곁에 계신 성령님을 더욱 찾고 존중해드리며 교제를 나누도록 만들곤 합니다. 6. 기도는 노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만족과 안정감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영적인 충만함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감사한 것은 친밀함의 기도로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사람들에게 중보적 기도를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나눠주십니다. 보여주십니다. 중보기도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7.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를 나누도록 돕는 귀중한 통로입니다. 보다 많은 하나님 자녀들이 기도로 친밀한 교제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특히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도우시고자 우리 안에, 곁에 동행하시는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통로로 적극 기도의 행복과 즐거움을 얻고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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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루틴을 지키라!
1.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6:4)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농구선수의 징크스와 루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시합 전에 청결을 점검해요. 목욕부터 집안 대청소까지 강박적으로 점검하는데, 그렇게 해야 경기에서 실수를 줄이고 시합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2. 그가 농구 시합 중에 자유투를 던질 때가 있는데요. 던지기 전 공을 바닥에 5번 튕깁니다. 그리고 던졌는데 들어가면 계속 5번씩 공을 튕기고 슛을 던져요. 자유투가 안 들어가면 횟수를 바꿔서 7회 혹은 10회 바닥에 공을 튕기죠. 슛이 성공하면 그 숫자를 기억하고 계속 그 횟수만큼 튕기고, 안 들어갈 때가 오면 다시 공 튕기는 횟수를 조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도 루틴이 있어요. 타석에 들어서면 꼭 야구 배트를 세 바퀴 돌리고 허리와 팔을 세 번 까딱거립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며 실수를 줄이게 된답니다. 이렇게 징크스는 이겨내고, 자신의 좋은 리듬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루틴이라고 하는데요. 3. 저도 신앙의 루틴이 있습니다. (목회자분들마다 영적 루틴이 다를 수 있는데요. 중심은 비슷하거나 같을 것입니다.) 신앙, 목회 본질을 지키는 힘과 삶이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7년 신학생 시절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재발견하였는데 삶과 신앙의 분기점이었어요. 그렇게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추구하면서 영적 루틴이 생겼습니다. 충분히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삶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 바라보는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겁니다. 영적 루틴이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4. 오전에는 가급적 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외부적인 소음을 차단합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SNS를 내려놓고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아요. 사도들의 고백처럼 말씀과 기도 시간으로 선포하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또 다른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영적 루틴으로서 최대한 지키려고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시면 또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방향성이 제게 유익해요. 5. 현재 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가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집회 일정이 바빴어요. 매주 부흥회 초청이 있었고, 전국에 정기모임과 정기집회도 25곳이 넘었습니다. 바쁜 집회 일정도 영적 루틴을 지키면서 다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2일은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가정에 먼저 충실하도록 이끄시며, 사역자가 아니라 아들이요 친구로서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삶에 집중하게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머물러 있는 시간입니다. 6. 어떤 시즌에는 한 달 이상 모든 집회를 거절하거나 1달 이후로 날짜를 조정했습니다. 5~6개월에 한 번씩은 집에서 두문불출했어요. 조용히 성령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멈춰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영적인 루틴이 형성되었어요. 이제 제 영혼에 각인되었습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우게 하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7. 제 사역이 바빠지기보다, 제 이름이 알려지기보다, 우리 교회가 알려지기보다 예수님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제 삶을 통해 예수님 알려지시려면 영적 루틴을 목숨같이 지켜야 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지런해야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분들 사역과도 비교할 필요 없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오직 비교의 대상은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지키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숫자에 속지 않고 성장과 성숙을 함께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연합을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머물러 계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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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데스크 칼럼/양봉식 국장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고(AGI), 노동의 가치가 희석되며, 인간의 생존이 기본소득과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게 될 미래가 목전에 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기술적 적응을 고민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변화는 명백히 ‘인간 이해의 문제’다.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한 자유와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기술에 의해 다시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AG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역할 자체를 흔드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최첨단 기술 대응 전략이 아니다. 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신앙적 재정립이다. 1. 노동이 사라질 때, 소명은 더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노동의 총량이 줄어드는 미래에, 일에서 정체성을 찾던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치를 노동의 유무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Homo Faber)’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다. 그러므로 노동이 소멸해가는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명이 곧 직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명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삶의 본질이 되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다. 2. 기본소득의 시대, 탐욕 대신 절제를 배워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스템적으로 해결되는 사회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대한 위기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삶의 치열한 의미 또한 증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는 풍요가 종종 영적 타락과 궤를 같이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풍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풍요를 절제 없이 향유하는 삶은 경계한다. 인간은 소비로 채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참된 평안을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GI 시대에 우리가 훈련해야 할 영성은 ‘더 많이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가는 태도’다. 단순한 삶, 자발적인 절제,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의 영성은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형태가 될 것이다. 3. 통제받는 사회 속에서 자유의 의미를 지켜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AI는 인간을 해치기보다,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들 것이다. 건강을 위해, 사회적 안정을 위해, 더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은 ‘자유’다. 인간은 실수할 자유, 실패할 자유,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를 가진 존재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변화,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치 있게 여긴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는 안전할지 몰라도 인간다운 사회는 아니다. 편리함보다 자유를, 효율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치다. 4. 인간이 잊게 될 질문을 교회가 붙잡아야 한다 AGI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조건이 완벽히 해결되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깊은 공허가 들어선다. 교회는 세상이 잊어버릴 이 질문들을 끝까지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왜 희생해야 하는가?" "왜 진리를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기술은 답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답이 주어진다. 5.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영성의 깊이로 결정된다 다가오는 시대는 인간이 더 똑똑해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시험받는 시대다. 노동이 줄어들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쉽게 삶의 방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우고, 풍요 속에서도 절제를 배우며, 통제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영성이다. AGI 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는 위기가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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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2)
1. 내가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하신 찬양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런 노력이 찬양을 인도하는 실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찬양 인도가 목적이라서 평소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가운데 많은 은혜 끼치고 싶어서가 목적이 아닙니다. 2. 다시 말씀드리지만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나도 순수하게 사랑해서 존중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찬양 사역에서도 성령님께서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순수함과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태도, 감동 주실 때 메모하며 기록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를 잘하는 것보다 동기의 점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기는 평소 삶의 태도에서 점검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찬양들이 모이면 다시금 성령님께 여쭤봅니다. 3. “성령님, 어떤 순서로 찬양드리기 원하세요? 가르쳐 주시겠어요?” 여쭤보고 기도드리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결코 늦지 않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감동 가운데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그 순서대로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찬양 인도할 때는 내 안에 계시며 이 장소에 계신 성령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인식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목소리에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름부으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4.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 인도를 위해 성령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사랑해서 성령님을 찾으려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을 점검하며 강대상 앞에서 좀 더 집중하여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함께 찬양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립니다.” 5. 조용히 마음 가운데 이런 고백을 드리며 첫 찬양을 살펴봅니다.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영적 상태인지 또 점검한다는 겁니다. 내면에 성령님 함께하심으로 인한 안정감과 평안함, 설레임과 기대감, 나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조용히 입을 엽니다. 찬양을 시작합니다. 찬양 인도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쉬운 사역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평상시에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살아간다면 사역 현장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 받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믿습니다. 6. 우리 모두 찬양 인도자로 살지 말고 평소 찬양 드림을 기뻐하는 자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는 찬양”도 인도할 때가 아니라 평소 개인적인 찬양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사용하시길 소망합니다. 순수하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찬양을 합시다. 그러다 보면 찬양 인도의 현장에서도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심을 자연스레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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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자기관리, 칼과 칼집
- 1. 둘째 딸 은별이가 3년 동안의 백혈병 투병 생활을 마치는 시기의 일입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어요. 중심정맥관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해섭니다. 중심정맥관은 독한 항암 약을 주입하는 케모 포트를 말해요. 어깨 쇄골 아래에 심장에서 나오는 튼튼한 혈관에 연결한 것이 중심정맥관-케모 포트입니다. 팔이나 손등 혈관으로는 독한 항암약물을 견딜 수 없어요. 혈관이 타들어 가고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 있어서 처음 항암치료 시작하기 전에 전신마취 후 수술해서 심었던 겁니다. 2. 은별이는 3년 가까이 백혈병 항암치료로 고생했는데 감사하게도 치료과정 중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치료 일정도 잘 지켰어요. 포트 제거 수술 한 이후 10~20% 재발하는 경우가 있어서 앞으로 잘 지켜보면 됩니다. 5년을 지켜보고 이상 없으면 완치 느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도 부모님들도 3년 치료과정을 마치면 암묵적으로 완치되었다고 보는 듯해요. 아무튼 환자 보호자로서 병원 올 때는 조금 더 은혜가 필요합니다. 온통 아픈 분들, 어려움 가운데 있는 보호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입니다. 아픈 게 잘못이 아니건만 더욱 긴장감 있는 병원 생활이 현실입니다. 3. 그런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섬겨주시는 의료진들은 그래서 함께 긴장합니다. 공감해주시고 먼저 잘 챙겨주시려고 애쓰십니다. 말 한마디도 행동 하나도 긴장감 속에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아픔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주의합니다. 위로가 되어 주고자 애쓰십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사명감은 투철하나 공감 능력은 덜떨어진 의사를 볼 때가 있어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필 은별이 검사받으러 온 그날 그 모습을 봤습니다. 얼굴은 악의가 전혀 없어요. 투철한 사명감 가지고 <원칙대로!>를 외칩니다. 4. 보호자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이 병원에 와 있는지는 관심 없는 어설픈 인턴, 레지던트더라고요. 누가 원칙을 모를까요. 그걸 설명해주는 의사가 말투와 톤에 따뜻함과 배려가 묻어나지 않음이 안타깝다는 것이죠.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지 않습니까? 아직 어려서 저러겠거니 생각하고 웃고 스쳐 지나갔지만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의사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아요. 다른 때보다 불편함이 좀 더 길어져요. 불편함도 때로는 성령님의 감동일 수도 있음을 이젠 압니다. 조용히 성령님께 마음으로 여쭤보고 주시는 감동에 귀를 기울여 보니... 맞습니다. 그 꼴, 그 모습이 영혼의 의사라는 제게서 아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편한 이유가 바로 내 모습이었던 겁니다. 5. “어”라고 말해도 “아”라고 해석하시고 자신을 돌아보시는 성숙한 분들도 있습니다. 험한 세상, 치열한 영적 전투로 인하여 상처가 심한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라고 말해도 “어”라고 해석하고 분노합니다. 영혼이 아파서죠. 내면에 여유가 없어서죠. 그래서 영혼의 의사들에게는 말과 말투, 말의 톤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과 함께 세트로 드러나는 손짓, 몸짓 하나도 아픈 영혼을 대하는 의사로서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6. 때로는 말과 글에서, 행동과 태도로 교묘하게 감춘 듯해요.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성령님께서 직면하게 하시는 시간이 꼭 옵니다. 그래서 평소 나를 돌아보는 삶을 부단히 살아내야 합니다. 처음 책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에서 일부 나눴습니다. 신학교에서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제게 목회자로서 주의하라시며 여러 번 당부의 감동을 주셨었습니다. 7. “사랑하는 태성아. 너는 길을 걸을 때 뒷짐 지고 다니지 말아라. 그리고 의자에 앉을 때 다리 꼬고 앉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교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가 않구나. 너는 사람들 앞에서 짝다리 짚고 있지 말거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 다니지 말거라. 나는 나의 종이 버릇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단다. 너는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라. 나는 너를 보는 사람들이 네가 예의바른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너는 항상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여라. 몸을 청결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이 너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나의 성전인 너의 몸이 지저분하거나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8. 물론 이런 내용은 율법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다리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픈 분들은 짝다리, 뒷짐 질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게는 목사로서 모범이 되기 원하시는 사랑의 권면이십니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리고,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성령님을 사랑하게 되니 그렇게 살고 싶어집니다. 지금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다만 감동으로 주신 말씀들에 순종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9. 험한 세상 가운데 내게 맡겨주기 원하시는 영혼들을 만났을 때,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마음 중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십자가 사랑으로 따뜻하고, 말과 태도, 자세라는 그릇도 따뜻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진리의 칼이 따뜻함을 품으면 생명의 검이 됩니다. 진리의 칼이 차가우면 죽이는 칼이 됩니다. 망나니 춤추는 칼 됩니다. 은별이 검사하러 온 날, 제가 검사받은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영혼의 의사로서 진리의 칼을 잘 갈고 닦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크신 예수님 십자가 사랑의 따뜻함이라는 칼집을 잊지 말고 들고 다녀야겠습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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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자기관리, 칼과 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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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 캐나다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MDMotivator' 채널 이야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 (화면캡처) 한 청년이 있었다. 의사의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그를 짓눌렀다.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었다. 그 청년은 어느 날 교과서를 덮고 거리로 나섰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그 단순한 질문 하나가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리라고는, 그 자신도 몰랐다. 캐나다 출신 콘텐츠 크리에이터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Zachery Dereniowski).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MDMotivator'의 이야기다. 한 청년의 결단, 의대 강의실에서 거리로 1993년에 태어난 재커리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돕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 바로 의학이었다. 의대에 입학한 그는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성적은 올랐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것은 번아웃이었고, 우울감이었다. "의대에서 배우는 것은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의 마음은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바쁘고 경쟁적이었죠.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재커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외로움과 우울감은 의대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직장인도, 노인도, 청소년도 — 저마다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의학 공부보다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Kindness is Cool — 친절은 멋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처음 카메라를 켰던 날, 두려움을 넘은 첫 걸음 재커리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초창기 에피소드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간 날이었다. 남성은 처음에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재커리가 진심으로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자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말 못 하며 혼자 고통받고 있었다. 재커리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고, 가진 현금 전부를 꺼내 건넸다. "이것이 당신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간 뒤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창에는 "나도 저 남성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커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제가 남성을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분이 저를 구해 주신 거예요. 제게 '계속 하라'는 이유를 주셨으니까요." 재커리의 운영 채널의 목록(화면 캡처) 선한 영향력의 연쇄 , 나눔이 나눔을 낳다 MDMotivator 채널이 다른 감동 채널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커리는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이어가도록 유도하는 '선순환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재커리가 한 홈리스 남성에게 음식과 현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남성은 받은 돈의 일부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다른 노숙인에게 나눠 주었던 것이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성경이 말하는 과부의 헌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영상들은 단순한 조회수를 넘어 실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한 영상에서 소개된 암 투병 중인 싱글맘의 사연은 며칠 만에 수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고, 재정 위기에 처한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캠페인은 수천 명의 자발적 참여로 이어졌다. 재커리의 채널은 이미 하나의 '선행 플랫폼'이 되어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MDMotivator의 또 다른 축은 정신 건강이다. 재커리는 자신이 의대 시절 겪었던 우울감, 번아웃, 고립감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을 콘텐츠의 심장으로 삼는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즘 가장 힘든 게 뭐예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대도시의 바쁜 거리에서 처음 만난 청년에게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현대 사회의 역설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것 같지만, 정작 사람들은 깊은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재커리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채널은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용감한 행동입니다." 이 메시지는 영상마다 반복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사연이 나간 뒤에 구독자들이 보낸 모금의 기적, 이 후원금으로 출연자들의 삶을 개선한다(화면 캡처) 전 세계로 퍼진 친절의 물결, 수천만 명이 응답하다 오늘날 MDMotivator는 유튜브에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전체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한 명의 청년이 카메라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선 지 몇 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러나 재커리는 숫자보다 이야기를 더 소중히 여긴다. 채널 댓글에는 매일 수천 개의 메시지가 달린다. "이 영상이 저를 자살 충동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당신 덕분에요." 이런 고백들이 재커리를 다시 거리로 이끄는 힘이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히 영상 재생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문화 운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Kindness is Cool'이라는 해시태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절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MDMotivator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낯설지 않은 울림을 준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약한 자를 돌보라'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명한다(갈라디아서 6:2). MDMotivator가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이 성경적 원리의 세속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공원 벤치의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주머니를 털어 건네는 지폐, 눈물을 흘리는 타인의 손을 꼭 잡는 그 행동들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미셨던 그 방식과 닮아 있다. 종교를 앞세우지 않지만, 그 콘텐츠의 본질에는 깊은 인도주의적 사랑이 흐른다. 한국 교회는 오늘, MDMotivator에서 하나의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교회 밖으로 나가, 아무 조건 없이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설교단 위의 말씀이 골목 안의 일상으로 살아 움직일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한다. 재커리는 그것을 카메라로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당신이 낯선 누군가에게 건네는 미소 하나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친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 MDMotivator, Zachery Dereniowski 의학을 포기한 청년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게 되었다. 청진기 대신 카메라를, 처방전 대신 진심 어린 대화를 택한 재커리 데레니오우스키. 그는 오늘도 거리로 나간다. 우리 곁에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묻는 것 —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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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
-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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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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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기도는 노동이라고?”(2)
- 1. 기도할 때 제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조금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영적으로 안고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잠시 나의 사랑 고백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잠시 감사나 회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십자가로 생명을 내어주신 아버지 사랑이 크고 놀라운 이유입니다. 저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사랑받기에 합당하고 이미 충분합니다. 2.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머물러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기도는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먼저입니다. 친밀한 교제 말입니다. 그래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제가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꼭 말이 존재해야만 기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는 말이 없어도 통합니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요. 3.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서 기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요. 종종 점점 말이 줄어들기 시작해요. 완벽한 침묵에 이르곤 합니다. 그분의 마음에 제 온 영혼이 집중하여 바라봅니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듭니다. 그렇게 영원의 시간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요. 여러분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어떤 때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두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떤 때는 엄청 기쁨의 희열을 느끼며 분명히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이삼 십 분도 안 지나 있습니다. 영원의 시간을 경험한 겁니다. 4. 결국 기도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접촉이 일어나는 감격적인 시간이고요. 더불어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할 생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정도가 되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교회 의자에 앉을 생각만 해도 설레임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기도를 위해 나만의 기도 골방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 가운데 기대감과 감동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5. 그런 친밀한 교제로서의 기도는 시작했다 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이끕니다. 그분의 달콤한 임재에 잠겨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나도 다시금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기도가 기도를 부른다고 할까요. 그 감격이 삶의 순간마다 내 안에, 곁에 계신 성령님을 더욱 찾고 존중해드리며 교제를 나누도록 만들곤 합니다. 6. 기도는 노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만족과 안정감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영적인 충만함을 회복하고 누리는 시간입니다. 감사한 것은 친밀함의 기도로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사람들에게 중보적 기도를 맡기십니다. 예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을 나눠주십니다. 보여주십니다. 중보기도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7.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를 나누도록 돕는 귀중한 통로입니다. 보다 많은 하나님 자녀들이 기도로 친밀한 교제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특히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도록 도우시고자 우리 안에, 곁에 동행하시는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통로로 적극 기도의 행복과 즐거움을 얻고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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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기도는 노동이라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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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루틴을 지키라!
- 1.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6:4)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농구선수의 징크스와 루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시합 전에 청결을 점검해요. 목욕부터 집안 대청소까지 강박적으로 점검하는데, 그렇게 해야 경기에서 실수를 줄이고 시합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2. 그가 농구 시합 중에 자유투를 던질 때가 있는데요. 던지기 전 공을 바닥에 5번 튕깁니다. 그리고 던졌는데 들어가면 계속 5번씩 공을 튕기고 슛을 던져요. 자유투가 안 들어가면 횟수를 바꿔서 7회 혹은 10회 바닥에 공을 튕기죠. 슛이 성공하면 그 숫자를 기억하고 계속 그 횟수만큼 튕기고, 안 들어갈 때가 오면 다시 공 튕기는 횟수를 조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도 루틴이 있어요. 타석에 들어서면 꼭 야구 배트를 세 바퀴 돌리고 허리와 팔을 세 번 까딱거립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며 실수를 줄이게 된답니다. 이렇게 징크스는 이겨내고, 자신의 좋은 리듬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루틴이라고 하는데요. 3. 저도 신앙의 루틴이 있습니다. (목회자분들마다 영적 루틴이 다를 수 있는데요. 중심은 비슷하거나 같을 것입니다.) 신앙, 목회 본질을 지키는 힘과 삶이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7년 신학생 시절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재발견하였는데 삶과 신앙의 분기점이었어요. 그렇게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추구하면서 영적 루틴이 생겼습니다. 충분히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삶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 바라보는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겁니다. 영적 루틴이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4. 오전에는 가급적 활동하지 않아요. 성령님과 교제 나누며 외부적인 소음을 차단합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SNS를 내려놓고 가급적 약속도 잡지 않아요. 사도들의 고백처럼 말씀과 기도 시간으로 선포하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가집니다. 물론 또 다른 율법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영적 루틴으로서 최대한 지키려고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시면 또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방향성이 제게 유익해요. 5. 현재 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섬기는 교회가 생기기 전에는 참으로 집회 일정이 바빴어요. 매주 부흥회 초청이 있었고, 전국에 정기모임과 정기집회도 25곳이 넘었습니다. 바쁜 집회 일정도 영적 루틴을 지키면서 다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일정 속에서도 일주일에 2일은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가정에 먼저 충실하도록 이끄시며, 사역자가 아니라 아들이요 친구로서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삶에 집중하게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머물러 있는 시간입니다. 6. 어떤 시즌에는 한 달 이상 모든 집회를 거절하거나 1달 이후로 날짜를 조정했습니다. 5~6개월에 한 번씩은 집에서 두문불출했어요. 조용히 성령님 안에 머무르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멈춰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영적인 루틴이 형성되었어요. 이제 제 영혼에 각인되었습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우게 하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찬양 가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7. 제 사역이 바빠지기보다, 제 이름이 알려지기보다, 우리 교회가 알려지기보다 예수님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제 삶을 통해 예수님 알려지시려면 영적 루틴을 목숨같이 지켜야 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지런해야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분들 사역과도 비교할 필요 없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오직 비교의 대상은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오늘도 자신만의 영적 루틴을 지키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숫자에 속지 않고 성장과 성숙을 함께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연합을 추구하시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머물러 계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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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루틴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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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 데스크 칼럼/양봉식 국장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고(AGI), 노동의 가치가 희석되며, 인간의 생존이 기본소득과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게 될 미래가 목전에 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기술적 적응을 고민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변화는 명백히 ‘인간 이해의 문제’다. "인간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한 자유와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기술에 의해 다시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AG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역할 자체를 흔드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최첨단 기술 대응 전략이 아니다. 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신앙적 재정립이다. 1. 노동이 사라질 때, 소명은 더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러나 노동의 총량이 줄어드는 미래에, 일에서 정체성을 찾던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치를 노동의 유무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Homo Faber)’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다. 그러므로 노동이 소멸해가는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명이 곧 직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명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삶의 본질이 되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다. 2. 기본소득의 시대, 탐욕 대신 절제를 배워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스템적으로 해결되는 사회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대한 위기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삶의 치열한 의미 또한 증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는 풍요가 종종 영적 타락과 궤를 같이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는 풍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풍요를 절제 없이 향유하는 삶은 경계한다. 인간은 소비로 채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참된 평안을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AGI 시대에 우리가 훈련해야 할 영성은 ‘더 많이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가는 태도’다. 단순한 삶, 자발적인 절제,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의 영성은 미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형태가 될 것이다. 3. 통제받는 사회 속에서 자유의 의미를 지켜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AI는 인간을 해치기보다,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려 들 것이다. 건강을 위해, 사회적 안정을 위해, 더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통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은 ‘자유’다. 인간은 실수할 자유, 실패할 자유,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를 가진 존재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불완전한 자유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변화,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을 가치 있게 여긴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는 안전할지 몰라도 인간다운 사회는 아니다. 편리함보다 자유를, 효율보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치다. 4. 인간이 잊게 될 질문을 교회가 붙잡아야 한다 AGI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조건이 완벽히 해결되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깊은 공허가 들어선다. 교회는 세상이 잊어버릴 이 질문들을 끝까지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왜 희생해야 하는가?" "왜 진리를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기술은 답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답이 주어진다. 5.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영성의 깊이로 결정된다 다가오는 시대는 인간이 더 똑똑해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시험받는 시대다. 노동이 줄어들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쉽게 삶의 방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존재의 정체성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세우고, 풍요 속에서도 절제를 배우며, 통제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의 영성이다. AGI 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는 위기가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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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2)
- 1. 내가 감동받은 찬양들이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도하신 찬양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찬양들을 꼭 예배 때 콘티로 구성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찬양을 준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평소 이런 노력이 찬양을 인도하는 실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찬양 인도가 목적이라서 평소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 가운데 많은 은혜 끼치고 싶어서가 목적이 아닙니다. 2. 다시 말씀드리지만 친밀하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나도 순수하게 사랑해서 존중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찬양 사역에서도 성령님께서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이런 순수함과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태도, 감동 주실 때 메모하며 기록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성령님께 첫 음을 맡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 인도를 잘하는 것보다 동기의 점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기는 평소 삶의 태도에서 점검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찬양들이 모이면 다시금 성령님께 여쭤봅니다. 3. “성령님, 어떤 순서로 찬양드리기 원하세요? 가르쳐 주시겠어요?” 여쭤보고 기도드리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면 결코 늦지 않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감동 가운데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그 순서대로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찬양 인도할 때는 내 안에 계시며 이 장소에 계신 성령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인식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목소리에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기름부으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합니다. 4.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 인도를 위해 성령님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사랑해서 성령님을 찾으려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을 점검하며 강대상 앞에서 좀 더 집중하여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함께 찬양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드립니다.” 5. 조용히 마음 가운데 이런 고백을 드리며 첫 찬양을 살펴봅니다.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는 영적 상태인지 또 점검한다는 겁니다. 내면에 성령님 함께하심으로 인한 안정감과 평안함, 설레임과 기대감, 나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있겠다는 확신 속에 조용히 입을 엽니다. 찬양을 시작합니다. 찬양 인도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쉬운 사역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평상시에 순수하게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살아간다면 사역 현장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 받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믿습니다. 6. 우리 모두 찬양 인도자로 살지 말고 평소 찬양 드림을 기뻐하는 자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는 찬양”도 인도할 때가 아니라 평소 개인적인 찬양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사용하시길 소망합니다. 순수하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찬양을 합시다. 그러다 보면 찬양 인도의 현장에서도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심을 자연스레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령님께 첫 음을 맡겨” 드리시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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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찬양 인도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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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 한 단어 한 단어 진심을 담아 표현하기
-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29:20) 1. <팬텀싱어>라는 방송을 봤습니다. 남성 4중창 크로스 오버 팀을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시즌 1부터 꽤 호응이 좋습니다. 일반인부터 오페라 가수, 뮤지컬 배우, 연극배우, 판소리 가수 등등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사연도 제각각이라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점도 좋은데, 드라마틱한 인생에 걸맞은 노래 실력으로 감동도 주니 참 좋습니다. 그 중에 외국인 참가자가 눈에 띕니다. 남태평양 피지 섬에서 한국으로 성악 공부하러 온 소코 라는 참가자입니다. ‘첫 사랑’이라는 한국 노래를 부릅니다. 김효근 교수의 시에 음정을 붙인 아트 팝 가곡인데요. 심사위원 중에 유명한 작사가 김이나 씨가 노래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아서 말합니다. 2. “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우리 가사를 더 잘 표현했어요. 우리한테는 너무 당연한 한글이기 때문에 표현에 더 소홀하게 되는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소코 씨는 가사 단어 하나하나를 자기 나라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고민하고 진지하게 해석하셨어요.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잘 표현하셨어요. 우리나라 가수들이 이런 점은 더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대'라는 단어는 '너'와 '당신'이라는 단어와는 다름을 잘 표현해주셨어요. 우리나라 가수들도 한 단어 한 단어를 노랫말로 뱉어낼 때 그 단어의 깊은 의미와 감정을 진지하게 해석해내셔서 불러주시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나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3.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노래의 감동과 김이나 씨의 심사평이 성령님과의 교제에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종종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방법으로 편하게 말을 걸도록 추천합니다. 여쭤보기, 질문하기도 말을 거는 겁니다. 내 생각과 기분, 감정들을 성령님께 말로 표현하는 것이 그분과 교제 나누는 좋은 방법입니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리고자 할 때 함께 사용하면 좋은 방법이 간접적인 침묵입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넌 좀 생각하고 말해!” 4. 그런데 성령님께도 생각을 하면서 말씀드리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진지함과 순수함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진심을 담아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나누고 싶은 겁니다. 저 같은 경우 교회 오자마자 앉아서 성령님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의식합니다. 이미 함께 계시지만 존중해 드리고 싶은 나의 의지를 담아서 초청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께 계신 성령님을 기다립니다. 제가 그분께 순수하게 진심을 담아서 한 단어, 한 문장을 고백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간접적인 침묵 모드가 됩니다. 5. 얼마나 침묵 할까요? 중요한 건 내가 성령님께 순수하고도 진심을 담아 잘 존중해 드리는 언어생활이 가능하겠다 싶을 때까지 입니다. 가수들이 노래 시작 전에 잠시 눈을 감고 노래 가사에 집중하듯 침묵합니다.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기다립니다. 언제부터인지 많은 말이 중심이던 제 기도생활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진심을 담아 한 단어, 한 문장 표현하는 관계 중심의 기도생활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재인식하면서부터입니다. 6. 그래서인지 종종 제 기도 시작은 침묵으로 시작됩니다. 침묵이 길어지면 침묵으로 시작 된 기도가 침묵으로 마칠 때도 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 영혼의 충족감을 얻습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들으시고 나도 성령님을 듣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진심을 담아 “성령님~”하고 부르는 것조차도 내가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만을 담아 입술로 부르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점검합니다. 7. 간접적인 침묵 가운데 성령님의 함께 계심을 나타내주십니다. 그럴 때면 제 영혼이 성령님의 사역을 먼저 경험합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침묵으로 성령님의 임재에 집중하다 보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생명주신 예수님 사랑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 사랑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 중심이 순수함과 진심이 담기며 영혼의 충만감이 커집니다. 그리고 오늘의 삶도 어떻게 복음적인 순종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 드릴까를 성령님 안에서 고민합니다. 8. 부디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바라보게 도우시는 성령님 안에서 침묵해보세요. 순수함과 진심을 담아 말을 거세요. 성급하게 말하기보다 한 단어, 한 문장,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씀드리는 훈련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순수한 동기 점검을 마친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더욱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살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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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 한 단어 한 단어 진심을 담아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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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통해 동행하시는 예수님
- 1.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이 찬양 가사처럼 모두 어려움과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왜 보이는 걸까요? 이건 생각해볼 문젭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지요. 첫째, 보이니까 봅니다. 어려움이 보이니까 보는 겁니다. 둘째, 안 보이니까 봅니다. 예수님이 안 보이니까 어려움이 보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동행하시는 예수님이 안 보이니까 문제가 자꾸 보이는 거죠. 좋으신 하늘 아버지께서 내 눈에 안 보이니까 고통과 거친 생각이 넘실거립니다. 불안한 눈빛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해볼까요. 도대체 왜 하나님 안 보이실까요? 안 계셔서인가요? 아닙니다. 2.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이렇게 약속하시고 선포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노라고. 동행하시겠노라고. 그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 속에 두시는 방법 말입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7) 3. 성령님을 통해 함께 하시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면 진짜 문제는 무엇입니까? 내가 안 믿어져서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 어디서나 살갑게 동행하신다는 진리가 안 믿어져서입니다. 내 믿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섭니다. 내가 보지 못 해서지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형님이 있습니다. 최근 페이스북에 사진 한 장을 올렸는데요. 납골당 앞에서 온 가족이 찍은 사진입니다.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 가셨는데 납골당에 안치하고 문 입구 계단 앞에 모였습니다. 온 가족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참 은혜롭고 감동이 되더군요. 사진 아래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4. “이 땅에서의 이별은 슬프지만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는 엄마한테 행복하시라고 하트를 보냅니다... 장례식장 앞에서” 어떻게 장례식 마무리를 저토록 환하게 웃으며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믿어져섭니다. 이 땅에서의 잠시 이별이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믿음의 눈이 열려섭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장례 속에서도 믿음의 눈을 들어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한 신앙 때문이지요. 저는 이 형님이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평소 그런 신앙열정이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는 겁니다. 아름답고도 찬란하게 말이지요. 5. 우리 삶에도 반복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문제는 그런 문제보다 위대하신 성령님 통해 나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평소 예수님을 동행하시는 분으로 인식하는 신앙훈련을 해야 합니다. 특히,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국내에서도 일본과 호주, 미국이나 중국, 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십니다. 잠시 한국 방문하셨을 때 찾아오기도 하십니다. 대부분 집필하게 하신 책들을 읽고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삶에서 큰 은혜와 도전을 받으시고 찾아오십니다. 책의 방법들을 부지런히 따라하고 훈련하셨던 분들께서 조언 받고자 오십니다. 이분들은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6. “목사님, 제가요. 이 책에 나온 목사님 간증들과 훈련방법들을 따라 해보고 있어요.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는데요. 될 때까지 계속 하려고요. 그래서 목사님 책들을 반복해서 계속 읽고 있어요.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아서 지인들에게 추천해주는데요. 읽어보라고 빌려주면 안돌려줘서 제가 10권 째 사서 읽고 있어요. 이제는 아예 몇 권씩 사서 집에 두고 필요한 분들께 선물해드립니다.” 이렇게 은혜를 사모하는 분들을 만나면 도전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를 통해 쓰게 하신 책이지만 꺼내서 다시 읽곤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삶이 더 깊어짐을 경험합니다. 7. 부디 성령님과 교제 나누고 동행하는 삶의 훈련을 계속 하십시오.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다가와도 성령님이 먼저 인식이 될 것입니다. 연습하는 만큼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 시험들을 빨리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문제보다 크신 아버지 하나님 사랑에 주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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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통해 동행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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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임재에 갇혀 있는가?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1.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라는 찬양에서 특히 감동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라는 부분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허락하시고, 성령님으로 동행하셔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갇혀서 살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니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요. 영화를 보는 가운데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사랑하는 사람이 누나를 너무 옭아맨다고? 누나! 사랑을 하는 대상에 의해 포위되기도 하잖아! 누나 방을 봐. 펭귄을 사랑해서 사육사가 되었고, 지금 누나 방은 펭귄 용품으로 가득 채워져서 둘러싸여 있잖아" 2. 이 대사가 참 공감됩니다. 어린 자녀가 딸이라면 인형으로, 아들이라면 장난감 로봇들로 채우고 싶어 하지요. 저도 어릴 때 장난감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TV만화영화에 나오는 자동차, 로봇 등을 모으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자 자랑거리였는지 모릅니다. 사춘기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죠. 좋아하는 연예인들 사진과 브로마이드를 벽에 가득 붙여놓고 둘러싸여 있지요. 꿈과 비전이 생겨도 방을 가득 채웁니다. 야구선수나 축구선수가 꿈인 아이들은 훌륭한 선수들의 사진이나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놓습니다. 관련 물품들을 방에 진열하여 채우지요. 아이들도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모으고, 자신의 방과 삶을 채워서 스스로를 포위해버립니다. 포위되고도 오히려 즐거워하며 행복해 합니다. 3. 우리 크리스천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할까요? 무엇으로 둘러싸여야 하며, 무엇에 의해 포위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도 성령님의 임재로 채워져야 합니다. 성령님의 임재에 둘러싸여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임재 안에 갇혀서 그 임재에 의해 포위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작은 일이든지 큰일이든지, 중요하든지 사소하든지 성령님의 임재 안에서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예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시는 성령님의 사역이 나를 통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과 배후에 역사하는 악한 영들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둘러싸여 있기를 즐거워합니다. 자기 욕망의 대상에 포위되어 영적으로는 허우적거리며 침체됩니다. 죽어가면서도 잘 못 느낍니다. 4.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5-16) 그런 사람들 가운데 '나는 아니에요~!'라며 부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열매로 알아볼 수 있듯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는지 금방 알 수 있지요. 그 사람이 무엇을 즐기며 그 사람의 집안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지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5. 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집에 술병이 많든지 술이 많든지 합니다. 혹은 늘 술을 입에 달고 삽니다. 담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몸에서 담배냄새가 악취처럼 풍깁니다. 향수로도 감출 수 없지요.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 안에 갇혀 있는 하나님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내가 느끼고 의식하지 못해도 진리는 이미 성령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성령님의 사랑과 임재를 지속적으로 채움 받고 누려서 그분께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임재를 믿고 누리며 추구할수록 성령님의 임재는 내가 예수님을 높이는 삶의 열매 맺게 하십니다. 6.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을 계속 그리워합니다. 지나치면 상사병이 되지요. 사랑하기에 그 마음이 계속 찾게 된다는 것은 그에게 정신적으로 묶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랑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계속 성령님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성령님을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하루에 성령님을 생각하고 교제 나누는 만큼, 여러분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딱~ 그만큼일 수 있습니다. 7. 저는 순간마다 성령님을 놓치지 않고자 발버둥 칩니다. 저 역시 순간순간 놓치곤 합니다. 다시 돌이켜 그분을 의지하고 찾고 묵상합니다. 회개한 다음에는 믿음으로 내가 그분 안에 있음을 바라봅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 갇혀있음을 바라봅니다. 크신 사랑이 나를 포위하시고 계심을 바라봅니다. 이것은 나의 상상이 아닙니다. 성경에 약속된 말씀이기에 이 말씀은 영적 세계에서는 신속하게 성취됩니다. 현실에서 내가 느끼기에는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빠르게 느껴져서 감격하기도 합니다. 8. 느낌과 상관없이 저와 여러분은 성령님의 임재 안에 갇혀 있습니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의 고백처럼 바다 끝에 거하든지 높은 하늘에 거하든지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곧 거기서도 함께 동행 하십니다. 부디 자유의지를 사용하셔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성령님을 더 생각하십시오. 성령님의 사랑과 임재에 의해 좀 더 포위되어지십시오. 성령님의 임재 안에 갇혀서 십자가 사랑과 감동을 회복하십시오. 하 스데반 선교사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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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임재에 갇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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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으라!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1. 오랜 친구사이인 두 할머니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한 할머니가 물어봤지요. “바깥어른은 잘 계신감?” “지난주에 죽었다오. 저녁식사 때 먹을 상추를 캐러 나갔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지 뭐요.” “저런 쯧쯧. 정말 안됐소. 그래서 어떻게 하셨소?” “뭐 별수 있나? 그냥 깻잎에다 먹었지.” 2. 웃픈(웃기고 슬픈)이야기지만 두 할머니의 포인트가 다릅니다. 깻잎보다 생명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할머니에게는 깻잎이 더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지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슬로건이 있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빌 클린턴은 이 슬로건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제 삶에서도 이렇게 적용해보고 싶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성령충만이야!" 3.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했든지 엡 5:18에서 “오직! 오직! 오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것 다 필요 없다는 뉘앙스로 오직 뭐가 필요하다고 하셨나요? 예,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오직 돈이 아닙니다. 오직 좋은 직장이 아닙니다. 오직 기도 응답이 아닙니다. 오직 은사가 아닙니다. 오직 안정적인 미래 계획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필요하다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삶에 문제도, 고통도, 기도제목도 많지요. 충만하심 보다는 오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 모르실까요? 다 아십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냉정하게 보일 법한 말씀을 하시나요? 왜 오직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필요하다 하십니까? 4.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하실 것에 대한 믿음의 눈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역사를 일으키실 준비를 하십니다. 최근 전 세계 영화제 상이라는 상을 휩쓸며 국위선양하고 있는 [기생충]이라는 영화의 유행어가 있습니다.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도 이미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문제투성이인 우리 삶에 기적을 일으키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전부 계획하셨습니다.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게 만드는 탁월한 방법을 붙잡기 원하십니다. 바로 성령님의 충만하심입니다. 5. 우리가 충만하심을 받으면 예수님의 믿음이 내 믿음이 됩니다. 믿음대로 되는 놀라운 역사가 체험됩니다. 엡 5:18에서 특이한 것은 술 취함과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대조적으로 언급하신다는 점입니다. 술 취함이 뭔가요? 새해가 되면 참 안타까운 사건들이 뉴스에 연일 보도됩니다. 1월 11일부터 12일까지 뉴스마다 방송되었습니다. [귀 물어뜯고 “기억 안 나”. 만취 승객, 또 택시기사 폭행] 이런 제목의 뉴스들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신다. 시간이 지나면 술이 술을 마신다.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6. 술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술이 범죄 행동을 지시하고 다스리며 통치하는 모습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 술 취하지 말기를 원하십니다. 술 취해서 필름이 끊기면 범죄가 많이 증가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술 취함은 현상 중에 하나일 뿐이요,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상징하는 술의 지배와 통치를 받기 때문입니다. 시대적으로 더 심각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당시에 술 취함은 우상숭배에 사용되던 중요 제물로서 사탄, 악한 영들의 지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은 예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누가 우리의 주인이냐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누구를 내 삶의 주인 삼고 살 것이냐의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제 한 번 생각해 볼 것은 오늘날 내 삶에서 술 취함, 우상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이냐?”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모든 것이 우상숭배요 영적인 술 취함이다.” 삶의 순간마다 예수님을 잊게 만들고 더 기쁨 주는 것이 있습니까? 음식이든 스마트폰이든, 운동이든, 사역이든 주님보다 더 기쁨을 준다면 그것들이 영적 술 취함이요, 우상숭배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잊게 만들 정도로 근심하게 만드는 것도 영적 술 취함이요, 우상숭배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술 취함은 우리를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듭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8. 이런 틈을 아예 만들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오직’ 가장 중요한 방법 한 가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바로 성령님의 충만하심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으면 마귀의 궤계에 속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계획들이 “내 삶에 성취되리라.”는 진리가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려면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바로 끈질긴 믿음의 기도임을 명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고 누리심으로 예수님의 아름다운 영광이 드러나는 삶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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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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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함을 받으라! 소멸하지 말라!
- 1.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5:19) 많은 분들이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중요함을 아십니다. 그러나 힘들게 받습니다. 어떤 분들은 연중행사로 1년에 1번 송구영신 예배나 부흥회, 수련회에서 경험합니다. 성경에 하나님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는다는 의미는 매일의 반복되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으로 날마다 충만하심을 받는다 할지라도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키는 것입니다. 2. 제가 아는 집사님의 간증인데요. 1980년대에 신앙체험이 많으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기도원 운동이 활발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금식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금식기도의 능력도 많이 체험했습니다. 집사님 역시 기도원에 올라가셔서 3일 이상 금식을 하곤 하셨지요. 하루는 여느 때처럼 기도원에서 3일 금식 마치고 성령님의 충만하심 가운데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오자마자 무언가 느낌이 ‘싸~’하여 부엌으로 후다닥 달려가셨습니다. 쌀독을 열어보시더니 갑자기 분한 마음을 못 참고 화를 냈습니다.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3. “아니, 어떤 도둑놈이 우리 집 쌀을 다 퍼갔어? 도대체 어떤 인간이 다 훔쳐 간거야? 누구야? 나와~ 나오라니까~!!!” 집사님께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고백하시더군요. “3일 동안 힘들게 은혜 받고 간신히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았는데요. 화 한 번 내고 다 까먹었어요. 기껏 힘들게 은혜 많이 받고 내려와서 은혜를 다 쏟아버렸지 뭐예요. 안타까운 것은요. 한 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그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4. 이 말씀을 하시는데 웃음도 나고 얼마나 깊은 깨달음이 있던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힘들게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는데 자신의 감정 한 번 조절하지 못해 잃어버립니다. 내 고집을 주장하다가 충만하심을 잃어버립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감동을 무시하여 또 잃어버리지요. 거짓말 한 번 하고, 변명하다가 잃어버리며 게으름으로 성령님을 소멸합니다. 때로는 더러운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허용했을 때 소멸되시기도 하십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거나 용서하지 못할 때에도 소멸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소멸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소멸하지 말며”에서 ‘소멸’의 의미는 ‘불을 끄다’ 혹은 ‘스위치를 내리다’입니다. 불을 끄거나 스위치를 내린다는 것은 힘의 차단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님을 소멸한다는 의미는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힘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된다는 의미지요. 그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5. 마치 충전 건전지에 비유할 수 있는데요. 리모컨에 건전지를 넣었다면 그 안의 에너지가 충분할 때는 작동이 잘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에너지는 다 빠져나갑니다. 이때 건전지를 미리 교체하거나 충전을 해야 합니다. 건전지 에너지가 거의 다 소멸되면 리모컨이 작동되다 말다 하면서 사람 속 뒤집어지게 만듭니다. 이상한 기능이 켜지기도 하고 결국 말을 안 듣지요. 마찬가지로 과거에 성령님으로 충만했다 할지라도 현재 성령님을 소멸했다면(구원을 확증하시는 내주하심을 잃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쓰임받기 불편한 상태가 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담대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마다 어색할 것이며 부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나의 노력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았다면 성령님을 소멸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주의해야 합니다. 6.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영적 가족들인 성도님들 안에 성령님 계시므로 서로 사랑의 교제 나눔을 실천하면 됩니다. 섬기시는 교회 목회자분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면 됩니다. 말씀과 기도의 은혜를 중심으로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성령님을 범사에 존중해 드리는 삶을 살면 됩니다. 성령님을 가장 귀한 친구로 여기고 그분과의 우정을 누리면 됩니다. 그분께 모든 주도권을 내어드리면 됩니다. 그분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을 항상 초청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계속 생각하고 생각과 감정, 모든 일을 그분과 소통하며 교제 나누면 됩니다. 7. 부디 날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힘쓰십시오. 성령님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받기는 어려워도 쏟아버리는 소멸은 쉬울 수 있음을 경계하십시오. 충만하심을 잘 지키십시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며 소원이시므로 언제나 성령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성령님을 신뢰하십시오. 기대하십시오. 점점 더 깊은 충만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새해에도 성령님의 친밀하심과 충만하심을 잘 지키시는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을 아름답게 드러내시리라 신뢰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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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함을 받으라! 소멸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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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주는 유익
- 1. 큰 딸 한별이가 자다가 신음소리를 내며 낑낑댑니다. 악몽을 꾸는 겁니다. 제가 한별이의 머리를 만지고 팔을 흔들며 이야기 합니다. “한별아, 악몽을 꿨나보구나. 그냥 꿈이니까 무서워하지 마. 아빠가 옆에 있어.” 제 목소리가 들리고 잠에서 살짝 깨니 눈을 뜨진 않았지만 살짝 웃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짓습니다. 민망하기도 한가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악몽 같은 문제가 다가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크신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2. “내 사랑아, 너는 내 안에 있어. 담대하라. 두려워말라.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리라. 문제보다 진짜인 나를 바라보라. 문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진짜가 아니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는 것이 진리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우리의 삶에는 다양한 인생문제와 고통이 반복적으로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큰 고난이 와도 대수롭지 않게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고통에도 쉽게 시험에 들며 믿음이 없는 것처럼 반응합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세상 끝날까지 성령님을 통해 동행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지느냐 믿어지지 않느냐의 차이 때문입니다.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을 훈련할수록 그런 믿음, 영적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3. 아프리카 케냐의 국립공원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갑니다. 다양한 종류의 짐승들과 맹수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재미있는 점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태운 차량이 접근하면 대부분의 동물들은 경계하며 긴장합니다. 다가가면 도망가기 바쁩니다. 사자들은 다릅니다. 차가 근처에 접근해도,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어도 무시합니다. 하품합니다. 드러눕습니다. 잡니다. 누군가의 고백처럼 그런 사자의 여유가 참 멋져보였습니다. 어찌 보면 관광객들이 열광하며 카메라 플래시 좀 터뜨려주면 “어흥~! 그래, 나 사자야~!”하며 교만해질 법도 한데, 일체 반응하지 않습니다. 4. 사자는 자신이 사자라는 정체성이 확실합니다.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없음을 잘 압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존재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친밀하게 동행하시는 존재입니다. 그런 정체성으로 우리가 무장되어 여유있게 반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가 다가오면 그런 여유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자꾸만 나 혼자 고통받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며 긴장하고 경계합니다. 저도 종종 경험합니다. 왜 그리도 이따금씩 외롭고 답답함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한 번씩 질문 드립니다. 5. “사랑하는 성령님, 성령님께서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항상 동행하시는데 저는 왜 외로울까요? 왜 슬프고 우울함을 느낄까요? 왜 이렇게 분노와 짜증이 올라오고 또 어찌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을까요? 왜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마음에 담아두고 감정소비를 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런 기분과 감정이 있어도 성령님께 아뢰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고 있으면 이내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너무나 잘 압니다. 제가 어찌 반응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어떤 모임에 참석했을 때, 같은 테이블에 있던 한 여인이 교회에서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금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6. “자매님이 불평하시는 그런 모든 일들은 모두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당신과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지금 어떤 관계에 있으십니까? 2주 동안 매일 5분씩 조용히 앉아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기도하면서 주님의 임재를 간구해 보십시오. 그리고 난 후에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매순간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했다고 해도 성령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헛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지 않는 그 어떤 선행도, 예배도, 다 자기 자랑일 뿐입니다. 7.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주님을, 성령님을 만나십니까? 날마다 성령님의 위로와 평강으로 눈을 뜨고, 성령님의 사상과 생각인 말씀을 따라 하루를 살아가십니까? 잠자리에 들 때에 그분의 품안에서 쉬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어떤 부자이건 어떤 권력가이든, 어떤 유명한 사람이든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의 삶이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인하여 먼저는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요, 우리에게도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나누며 동행하는 삶의 샘솟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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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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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주는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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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방법(2)
- 1. 우리나라 역사를 탁월하게 강의하는 설민석 선생님이 있습니다. 저는 인문학과 역사, 세계사를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 사람(목회자)으로서 종종 그분의 강의를 통해 공부합니다. 하루는 소통에 대해 역사 인물들을 살펴보며 공부를 했는데요.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방법과 연결해서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1430년에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은 세법을 하나 만듭니다. 바로 공법입니다. 신하들은 세종대왕이 만든 이 법을 살펴보고 너무나 좋다며 바로 시행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때 세종대왕은 명령합니다. 2. “고관대작들부터 촌부, 민초 하나까지 물어보라.” “전하, 촌부들은 글도 모르는데 어찌 물어봅니까? 그리고 그 많은 백성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물어보고 어느 세월에 하겠습니까?” 세종대왕은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물어보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라.” 결국 신하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일일이 물어보라는 왕의 명령을 따라 몇 년 동안 물어보고 조사했습니다. 3. 그 결과 긍정적이라는 보고를 받은 세종대왕은 “그래도 백성들이 혼란을 겪지 않고 잘 적응하도록 충분히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이 공법 제도를 실시합니다. 그 가운데 특히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감동을 받은 대목이 있습니다. “물어보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 왕도 이런 태도를 가졌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고 해결해 주신다고 했으면, 그냥 나아가도 되었을 것인데 그는 한 번 더 여쭤봅니다. 두 번 더 여쭤볼 때도 있고 세세하게 여쭤볼 때도 있습니다. 4.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삼하 5: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삼하 5:23-24)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삼상 23:2) 5.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삼상 23:4)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삼상 23:11-12) 6.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하나하나 질문하는 이러한 태도를 결코 싫어하시거나 귀찮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전부 대답해 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던 다윗을 본받기 원합니다. 끊임없이 백성들의 생각과 말에 귀를 기울였던 세종대왕의 태도를 본받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에 적용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성령님께 물어보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님께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님께 말을 걸고, 말을 걸고 또 말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7. “여러분, 성령님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님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이고 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런 태도를 우리 안에, 곁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십니다. “이 녀석, 나를 존중하고, 나를 잊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구나. 나는 네가 노력해주어서 고맙고 기쁘구나.” 8. 우리 모두가 이런 칭찬을 받는 삶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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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방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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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방법(1)
- 1. 거제도에서 장로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오산리 기도원에서 앞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인도하심이 어디에 있는지 집중해보고자 금식하셨는데 갑자기 제 생각이 나셨답니다. 장로님은 이전에 양평 금식기도원 서점에서 제게 집필하게 하신 성령님에 대한 책들을 구입하시고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읽고 계시며, 송구하게도 선물도 많이 하신다고 합니다.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며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2. 저는 느낌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부분을 설명해드렸습니다. 느낌을 종종 허락하시지만 느낌에 집착하다가 이미 동행하시는 성령님의 친밀하심을 거절하는 일이 있지 않도록 설명해드렸습니다. 들으시고는 다시 여쭤보십니다. “그러면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어떤 좋은 방법들이 있는지 가르쳐주세요.” 저는 즉각적으로 성령님께 마음속으로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제 안에 부어주시는 감동들과, 떠오르며 평소 정리되어 있던 내용들을 설명해드렸습니다. 지금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은 방법들입니다. 3. 우선 성령님과 이야기 나누는 비밀 노트를 만들어 보십시오. 영성일기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창한 무엇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런 전용 노트를 10권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몇 달 전부터는 교회에 노트를 비치해두고 그 노트를 사용하여 성령님과 교제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때나 써도 되지만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하다보면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에 유익하고 거룩한 습관이 됩니다. 저는 예전에 점심 식사 후 사무실에 들어오면 10분에서 20분 정도를 곁에 계신 성령님과 노트에 기록하며 교제를 누립니다. 성급하게 펜을 들지 않습니다. 일단 내 안에, 곁에 계신 성령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제 마음을 점검합니다. 평안함과 안정감 가운데 내면의 고요함이 시작됩니다. 4. 성령님을 느낌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친한 친구를 만나면 부담 없이 친근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성령님께 감사나 사랑을 표현하며 기록합니다. 기쁨도 어려움도, 일상의 이야기들을 노트에 적습니다. 말로 표현해야 할 부분들을 노트에 편지처럼 그러나 현재적으로 써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용해야 할 공간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으므로 종이에 써서 표현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면 언제 마무리 할까요? 아무 때나 상관없습니다. 노트로 이야기 나누는 것이 끝나면 이제는 또 다른 방법들로 계속 성령님과 교제 나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이라서 종종 그분을 놓칩니다. 깜빡하고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5. 그래서 추천해 드리고 싶은 교제의 다른 방법은 ‘이정표’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에 다양한 종류의 표지판이 있습니다. 지금 위치와 다음 지역까지의 남은 거리, 방향, 도로 주의사항 등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운전 중에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엉뚱한 길로 가기도하고 잘못 된 길로 들어가기도 하며 곤욕을 치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실수를 방지하도록 돕고자 이정표, 표지판이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님을 종종 잊어버리기에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정표를 준비하면 좋습니다. 제 첫 번째 이정표는 핸드폰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성령님.” 혹은 “어서오세요. 성령님.”이라는 문구를 써놓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라서 배경화면에 성령님과 관련된 성구나 사진 이미지를 적용해놓곤 합니다. 가끔은 제 손바닥이나 손등이 ‘이정표’가 됩니다. 글씨를 써서 다닌 적도 있거든요. 6. 여러분이 주부라면 주방과 거실에 예쁜 이미지와 글씨로 “성령님, 함께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어서오세요.” 등의 문구나 성령님과 관련된 성구를 써 붙여놓는 것도 지혜입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정면에 예쁘게 코팅해서 붙여놓으면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 곳곳에, 또 일하는 직장에서도 여러분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문구나 글귀로, 성구나 이미지로 ‘이정표’, ‘표지판’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처럼 다이어리를 사용하신다면 매일 첫 줄에 성령님을 초청하거나 존중해드리는 문구를 기록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7. 제가 아는 자매님은 십자가 반지를 사용했습니다. 반지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성령님을 찾기로 결단했다고 하셨는데 참 감동이 되더라고요. 감동 있으신 분들은 시도해보시되 그 물건을 볼 때마다 성령님이 생각나면 성공입니다. 그러나 매너리즘에 빠져서 효과가 약해질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이정표를 사용하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들을 절대로 우상화 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장기적으로는 이정표가 없어도 성령님을 의식하고 존중해드리는 친밀한 삶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부디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해드리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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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
-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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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방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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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순종하는 삶
- 1.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씩 혹은 기분이 좋을 때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 결과 우리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고 그분의 영광을 가리우거나 삶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상시에 성령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들로 인도하십니다. 목사님들의 설교와 가르침, 권면, 성경 묵상과 기도, 세미한 감동들이나 거룩한 소원을 두심 등으로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성령님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무지할 때 문제가 됩니다. 2. 잘 안다 하더라도 성령님의 감동을 소멸시키며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 우리의 영혼은 점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무디어집니다. 나중에는 크게 말씀하셔도 불순종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회복하신 창조의 목적인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대신 기복신앙에 물들어 죄와 이 땅의 문제에 쉽게 얽매이게 된다는 사실이 두려운 일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오히려 죄가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더 이상 성령님의 촉구하심을 듣지 못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고야 만다는 의미입니다. 3.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잘 무시하는 사람을 보셨나요? 길을 가다가 건물에서 화분이 떨어지는데 <위험하니까 피해요> 라고 말해도 안 피합니다. <나를 부르는 게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무시합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자명하지요. 이런 현상과 비극이 삶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하면 나타나게 됩니다. 마음과 목이 굳어지면, 영적인 귀가 굳어지면 다양한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이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음성에 그들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후 “나가서 정복하라”고 하셨을 때 즉시로 “싫어요.”를 외치며 악착같이 거부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찼습니다. 말씀에 순종했다가는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4. 그러나 불순종에는 어떠한 이유도 타당치 않습니다. 불순종은 반드시 해로운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무엇보다 성령님께 대하여 우리의 마음을 굳어지게 할 것입니다.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악영향을 일으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듭하여 무시한 결과 하나님께서 결국 그들을 광야로 보내셨다. 그들은 너무나 목이 뻣뻣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획하신 축복을 주지 못하시고, 두 사람만 남고 모두 다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신세대를 일으키셨다. 5.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훈으로 삼아 당신의 삶에서 죄가 되는 부분을 적당히 내버려두고 방관하는 삶을 살지 않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라고 하신 것을 나중에 하는 것이 더 쉽다고 하면서 미루지 말라.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중에는 더 어렵다! 성령님께서 당신에게 충고해 주실 때 그의 지시에 따르라. 그리고 즉시로 순종하라. 당신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주님께 순종하기 바란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크고 작은 다양한 음성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성령님의 전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음성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자동차가 운전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큰 사고로 이어집니다. <나>라는 자동차는 성전의 운전자 되시는 성령님께 핸들을 맡겨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만을 향하신 축복의 계획들을 온전히 성취하시는 최종 목적지에 안전하고도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이며 가장 큰 행복인 그분과의 사랑과 우정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2-14) 부디 다양하게 말씀하시며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사랑과 겸손함, 순종으로 반응하십시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예수님만을 높이시는 성령님께 대화를 요청하십시오. 모든 말과 생각, 상황을 의논하십시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십니까? 바로 말을 거셔서 교제 나누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친구들로서 성장하고 있는 우리를 반드시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 삶에 두신 예수 이름의 영광을 아름답고도 찬란하게 드러내시는 축복의 통로로 여러분 모두를 마음껏 사용하시리라 신뢰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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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순종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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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는 권능이 아니라 인격체이십니다
- 1.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요16:4-5) 열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불안함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늘 곁에 계셨던 예수님께 작은 문제부터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뢸 수 있었습니다. 2. “주님, 저희 장모님께서 아프십니다. 걱정이에요.” “주님, 제가 맛있는 음식을 가져왔는데 드셔 보세요.” “예수님, 아내와 싸우고 왔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예수님, 제 행동이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요?” “주님,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상을 받았는데 정말 기쁩니다.” “주님,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축하해주세요.” 예수님께서는 늘 위로와 격려, 지혜로운 해답을 주셨지요. 큰 문제들과 일상의 소소한 일들조차도 주님과 사랑이 깊어지는 만큼 소통했습니다. 위로와 격려, 가르침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아왔습니다. 주님과의 우정과 사랑을 키워왔습니다. 3. 그런데 주님께서 떠나가신다니 얼마나 가슴이 꽉 틀어 막힌 것처럼 답답한 심정이었겠습니까? 제자들의 근심과 걱정을 아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4. 결국 오순절에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은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성령님을 예수님 대하듯이 인정해 드렸습니다. 성령님을 예수님처럼 자신들의 주인이요 스승, 친구 그 이상이 되시는 가깝고 친밀하신 분으로 인정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다음 말씀의 의미를 놀랍게도 우리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5.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깊고도 친밀한 우정과 사랑을 누려왔던 제자들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먼저 기대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처럼 자신들의 고민도 상담해주시고, 자신들의 어리석음도 지혜롭게 변화시키시며 인도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님께서도 자신들의 기쁨을 아뢰었을 때 함께 기뻐해주실 것을 믿고 기대했습니다. 자신들의 슬픔도 근심도 함께 아파하시며 위로해주실 것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6.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단순하게 성령이라는 권능, 혹은 성령의 은사가 임해서 전도와 선교를 한다는 차원으로 먼저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 권능과 능력부터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은 잊어버립니다. 성령님이라는 인격적인분과의 접촉과 만남이 먼저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성령님, 임하여 주옵소서!” 금식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조차도 은사나 능력이 나타나기를 온 마음으로 추구합니다. 기도할 때도 성령님이라는 인격적이신 분과의 친밀한 만남이 먼저임을 잊어버립니다. 7. 우리도 제자들처럼 성령님과의 인격적이고도 친밀한 관계를 순수하게 추구해야 합니다. 그분의 권능과 은사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은사를 나눠주시는 성령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디 순수하게 성령님을 찾고 존중해드리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삶과 사역의 모든 영역, 작든지 크든지 모든 것을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의미로 함께 의논하십시오. 책을 읽으면서 성령님과 친밀하게 이야기 나누십시오. 밥을 차리든지 설거지를 하면서도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8. 친구를 만나든지 성도님들을 만나든지 마음속으로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직장에서 일을 하는 시작, 과정, 마침에 있어서도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기도하고 전도하면서, 봉사하면서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성령님을 계속 생각하십시오. 성령님께 마음과 생각으로, 입술을 열어서도 계속 대화를 시도하십시오. 성령님께서는 성령님을 찾고 의지하는 사람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십니다. 오늘도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가운데 충만하심을 경험하고 누리시는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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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
-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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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는 권능이 아니라 인격체이십니다


